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0-11
목 발 과 안 경
박 병 민 목사(새터공동체)
친구 이 선생은 목발을 짚고, 그것에 의지하여 장사하는 일로 버스 혹은 택시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 나라 안의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다. 나는 한쪽 다리가 짧으나 목발을 쓰지는 안는다. 목발 짚는 친구의 활동 무대가 그렇지 않은 나 보다 넓다. 우리 집에서 나와 더 가까이 벗삼고 살자고 권하니, 활동 마당이 좁아 보였던 듯, 답답하여 못 살 것 같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말이 옳은 것 같다. 사람이 살판나게 살려면, 자기에게 맞는 멍석 위에서 뛰놀며 먹고 자고 살아야 할 것이다. 예수 잘 믿는다는 아무개 노래가수가 부른 대로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 난 사람은 못 난 대로 산다”는 제 멋에 살면서 잘못을 따지지 않는 세상을 바래본다. 내가 안경을 쓴지는 올해로 꼭 20년이 되는 것 같다. 안경을 꼈음에도 눈앞의 오만 것이 뻔히 보여지지를 않는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때가 많다. 앞에 있는 것을 못보고 잘 부딪힌다. 안경이 없었더라면 캄캄절벽이었을 것이다. 컴퓨터가 널리 사용되려던 무렵에 막내 동생이 집에 컴퓨터를 들여놓았다. 나는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물건으로 여겨졌다. 안경을 끼고도 눈이 어두워 글자판과 앞의 화면을 볼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등 너머로 오락하는 모습을 보았다. 얼마 후에 도서관에서 마련한 컴퓨터 교육에 친구와 같이 참여 할 수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좀 일찍부터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안경이 없었더라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목발 짚은 사람과 안경 낀 사람을 견주어 본다고 할 때 우리들은 편견(偏見)을 갖고, 말처럼 치우쳐서 보는 것 같다. 목발은 걷는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돕는다. 그리고 안경은 보는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돕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걷는데 장애가 있어서 목발을 짚은 사람들은 장애인이라 말하고, 보는데 장애가 있어서 안경을 낀 사람들은 장애인이라 말하지 않는다. 안경 낀 사람 그들도 장애인이라고 같이 말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안경 낀 것이 별 다르지 않고 일상화되어 있듯이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들도 일상적인 사람으로 여겨졌으면 한다. 장애인도 노인, 서민층 하듯이 보통사람들로 불리어 지고, 그 “장애인”이란 말은 구분적인 말이었으면 한다. 마치 병원에서 검사결과 양성반응, 음성반응하고 말하듯이 말이다. 또한 목발을 갖고도 목발이라고 말하면 어색한 듯 그 말을 쓰지 못하고 클러치라고 말할 때도 있다.
목발도 안경처럼 되기를 바란다. 비약스럽게 말하자면, 패션안경 선보이듯이 패션목발도 이야기되어졌으면 한다.
공동체 이야기
11월 7일
또 하나의 천년이 시작된다고 지난해와 올 초에 말도 많던 2000년 도, 입동(立冬)이란 말을 들으면서 채 두 달도 남지 않았음을 보게 된다. 낮은 짧게 되고, 밤은 점점 길어져 간다. 나는 예민하여 별 일 없이 한유 할 때에도 밤잠을 이루지 못 하는 적이 많다. 카알 힐티가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썼다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라는 책제목이 머리 속에 들어올 때도 있다. 침대 위에 누우면 푹 잠이 들 것 같아, 그것을 들여놓고 들떠서 누워봐도 여전히 같은 밤이다. 오늘도 가볍지 않은 몸으로 아침 여섯 시를 넘어서 일어났다. 일곱 시를 지나서 누워 테레비를 보시는 박 선생님의 방에 들어와, 선생님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앉게 한다. 옆방의 할머니와 무래를 깨운다. 박 선생님의 방에서 일곱이 함께 둘러앉아 아침예배를 드렸다. 잠시 후에 박 집사님이 준비하시고, 처와 어제 오신 조(曺) 어머니께서 함께 거들며 차린 아침밥을 어 할머니는 다른 상에 드리고, 아이들과 같이 일곱이서 한 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신다. 