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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토의 문화 QCC
창의력,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다 같이 가지고 있다. 창의력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 귀중한 창의력을 한국인들은 활용을 하지 않고,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잘 활용한다. 4만 명의 도요타 자동차 회사에서는 매년 평균 260만 건의 창안 안건이 제안되고, 그 96%가 반영된다. 마쓰시다와 후지전기는 근로자 1인당 평균 매월 10건씩의 창안 안건이 제출된다. 이 중 50%가 반영이 됐다. 1950년,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데 토요다는 포드에 비해 10배나 많은 인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25년 후인 1975년, 토요다 생산성이 미국을 훨씬 앞질렀다. 토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일본의 레저업체 ‘하와이언 스파’, 토의로 인해 태어난 기업이다. 1750년 영국에서 발아된 산업혁명, 석탄이 에너지원으로 등장해 200여 년 동안 인류에 공헌하다가 1950년을 전후해 석유에 자리를 내주었다. 일본의 탄광 회사들이 직종을 바꾸거나 폐업이 되었다. 모든 근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한 탄광 근로자들이 모여서 토의를 했다. “우리는 가족처럼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사람이 많으면 토의가 제대로 안되니 마음에 맞고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는 친구들끼리 조를 짜서 대안을 찾아보자” 건강 레저기업을 만들자는데 의견일치를 보였다. 손이 거칠고, 행동이 유연치 못한 광부들은 뒤에서 일하고, 가족들이 앞장서서 웨이터와 웨이트리스가 되었다. 이렇게 탄광 노동자들이 창업한 새 기업이 오늘날 세계에서도 유명한 건강레저기업 ‘하와이언 스파’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탄광이라는 막장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도 직장을 가정과 같은 생활 공간으로 여기고 동료들을 가족으로 여기는 집단의식이 엿보인다. 도전정신이 보이고, 일본 사회의 토의문화가 탄광 속에까지 침투돼있다는 사실이 보인다. 이런 일본 사람들이 조선 청년들을 직장에서 차별하여 이지메시키고 따돌려 혹사시키고 학대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매우 어렵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상목은 15세에 가출하여 일본으로 휩쓸려 갔지만 일본군 군 병원에서 봉급을 받고 일하다가 군의관이 조선으로 되돌려 보내주려 했다가 폭격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군 병원에서 일하다가 위안부가 되었다 한다. 심미자의 경우에는 교실에서 한국 지도에 무궁화꽃을 수놓고, 일본 지도에 나팔꽃을 수놓았다 하여 경찰에 끌려갔는데 일본군 헌병대장 스즈끼의 연인이 되었고, 한용운과 박마리아의 부탁을 많이 들어주었다고 한다.
헌병대장은 매우 착해서 조선인들을 도와주는 것을 용인해 주었다고 한다. 이상옥을 군 병원에 취직시킨 일본인이 있었고, 그녀를 조선으로 돌려보내 주려던 착한 일본군 군의관도 있었고, 신미자를 제 2의 부인으로 사랑한 헌병대장도 있었다. 이는 일본을 헐뜯고 모략해온 이야기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참인가?
일본의 토의 문화는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 배려와 상대방으로부터 배우려는 일본인 특유의 자세에서 자연적으로 성숙돼 왔다. 그런데 이 장점을 미국과의 산업경쟁을 위해 본격적인 시스템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계기는 일본 품질문화에 연결돼 있다. 토의가 일본 품질문화의 절대적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일본 품질문화의 독특함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따로 다루겠지만 토의가 얼마나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는가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필자가 한 최고경영자 과정에 나가 시스템 경영에 대한 강의를 할 때 한 경영자가 필자의 얼굴을 유심히 뚫어져라 응시했다. 왜 필자를 유심히 바라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너무나 공감이 가서였다고 했다. 그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저는 건설업자인데 처음에는 개인들로부터 부탁을 받아 각기 원하는 개성 있는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어느 한 부자가 값은 2배로 줄테니 매우 짧은 기간에 집을 완성시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건축계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납기였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2배라서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욕심에 결단을 내려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건축에 동원된 모든 하청업자들을 한 군데 불러 모아 사정을 말하고 방법을 찾아보자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A의 아이디어가 좀 부족하면 B라는 사람이 보충해 주었습니다. 매우 놀랍게도 손발이 척척 맞아 자본주가 원하는 기일 내에 건물을 납품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신기한 경험이 경영학 이론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2000년 초, 미국 굴지의 기업 GE의 잭 웰치 회장의 경영이론이 널리 읽혔다. 그의 성공 스토리의 핵은 워크아웃(workout)이었다. 부실기업의 워크아웃(walkout)과는 발음은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그는 가는 데마다 문제를 발견했다.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관련자들을 현장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현장 토의를 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문제는 곧바로 현장 토의를 통해 해결하고, 연구 과제라며 뒤로 미루지 말라고 했다. 이것이 GE사의 워크아웃이다. 사람이 많으면 아이디어도 많다. 이익을 많이 내자는 것은 기업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모든 인류가 동감할 수 있는 숭고한 가치(Value)를 목표로 설정하라. 세계인이 공감할 수 없는 목표와 가치는 GE의 사원들도 공감할 수 없다. 목표에 공감이 가야 사원들의 창의력과 정열이 발동한다. 통제하지 말라. 통제를 안 하는 것이 훌륭한 경영술이다. (Less Control is more Control)부서와 부서 간의 벽을 부숴라. 벽이 없어야 아이디어가 창출된다. 상하의 계급도 없애라. 관리자는 보스가 아니라 코치여야 하고 팀장이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토의가 위력을 발산할 수 있다.
