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숱한 위험을 헤치고 칼라프의 아버지를 데리고 온 것은 자신이다. 칼라프를 좋아하는 것 역시 자신이다.
그런데 칼라프는 목숨을 걸고 투란도트에게 청혼하고 결국은 세 가지 문제를 풀어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단 한 가지 조건을 걸고 말이다. 바로 동이 트기 전까지 공주가 그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
리우는 공주의 완벽한 패배라고 생각했다.
칼라프는 먼 타국의 왕자이니 자신과 칼라프의 아버지 타무르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한 그날 밤, 병사들이 곧 부서질 듯한 문을 뜯어내고 리우와 타무르를 황궁으로 연행하였다.
자신들이 일행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수많은 병사들의 행렬에 리우는 속수무책으로 잡혀갈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은 리우를 어두운 분위기의 방으로 데려갔다.
작은 다탁과 의자 두 개, 그리고 의자에는 투란도트 공주가 앉아 있었다.
“이미 그에 대해서 조사를 끝냈다. 타타르 침략을 피해 온 난민이라지.”
리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략을 피해 이곳까지 온 난민이 꼭 자신들만 있지는 않으니,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외향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추론한 것이다.
외국인인 페르시아인들은 이 나라에서 너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의 이름을 알아냈다.”
리우는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공주가 그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칼라프는 도전을 실패한 것이 되어 사형당하게 된다.
칼라프가 죽게 된다면 타무르는 슬퍼할 것이고, 자신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자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데, 오늘 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를 배신하는 거다.
망국의 왕자에게 얻을 것이 뭐가 있다고 그 고생을 자처하지?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 늙은이를 데리고서? 심지어 그는 너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네가 그를 사랑하겠지.
그러나 한 달 후에도 그럴까? 1년은? 10년은? 할 줄 아는 일 하나도 없는 짐짝을 데리고 종복처럼 일하겠다니, 참으로 한심하구나.”
투란도트 공주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그러나 틀린 말은 없었다.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
“오늘 밤 그의 이름을 말하는 거야. 그의 눈에서 꺼져가는 희망의 빛을 똑똑히 보는 거지.
알다시피 나는 너희 셋을 다 죽일 수도 있어.
이 결혼 계약을 파기한다고 페르시아에서 군대라도 이끌고 올 건가?
자네를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바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게.”
리우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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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들어라, 내가 이 자의 이름을 드디어 알아냈다.”
마치 낮처럼 횃불을 가득 밝힌 광장 앞에, 높은 단상 위 투란도트 공주가 올라와 있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다.
그 중앙에는 칼라프가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그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자신과 타무르가 사라진 것을 칼라프는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투란도트 공주와 거래를 제안할 수도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대신 자신과 타무르를 살려달라고.
리우는 생각했다. 자신과 아버지 없이 투란도트 공주와 결혼하는 삶이 그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반대로 나는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사랑하는 칼라프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이 자의 이름은 동행인이 말해주도록 하지.”
공주가 리우를 가리켰다. 칼리프도 리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를 이토록 온전히 마주한 적이 있었나?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그는 항상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만을 바라보았으므로.
“그의 이름은 … 칼라프 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였음에도 광장은 깃털 하나 떨어지는 소리가 날 만큼 조용했다. 투란도트 공주가 비웃었다.
“사랑이란 이토록 얄팍한 것이지.”
“리우!!!!! 당신이 왜!!! 어떻게 나를 배신할 수 있지???”
칼라프가 절규했다. 당장이라도 리우에게 뛰어갈 것처럼 버둥대는 그를 병사들이 겨우 잡아눌렀다.
“한번이라도 제 눈동자를 본 적이 있었나요? 저는 항상 당신을 향해 있었는데 당신은 저를 그저 공기 같은 존재로 취급했죠.
그리고 당신이 나를 찾을 때는 내가 필요할 때만이었죠. 공기가 없어지니 숨이 쉬어지던가요?”
칼라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그를 처형대로 데려갔다.
그는 이것이 그의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리우를 일찍 보았으면, 그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봤으면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그녀가 자신을 배신했다며 끝까지 이를 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리우는 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앞만 보고 달리며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한 설정은 투란도트는 리우를 회유할 때 칼라프의 이름을 몰랐다 입니다.
몰랐지만 리우를 회유하기 위해 리우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절대 강자처럼 행동하기 위해 일부러 연기한 것입니다. 그 이유에서 투란도트는 대화 도중 칼리프를 계속 ‘그’ 라고 지칭합니다.
선생님께서 제시해주신 개선점 중에 리우를 회유할 때 조금 더 조건을 제시하면 좋겠다고 (돈, 일자리 등) 말씀하셨는데,
위의 설정 때문에 투란도트는 아픈 사실들을 나열하면서 리우의 정신을 다소 혼미하게 만들어야 했고, 목숨에 대한 압박과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공포를 각인시켜야 했습니다.
따라서 조건을 제시하는 대신, 죽는다는 공포감과 칼라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방향으로 대사를 추가/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