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예전 살던 곳에서 쓴 글) 자동차를 운전하는 중에 아스팔트 도로 위 '가락시장'이라 표시 된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안내를 읽은 김에 집 근처에 재래 시장이 없는 터라 그 길로 곧 바로 시장으로 향했다
과일을 좋아해 날마다 먹지 않으면 헛헛한 나는 종종 도매 시장인 그 곳에서 무지막지하게 많은 과일을 사서 차에 실어 오곤 했었다
혹자는 시장에 가면 삶의 생기를 얻어 온다던데 나는 큰 시장일수록 복잡함에 멀미가 나고 악착스러움을 만나면 지레 질리기도 해서 생기는 커녕 도리어 파 김치가 된다
더군다나 매서운 바람 몰아치는 어둡고 황량한 밤 시장 추위도 무릅쓰고 한 데서 고생하는 상인들을 보면 눈 마주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시장에 가보면 산다는 것이 참으로 녹녹치가 않다라는 사실을 절감하며 느슨한 내 삶이 염치없이 느껴지고 활기를 얻기보다 숙연해진다
오직 추위만 피하려고 걸친 겹겹이 껴입은 어두운색 외투 모양 안낸 투박한 차림새로
침침한 불빛아래서 간간히 오는 손님 맞는 그네들을 보노라면 추위에 긴 시간 얼은 몸이 온전할런지 걱정이 앞서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강인한 삶이 또 다른 우윌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나운 추위로 여유가 없어 기웃 기웃 흥정하고 싱거운 소리 할 새 없이 나도 바삐 몇 종류 과일만 사기로 한다
언제나 들르는 과일 가게는 고작 일년에 예닐곱 번이나 가게 될까? 그러니 알아 볼거라 기대도 않는데
수 많은 사람 상대 하는 주인은 매번 용케도 잊지 않고 내가 다녀간 것을 기억해 준다
물건을 사면 꼭 덤을 주는데 포도 사면 복숭아 몇 알을 토마토 사면 참외를 골고루 맛 보라면서 주인은 시장 인심을 덤으로 얹어 주는데
이번에도 사과 샀다고 한라봉 두개를 봉지에 함께 넣어 주었다
보기도 아까울것 같은 잘 생긴 젊은 청년이 아들이라는데 주인 아주머니 곁을 거들며 장사를 돕고 있다
무거운 과일 상자를 꺼내 와 내용물을 보여주기도 하고 구입한 과일 상자들은 번쩍 들어 내 차에 모두 실어 주었다
요즘 사람 같지 않고 참 대견스럽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바닥부터 다진 경험들이 살아가는데 굳건한 밑거름이 되어 잘 될거라는 믿음이 가는 청년이었다
장보기를 마치니 허기가 밀려 왔다 우리집 남자가 좋아해서 보며는 꼭 사먹자고 하는 호떡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그쪽으로 발길이 갔다
리어커 위에는 전부 다섯개의 호떡이 구워져 있었고 우리 어릴적 국화빵도 찌그러진 모양인 채로 옆에 있다
"호떡 이천원 어치 주세요.." 주인이 고운 모습의 젊은 아낙네다
그녀는 말 없이 웃음으로 답하며 흰 종이 봉투에 호떡을 달랑 두개만 담아 넣는다
아무래도 이상해 한개에 얼마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안하고 자꾸만 기둥에 붙어 있는 종이를 손으로 가르킨다
거기에는 '천원에 2개' 라고 써 있었다
그녀가 귀가 안들리고 말을 못한다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알아 차렸다
내가 천원어치 달라는 줄로 그녀가 짐작한거 같아서
얼른 2천원을 꺼내 보여 주었더니 이제 알았다는듯 순전한 얼굴에 미안함이 스치면서
남아 있는 호떡 다섯 개 모두를 싹 쓸어 봉투에 담고 옆에 국화빵까지 서둘러 담는다
주문 좀 잘못 알아 들었다고 보상으로 호떡 네개 사는데
한개를 더 준데다가 국화빵까지 얹혀 준다는것은 과하다는 생각인데
그녀는 그렇게라도 해서 미안함을 표시하고 싶었나 보다
엉겹결에 주는 것 받아들고 뒤 돌아 차를 몰고 가는 내내
외마디 소리로 고맙다 인사하던 몸이 불편한 선한 아낙이 마음에 알싸하게 다가오며
겨울밤,살려고 성치 않은 몸으로 서툰 장사를 하고 있는그녀가 식어 굳어버린 별 맛 없는 호떡과 함께 내게 애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겨울 밤 시장에 가면 나는 무언가 단단해져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