토의를 무기로 한 GE의 잭 웰치는 2000년 초에 등장한 미국 경영계의 샛별이었다. 그런데 이 토의는 그보다 40년 전인 1962년 이미 일본 전역에 확산되기시작했다. 일본식 분임 토의 이름은 QCC(Quality Control Circle) ‘품질관리서클’로 출발했다. 토의문화가 기업에서 가장 먼저 출발한 것이다. 1962년에는 니폰 무선전보 회사에, 1965년에는 토요다에 전파됐다. 창안자는 일본 통계학자 ‘가오루 이시가와’, 해마다 일본에서는 가오루 이시가와 상을 타기 위해 전국의 써클이 다 발표회에 참가한다. 예를 들어 1990년 12월 6일에는 2,590번째 일본 QCC 대회가 열렸다. 그해에 열린 QCC 대회는 무려 183회였다. 이틀에 한 번씩 대회가 열리니 QCC 대회는 가히 생활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14만 2,408명의 QCC 대표자가 참가했고, 3,941개의 문제해결 사례가 발표됐다. 모든 QCC 분임조에는 작명이 돼 있다. 화장품 회사인 ‘코제’의 ‘미다마 서클’, 미쓰비시의 RJK 서클은 일본 전체에서 유명한 선두팀들이다.
1999년 LG의 한 중역이 필자를 찾아왔다. “LG의 가오루 이시가와 박사가 되어달라”고 했다. 그 프로젝트가 성공했더라면 지금 한국기업에 얼마나 많이 퍼졌을까! 그 프로젝트를 차단한 사람은 김대중 정부 당시의 국정원장 임동원이었다. 그는 도청을 총지휘했다는 혐의로 사전 구속되어 감옥에 갔다. 사전구속 영장 발부 이유에는 “아무런 저항 흔적 없는 자연인 지만원을 여러 달 도청하여 활동을 차단시켰다”는 것이었다. 당시 국정원 제2차장 김은성은 “이상하게도 DJ가 지만원이라는 사람을 지극히 미워했고, 임동원 원장으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지만원에 대한 정보를 채근해서 임기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통신을 담당하는 8국장 김병두도 원장으로부터 지만원에 관한 정보를 채근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도청 내용에서 가장 많은 것이 강연 약속이었다고 진술했다. 저자는 왜 DJ로부터 미움을 받았는가? 그가 제의하는 모든 자리를 사양하고, 그의 햇볕정책을 퍼주기 공작이라 정의하고, 그의 대북 정책을 총독 정책이라고 혹평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민주화의 화신이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DJ)의 민얼굴인 것이다.
LG에서는 왜 필자를 찾아왔는가? 1970년 필자가 30세였던 대위 시절, 베트남 전쟁터에 가서 포대장을 하면서 진중 토의 문화를 정책시켰던 경험들과 41세부터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토의를 통해 과제를 수행했던 경험을 여러 개의 책에 소개했고, 수많은 강의 기회를 통해 토의가 내는 위력에 대해 설명을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경영진단을 할 때 관련 실무자들과 토의를 하는 것은 굉장한 위력과 학습효과를 낼 수 있었다.
토의의 걸림돌, 한국의 신분 문화
한국 기업의 애사심은 하급자로 내려갈수록 더 높다. 하급자들은 기업의 주인이 바로 자기라는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 하지만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중간관리자들이고 간부들이다. 신분주의가 상하관계를 불통 관계로 악화시키는 것이다. 한국 축구를 획기적으로 개화시킨 히딩크,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축구계의 고질인 상하 선후배 관계를 헐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게임을 재생해 보고, 후배라도 선배의 실수나 버릇을 지적할 수 있도록 하여 지혜를 창출하는 토의문화를 설치한 것이다. 선후배, 상하 사이에 토의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 상급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함께 문제점을 찾아내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도록 기회와 동기를 마련해주는 ‘촉진자’(Facilitator)여야 한다. 앉아서 결재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건물의 리모델링(Renovation)을 할 때, 수주를 받은 한국팀과 다른 수주를 받은 영국팀이 일하는 과정을 관찰한 적이었다. 한 회사에 한국팀과 영국팀이 함께 편성돼 있는 회사에 대해 경영진단을 했기 때문이다. 영국팀, 리모델링 수주를 받기가 무섭게 부사장이 가장 먼저 건물의 층과 층 사이를 기어다녔다. 아래위가 붙은 고무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에는 전등을 달고, 손에는 커다란 랜턴을 들고, 녹음기를 가슴에 차고 먼지 많은 어두운 공간을 기어다니면서, 작업할 내용을 상세히 녹음기에 입력했다.
