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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전도사 나정집의 감동 글
1. 부모(父母)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죄수들에게 물었답니다. “세상에서 누가 가장 보고 싶냐?”라고 물었더니 두 개의 대답이 가장 많았답니다. “엄마”와 “어머니”. 왜 누구는 ‘엄마’라고 했고, 왜 누구는 ‘어머니’라고 했을까요? 둘 다 똑같은 대상인데... 그래서 또 물었답니다. 엄마와 어머니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랬더니, 나중에 한 죄수가 이렇게 편지를 보내왔답니다. “엄마는 내가 엄마보다 작았을 때 부르고,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보다 컸을 때 부릅니다!”
즉, 엄마라고 부를 때는 자신이 철이 덜 들었을 때였고, 철이 들어서는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첫 면회 때 어머니가 오시자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부여안고 "엄마~!" 하고 불렀다고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엄마와 어머니의 정의를 명확하게 말한 곳은 없겠지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불가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따르면, 엄마는 우리를 낳을 때 3말 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시고, 낳아서는 8섬 4말의 혈유(血乳)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주민등록증 외에 또 하나의 증을 가지고 계십니다. 골다공증!
아버지는 손님! ‘힘없는 아버지’에 대한 슬픈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유학 간 아들이 어머니와는 매일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는데, 아버지와는 늘 무심하게 지냈답니다.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내가 이렇게 유학까지 왔는데, 아버지께 제대로 감사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만 부모 같았지, ‘아버지는 늘 손님처럼 여겼다.’라고 말입니다. 아들은 크게 후회하면서 ‘오늘은 아버지께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집에 전화했습니다.
마침 아버지가 받았는데, 받자마자 “엄마 바꿔줄게.” 하시더랍니다. 밤낮 교환수 노릇만 했으니 자연스럽게 나온 대응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니요. 오늘은 아버지하고 이야기하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왜, 돈 떨어졌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돈 주는 사람’에 불과했던 겁니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께 큰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너무 불효한 것 같아서 오늘은 아버지와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너, 술 마셨니?”하더랍니다. - 이어령 교수의 글 -
2. 삼일수심 천재보(三日修心 千載寶)
소년은 15살이었습니다. 하루는 마을 근처에 있는 절에 놀러 갔습니다. 거기서 동자승을 만났습니다. 동자승은 그에게 명구(名句) 하나를 읊었습니다.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요, 백년탐물(百年貪物)은 일조진(一朝塵)이다.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다.
소년은 상당히 조숙했었나 봅니다. 그는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큰 감동도 받았으며, 자신이 갈 길이 바로 이 길임을 직감했습니다. 소년은 그 길로 몰래 집을 나와 출가를 하는데, 15살 소년의 자발적 출가였습니다. 그 소년이 누구냐고요? 불교계에서 강백(講伯)으로 이름이 높은 무비(無比) 스님입니다. 15살 소년은 이제 79살의 노승이 되었지요.
잠시 가톨릭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예전에 가톨릭에서 주관한 '죽음체험 피정'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줄지어 선 참석자들은 자기 차례가 되자, 관속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잠시 후 관 뚜껑이 닫히고 그 속에서 5분가량 있다가 다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관에서 나온 사람마다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걸 쭉 지켜보던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저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저들은 왜 눈물을 흘리는 걸까?
저는 취재 수첩과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줄을 섰지요. 제 차례가 왔고, 저도 관속으로 들어가 누웠는데 곧이어 관 뚜껑이 닫혔습니다. 관 뚜껑과 관, 그 사이로 실처럼 가느다란 빛이 들어왔기에 아주 캄캄한 어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관 뚜껑 위로 천이 덮였습니다. 그러자 빛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어둠 속에 제가 누워있었습니다. 아, 여기가 무덤이구나!
