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씀)
1979년 여름 ROTC 임관을 하고 국방의 의무를 해야 하는 남편을 따라 나와 어린 아들은 임지를 향해 떠났다.
포장 이사가 없던 때여서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고맙게도 병사들이 미리 나와 있다가 일사불란하게 이삿짐들을 날라주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러면 안 되는데 남의 집 귀한 아들 손자들을 막일로 부리다니 지금은 어림없는 일이다
경험 없는 신병이 애지중지하는 오디오에 스피커를 실수로 바닥에 내동댕이쳐 주인인 풋내기 소대장은 화도 못 내고 참느라 얼굴만 벌게졌다.
이사를 필두로 모든 군인 아저씨들이 방년 23세 나에게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날 부르면 쑥스러워 못 들은 체 딴청을 부리곤 했는데 그렇게 불러야만 했던 나와 동년배 병사들은 얼마나 이상했을까 늙수그레한 지금이라면 몰라도 얘 쟤 할 나이에. 어른 옷 입은 것 같았다
소위 봉급이 7만 원쯤 그걸로 우리 세 식구는 생계를 유지하는데 장가 안 간 철부지 동료 초급 장교들은 접대부 있는 술집에 가서 진탕 놀다가 며칠 안 되어 봉급 거덜 내고 우리 집으로 용돈을 빌리러 온다.
우리는 부대 근처 시골 마을에서 살았는데 한 달 월세가 5000원 공주 언니가 서울에서 놀러 왔다가 우리 방 사랑채에 달린 찌그러진 작은 함석 문을 보더니 연탄창고인 줄 알았다나?
김장철 군인 가족들이 부대로 김장 도우러 가면 부인들 계급이 남편보다 높다더니 소대장 직속 상관인 포대장은 대위인데 그의 부인은 어찌나 높아 보이던지 소위 부인은 대위 부인 앞에 서면 작아져서 설설 기었다
우리 부대에서 제일 높은 포대장 사모님은 무슨 복이 많아 저리도 시집을 잘 갔을까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안되면 되게하라!'
부대 건물 벽에 큰 글씨로 쓴 슬로건 아래서 사병들 먹을 김장 속을 둘러앉아 넣어가며 부인들의 인물 품평회가 열린다.
''최 중위는 여간 아니게 보이지?'' ''백 소위는 여자가 여럿인가 봐.'' ''김 상사는 사람이 참 좋아요''
1식 3찬 이라고 나오는 식사는 국 하나에 반찬 두 가지. 먹고 돌아서면 배고플 거 같은 부실한 내용의 식사였다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 뛰는 기합 받기에는 식사가 허해 보여 안쓰러웠다
세월이 흘러 1998년 근래 군 복무 중인 아들 부대에 가보았는데 변하지 않은 것은 내무반 풍경이었다
내무반에 들어서면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땀 냄새가 물씬 풍기고
양쪽으로 똑같이 나뉘어 있는 누워 잘 수 있는 평상 같은 공간
네모반듯하게 각 잡아 정리한 관물대
예전 내무반에는 양쪽 벽에 M16 총이 장식(?) 돼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총을 실제로 보니 기분이 남달랐는데 무섭다고 하니까 총알은 다른 곳에 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 무엇인지. 어느 병사가 면회 온 여자친구와 외출증으로 나가서 사랑싸움을 하는지 차마 헤어지기 싫어서인지 복귀를 안 해 소대장은 아연실색 !
근처 여관을 다 뒤진 끝에 워커와 하이힐이 나란히 있는 방을 찾아낸 후에야 안심한다
눈이 오면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하얀 눈 덮인 들판처럼 되어버리는 부대 주위 풍경들이 눈에 선하다.
제대 후 영내에서 타던 자전거가 서울 아파트에 세워져 있는 것 볼 때마다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는데
군 시절이 이상하게도 그립고 그리웠다.
아무래도 여자가 본 군대 생활은 수박 겉핥기겠지?
충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