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톡스 2025년 6월 모임 📖
6월 모임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조금이나마 식혀줄 맛있는 냉면을 먹고, 근처 카페 '디에떼 에스프레소'에서 나눴습니다.
이번에는 반가운 새손님이 방문해주셔서, 조금 더 의미있고 조금 더 상큼한 북톡스 시간을 보냈습니다.
참여자는 '장경호, 이지윤, 박서연, 조아라, 장다혜, 그리고 성수현' 입니다.
🐳장경호
✏️소감
일리치의 죽음은 나에겐 또다른 시작으로 다가왔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일깨워줬다.
성공한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 또한 속물인지라 돈과 명예를 부정할 순 없지만 내게 으뜸은 소소한 일상에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과 슬픔을 함께하고 나누는 것, 연결감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감내하는 것, 생의 시작과 끝에 진실로 함께하는 것,
불가지론, 언젠가 먼저 떠나는 이에게 어쩌면 조금 위안이 될지도.
🐳 이지윤
✏️소감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며 삶과 죽음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다시금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초점은 여전히 ‘삶’에 머물러 있고, 죽음은 아직도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작품 속에서 이반 일리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곁을 지킨 유일한 인물은 하인 게라심이었다. 그의 존재를 보며 문득 사회사업가가 떠올랐다. 가까운 가족들조차 외면한 고통의 시간 속에서, 이해하고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비록 그것이 직업에서 비롯된 일이라 하더라도, 그 진심과 변함없는 태도는 분명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다른 곳을 바라보려고 해도 그것만을 똑바로 응시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도록 하는 잔인한 죽음. 주인공의 말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이해해본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직면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는 예전처럼 ‘유쾌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가장 유쾌했던 순간을 떠올리려 하자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을 제외하곤 특별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말한 ‘유쾌함’은 안정된 삶, 사회적 성공, 물질적 만족과 맞닿아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유쾌함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 앞에서 그 모든 유쾌함은 초라하게 가려진다.
죽음은 여전히 두렵고 현실감 없는 주제지만, 이번 책모임을 통해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져보았다. 내가 바라는 죽음은 갑자기 지워지는 죽음이 아닌, 남겨진 사람들이 준비할 수 있는 죽음이다.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 인상 깊은 구절
- 그렇게 그는 자기를 이해하고 동정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파멸의 벼랑에서 홀로 살아야 했다.
- 최악은 그것이 그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는 점이었다. 그가 무얼 하도록 유도하는 게 아니라 오직 그것만을 똑바로 응시하도록, 그것을 응시하며 아무것도 못 하고 표현하지도 못할 만큼 고통스러워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 박서연
✏️ 소감
* : 유한한 인간의 인생 속에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질적 가치보다 함께하는 관계와 사랑에 더 많은 마음을 두어야겠다.
* 책모임을 하며,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어떻게 되었으면 하는지에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교만하게도 또는 상상만으로도 두려워서 회피해 온 ‘나의 죽음’ 그리고 내 장례식은 어땠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처음 직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막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공유했는데, 되새겨볼수록 마음에 들어 소감으로 공유해두고 싶다.
* ’내 죽음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낄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 최근 함께 교육을 듣고 있는 한 선생님 프로필 사진이 떠올랐다. 할머님 장례식장으로 추측되는 곳에서 영정사진 속 고인 분과 함께 지인들과 밝은 웃음을 지으며 남긴 사진이었다. 인상깊었다. 인생의 마지막날을 함께해 줄 내 지인들도 그 자리가 마냥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자리가 또 자주 못 보던 관계를 다시 연결해주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가장 베스트는 내 지인들은 모두 서로 아는 사이여서, 반갑게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살아생전 나와의 추억을 함께 나누고, 다시 못봄에 슬프지만 유쾌함을 느낄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 명쾌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생각났지만 미뤄왔던 연락과 만남이 떠오른다.