공간은 철저하게 분리돼 있었고 관속과 관 바깥은 달라도 아주 달랐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관 바깥세상에 있는 어떠한 것도 이 안으로 가지고 올 수가 없구나.’ 관 바깥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요.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내가 하는 일, 내가 늘 보고 읽는 책, 내가 아끼는 이런저런 물건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물건도, 관 속으로 가지고 들어올 순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남는 걸까? 관 속에 누워있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 물음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그때 비로소 알겠더군요. 아! 마음이구나. 죽어서 관 속에 누운 나에게 남는 것은 마음이고, 이 관 속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것도 마음뿐이구나!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잘 살아야지, 마음을 잘 가꾸며 살아야지. 무비 스님의 출가 담을 들으면서, 저는 관 속에 누웠던 죽음체험 피정이 떠올라서 몇 자 올려 봤습니다. 사흘 닦은 마음이 천년의 보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구절에 무척 공감이 갔습니다.
왜냐고요? 죽은 뒤에 내가 가져가는 건 마음뿐이라는 걸 절감했으니까요. 아무리 빛나는 보석과 좋은 자동차도, 좋은 집도 가지고 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오직 하나, 나의 마음만 가지고 갈 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비 스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불교는 마음 닦는 종교 즉, 깨달음의 종교라고 말하는데, 깨닫기 전(前)과 깨달은 후(後)는 무엇이 달라질까요?
무비 스님은 이렇게 답(答)했습니다. 달라지는 건 없다. 다만 인간의 삶에서 맛봐야 하는 굉장한 기쁨, 엄청난 절망, 잊지 못할 고통 앞에서는 그 차이가 확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지는지 다시 여쭈었습니다. 도인(道人)일수록 폼 잡지 않는다. 정말 명경지수(明鏡止水,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의 마음을 가진 도인은 더 인간적이다. 더 슬퍼하고 더 기뻐하지만 그 슬픔과 기쁨에 젖지 않을 뿐이고, 기뻐하되 기쁨에 물들지 않고 절망하되 절망에 물들지 않는다. 물론 불의를 보면 분노한다. 그런데 그 분노에 물들지 않는다.
그러면 어찌 되겠나. 슬픔과 고통과 절망 속에 있어도 '나[我]'가 상(傷)하는 일이 없다." '그런 삶은 어떤 삶일까?'를 다시 여쭈었습니다. 가뿐한 삶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살기가 아주 수월한 삶이 되며, 삶도 가뿐하고 죽음까지도 가뿐하게 느껴진다고 하셨습니다. 생사 해탈이 대단한 것이 아니며, 그게 바로 생사 해탈이라고 하셨습니다.
삶이 무엇인가? 인연 따라 세상에 관광 왔다가, 돌아갈 시간이 되면, 당연히 돌아가는 것이다. 무비 스님은 자신이 입적할 때 다비식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괜히 산 사람들 번거롭게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몸은 그동안 입었던 옷이니, 그냥 벗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미 시신 기증 서약까지 해놓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비 스님에게 '가뿐한 삶', '물들지 않는 삶'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무비 스님은 바둑에 빗대서 답(答)을 내려주셨습니다. 하수들이 바둑을 둘 때 고수의 눈에는 다 보인다. 어디에 두면 죽고, 어디에 두면 사는지 말이다. 곧 죽을 자리인데도 돌을 놓는 것이 빤히 보인다는 말씀이시다. 사람들은 자기 바둑을 둘 때는 수를 놓칠 때가 많지만, 반면에 남의 바둑에 훈수를 둘 때는 수가 잘 보인다. 훈수 둘 때는 2급 이상 바둑 실력이 더 높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왜 그렇겠나. 바둑에 '나'가 없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삶에 '나'가 없으면 지혜가 생기고, 그래서 인생에서도 고수(高手)가 되는 것이다.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라고 했는데, 무비 스님은 그런 마음을 어떤 식으로 닦아야 하는지 중요한 힌트를 주셨습니다. 남의 바둑에 훈수 두듯이, 한 발 뚝 떨어져서 나의 바둑을 바라보는 여유 거기서 나오는 지혜로, 나의 바둑을 풀어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발짝 또 한 발짝 가다 보면, 우리의 삶도 가뿐해지고 수월해질 것이며, 물들지 않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아무리 촘촘한 그물이라 해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말입니다.
