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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1-4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성경본문 : 다니엘 12: 1-4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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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 18-23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2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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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말하였지만 꿀벌도 사회생활을 곧잘 한다고 합니다. 꿀벌은 한 숟가락의 꿀을 얻기 위해서 후레스노에서 LA까지의 거리를 왕복 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요즈음은 소들도 생각 합니다. 제가 마리포사에 우리 교우들과 심방 가다가 99번에서 마리포사로 들어 가다가 보니 왼쪽 들판에 소들이 풀을 띁고 있었습니다. 하도 보기가 좋아서 차를 세우고 내렸더니 약 30마리는 되는 모든 소들이 풀을 띁다가 모두 고개를 들고 우리 심방 대원을 빤히 한참 처다 보는데 저희들은 놀랐습니다. 소들도 뭔가를 생각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동물과 정말로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동물은 기어 다니면서 땅을 보고 살아 가지만 사람은 서서 다니면서 고개를 들고 하늘은 보고 살아가는 것이 다른점이라고 말할수 있겠습니다.
1.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형편을 보십시다.
어떻게 살아 가고 있는가---
1)오늘 본문 4절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한다”고 했습니다.
며칠전에 보니 어떤 젊은이가 보드 스케이트를 타면서 썬 그래스를 쓰고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cell ph을 가지고 친구와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 멋있었습니다. 옛날에 제가 국민학교 때에는 우리동네에 전화기를 가진 집은 불과 다섯 여섯가정 정도 되었는데 다행이 저의 옆집이 수산위원장 집이 되어서 옆집에 가서 공손히 인사하고 전화를 빌려서 썻습니다. 그때를 이야기 하면 요즘 젊은이들은 ‘아빠 옛날 구닥다리 스토리 31페이지’ 라고 놀리겠지만 정말 요즈음은 많이 달라 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종말이 가까워 지는 때에는 사람이 빨리 왕래 한다고 했습니다만 지금의 시대를 일컬어 달리는 시대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예화>1903년 12월17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공중 비행기를 성공했는데 그 때에는 12초에 36m로 달리던 비행기가 100년 동안 사람들은 끊임없이 빠르게 갈수 있는 것을 연구하여 미국에서 만드는 보잉 747의 경우 시간당 915Km 그러니까 568.6마일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보잉 767등 더 빠른 비행기들이 계속 등장 되고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만 그것보다 더 빠른 것은 역시 로켓입니다. 독일이 개발한 v2로켓 발사는 시속 5633Km라고 하니까 약 3500마일이 됩니다. 눈 앞으로 지나가도 볼수 없을 정도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우리는 빠르고 빠른 세상에 살고 있는데 이 시대를 성경은 종말의 시대라고 일찍이 말씀 하였습니다.
2) 그다음 거기에 이어서 12:4 후반절에는 “지식이 더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지식이 더한다는 말씀은 반드시 학문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여러 가지 알아야 할 일들을 통틀어서 하는 말씀으로 생각 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알아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저도 지난주간에 설교 준비를 하느라고 몇권의 책을 펼처놓고 몇가지 현대정보를 찾는데 한 열권쯤 의자에 책상에 소파 차 탁자에 죽 방에 펼쳐 놓으니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하고 무엇을 좀 더 많이 읽어야 할지 혼돈이 올 정도였습니다. 모두다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지금 지식의 홍수시대입니다. 읽을것도 많고 알아야 할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종말의 때를 일컬어 지식이 더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목요일에 읽은 말씀 호세아 제 4장 6절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리겠다”는 말씀을 볼수가 있는데 정말 우리는 혼돈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있는 지식은 무엇이며 호세아에서 말씀 하는 지식은 무엇입니까?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고로 어떤 지식은 더할수록 골치 아픈 것이고 어떤 지식은 꼭 알아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직업중에 보험가입에 관련된 정보를 주는 회사가 있습니다. 내가 자동차 보험에 들려고 하는데 어디 회사에 가입하면 가장 싸고 적절한 혜택을 받을수 있는지를 분석 해 주는 회사입니다. 너무 정보가 난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필요 없는 지식, 불완전한 지식은 쓰레기 통에 던저 버리고 꼭 알아야 하며 바로 인식하는데 도움을 주는 바른 지식 꼭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예화>제가 요즈음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은 The case for Christ <예수 사건> 인데 지은이는 지금 새들백 교회에서 구도자를 위한 설교목사로 활약하고 있는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예일대 법대 출신으로 그의 전직은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이라는 신문사에서 근무하는 우수한 언론인이었습니다. 그가 언론인으로 있을 당시에는 오랫동안 무신론자였습니다. 그의 이론은 이러 하였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아직도 원시적인 생각으로 미신을 믿는 것 같이 그냥 하나님을 믿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데 그 증거가 미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수한 학교 법대를 나왔으므로 자연적으로 그의 마음에는 어떤 기본법칙에 벗어나는 기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였고 더 나아가서 진화론이 인간의 기원을 제대로 설명해 준다고 믿었었습니다. 거기다가 그는 원래 어떤 일을 바르게 파고드는 성격이 있어서 하나님 믿는것도 좀더 그 분명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 이책 저책을 찾아 보다가 몇가지 명백한 사실에 그는 끝을 내고 신앙은 허구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내가 연구한 것으로 약간의 모순은 있었지만 그 약간의 모순점을 무시하고 매듭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내가 생각이 바뀌어져 예수의 추종자라도 된다면 그 동안 이기적이고 비 도덕적인 생활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진리에 대한 습득을 하기는 하되 완전한 습득이 아니라 자기의 게으름과 자신의 현재의 삶에 대한 파괴가 두려워서 중단 한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자신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입니다. 