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왠지 좋은 느낌
어제 새벽까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지던 비가 여행 날을 반기듯 잦아들다 멈췄습니다.
오늘 여행 내내 이런 날씨가 유지되길 기대하며 희영 실습생과 여행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방화중학교로 출발하기 전, 안타까운 소식을 마주했습니다.
우인이가 감기로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여행 참석자는 송연이와 예원이 그리고 시율이입니다.
참석자 명단 공지에 시율이가 우인이 없는 여행은 재미없다고 답했습니다.
시율이의 답장에 걱정이 들긴 했지만 셋이서도 충분히 즐거운 여행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방학식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방화중학교로 걸어갔습니다.
방화중학교에 들어서니 방학식을 마친 아이들이 줄지어 나옵니다.
미리 정해둔 집합 장소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예원이가 들어왔습니다.
들어오는 예원이를 본 방화중학교 서혜숙 부장님께서 예원이 학급이 종례가 가장 늦다며
예원이가 끝났으면 이미 다들 하교했을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서둘러 송연이와 시율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송연이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송연아 우리 209호에서 기다리고 있어~ 어디쯤이야?”
“아 선생님 저 오늘 못 갈 것 같아요. 집으로 가고 있어요.”
송연이가 하교하는 길에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고 합니다.
집에 가서 엄마 카드를 챙겨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송연이에게 조심해서 병원에 가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송연이와 제가 연락하는 사이에 희영 실습생이 시율이와 연락이 된 듯 보였습니다.
통화의 상황을 묻는 저의 입 모양에 희영 실습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시율이와의 통화가 길게 이어지는 듯 보여 가까이 가서 앉았습니다.
길고 긴 설득 끝에 시율이가 학교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시율이와 통화를 마치고 혼자 앉은 예원이를 보니 작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예원이와 제일 친한 친구인 유미를 다시 설득해보기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유미는 친구와 피시방에 갔다고 합니다.
추가결제까지 한 상황이라 여행에 함께하기는 어려운 듯 보였습니다.
서혜숙 부장님께서 결제한 시간만큼 저장해 두는 것이 가능하니
더 설득해 볼 것을 제안하셨지만
더 이상 유미에게 부탁하는 것을 예원이가 원하지 않아, 연락하는 것을 멈췄습니다.
“선생님 진짜 가요? 오늘 여행?”
그늘진 예원이의 얼굴을 보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예원아 우리 놀고 싶은 대로 놀자. 막상 나가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을 거야.”
#여행 시작
도착 시간이 더 늦어지기 전에 빨리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교실을 나서며 우연히 만난 방화중학교 선배 태영이도 여행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예원이와 함께 길 찾기를 켜고 앞장서 걸었습니다.
오늘 여행의 길잡이는 저와 예원이입니다.
“예원아 두 갈래 길이야! 어디로 가야 하는지 봐 줄 수 있겠어?”
예원이는 가는 길 내내 손에서 지도를 놓지 않았습니다.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방향을 잡고, 빠른 환승 칸까지 찾아 탑니다.
길 찾기에 열중하면서도 뒷사람을 기다려 주는 세심함까지 보입니다.
“선생님 조금 기다려야겠어요.”
“선생님 이제 출발해요.”
예원이의 말에 따라 함께 기다리고 다시 출발했습니다.
중간중간 3학년 태영 선배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태영이는 남산 서울 타워 여행 경험이 있어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예원이가 길잡이팀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맨 뒤에서 지켜보고 따라와 준 태영이에게 고맙습니다.
참 멋진 여행 선배입니다.
길잡이팀 예원이만 따라가니 일사천리로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식사팀이 깐깐하게 원조를 따져 정한 남산돈까스 식당입니다.
식사가 끝나갈 때쯤 예지 선생님께서 예원이에게 오늘 여행에 관해 물으셨습니다.
“예원아 오늘 친한 친구도 많이 안 오고 여행 갈지 말지 고민했을 것 같은데 어때?”
“네 안 그래도 친구들이 오늘 여행은 같이 빠지고 29일에 같이 가자고 그랬어요”
“진짜? 그런데도 여행에 왔네! 책임감 때문이야?”
“네. 어제까지 준비도 같이했고 또 가는 길도 제가 아니까요.”
여행지를 정하고, 길을 찾고, 사진 주제를 정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모든 과정에 예원이가 함께하며 자신의 역할을 세웠습니다.
이 과정이 예원이가 오늘 여행을 자신의 여행으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여행 회의 시간을 예원이의 시간으로 잘 도운 것 같아 예원이의 대답에 감사했고
여행을 잘 도운 나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예지 선생님께서는 어제의 실습생 감사기록을 예원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어제는 희영 실습생과 저 모두 예원이에 대한 감사를 기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원이에 대한 감사를 봤을 거라는 예지 선생님의 말씀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저희의 기록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예원이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걸어서 가보자
식사를 마쳤으니 이제 움직여야 합니다.