🐳 조아라
✏️ 소감
위암으로 투병하며 지금은 평안에 이른 아빠가 생각났다.
이반 일리치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여러 과정에서 아빠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내가 무엇을 잘 못 했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가족들을 믿지 않는 모습도 있고, 삶에 대한 의지와 선망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평안에 이르는 것은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서부터였다.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하며, 자신의 죽음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난 후 그는 편안해졌다.
그 당시 내가 옆에서 아빠의 죽음을 목격했다면, 이번 독서를 통해서는 앞에서 그 죽음을 목격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한 것 같다. 나의 죽음도 그러길 바란다. 스스로 죽음을 인정하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죽음이길 바란다.
저 멀리의 죽음과 더불어, 나의 지금 상황에도 적용해본다면.. 새로운 업무에 대해 ‘왜?’로서 날 괴롭게 하기 보다는, 그저 그대로를 수용해보기로 했다. 바꿀 수 없는 결과의 원인을 지나치게 묻기보다는,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더욱 고민해보기로 결심했다.
✏️ 나누고 싶은 구절
- 이 고위급 인사들이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에 대한 것이었다. (p.16, )
- 그의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 이런 불유쾌한 상황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벗어나고 그런 상황 자체가 무해하면서 오히려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게끔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을 점점 더 줄여나갔고 함께 있어야 할 경우에도 가급적 다른 사람들을 불러 함께 있음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했다. 이반 일리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이 있다는 것이ᄋᅠᆻ다. 그는 일 속에 파묻혀 오직 거기서 삶의 재미를 느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재미라는 것이 그를 삼켜버리고 말았다. (p.65)
- 바보들 같으니. 내가 먼저 가고 너희들은 좀 나중일지 몰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저렇게 즐거울까, 짐승 같은 놈들! (p.14)
-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 고통과 죽음..... 도대체 왜?’ (p.190) /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p07)
🐳 성수현
✏️ 소감
이반 일리치는 단순히 신체적인 고통만으로 괴로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던 건,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외로움이었다.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그 길에서 그는 처음으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아왔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이반은 결국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겉껍질(사회적 지위, 체면, 타인의 시선)을 의심하게 된다.
그가 마지막에 이르러 보여주는 ‘수용’은 체념이 아니었다. 오히려 삶을 처음으로 진실하게 마주하는 순간이자,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고백처럼 느껴졌다. 모든 허위를 벗어던지고,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남겨지는 그 장면은 읽는 나에게도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은 단지 죽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통해 ‘삶의 진심’을 묻는 작품이다. 언젠가 나도 마주할 그 마지막을 떠올리며, 지금 내가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결국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간명한 진리를 이반 일리치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듯하다.
🐳 장다혜
✏️ 소감
이번에 책모임을 진행하며, 이 책을 두 번 읽어보았다.
첫 독서에서는 이반 일리치의 고통스러운 투병생활과 죽음의 과정이 기억에 남았다. 속부터 썩어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가장 가까운 가족들 조차도 부정하는 이반의 모습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책의 후반부가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이다보니, 이반 일리치의 '삶'의 과정에 대한 기억이 증발되었다.
두번째 독서에서 초반부를 읽으며 사실 조금 놀라웠다. 죽어가는 생명체로서의 이반일리치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았는데, 이반 일리치에게도 '삶'은 존재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고 모범적이며, 약간은 유쾌한 인물로서, 대학 동기들 중에서도 꽤나 빨리 승진한 편이며, 회사에서의 자신의 인사에도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의 이반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현실세계의 인물로서 생각해본다면 꽤나 잘 살고 있는 사람에 속했다.
한 인물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다지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슬픔을 고민하고 연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읽으며 이반 일리치가 나쁜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의아스럽게 느껴질만큼 이반은 나쁜사람도 좋은사람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한 개인에게 다가온 죽음은 개인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주변인과 가족에게는 그저 일상의 한 조각밖에는 안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