3. 가슴 따뜻한 친구
인생 팔십(傘壽)이 되면 가히 무심이로다. 흐르는 물은 내 세월 같고, 부는 바람은 내 마음 같고, 저무는 해는 내 모습과 같으니 어찌 늙어보지 않고 늙음을 말하는가.
육신이 칠팔십이 되면 무엇인들 성하리오. 둥근돌이 우연일 리 없고, 오랜 나무가 공연할 리 없고, 지는 낙엽이 온전할 리 없으니 어찌 늙어 보지 않고 삶을 논하는가.
인생 칠팔십이 되면 가히 천심(千心)이로다. 세상사 모질고 인생사 거칠어도 내 품 안에 떠 가는 구름들아! 누구를 탓하고 무엇을 탐하리요. 한평생 살면서 옳은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 술 마실 때 형, 동생 하는 친구는 많아도 급난지붕일개부(急難之朋一個無) 급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는 하나도 없다.
그 누군가가 말했다. 내가 죽었을 때 술 한잔 따라주며 눈물을 흘려줄 그런 친구가 과연 몇 명이 있을까? 잠시 쉬었다 가는 인생 어쩜 사랑하는 인연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노년의 친구가 아닐까?
살면서 외롭고 힘들고 지칠 때 따뜻한 차 한잔에 우정과 마음을 담아주는 그런 친구가 당신 곁에 몇 명 있는가?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은 우리는 가슴 따뜻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4. 아홉 가지의 몸가짐
1. 두용직(頭容直)
머리를 곧게 세워라. 지금 우리 주변엔 고개 떨어뜨린 사람이 너무 많다. 하지만 다시 고개 들어 하늘을 보라. 아직 끝이 아니다 끝인 듯 보이는 거기가 새 출발점이다.
2. 목용단(目容端)
눈은 바르게 가져야 한다. 눈매나 눈빛은 중요한 만큼 눈매는 안정시켜 흘겨보거나 곁눈질하지 말며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3. 기용숙(氣容肅)
기운을 엄숙히 하라. 우리는 예외 없이 세상 속에서 기싸움을 하고 있다. 기싸움은 무조건 기운을 뻗친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4. 구용지(口容止)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물고기가 입을 잘못 놀려 미끼에 걸리듯 사람도 입을 잘 못 놀려 화를 자초하는 법. 입구(口) 자가 세 개가 모이면 (品) 자가 된다. 자고로 입을 잘 단속하는 것이 품격의 기본이다.
5. 성용정(聲容靜)
소리는 조용하게 가져야 한다. 말할 때는 시끄럽게 해서도 안 되며 바른 형상과 기운으로 조용한 말소리 내도록 해야 한다.
6. 색용장(色容莊)
얼굴빛은 씩씩하게 하라. 사람들의 얼굴빛이 어둡다 어렵다고 찡그리지 말고 애써 얼굴을 웃어라. 긍정과 낙관이 부정과 비판을 이기게 하라.
7. 수용공(手容恭)
손은 공손하게 가져야 한다. 손을 사용할 때가 아니면 마땅히 단정히 손을 맞잡고 공수(拱手) 해야 한다.
