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서점을 시작하고 약 2년이 지났다. 소외되고 점차 규모가 작아지고 있는 출판계를 생각하며 걱정스런 마음으로, 도움이 될만한 컨텐츠를 고민했다. 그리고 팟캐스트 낭만서점이 시작되었다. 좋은 책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책의 매력을 낱낱이 파헤쳐 소개하고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게끔,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만들어 보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설 분야로 국한시켜 좀 더 세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그렇게 낭만서점은 지난 1년 동안 약 40여 권의 소설을 소개하며 소설 전문 팟캐스트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2016년을 맞아 다시 한번 소설전문 팟캐스트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소설이란 장르에 대한 포괄적인 이야기를 먼저 다루기로 했다. 그래도 명색이 소설전문 방송이니 소설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혼자 거창한 사명감으로 이번 기획특집을 준비했다.
기획특집은 4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한국 소설의 현재와 전망에 대해, 2부에서는 문학 매체의 변화에 대해, 3부에서는 한국문학 안의 외국소설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우리가 사랑한 소설이란 제목으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소설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며 순위권 내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이번 기획특집에는 낭만서점의 두 진행자 박경환, 허희와 함께 문학평론가 임태훈, 노태훈, 박혜진, 소설가 정용준, 해외 출판 저작권 담당 박지영, 양윤정,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장은수 그리고 교보문고 판매 데이터 분석가 김현정이 초대되어 자리를 빛내주었다.
한국에 대해 쓰지 않는 작가들
소설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한국 소설의 현 상황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한국 소설의 위상은 어떨까? 이미 충분히 짐작했겠지만 한국 소설의 현 상황은 그리 밝지 않다. 매출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판매량 또한 꽤나 급격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실은 오래 전부터 많은 문제제기와 비판이 있었다. 문단권력으로 공고화된 그들만의 리그, 순문학 이외의 문학에 대한 괄시, 나태함이 가져온 질적 저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문학 시장 등에 대한.
노태훈 : 「쓰지 않는 '한국'소설, 읽지 않는 한국 '소설'」 이란 글을 최근에 썼었는데요. 한국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는 작가 그리고 한국 소설을 읽지 않는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한 글이었습니다. 한국이 문제인지 소설이 문제인지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사실 작년에 출간된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작품이 독자와 평단의 뜨거운 반응과 관심을 받는 것을 보면서 대중은 한국 소설이 사회나 현상에 대해 말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한국작가들은 뭘 쓰고 있을까? 의외로 많은 작가들이 한국에 대해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는 지점들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용준 : 소설가는 무엇에 대해 쓸지 고민을 하죠. 그 다음에 그걸 우리가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내가 쓸 수 있을까? 그리고 그걸 내가 왜 써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거죠. 최근 한국과 관련된 것들이 너무 매력이 없어요.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들은 사실 너무 오랫동안 반복된 문제 입니다.
사회적 문제들을 볼 때, 작가들이 많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써야 한다, 쓸 수 없다에 대한 판단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저는 그런 것들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 게 매력적이지 않고, 인간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이 한 인간으로서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을 너무 얄팍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현상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 너무 피상적이고, 저로써는 덜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희 : 노태훈 평론가님은 글에서, 지금 한국소설은 다수의 마니아 독자와 소수의 신규 독자를 모두 놓치고 있다고 쓰셨었는데요. 한국소설이 왜 독자를 놓치고 있을까요? 정말로 한국소설이 독자를 잃어가고 있나요?