자신의 게으름과 자신의 비도덕적인 생활과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 왔던 어떤 삶의 원칙을 바꾸기 싫어하던 나머지 진리의 동굴을 들어가다가 끝을 보지 못하고 포기하고 돌아 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금광을 만날 수 있는 데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앞에서 금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트로벨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1979년 가을 어느날 그의 아내가 갑자기 예수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스트로벨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스트로벨은 고민을 합니다. 결혼해서 그동안 그럭저럭 문제 없이 살아 왔는데 아내가 갑자기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그 스트로벨의 걱정은 이것이었습니다. “내 아내가 성적 충동을 억제하고 고상한 체 하면서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과 또 “지금 우리는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인데 출세를 무시하고 맨날 교회가서 철야 기도회에만 참여 하겠다고 나오면 어떻게 하나?” 또 “ 내 아내가 더러운 무료 급식소에서 자원 봉사활동만 하겠다고 나서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겠는가?” 하는 고민을 한껏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걱정 꺼리는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그가 그의 아내 때문에 정말로 긴 연구의 터널로 더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중단했던 금광케기를 더 구체적으로 하였는데 그러다가 어느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도 아내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의 스트로벨의 고백은 이러 합니다. “내가 얼마전에 했던 걱정이나 두려움 대신 이제는 나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되었고 아니 오히려 아내에게서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직업의식과 그의 독특한 통찰력을 살려서 예수 사건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연구가 시작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아내의 태도에 일어난 미묘 하고도 중요한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조사해 보고싶은 욕구를 그대로 현실로 실행해 나가게 된 것입니다.그래서 그는 기독교의 핵심 사건을 둘러 싸고 있는 예수사건을 아주 철저히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개인적인 선입관을 제쳐놓고 책이고 전문가고 역사학자고 고고학자고 할수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 자기의 직업의식을 발동하여 파헤치기 시작했고 비로소 그의 인생에 처음으로 성경을 한구절 한구절 풀면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탁월한 능력으로 그 사실들에 기초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책이 The case for Christ<예수 사건>이었고 미국 전역에 도서 부문에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고 그 책이 한국말로 번역 되었고 한국에서다시 태평양을 건너서 제 손에 까지 들어 왔습니다.
사람의 지식은 그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한계를 가지고 모두다 알고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을 속입니다. 조금 알고도 다 알고 있는양, 극 소수의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두다 가지고 있는 듯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하는 것은 바른지식에 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2. 바른 지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먼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것입니다.
1)12:1 하반절에 보면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었던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그냥 두렵게 하려 하거나 협박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있을 것을 미리 예고 한 것입니다. 홍수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신 하나님은 홍수를 부으셨고 메시야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대로 주셨고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 하심에 대해서 모두모두 약속 하시고 예고 하신 그대로 이루어 진 것 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성경을 통해서 재림과 심판과 환난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환란은 세가지로 구분 해 볼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의 환란입니다 .
그들은 안티오커스 치하에서 있는 환란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의 환란을 말하며 마지막은 장차 있을 7년 대환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환난 자체만을 두려워 하며 떨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 1절에 그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나타날 것이라고 먼저 예언을 하였습니다. 미가엘은 가브리엘 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사자인데 유다서 9절에는 천사장이라 하였고 다니엘 10:13절에는 너희의 왕이라 하였으며 오늘 본문에는 대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환란이 무슨 환란이든지간에 적그리스도를 물리칠 대군이 등장 한다는 말씀으로 우리 믿는 자에게 안위함을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본서에 나타난 남왕국과 북왕국간의 갈등 그리고 유다 민족을 중심으로 한 이웃의 강대국에 의한 민족의 아픔과 괴로운 생활등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이면에 깔려있는 여러 사탄의 지배와 유혹과 세력에 조롱 당하고 있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사탄의 유혹에는 어쩔수 없이 당하여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미가엘 같은 군대 대장이 와서 유다를 지키듯이 현재 당하는 교회의 환난과 핍박 그리고 더 나아가 7년 대환난에도 우리 믿는 사람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분명한 사실을 알고 그 사실에 대비하고 살아가기 위해 “저높은 곳을 향하여”를 찬송 하여야 할 것입니다.