8. 족용중(足容重)
발은 무겁게 가져야 한다. 즉 처신을 가볍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발을 디뎌야 할 곳과 디디지 말아야 할 곳을 구별할 줄 알라는 말이다
9. 입용덕(立容德)
서 있는 모습은 의젓하게 가져야 한다. 중심을 잡고 바른 자세로 서서 덕이 있는 기상을 지녀야 한다. 고로 서 있을 자리 물러설 자리를 아는 것이다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 중에서]
5. 절영지회(絶纓之會)
절영지회란 갓끈을 자르는 연회 모임을 말합니다. 남의 잘못을 탓하지 마라, 남의 단점을 보지도 마라, 나의 단점을 정당화하지 마라, 오로지 나의 단점을 고치기에 힘쓰라. 이 말은 경남 양산의 소나무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통도사(通度寺) 경내 곳곳에 걸려있는 검은 나무판의 경구(警句) 중 하나입니다.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의 일화에서 만들어진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성어(故事城語)가 있습니다. 장왕이 나라의 큰 난을 평정한 후 공을 세운 신하들을 치하하기 위해서 연회(宴會)를 베풀었습니다. 신하들은 이끼던 장왕은 이 연회에서 자신의 후궁들이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연회가 한참 진행되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연회장의 촛불들이 일순간에 꺼져버렸습니다. 그 순간 한 여인의 비명이 연회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 여인이 앙칼진 목소리로 크게 외쳤습니다. 어둠을 틈타서 누군가가 자신의 젖가슴을 만져서 자기가 그자의 갓끈을 뜯어 두었으니 임금님께서는 어서 불을 켜서 그 무엄한 자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후궁을 희롱한 무뢰한 신하가 괘씸하고 자신의 위엄이 희롱당한 것 같은 노여운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장왕은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 자리는 내가 아끼는 이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 만든 자리이다, 이런 일로 처벌은 온당치 않으니 이 자리의 모든 신하는 내 명을 들어라.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갓의 갓끈을 모두 잘라버리도록 해라. 지금 일은 이 자유로운 자리에 후궁들을 들게 한 나의 경솔함에서 빚어진 일이니 불문토록 하겠다.”
장왕은 먼저 후궁들의 마음을 다독여 연회장에서 내보냈고 모든 신하가 갓끈을 자른 뒤에야 연회장의 불을 켜도록 했으니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자칫하면 연회가 깨어지고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는 상황이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분위기에서 왕의 여인을 희롱한 것은 왕의 권위에 도전한 역모(逆謨)에 해당하는 불경죄(不敬罪)로 죄인은 물론 온 가문이 능지처참(凌遲處斬)을 당할 수 있는 중죄였습니다. 그렇지만 신하들의 마음을 달래는 치하(致賀)의 연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로 용인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놀랍게도 그 일이 장왕 자신의 경솔함에서 빚어진 일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왕이 자신에 대한 자존감(自尊感)이 충만(充滿)한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균형 잡혀 있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분노하지 않습니다. 일어난 일을 사실 그대로의 상황으로 보고 더는 자의적(恣意的)인 확대해석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 해 뒤에 장왕의 초나라는 진나라와 나라의 존폐(存廢)가 달린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그 전쟁에서 장왕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장왕의 앞으로 나서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초나라의 수호신이 되어 온몸이 붉은 피로 물들며 흡사 지옥의 야차처럼 용맹하게 싸워서 장왕을 구하고 초나라를 승리로 이끈 장수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장왕은 그 장수를 불렀고 용상에서 내려와 그 손을 감싸 쥐고 공로를 치하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맹하게 싸운 연유를 물었습니다. 그 장수는 장왕의 손을 풀고 물러나 장왕에게 공손하게 큰절을 올립니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연회 자리에서 술에 취해 죽을죄를 지은 소신을 폐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소신은 새롭게 얻은 제 목숨을 폐하를 위해서 바칠 각오로 싸웠습니다.”
절영지회(絶纓之會)!
갓끈을 자른 연회'라는 뜻으로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신의 허물을 깨우친다는 의미 고사성어입니다.
6. 불감위선(不敢爲先)
어느 철학자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를 들었습니다.
1.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2.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부족한 외모
3.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절반 밖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4.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5.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
이들 다섯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부족함’에 있습니다. 옛날 주(周)의 제후국인 노(魯) 나라 환공은 의기(欹器)라는 그릇을 늘 가까이 두고 자신을 경계하였다고 합니다. 공자께서도 이 그릇을 의자 오른쪽에 두고 반성의 자료로 삼았다 하여 좌우명의 유래가 된 그릇입니다. 이 그릇은 텅 비면 기울어지고 가득 채우면 엎어지고 중간 정도 채우면 반듯해지는 그릇입니다.
