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13년 KBS 류지열 피디와 전홍섭의사 부인 함홍숙이모할머니와 대학시절 편지를 주고 받았던 탈북 사촌의 공조로 의사의 둘째딸(전득효, 아브로라)을 하브롭스크에서 찾아 KBS 파노라마 "까레아 스크 150년'에 생존모습이 방송되어 전홍섭의사는 1936년겅 스탈린 대학살 당시 당국에 체포되여 1943년경 수용소에서 돌아가시고 1950년대 명예회복이 되었으며 이모할머니는 평생을 많은 청혼에도 불구하고 홀로 기독교신앙을 지키셨고 고급장교클럽에서 영재교육까지 받은 전기완(직효, 엘레나)은 한쪽 다리가 짧은 신체장애자로 홀로 지역 교육감을 지내면서 역시 신앙과 학문으로 그 삶을 살았다고 함.
본인이 그간 애타게 찾던 전갈랴는 둘째딸의 장녀로 언니에게로 입양되여 언니의 마지막 임종을 지켰다고 합니다.- 후기 끝
(전홍섭씨와 간도 15만원 사건의 영웅 최봉설장군은 서로 사둔 집안입니다. 전홍섭부인은 우리 모친의 이모이시고 최봉설씨는 우리 친조모 최병묵의 조카이십니다)
간도 15만원 사건의 주역 전홍섭(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러시아로 망명간후 허발포(?하브로브스크)에서 찍은 사진
1927-8년도 전홍섭 가족 큰딸 전기완(엘레나) 함홍숙(함숙) 딸 유라(사망)
오마니 이모부 전홍섭, 사촌 전기완, 이모 함숙, 유라- 러시아 망명후 망.
51년도. 함숙 생신 '스탈린의 강제이주 1937년' 이후이니 어디 중앙아시아 일것이다.
오마니와 80년대 부터 연락이 되었지만 소련어를 모르니 동네가 어딘지알수가 없다.
옛주소들을 언제 한번 추적해 보자
뒤에 친필로 쓴 글씨를 알아 볼 수 없지만, 한문으로 이름을 쓰고 '생일'이라고 확실히 쓰여있다.
이모할머니는 83년 3월에 돌아 가셨다고 했는데,
전홍섭의사는 사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어디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신 것인지???
59년도
62년도. 러시아 망명후 둘째 유라가 사망하고 그후에 낳은 3째 딸 에브로라 와 장녀 전기완엘레나
고향 회령에서 낳아간 큰 딸 전기완(엘레나)는 어머니에게 한글을 배워 오마니에게 한글 편지를 보냈었다.
사진 뒷면에는 엘레나가 61년도라고 써있는데,
또 다른 같은 사진에 62년도로 되어 있고,
같은 날 찍은 이모 할머니 독사진에 직접 '62년도 함숙'이라고 한문으로 쓰신 것으로 보아 62년도가 확실하다.
윗사진과 똑같은 사진관?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독사진 똑 같은 카펫, 구두 귀걸이 웃도리, 그런데 입으신 치마는 틀린 것 같다.
이모 할머니 함홍숙. 60년도라고 잘못 된것을 직접 '62년도 함숙'이라고 한문으로 수정해 놓으셨다.
94년 오마니가 돌아 가시기 전 받은 최신 주소,
큰딸 전기완 에레나가 돌아 갔는지, 친척으로 보이는 '전갈랴'라는 사람이 서신을 전해 온것으로 보이는데,
마지막 보내온 편지에 '미국우체국'에서 왠지 송신주소에 표딱지를 붙여서 주소가 파손 되었다.
한국 보훈처과 연해주등지에 이메일을 보냈지만 한분?도 답장을 보내지 아니 하였다.
심지어는, 어떤 '해외 이산가족 사례를 찾는다는 언론'에 이멜일을 보냈지만 역시 묵묵부답
아래사진은 오마니가 '작은딸'이라고 한것으로 보아 작은딸 아브로라의 딸인것 같다.
영어로
1991 Aug
Our Family; Children: Albina 7 months
Veronika 3 year
my husband: Vladimir
and I : Lalina
라고 되어 있다.
51년도의 생신날 집?에서 찍은 사진과 비슷하지만,
뒷배경이 틀린다.
침대의 아래 흰 침댓보는 비슷하다.
할머니가 더 젊어보이고 1920년도 정도에 태어났을 큰딸 전기완과 1930년도에 태어났을 셋째 아브로라의 나이로 보아 1940년대 중반이 아닐까한다.
뒷쪽 사진틀에 같이 망명간 큰외삼촌 김새협의 결혼사진이 보인다(왼쪽).
오마니가 갖고 계시던 결혼사진(글아래첨부)과 꼭 같다.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단발머리 젊은 여인으로 보인다.
사진은 어린 2남아로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왼쪽 사람은 여인으로도 보인다.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