남산 서울 타워로 가는 방법은 버스를 타거나 걸어가는 방법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버스를 탈까 했지만 결국 시율이 예원이 둘 다 걸어가 보겠다고 합니다.
걷다 보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집니다.
우산을 펴봤지만 바람이 매서워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둘씩 가방에 넣어 온 우비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8명 다 함께 우비를 입은 모습이 정다워 보입니다.
남산을 걸어 오르는 길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지만 조금씩 올라갈수록 더 넓은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그때마다 아이들의 표정도 점점 밝아졌습니다.
“선생님 저 산 좀 보세요. 구름에 가려져 있어요. 얼마나 높은 걸까요?”
시율이가 멋진 전경에 감탄하며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러게, 시율아 정말 높다. 다음번엔 저 산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걸어 오르는 건 힘들지만 버스로 이동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을 느끼고,
마주하지 못했을 풍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게 붑니다.
예원이와 희영 실습생과 셋이서 바람을 따라 빙글빙글 돌며 한참 동안 바람을 맞았습니다.
시원한 바람에 지친 마음과 더위가 씻겨 사라지는 듯합니다.
쉬는 시간을 잠시 가진 후에 ‘친구의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하기’ 주제에 맞는
사진을 찍기 위해 예원이와 남산 곳곳을 다녔습니다.
예원이가 가장 좋아한 장소는 서울 전경이 훤히 내다보이는 전망대 자리였습니다.
예원이가 풍경을 내다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날이 좋을 때 오면 더 좋겠죠?”
“선생님은 오늘 같은 날씨도 좋은데? 운치 있지 않아?”
“맞아요. 그래도 전 화창한 날 풍경이 궁금해요.”
가을의 어느 선선한 날에 다시 와서 버스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고 싶다고 합니다.
다시 올 기약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장소가 뜻깊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오늘의 소감 나누기
여행에서 찍은 사진 중 자랑하고 싶은 사진을 카톡방에 올리고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시율이의 소감>
‘남산타워에 올라가면서 우비 입고, 땀 많이 흘리고, 물 다 마시고 도착해서 사진 찍고,
뭐 뭐 있는지 구경하면서 각자 사진 보여주기를 해서 재미있었습니다.’
시율이가 희영 실습생과 전화하며 필카추 탈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꺼내왔다고 합니다.
오늘도 여행을 가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시율이를 억지로 데리고
여행을 시작한 듯해서 마음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남산 서울 타워 여행의 과정을 읊으며
재밌었다 말해준 시율이 덕분에 마음을 놓았습니다.
시율이가 여행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또 조금 더 적극성을 띄울 수 있도록
여행 안에서 시율의 역할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여 잘 돕고 싶습니다.
<예원이의 소감>
‘남산타워까지 올라오는데 힘들었지만 ,좋은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날씨가 조금 더 좋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29일에 가는 여행도 기대됩니다.’
예원이가 남산을 오르며 가장 많이 한 말이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였습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땀 흘렸기에 정상에서 맞은 바람이 반가웠고,
지쳤기에 정상에서 본 전망이 더 크게 마음을 울렸습니다.
정상에 올라 우비를 벗어 던지며 바람을 맞던 예원이의 표정과
마음에 쏙 드는 풍경을 카메라 속에 이리저리 담아보는 예원이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원이는 집에 가는 길까지 길잡이의 역할을 다하며 나의 여행으로 완벽한 마무리를 지은 듯 보였습니다.
<태영이의 소감>
‘생각보다 오랜만에 이렇게 여행에 와서 재미있었고 다음번에도 이런 좋은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여행에 태영이가 함께해주어 정말 든든했습니다.
여행 선배로서 동행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이들이 여행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을 텐데 흔쾌히 함께해주어서, 그리고 즐거운 여행이라고 느껴줘서 고맙습니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율이에게 29일 여행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고민하는 듯한 시율이의 표정에 제가 말했습니다.
“시율아 29일에는 다른 친구들도 훨씬 많이 가고 진짜 재밌을 텐데 고민하는 거야?”
“아 저녁 전에만 오면 돼요. 몇 시에 올건데요?”
시율이가 저녁에 생일을 맞아 가족 외식을 나간다고 합니다.
4시 전까지 도착할 수 있다는 말에 그럼 같이 가겠다고 답합니다.
오늘의 남산 서울 타워 여행은 비록 시작은 어려웠지만
두 친구 모두 나름의 의미를 찾은 듯 보입니다.
29일 여행이 더 기대됩니다.
첫댓글 본인의 여행으로 생각하며 여행을 다녀온 예원이,
모임을 탈퇴하고 싶었지만, 여행을 누구 보다 즐기며 적극성을 보여준 시율이 모두 많은 친구가 함께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을 이루며 예원이에게는 가을에 다시 오고 싶은 공간이 되었고, 시율이에게는 여행 과정을 읊으며 재밌었다고 말할 정도로 선명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여행일 수 있도록 잘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여행 다녀와서는 가고 싶었지만, 못 간 친구들에게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여행이 더욱 기대됩니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