공자께서 이 의기가 의미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풀었습니다. "총명하고 예지가 뛰어나도 스스로 어리석다 여기며 살아가고 공적이 온 세상을 다 덮어도 사양으로써 이를 지키고 용맹함이 세상을 뒤흔들어도 항상 겁을 내며 조심하고 부유함이 천하에 가득해도 겸손으로서 이를 지켜라. 이 의기는 한마디로 가득 채우지 말고 반쯤 비워 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직장인의 조건도 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재산이 많아서 외모가 출중해서 학식이 높아서 힘이 세어서 말을 잘해서 이러한 조건들을 가득 채웠다고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득 차면 자만해지고 자만하면 게을러지고 부패해집니다. 비운다는 것은 바로 부족함을 아는 것이요, 부족함을 아는 것은 겸손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때 혈기방자 하여 자신감 넘치게 아는 체, 있는 체, 잘난 체한 적은 없었던가를 살펴봅니다. 돌이켜 반성해 보면 얼마나 내가 못났는가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철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 여깁니다.
성훈에 “아는 것은 겸손함만 못하고 겸손한 것은 사랑함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내가 아는 게 많다고 큰소리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또 성훈에 첫 번째가 ‘사랑’이요 두 번째가 ‘겸손’이며 세 번째가 감히 나를 앞세우지 않는다는 뜻의 ‘불감위선’이라 하였습니다. 인격의 최고 경지는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것, 겸손, 그리고 불감위선이라 여깁니다. 불감위선이 되어야 겸손의 단계에 이르고, 겸손해야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쪽만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겸손 없는 자부심은 자만이 됩니다. 겸손 없는 용기는 무모함이 됩니다. 겸손 없는 지식은 아집이 됩니다. 겸손 없는 비즈니스는 고객을 무시하게 됩니다. 겸손 없는 승리는 오만이 되고 맙니다. 겸손이라는 비움이 있어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데 자만, 무모, 아집, 무시, 오만으로 가득 차 있는 그릇에는 아무것도 더 담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도전과 경쟁의 원천은 바로 ‘겸손’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일류를 지키기 위해서, 일류에서 초일류로 가기 위해서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물을 통해 겸손의 미덕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나아갑니다.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가고 빈 곳은 채워 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뜻 쓰기를 물과 같이하면 말 없는 가운데 공덕이 있다. 물과 같은 마음! 이것이 바로 사랑이요, 겸손이며, 불감위선이 아닐까?
7. 어머니의 향수
먼동이 트면 저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살며시 그리움 속으로 들어갑니다. 햇살이 곱게 피어오를 때 싸리대문 앞에서 활짝 미소 지으시며 서 계시던 어머니!
자식들이 객지에서 돌아오는 발길 가벼워지라고 아침부터 대문 밖을 서성이시던 모습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내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늘 햇살처럼 포근한 어머니의 사랑과 추억이 듬뿍 담긴 내 유년의 시절 싸리대문 앞 감나무에는 가을의 풍요로움을 말해주듯 빨간 감홍시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담 너머 대추나무에는 수확을 알리는 대추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장독대 옆 한 모퉁이에 복주머니처럼 자태가 아름다운 석류가 입을 벌리고 있는 가을의 고향집 풍경은 눈이 시리도록 그립습니다.
황금 들판이 물결치는 그곳 행복의 들판에서 풍년가가 들여오는 고향은 우리 형제들의 땀방울도 버들가지 소슬바람도 시원하기만 했던 풍요로운 들녘 아련히 내 가슴에 피어오르며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쌀밥과 햅쌀로 만든 인절미 오늘따라 눈물겹도록 그 음식들이 먹고 싶어집니다.
사랑의 손길로 만드신 음식을 행복으로 배를 채우던 자식들 지금은 그분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셨지만 어머니 산소에 성묘도 못 가 뵙는 불효의 자식 부모란 가시고기의 생이라고 말했듯이 정말 돌이켜 보니 부모님 우리 부모님께서는 가시고기 생이었습니다.