2)그다음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1절에 있는 “책에 기록된 모든자를 구원 하실 것”이라는 약 속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혹 환난을 당해도 그 환난에 넘어지거나 실족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도(道)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예화>18세기에 유럽에서는 선원이 근무중에 실수를하여 선장이나 갑판장에게 들키면 24대의 태형에 처하는 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사에게 사정을 해도 안되고 때로는 잘못을 둘러 대어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쳤서 더 어떻게 할수 없을 때가 될때 고참 선원들은 고민하고 생각하던 끝에 등에 다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모습을 문신하여 놓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갑판 반장이 예수의 얼굴에 매질하는 것이 참아 힘들어 못하므로 매 맞는 것을 면한다고 합니다. 혹 독한 갑판장이 있어서 그냥 매질을 한다고 해도 아마 그 채찍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두려워서 매가 스스로 피한다고 믿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등에다가 십자가 에 달린 예수의 형상을 문신하였다고 합니다. (세계 상식백과 -리저스 다이제스트-290p)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더 할 나위가 없습니다. 벌과 저주는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지나갔습니다. 유월절날에 문설주에 피를 바르라는 명령대로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히브리인은 멸망의 천사가 휙 지나가 버린 것처럼 우리의 멸망은 넘어가 버릴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자에게는 생명책에 기록 될 것이며 책에 기록된 모든 사람이 또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계20:12“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들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20: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3: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 하리라”
3)나님의 계획을 아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 3절에는 “지혜 있는 자를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게 하실 것이요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일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혼자 구원 받고 천국만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관심이 있으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하셨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 구절을 곧이 곧대로 해석을 한다면 우리 믿고 전도 한 사람에게는 지구보다 큰 별 한 개씩 가슴에 안겨 주겠다고 이렇게 엄청난 축복이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그 신학자의 이야기로는 이 말씀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2:28에 “새벽별을 주리라”고 하였으니 별 한 개씩 받을 준비를 하고 살자는 것입니다. ( 너무 엄청난 축복이니까? 감동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예수믿고 구원 받은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 구원의 확신 바탕위에서 세상을 살아 갑니다.
예화>우리의 옛 어른들은 너무나도 먹고 살기가 힘이들어서 때로는 “내가 죽어야지” 하고 한숨을 쉬는 것을 동네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 하시는 어른이 허리가 90도로 꺽어서 겨우 걸어 다니면서도 오래오래 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차라리 죽으면 곧바로 영생 복락을 누리는 천국으로 가 버리니 좋겠지만 어찌 내 마음대로 할수 있겠습니까?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 우리는 죽지 못하고 하나님이 생명을 부지한 동안은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매일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고 노래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내일 죽는다고 할지라도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어떤 이들은 자기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사명입니다. 또 어떤이들은 사회에서 맡겨진 직업에 충실하여야 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것도 물론 사명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사명은 역시 이땅에 살고 있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천국백성 삼는 일이고 더 나아가 오늘 본문에 표현한 대로 말씀 드리면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그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우선 한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생각해 봅니다. 한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신중히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한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다는 말씀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서 떠나간 사람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 육신의 힘으로는 불가능 하고 영적인 힘으로라야 가능 합니다. 이 일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추이는 그런 결과이기 때문에 정말 가치있는 일입니다. 동시에 이 일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내 자신의 영성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영적 컨디션이 메말라 있다면 다른 사람의 영혼을 건져낼수 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여과 탱크가 꽉 차야 다른 사람에게 퍼 먹일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치심을 받았고 그렇게 된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감당해야만 할 사명이 주워진 것입니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나기’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요 또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감당 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여야 하는 이 사명을 감당 하려면 우리는 어떠한 자세가 필요 합니까? 무엇으로 이 사명을 감당 할수 있을 까요?
