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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씨가 그루터기(이사야 6장 8~13절) -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
여호와의 영광을 본 이사야 선지자는
망하게 되었다고 외쳤지만
스랍 중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핀 숯을
입술에 대며 네 죄와 악이 제하여졌다고 말합니다.
제단에 있던 숯은
예수님이 번제물이 되어 대속제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를 말하는 것으로 복음의 말씀을 말합니다.
스랍이 이 복음의 말씀을 이사야 선지자의
입에 넣어주고 깨달아 믿게 했다는 뜻으로
네 악과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을 알고 깨닫게 된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는데 ....
본문 8절을 보면 ....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복음을 알지 못했던 이사야는
여호와의 영광인 복음을 만나므로
죄가 드러나게 되어 망하게 되었다고 외쳤지만
복음을 알고 깨닫게 되어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율법을 생명처럼 여기며 하나님을 섬기던
사도바울이 다멕섹 도상에서 십자가의 영광인
복음의 빛을 비추임 받고 복음을 알고 깨닫게 되어
오직 복음만 전하는 사도로 세움을 받은 모습과 같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이사야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
본문 9~12절을 보면 ....
사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6: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복음을 전할 때 백성들이
복음을 알고 깨닫지 못하도록 전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스스로의 열심으로는
복음을 알고 깨닫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를 고린도후서 4장 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신은
타락한 모든 인류를 다스리는 사탄을 말하는데
사탄이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므로
복음을 전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과 같이
타락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 마음 밭은
길가밭 돌짝밭 가시밭과 같아서 복음의 씨앗을 아무리 뿌려도
스스로는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러한 의미로
이사야가(말씀 전도자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복음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은
요한복음 12장 37~40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
37~38절을 먼저 보면 ....
요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요12: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예수님이 구약에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으로 구원하실 것을
7가지 표적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는데
그 모습을 본 백성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 위해서 9가지 표적을 행하셨으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은 모습과 같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상징하는
유월절 양을 잡기 이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번째 표적인 유월절 양을 잡고
그 밤에 다 불에 구워 먹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인 복음의 말씀을 먹고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출애굽한 것입니다.
이 모습과 같이 예수님이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사탄의 머리를 밟은 노략물인 진리의 말씀을
먹지 못했으므로 백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백성의 모습을
이어지는 39~40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2: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요12: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예수님이 많은 표적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해서라고 말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이전이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그대로 두셨다는 뜻입니다.
이 모습을 신명기 29장 2~4절에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29: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신29: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신29: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속해서 40년 생활을 마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많은 표적을 통해서 복음을 전한 것처럼
광야 40년 동안 모세는 많은 표적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뜻으로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깨닫지 못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아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만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의 말씀이나 요한복음 12장의 말씀이나
신명기 29장의 말씀이나 모두 동일하게
여호와 하나님이 들은 복음의 말씀을 깨닫게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그대로 두고 간섭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류는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이 마음을 간섭해 주셔서
복음의 말씀을 깨달아 믿게 하셔야만 진리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모든 인류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창세기 3장 17~21절을 봅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자 땅이 저주를 받아
평생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는다는 것인데
땅은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의 마음 밭을 상징하며
그 마음 밭에 복음의 씨앗을 아무리 뿌려도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를 이어지는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서
평생 수고해야 먹을 것을 먹게 된다는 것인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길가밭 돌짝밭 가시밭과 같아서
복음의 씨앗을 아무리 뿌려도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겨우 먹을 수 있는 것은
밭의 채소라고 말합니다.
밭의 채소가 무엇인지
창세기 1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셋째 날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자신의 백성을 양육하실 땅과
그 땅 위에 자신의 백성에게 먹여
구원하실 생명의 양식을 준비하게 됩니다.
자신의 백성에게 먹여 구원하실 생명의 양식으로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준비하시게 됩니다.
여기서 풀은
복음을 상징하는 씨가 빠진 것으로 율법을(젖을) 상징하고
씨 맺는 채소는
율법으로 죄인임을 깨닫고 복음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자들이 먹는 이유식 같은 복음을 상징하고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는
장성한 믿음을 가진 용사들이 먹는
단단한 음식인 복음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 말씀과 같이 창세기 3장 18절에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서 평생 수고해야 밭의 채소만 먹는다는 것은
씨가 빠진 채소로 율법만 먹게 된다는 뜻인데
유대인들처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스스로의 소견으로 성경의 말씀을 해석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성경의 말씀을 보아도
스스로의 소견으로 해석해서 하나님을 섬김으로
결국 이렇게 된다고 이어지는 19절은 말합니다.
창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인데
흙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해서
사탄의 노예로 살아가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되지 못해
결국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복음을 깨닫지 못해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와 같고
예수님과 모세가 많은 표적을 행하지만
표적이 지시하는 진리를 바라보지 못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상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사랑하사
여자의 후손으로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이어지는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3: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하와를 산자의 어머니라 불렀다는 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약속하신 메시아 언약의 말씀대로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내어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오셔서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이어지는 21절을 보면 ....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는 것은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서 십자가에서 사탄의(뱀의) 머리를 밟은
노략물인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믿게 해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복음을 모르던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되고
죄인임을 깨달아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외치지만
그에게 제단에 있던 숯인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해서
악과 죄를 없애 주신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가죽옷은 여호와의 영광인 복음의 말씀을 상징하며
이사야 6장 1절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사6:1 <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다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인 복음의 말씀이 가득하다는 뜻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이사야 선지자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백성들이 복음을 깨달아 믿지 못해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어지는 본문 11~12절을 보면 ....
사6: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사6: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성읍과 가옥과 토지는 황폐하여 사람이 없고
사람들이 멀리 옮겼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복음을 따름으로
결국 바벨론 포로에 끌려갈 것임을 말합니다.
그때까지 복음을 전해도 복음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사람 스스로는 진리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복음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 끌려가도
메시아 언약의 말씀을 이루어 주어 구원해 주신다고
이어지는 본문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 바벨론 포로에 끌려간다고 해도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하신 메시아 언약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밟고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셔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열어 주시고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해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가는 유익이라며
요한복음 16장 7~8절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야 성령이 오셔서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구원받게 된다는 뜻으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사람 스스로는 믿음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 방해하므로 말미암아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사야 선지자가 백성에게 복음을 전해도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알고 깨닫게 하셔야 복음으로 돌아와
구원받게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40년간 모세에게 속해서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주신다고 신명기 30장 6절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네게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네게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마음의 할례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은
성령을 보내어 들은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해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복음을 전해도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사탄의 머리를 밟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해서
구원해 주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령이 오셔서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셔야만 진리의 길을 걸어 구원받음을 잊지 마시고
진리를 알게 해달라고 간구하시길 바라며
또 나를 이렇게 사랑하셔서
진리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더 알아가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