자식에게 사랑을 다 주고도 부족해서 제 살마저 다 내어놓고 먼 하늘나라로 가신 내 어머니
곱기가 산기슭 홀로 핀 구절초처럼 맑으신 내 어머니 집 앞 감나무에 까치만 울어도 먼 길 떠나 고생하는 자식이라도 행여 올까 봐 하루종일 내심 기다리시던 내 어머니!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꼭 이맘 때면 봄과 함께 나에게는 고향의 향수와 어머니의 사랑주머니가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이별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하지만 늘 추석 때면 시끌벅적했던 우리 고향집 사람 사는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지럽히며 그리움의 병이 가슴에 쌓입니다.
반달처럼 고운 어머님의 손길에 반달처럼 예쁜 송편이 우리 자식들 입으로 들어갈 때 어머니의 배부른 웃음 예전에 정말 몰랐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내가 자식을 키우다 보니 그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큰 사랑인 줄 뼈저리게 느낍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뵐 수 있다면 너무 간절하건만 애달픈 내 가슴만 조일뿐 시간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어머니와 나의 추억은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무심한 세월아, 무심한 세월아,
봄이 오면 봄 속으로 내 그리움은 온 고향 산천에 가 있습니다. 고향의 향수에 젖어서 눈물짓지만 눈가에 아련히 피어오르는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나마 위안을 받고 때가 그립고 애달파 온몸이 아파오지만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어서 언제나 고향의 향수는 내 살과 뼈와 같은 존재입니다.
백발 된 불효자식 어머니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지만 그래도 목놓아 불러봅니다. 어머니!
8. 인(因)과 연(緣)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이요.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꽃을 키운다고 할 때 씨앗은 인(因)이요. 땅이나 물은 연(緣)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인(因)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봉선화를 심으면 봉선화가 피고, 목화를 심으면 목화가 피고, 제비꽃을 심으면 제비꽃이 피니까요.
그러나 연(緣)은 다릅니다. 좋은 땅인가, 나쁜 땅인가 물을 많이 주느냐, 적게 주느냐에 따라서 꽃이 활짝 피기도 하고 시들기도 하며 심지어 아예 피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인연에 인(因)과 연(緣)이 있듯이 운명에도 운(運)과 명(命)이 있습니다. 운(運)은 태어날 때 받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명(命)은 태어날 때부터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운(運)이 좋은 사람도 있고 운(運)이 나쁜 사람도 있으나 명(命)이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은 없지요. 노력 여하에 따라 운(運)이 좋은 사람이 운(運)이 나쁜 사람보다 어려울 수도 있고, 운(運)이 나쁜 사람이 운(運)이 좋은 사람보다 쉬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앞 날을 약간 예측할 수는 있지만 모두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명(命)을 따라 미래가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운명(運命)을 좇아서는 안 되고 숙명(宿命)을 좇아야 합니다. 운명(運命)은 가야 할 "길"이요 숙명(宿命)은 가야 할 "곳"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숙명이 있습니다. 받은 운(運)과 만들어 가는 명(命)으로 숙명(宿命)에 이르러야 합니다. 결코 떠밀리거나 끌려가서는 안 됩니다.
가야 할 곳 (숙명)은 정해져 있으나 가야 할 길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은 많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곧고 넓고 반듯한 길을 찾으십시오. 그래야만 사고 없이 무사히 부끄럽지 않는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노생지몽(盧生之夢)
인생과 영화(榮華)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로 중국 당나라, 가난한 농촌 출신의 젊은이, 노생이
허름한 차림으로 조나라 수도인 한단으로 가는 도중 길가 주막에 머물러 쉰다. 마침 같은 곳에 머문 `여'씨 성을 가진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신선도술을 터득한 도인이다. 노인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노생이 자신의 신세를 한숨 섞인 푸념을 한다.