나는 아침밥을 먹은 후, 밥상을 들고 방에서 테레비를 보고 계시는 박 선생님에게 가서, 밥을 수저로 떠서 먹여 드린다. 이 때가 나에게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아침연속극을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 식사 후에는 양치질과 물수건으로 선생님의 얼굴을 닦아 드린다. 앉아 계시던 선생님을 열 시에 자리에 누여드렸다. 나는 기회가 닿으면 음식요리를 배워보고 싶다. 그래서 집안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들은 열두 마리의 개를 기른다. 두 세 마리씩 오리와 토끼도 기른다. 가까이 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점심급식을 하는데, 그 밥 찌꺼기를 가져다가 개를 기른다. 그 양이 양동이로 한두 동이에 불과하지만 개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된다. 오전에 빈 그릇을 가져다주고, 담겨진 것을 오후에 리어카로 싣고 온다. 이것을 나르는 일은 무래와 나의 일이다. 가져온 음식물 쓰레기는 박 집사님이 나무로 불을 때어 끓여서 개에게 준다. 학교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전에는 그 찌꺼기를 처치하는 일이 짐이었던 것 같다. 짐을 덜어주며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 갑절의 좋은 일이라 여겨진다. 사람이 먹다 버린 것은 동물이 먹고, 동물의 배설물은 식물을 자라게 하는 밑거름이 되고, 그 자란 식물은 사람과 동물이 먹으니 자연의 순환이다.
학교에 리어카로 빈 양동이를 실어다 놓고 와서 자리에 조금 누웠다. 그리고 후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었다. 먹으면서 이야기를 들으니, 박 집사님이 냄비에 끓이다가 투명한 유리 뚜껑이 뜨거운 열에 의하여 산산이 깨어지면서 손을 조금 베었단다. 오늘도 두 가지를 거저 받았다. 무래가 따분해 하는 것 같아 공을 가지고 학교에 막 들어섰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마을 보건진료소 소장님 이시다. 우리 공동체 식구들에게 감기예방주사를 놓아주기 위하여 오시는 중이란다. 우리 온 식구는 선생님의 배려로 감기예방을 할 수 있게되었다. 나는 선생님께 장티푸스 주사와 식구들의 결핵검사를 부탁드리기도 하였다. 어제 오후에 이모부님께서 양파모를 가지고 오셨다. 어제 우리에게 오신 조(曺) 어머니, 처 그리고 내가 그것을 배추밭의 두렁과 두렁 사이의 골에 심었다. 나는 앞서서 거름을 뿌려가며 땅을 일궜다. 두 사람이 뒤에 오면서 양파를 심었다.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차를 끌고 자주 들르시는 박 선생님의 형님께서 오셨다. 아이들이 타는 작은 자전거를 가지고 오셨다. 두 아이들이 좋아라 한다. 이 두 분의 마음써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바램이 있다. 우리들의 나아가는 좁은 돌밭길이 학교 앞에까지 포장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박 선생님이, 집안에서 묵고 있는 휠췌어롤 타고 함께 큰길까지 나가 보셨으면 한다. 아이들도 자전거를 마음대로 탈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양파가 다 심겨갈 무렵, 무래와 서둘러서 학교에 가서 리어카에 음식물 찌꺼기를 싣고 왔다. 우리는 밤 되어 저녁을 먹고,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 노래가 생각난다.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햇빛되게 하소서.
공 동 체 소 식
☻ 새터 공동체 가족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99. 7.16)
어귀녀 (00. 1.15)
박종만 (00. 5.28)
정무래 (00. 7. 1)
박영훈 (00. 7.30)
문창수 (00. 8. 9)
조점숙 (00.11. 6)
* 11월 13일 저녁에 사슬회모임 주관으로 『새터공동체 드림 예배』를 드렸습니다.
☻ 새터 공동체에서는 거처를 정하지 못하는 노인, 장애인 분들을 모시고자 합니다.
☻ 기도하며 함께하신 분들
왕지교회.일양교회.어귀녀.이원교회.박종만.대전서노회.진수정.예수마을.성기환.어득자.장인순.이희옥.대덕교회.박종덕.한삼천교회.영운교회.김종생.조길환추부보건진료소(이현순).판암제일교회박종렬.금산군자원봉사센타.박의규.한두용.사슬회모임.황찬규.정진희(이정남)이종국.유인숙.채윤기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