김현정 : 2015년에는 소설 전체의 마이너스 성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판매량이 다 마이너스 상태고요. 30대 독자들은 조금 늘었지만 20대 이하, 문학 소년, 소녀라고 할 수 있는 독자들이 빠지는 하락세가 매우 심한 편입니다. 한국소설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10~20대 독자들, 문학에 대해 논할 수 있는 독자들이 줄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소설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관심 받지 못하니 판매가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출간 종수도 줄어들고. 나쁜 쪽으로 연쇄작용이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노태훈 : 한국 문학이 반드시 독자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정용준 작가님이 책을 낸다고 했을 때 그 책을 누가 살 것인가. 제가 생각할 때는 여기 있는 분들 중에서는 저와 허희 평론가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한국 소설 문단의 작가가 책을 냈을 때 평론가들 혹은 정말 마니아들 소위 순문학이라고 하는 장르의 팬분들이 살 텐데 과연 새로운 독자들이 우리가 놀고 있는 판으로 들어올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바닥에서 놀고 있고 여기서 챙겨 읽는 분들도 슬슬 지치고 무기력해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과연 어떤 한국 소설을 추천할 지가 선뜻 생각나지 않아요. 독자들은 문학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과연 수상작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책을 봤을 때 정말 좋은 소설이었다라고 생각되는 책들이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정용준 : 원래 문학을 읽지 않는 외부 독자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원래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기존에 갖고 있던 작가에 대한 실망감이 저는 가슴이 아픈 겁니다. 너무 오랫동안 사회에서 개성적인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게 힘들어요. 너무나 오랫동안 이런 삶 속에 있기 때문에 뭔가 집단적인 '재미없음'에 짓눌려 버린 것 같아요. 작가들 조차. 저 역시 한국 소설을 쓰지만 작년에 읽은 소설 중 베스트는 모두 외국 소설이 떠올라요. 그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노태훈 :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용준 작가님의 최근 소설집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한국소설에도 좋은 작품이 있고 작가님들도 좋은 작품을 내시는데, 이건 다른 문제인 거죠. 소통의 문제예요. 기본적으로 순문학에 대한 거리감을 독자들이 갖고 있고, 저희 같은 사람들이 읽었을 때의 감동하고, 일반독자들이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봤을 때 가질 느낌이 같을지 의문입니다. 제가 돌아다니면서 읽으라고 시킬 수도 없고.(웃음)
자신감을 잃은 한국 소설
문학이 사회를 이끌고 대중에게 희망과 방향을 제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 비해 현재 한국 문학은 크게 위축되었고 위상은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작년 그나마 크게 이슈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표절 이슈’라는 다소 불편한 주제였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허희 : 노태훈 평론가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순문학도 하나의 장르문학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때가 아닌가. 순문학도 장르문학 중 일부다. 제가 그 글을 리트윗하니까 많은 분들이 다시 리트윗을 해주시면서 관심을 가져주시더라고요. 순문학이라는 지고한 가치가 있고, 그것이 절대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순문학도 일종의 다른 어떤 문학의 하위 범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정용준 : 오해를 받고 답답한 부분이 있습니다. 문학은 위대하고 다른 것들은 질이 낮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자기는 그걸 쓸 수밖에 없고 자기는 그게 좋은 거예요. 어째서인지 다들 순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편협함과 오만함을 이야기하시는데 그런 부분은 너무 억울합니다.(웃음) 그렇지 않고 실은 그런 것을 해명할 필드도 없고. 그렇지만 제가 이런 걸 하는 걸 뭐라고 하지는 마라, 그런 마음은 갖고 있어요. 오타쿠 같은 마음이에요. 내가 너한테 이걸 강요하지 않을게. 네가 재미있어할 만한 걸 쓰지 못하는 건 미안해. 그렇지만 내가 이걸 하는 건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노태훈 : 한국 문학이 '오타쿠'가 될 수 없는 것이 바로 문학 권력의 문제거든요. 우리는 시장도 작고 하니까 그냥 우리끼리 놀게, 라고 하면 그게 오타쿠가 될 수 있는 건데 이게 시장에서 일종의 권력을 갖고 있다는 거죠.
정용준 : 순문학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문화와 판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는 거예요. 매력이 상실된 거예요. 글 쓰는 작가는 많지만 서로의 독자가 아닌 거예요.보고 싶은 작가가 없어요. 우리 스스로 매력적인 텍스트를 발생시키지 못하고 있고 매력적인 텍스트가 판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고. 이 텍스트의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 판매와 결부되지 않는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도 다운되어 있는 상태인 거죠.
소설이 갖고 있는 순문학적인 가치와 이야기적인 가치, 재미의 가치를 함께 합성할 수 있는 작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순문학 작가가 그 가치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이 문학을 이끌어가는 스타작가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 전망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우리들끼리 재미있을 수 있다는 자신감. 실은 지금 우리의 자존감이 너무 낮아졌어요.