“입신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데 지금의 신세는 초라하기 짝이 없으니…”
취기에 노생의 푸념이 끝까지 말을 맺지 못하고 깜빡깜빡 졸음에 끄덕이자 여옹은 자루 속에서 베개를 꺼내 노생에게 주며 `주모가 메조밥을 짓고 있으니 다 익을 때까지 한 잠 자기'를 권한다. 메조밥은 찰기도 없고 까칠해 목구멍을 넘기기도 힘들 만큼 거칠다. 잠든 노생은 베개에 뚫린 구멍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다음 날 아침 깨어 주막을 나서 길을 재촉하여 가던 중 한 마을로 들어간다. 거기서 마을 최고 부자의 딸과 결혼하고, 재산도 늘어나 집은 고래 등만 해지고, 과거에도 급제하여 차차 지위가 상승하여 도성의 장관이 되고, 수년 후엔 오랑캐 침입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워 재상의 자리까지 오른다. 그 사이 자손도 번창하여 그들 또한 모두 풍족하게 산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던 반대파의 모함으로 역적을 몰려 귀향을 간다. 설상가상으로 병도 얻는다.
“아아, 고향에서 농사나 지었다면 이런 억울한 탄식을 안 할 텐데… 내 어찌 부귀영화를 탐냈던가. 남루한 옷과 거친 음식을 입고 먹을 때가 … 아아.” 칼을 꺼내어 자결하려 할 찰나 아내의 간곡한 만류로 자결은 미수로 끝나고, 노생은 곡절의 삶을 이어가다가 쓸쓸히 팔십 평생을 마치려는데, 그 순간 누군가 그의 몸을 흔들어 깨운다.
아하, 그 주막, 그 여씨 노인. 그리고 메조밥은 아직 익지 않고 여전히 끓고 있다. 조밥을 지을 만큼의 시간보다도 더 짧은 동안 팔십 년 인생을 꿈꾼 것이었다. 노생은 깜짝 놀라 “아니 이게 꿈이었던가” 소리쳤다.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걸세.”
심기제(沈旣濟)가 쓴 중국 당대의 풍자소설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나라에서 당시 가장 번화했던 한단 지역과 관련이 있어 한단몽(邯鄲夢) 또는 한단지몽(邯鄲之夢)이 라고도 하고, 밥 짓는 동안이라 하여 일취지몽(一炊之夢)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 당시에 풍미했던 명예와 이익만을 좇는 실리주의를 빗대어 쓰는 말이다. 덧없는 인생을 짚고 `지족상락(知足常樂), 능인자안(能忍自安)' 만족할 줄 알면 늘 즐겁고 능히 참으면 스스로 편안하다는 것을 새기게도 한다.
설령, 타고난 달란트가 풍성하고 뛰어나 부귀영화를 누릴 조건을 갖추었다 해도 거친 들판에 문득 피어난 꽃처럼 허름하게 시들어 마를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마치 겨울 낙엽처럼 춥고 쓸쓸히. 18세기 영국의 시인 토마스 그래이(Thomas Gray)의 시 어느 시골 교회 묘지에서 쓴 비가(悲歌)(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 한 대목이 생각난다.
수많은 꽃들이 눈에 띄지 않게 피어 / 인적 없는 황야의 대기에 / 그 아름다움 헛되이
만일 내가 토마스 그래이가 가리킨 수많은 꽃들 중의 하나라면 노생의 꿈은 나름대로 마음의 위로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 위로는 우리네 인생이 일순간 지나갈 낭비 같은 꿈이라는 점과 설혹 꿈속의 낭비 일지라도 아름다웠다는 그 자체가 의미 있다는 데에 근거한다.
