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법적 대응, 사정기관·언론·노조·시민단체 가리지 않아 -공정위 제재엔 행정소송…공정위원장 발언엔 전면 반박 -‘새벽배송 노동자 사망’ 비판 노조 고소, 의원 질타엔 ‘꿋꿋’ -블랙리스트 의혹 보도에도 “허위사실…법적 조치” -연이은 논란에도 고개치켜든 쿠팡…자신감 어디서 나오나?
쿠팡 잠실 본사 [연합뉴스 제공]
쿠팡이 택배 노동자 사망, 블랙리스트 의혹, 공정위 조사·제재 등 연이은 논란에 대해 사과나 재발 방지책을 내놓기 보단 법적 대응과 여론전으로 맞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의 법적 대응은 노동조합, 시민단체, 언론, 사정기관 등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올해 초 블랙리스트 의혹 보도를 한 방송사 취재 기자와 의혹을 제기한 시민단체 관계자를 고소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블랙리스트는 쿠팡이 지난 2021년 9월부터 2년 1개월여간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일용·계약직 노동자 1만6450명의 인적사항, 취업제한 사유 등이 적힌 명단을 작성·관리했다는 의혹이다.
명단에는 과거 쿠팡에 대한 비판 보도를 한 언론인의 이름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쿠팡은 과거 근무했던 이들에 대한 인사평가 자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정당한 경영 활동일 뿐 블랙리스트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제기한 시민단체 소속 변호사 등 4명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이를 보도한 기자들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쿠팡에서 발생한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을 대처하는 쿠팡의 대응 방식이 국민적 공분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쿠팡은 지난해 가을 과로사 가능성을 제기한 전국택배노동조합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쿠팡은 지난 2021년에도 연이은 노동자 사망과 과로사 관련해 적극 취재한 기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홍용준 대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과로사에 의한 노동자 사망을 지적하는 야당 의원에 사과보다는 “쿠팡 새벽 노동에 종사하는 배송직들의 근로 여건이 그렇게 열악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거나 “새벽 배송을 좋아하는 기사들도 있다"는 식으로 일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쿠팡은 심지어 국내 사정기관과도 맞서고 있는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월 쿠팡 PB 상품을 하도급업체에서 위탁 제조하는 과정에서 단가를 허위로 기재한 사실을 적발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억7800만 원을 부과하자 쿠팡은 순응과 재발방지보다는 시정명령·과징금 납부 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21일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한 방송에서 “쿠팡 등 플랫폼 불공정거래를 규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자 쿠팡은 입장문을 통해 강하게 반발하고 여론전에 나서며 공정위를 당혹스럽게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 쿠팡 뉴스룸을 통해 살펴본 쿠팡의 대 한국 인식
“전세계에서 이러한 유통업의 본질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2024년 4월 23일)
“000의 공개질의를 빙자한 또 다른 허위 보도는 언론 권력의 남용이자 보도윤리 위반입니다”(2024년 2월 29일)
“허위사실로 재벌유통사를 비호하고 쿠팡의 혁신을 폄훼하는 언론보도에 강한 유감을 표합니다.” (2024년 1월 2일)
“00연대는 CLS 직원을 상대로 발생한 여러 폭력사태를 주도한 택배노조를 두둔하고 악의적인 신고를 남발하여 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2023년 7월 13일)
쿠팡은 지난 2019년부터 ’쿠팡 뉴스룸‘ 채널 내 ‘알려드립니다’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쿠팡을 둘러싼 언론보도에 정면 반박하거나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본지가 최근 1년간 쿠팡이 내놓은 입장문을 검토해보니 노동조합, 시민단체, 언론, 재벌기업 등 쿠팡이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주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날이 서 있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부 정제돼 있지 않은 단어나 표현 역시 다수 보였다.
일례로 쿠팡은 지난달 23일 공정위 주장을 반박하며 한국에 대해 “전세계에 이러한 유통업의 본질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언급했다. 공정위의 입장에 반박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정면 비판한 셈이다.
올 2월 쿠팡에 대한 비판 보도를 이어간 방송사에 대해선 “언론 권력의 남용”이라 주장했다.
올해 초 한 입점 업체로부터 판매가 45%에 달하는 수수료를 뗀다고 지적한 경제지에 대해선 “재벌유통사를 비호”한다고 했다.
쿠팡의 행태에 비판 입장을 가진 노조·시민단체의 적대적 시각도 자주 엿볼 수 있었다. 지난해 7월 13일 참여연대의 입장을 반박하면서 “폭력 사태를 주도한 택배노조를 두둔”한다며 노조와 시민단체를 싸잡아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이라면 회사 입장을 건조하게 전달해도 충분할 것”이라며 “회사 내부적으로 한국 사회나 특정 주체에 대한 주관적 시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외부에 노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 잇따른 논란에도 고개 치켜든 쿠팡…자신감 어디서 나오나?
업계에서는 쿠팡의 날 선 대응이 여타 한국 기업에서는 전례가 없던 방식이라 지적한다. 이를 두고 쿠팡을 지배하고 있는 외국인 경영진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경영철학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쿠팡은 스스로 한국기업이라 자처하고 있지만 지배구조상으로는 미국 델라웨어주 소재 쿠팡Inc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명확한 미국기업이라는 것이 전반적 평가다.
쿠팡Inc의 주요 주주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23.9%), 김범석 의장(10.1%), 모건스탠리(6.9%) 등 외국인들로 구성돼있다. 이사회 역시 김범석 의장 등 미국인들이 주요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선 쿠팡의 연이은 논란과 대응하는 날 선 태도가 공정·정의 이슈에 민감한 한국 국민 정서를 자극하고 국내 리스크를 키우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한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 회사란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쿠팡이 국내 소비자 유통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자칫 비우호적으로 보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로켓배송 등 높은 충성도를 가지고 있던 소비자들이 최근 연이은 논란과 태도로 쿠팡의 행보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며 “쿠팡이 일부 한국을 대하는 날 선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국적이나 사회적 책임을 주목하는 시선이 늘어나고 쿠팡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