독자를 지켜내는 핵심은 파는 것이 아니라 읽게 만드는 것
물론 재미있고 매력적인 글을 쓰지 못한 작가의 잘못도 있지만 그저 가볍고 쉽게 읽히는 것만 쫓아가는 독자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재미없는 이야기로 독자의 신뢰를 잃어버린 작가의 문제가 먼저인지, 가벼운 것만을 소비하려는 독자가 문제인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어쩌면 팍팍한 세상을 살며 사색할 여유를 주지 않는 우리 사회가 문제인지도.
노태훈 : 한국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 최근에 책이 유통되는 걸 보면 정말 잘 팔아요. 사고 싶게 만드는 뭐가 있어요. 선물도 많이 주고 표지도 예쁘고. 뭔가 의미있는 것 같은 헌사도 있고. 책이 나왔을 때 이 책을 홍보하고 이 책을 독자에게 사게 만드는 마케팅은 활발한데 책을 읽게 만들고 있느냐,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열심히 마케팅을 하다보면 독자들은 이미 책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소설을 실제로 읽지 않는 현상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새로운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정용준 : 어떤 면에선 민망합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너무 정확해서. 파는 게 아니라 읽게 만드는 것. 읽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역할인 것 같아요. 판매야 어떻게 할 수 있죠. 이상한 문구 달아서 팔 수 있죠. 하지만 읽게 만드는 것은 순전히 문장과 이야기의 힘인데. 그런 면으로 작가들을 비난하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축구 국가대표를 보면서 축구 못할 때 욕할 수 있잖아요. 그럼 네가 뛰어봐라 할 수 없잖아요. 그건 축구 선수가 할 일이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지 작가와 출판사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거에요. 독자와 사회의 역할도 있어요. 쉬는 시간에 피디님이 그런 말을 했어요. 요즘 십대들은 책을 읽으면 왕따 당한다고. 우리는 지금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재수없어 합니다. 심지어 인터넷 기사도 길면 안 봐요. 심지어 웹툰도 이야기 전개를 뽑을 때 설명이 필요한데, 조금 길어지면 작가들이 너무 미안해해요. 스스로 자신을 '설명충'이라고 비하하면서. 주인공만 안 나와도 별점을 낮게 때리면서 욕을 해요. 독자가 원하는 것들이, 그게 작가의 글쓰기를 위협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진지한 것을 싫어하고 과정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커진 것 같아요. 읽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여러 문화들이 있어요. 정신적인 운동이 필요해요. 독서의 정신적인 가치에 대해서. 이런 걸 얘기하면 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요.(웃음)
허희 : 영화와 비교해서 본다면. 관람객들은 한국영화라고 해서 특별히 더 많이 보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재미있어서 보는 거예요. 한국소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워낙 한국소설들이 경쟁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영화나 웹툰이나 다른 서사성이 갖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만 좋은 외국소설들, 이언 매큐언이나 필립 로스와 같은 유수의 작가들과 한국소설들이 함께 놓여 있는 거죠. 그 안에서 한국소설이 어떤 특화된 방식으로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한국소설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는다면 저는 한국소설의 전망이 생각보다 어둡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문단 내에서 내가 독보적인 작가가 되어야지, 한국문단 내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해야지 라고 생각한다면 일부 평론가들에게 지지를 받고 주요 매체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 독자들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응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서사 속에서 내가 한국소설을 어떻게 읽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할 것입니다.
노태훈 : 한국소설만이 줄 수 있는 장점이 당연히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공감' 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얘기다. 우리 엄마의 이야기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그런 소설도 당연히 있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줄 수 있는 통찰력 같은 것도 줄 수 있고요. 한국작가들만이 줄 수 있는, 외국작가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을 작가들이 좋은 글로 써준다면 독자들도 그것에 응답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독자에 대한 불만은 있어요. 독자라고 하면, 이런 얘기할 때 독자는 항상 이상적인 집단이고 작가나 평론가들이 잘해야 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독자들의 잘못도 있어요. 책을 너무 안 읽죠. 책을 읽는 것을 뭔가 '진지충'이라고 한다든지 '선비'라고 하면서 마치 고루하고 낡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들과 유통하시는 분들 그리고 저희 같은 평론가들이 어떻게 이 바닥을 이끌어 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고민할게 많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