a..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이민교회를 섬기는 여러분의 최고 효과있는 전도방법을 기도하면서 묵상해 보았는데 그것은 먼저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한인들에게 가서 ‘교회 갑시다’ 라고 말하는 것도 물론 전도 입니다. 사실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집사의 테입도 우리가 함께 보고 함께 큰 소리로 복창도 해 보았습니다만 실제 이민교회에서는 적합하지 않는일이 많습니다. 그런줄 알면서도 한 번 복창 해 보기는 했습니다만 우리는 ‘교회 갑시다.’ 하기전에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한인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그 말에 전혀 감동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끊임없이 서신선교는 해야 하고 또 필요에 따라 복음의 핵심을 설명해야 되지만 보다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확실한 전도방법은 없습니다. 바깥에 나가서 외치기 전에 현재 이 예배당 안에있는 우리끼리 오래 함께 교회를 섬긴 구신자 끼리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오래된 성도들은 이제 상대방의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10년 20년을 한 마을에서 지나면서 일어나는 각가지 사실을 압니다. 그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이므로 그냥 마치 어린아이들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지금 우리 이민 교회 안에 절대 필요 합니다. 또 새로 등록한 신자들에게 환영하며 사랑하는 일입니다. 지난 금요일 처럼 풍성한 음식과 프로그램으로 환영하는 것도 물론 사랑의 일종입니다만 처음 오시는 분이 편안한 마음을 가질수 있도록 마음으로 환영하는 일입니다. 식당에서 식사할 때 외롭게 홀로 앉아 있는 분이 없는지? 라이드가 없어서 교회 오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지? 대화하고 싶은데 대상이 없어서 말할 사람을 찾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를 면밀히 서로 살피고 서로 긍휼히 여기고 서로 필요를 채워 주려고 애쓰는 사랑의 마음이 바로 오늘 말씀한 데로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하는 마음은 길거리에서 목소리 높여 “예수 천당!”을 부르짖는 이상의 열매를 거둘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물론 모두모두 바쁘기 때문에 남을 돌볼 시간이 없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내가 남을 돌볼 시간이 없다면 뒤집어 놓으면 나도 마찬가지로 누가 나를 돌볼수 없다는 결과가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여러분에게 꼭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이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사랑이 교회안에서 마치 그것이 사랑인줄 오해하고 사랑하다가 사랑의 벼랑에 서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요한일서 2:16에“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세상의 방법으로 친한 사람을 사랑 한다거나 인기를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섞여있는 사랑을 한다면 그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사랑의 벼랑의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사랑 그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인하여 서로 빛 가운데서 사귐이 있으면 우리는 밝은 교회 생활을 할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민교회에서 가장 바르게 사람들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되는 주의 사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b.힘들겠지만 골고루 함께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이민 교회에서 조금씩 더 애써야 할 것은 골고루 사랑 하는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사랑이 편견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각자마다 성품이 있고 특성이 있어서 때로는 교회 안에서도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고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런 중 에서라도 우리는 편협을 버리고 골고루 사랑 하도록 노력 하여야 합니다. 특히 교회 오래 다녔거나 교회 중직을 맡아 있을 때에는 이 부분이 아주 중요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직접 선교요 지름길 선교입니다. 목회자가 교인 골고루 사랑하기를 여러분이 바라듯이 구역 지도자나 기관장일 경우에는 작은 목회자가 되어 편견없이 구역원과 회원을 골고루 사랑하는 것이 바로 교회 선교에 큰 이바지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기계처럼 살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누구도 편견하지 않고 골고루 진실된 사랑을 할려고 마음을 굳히고 그렇게 노력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노력하려는 그분을 성령으로 도우실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하려면 사랑의 하나님을 체험 하여야 합니다. 그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체험 한다면 우리는 숙제를 쉽게 풀수 있습니다.
오우헨리의 단편중에 묵은빵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한 빵집에서 싸게 파는 묵은 빵만을 사가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빵집 주인은 매일 묵은 빵만을 찾는 그 남자를 동정하여 빵속에 버터를 듬뿍 넣어 주었습니다. 건축 설계가인 이 남자는 마침 현상 응모에 출품할 작품인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빵속에서 흘러나온 버터 때문에 설계도를 몽땅 버리게 되었고 응모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남자는 늘 도면을 지우기 위해 묵은 빵을 사 갔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쓴 작가는 이세상에는 사랑이 많지만 모르고 하는 사랑도 있고 얄팍한 사랑도 있다고 표현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모르시는 분도 아니고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필요에 전혀 다른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충분히 알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그의 충분한 사랑을 맛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건축가인지 내가 정말 버터를 살수 없을만큼 가난한 사람인지 주님은 우리 각자의 내면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에 가장 적절하신 것으로 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체험 한다면 우리는 두려워 할것이 없습니다.
말씀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체험할수 있으며 우리는 다니엘처럼 간절히 매달려 기도 하는 중에 그 분의 숭고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으며 우리는 상호 믿음을 나누는 성도의 거룩한 교제 가운데 그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또 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날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 갑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우리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되 내면 깊은 곳 까지도 사랑할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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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