잠깐 동안에 귀중한 인생의 진리를 깨우친 노생은 꽤나 행운아다. 오랫동안 험난한 굴곡을 겪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지혜를 한순간의 꿈을 통해 접하게 되었으니. 만일 그가 비록 꿈속에서라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여 소설을 끝냈다면 나는 노생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안 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신산(辛酸)한 삶이라도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인적 없는 황야에도 피어야 할 꽃은 피고 시들어야 한다. 노생은 꿈속에서 팔십 세까지 살았으나, 꿈 밖에서 몇 살까지 살았는지 소설을 쓴 심기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짐작컨대, 되도록 무리 없이 살았을 가능성이 많으니 남만큼 넉넉하게 늙었고 그 늙음을 천천히 받아들였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그렇다면, 부귀영달을 누리고 자살 시도도 치르고 눈에 띄지 않게 황야에서 팔순을 맞은 노생은 다음의 견해에 공감했을 것이다.
휘거나 굽은 데 없이 똑바로 곧은 경쟁으로 소진된 인생은 허무하다. 꼿꼿하게 세워 늙을 수 있을까. 23.5도 기울어 공전하는 지구처럼 약간 구부려 비켜서 돌아야 제대로 사계절을 맞을 수 있는 법. 꼿꼿이 수직으로 서서 도는 세상은 아무래도 꿈속의 일이다. 나이 든 노생이 공감했을 거라는 필자의 헤아림이 얼추 맞다면, “노년에는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누구든 의지하려 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스스로를 통제하려 할 때만 존중받을 것이다.”
10. 바닥짐(Ballast)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배 밑에 있는 바닥짐(ballast) 때문이다. 바닥짐이란 배가 전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배 바닥에 채워 넣은 돌이나 물건을 가리킨다.
우리 인생도 무겁게 느껴지는 바닥짐이 있어야 고난을 극복하고 무너지지 않는다. 평생을 아프리카인들의 삶과 노예제도 폐지를 위하여 살아온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어느 모임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리빙스턴에게도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그에게는 집을 나가버린 방탕한 아들이 있었다. 그런 아들을 생각하며 남들 앞에서 더욱 겸손한 마음을 가졌고 어려움을 당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외면하지 않았다.
우리 인생도 이런 근심거리들이 발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장애물이라고 생각하였던 근심거리가 어쩌면 내 인생을 지탱하는 바닥짐일 수도 있다. 인생의 바닥짐은 자신의 안에 배려와 겸손을 채워 무너지지 않게 한다. 바닥짐은 버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희망의 길을 보여주는 지혜의 눈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맨발의 인도 전도자인 선다 싱이 히말라야 산길을 걷다가 동행자를 만나서 같이 가는 도중에 눈 위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발견하였다. 선다 싱이 동행자에게 여기에 있으면 이 사람은 죽으니 함께 업고 가자고 제안하였다.
그 말에 동행자가 안타깝지만 이 사람을 데려가면 우리도 살기 힘들다고 대꾸하고 그냥 가버렸다. 선다 싱은 하는 수 없이 노인을 등에 업고 얼마쯤 가다 길에서 죽은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먼저 떠난 동행자였다.
선다 싱은 죽을힘을 다해 눈보라 속을 걷다 보니 등에서는 땀이 났다. 두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서 매서운 추위도 견뎌낼 수가 있었다. 결국 '선다 싱'과 노인은 무사히 살아남았고 혼자 살겠다고 떠난 사람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 '人'은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맞댄 형상이다. 나와 등을 맞댄 사람을 내치면 나도 넘어진다는 것이 人의 이치이다. 그렇게 서로의 등을 기대고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살이다.
히말라야의 동행자는 그것을 무시하고 행동하다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훗날 어떤 사람이 선다 싱에게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가 언제입니까?' 하고 물었다. 선다 싱은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 없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라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짐이 가벼워지기를 바라지만 그때가 위험하다는 것이 선다 '의 가르침이다. 먼바다를 떠나는 선박도 항해를 시작하기 전 배의 밑바닥에 물을 가득 채운다. 배의 전복을 막기 위해 채우는 바닥짐이다. 우리 인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등을 맞댄 사람 덕분에 자신이 넘어지지 않을 수 있듯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삶의 항해를 지켜주는 바닥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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