그리고 녹음 내용을 문서화한 후 본인이 할 일, 팀원들이 할 일을 정리한 후 이동 중에 통신으로 작업지시를 내린다. 속도와 정확도가 대단했다. 영국에서는 직급이 높을수록 현장 지식과 지혜가 많다. 반면 한국팀은 수주를 맡았을 때 어떻게 하는가? 맨 밑에 있는 대리급이 층 사이의 검은 공간을 누빈다. 그가 관찰한 내용을 문서화하여 결재를 올린다. 과장, 차장, 부장, 상무, 전무로 올라갔다. 대리가 과장 결재를 받으려는데 과장이 바쁘다. 과장이 부장에게 결재를 받으려면 부장이 휴가 중이다. 시간이 늘어진다. 지식과 지혜가 풍부한 영국 부사장이 관찰한 것과 그것이 부족한 대리가 관찰한 내용을 비교하면, 누구의 관찰 내용이 질적으로 우수할까? 질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열등한 것을 놓고, 결재에 결재가 릴레이로 이어지는 한국식 경영이 한심해지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서는 높은 사람이 의자에서 일을 하고, 선진국 기업에서는 높은 사람이 현장에서 일한다. 미국, 영국, 호주의 경우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종일 현장에 다니면서 서서 일을 한다. 자기 사무실 의자에 앉을 때가 드물다.
한국적 관료주의에 나타난 일반적인 현상을 필자의 경영 진단 경험에서 뽑아보았다.
1) 간부에 대한 불신감 : 문제나 태도를 말하면 손해 본다. 어쩌다 말해놓고는 즉시 후회한다. 회사의 문제점을 수용해주는 것이 아니라 비난과 질책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견돼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2) 관료주의 : 결재 때문에 일할 맛을 잃는다. 급하게 진행돼야 할 일이 결재 때문에 지연된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하급자를 불러 욕부터 한다. 그리고 결재를 보류(Holding) 해놓고, 알아서 하라고 한다.
3) 간부의 무능 : 지침도 안 주고 일거리만 던진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조선 양반 스타일이다.
4) 신분 차별 : 신분 차별 때문에 하루에도 여러 번씩 기분이 상한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간부들에게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 모멸감 때문에 퇴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빠듯하게 운영하는 협력업체에 이렇게 해서 결원이 생기면 사람 구하느라 대기시간이 늘어난다. 사람 구하기도 힘들다.
5) 알력 : 어느 기업에서나 최고경영자에는 심복이 있다. 그 심복과 간부 사이에는 거의 예의 없이 불화가 있다. 간부들과 최고경영자 사이에 벽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더해 심복이 설치면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회계장부에는 잡히지 않지만 천문학적이다. 유능한 경영자는 보이지 않는 비용, 물 밑에 가라앉은 커다란 빙산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차지철이 너무 설쳤기에 말년의 박 대통령을 감싸고 있던 고위직들의 마음이 박 대통령을 떠난 것과 같은 이치다.
6) 서로 미루기 : 의당히 해오던 일은 관성의 법칙에 따라 묵묵히 계속하지만 생소한 일이 생기면 서로 미룬다. 살아남으려면 남에게 미루기를 잘해야 한다. 품질에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시간을 버린다.
7) 극도의 이기주의 : 한 달에 한 번쯤 분임 토의(QCC)를 열지만, 터놓고 말하기를 꺼려 한다. 남의 문제에 끼어들기 싫은 것이다. 자기 소관 분야의 문제를 얘기했다가는 마음에 상처가 될 정도로 질책부터 받는다. 달팽이 벽을 쌓을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와 같은 동대(同隊)의식, 공동운명체 의식이 없다.
8) 문제 은닉하기 : 개인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도 있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 구조적인 문제는 상급자들의 소관이다. 이런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면 상급자가 질책을 받는다. 그래서 쉬쉬하고, 쉬쉬하는 동안, 문제는 계속 발생한다.
9) 불안감 : 차장급 이하의 사원들은 언제나 불안하다. 심지어 부장급 회의가 있는 날에는 하루종일 불안에 떤다. 회의에서 돌아온 부장이 수첩을 책상에 던지면서 화를 낸다. ”왜 다른 부장들은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느냐?“ 회의에서 꾸지람을 받고 온 부장은 화풀이를 사원들한테 한다. 부장회의는 그 자체가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