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댐(150)~ 광덕사 ~ 주암산 기도바위(850)~
최정산 헬기장(870) ~ 대새목장 ~
청산벌(700) ~ 통점령 ~ 대곡산(750) ~
남지장사 청련암(450) ~ 우록리(250).
도보행복님. 하숙생님.
은풀잎님. 초심님. 한소 5명이
기막히게 좋은 가을 날씨를 즐겼다.
가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고왔다.
3만 1천보. 8시간 반. 오랜만에 장거리 산행.
최정산 헬기장에서 대새목장까지
차도 2km 포함하여 gps 장비에는 16km 나왔는데
동행한 산악 전문가 초심님은
3만보 넘는 걸음수로 따지면
20km 넘는다고 말했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주암산 기도바위 ~ 통점령 구간은
고위평탄면 지형으로 거의 평지 수준.
6km 구간에 최고점과 최저점 표고차이가
150m 안된다.
출발지 가창댐.
가운데 오목한 곳이
지난주 화요일에 두리봉님 따라 올랐던 달비고개.
왼쪽이 월배산(620). 오른쪽이 산성산(650)
월배산(620)
광덕사 입구
등산 초입부터 된비알 길 시작된다.
이렇게 경사 심한 길 빠르게 걸으면
아킬레스건과 장딴지 근육이 아프다.
하숙생님과 은풀잎님은 속보 등산계의 master.
이런 지형에서 방방 뛰어다니는 다람쥐 수준.
시간 조금 지나면 두 사람 모습이 안 보인다.
도보행복님과 나는 후미에 축 처졌다.
사진도 찍고, 단풍나무와 가창댐 구경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
주암산 올라가는 도중에
가창댐 내려다볼 수 있는 바위가 6개.
지난 6월에는 한 개도 안 빼먹고
바위마다 올라 사진 찍었다.
더 쉬고 싶었는데
선두그룹과 속도에서 너무 차이 져서
오늘은 많이 참았다.
3km 걷는데 2시간 걸렸다.
이 코스는 두리봉님과 여러 번 올랐는데
가창댐 조망이 끝내준다.
전망바위 나올 때마다 사진 찍다 보면
주암산도 못 가고 해가 진다. 그만큼 풍경이 좋다.
도보행복님 사진을 보거나 과거 최정산 후기를
찾아보면 된다. 오늘은 사진이 몇 장 안 된다.
가창댐 상류 오리 마을.
지난 6월에는 이쪽으로 하산했다.
뒷산이 청룡산(800)
산불 흔적.
최정산에 1년에 한 번은 산불이 일어난다.
울산에서도 연쇄 방화범이 있었다.
잡고 보니 50대 현대중공업 직원.
그는 해마다 불을 질렀다.
방화범들은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불을 보면 긴장이 완화되고 희열을 느낀다.
가창 최정산 산불도
네로 같은 방화광(Pyromania)의 불장난으로 의심된다.
풀밭 위에 초심님.
최정산 산행에 참석하려고 포항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셨다.
주암산 배바위. (850)
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한 바위가 배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배 주(舟), 바위 암(岩) 주암산으로 부르고 있다.
부근 청룡산에도 배바위가 있다.
청룡산 옆산 닭지만당산에도 홍수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의 공통점은
3곳 모두 홍수로 세상 온천지가 물바다가 되었고
그 위로 배가 둥둥 떠다녔다는 거다.
성경에도 중동 지역의 홍수 설화가 나온다.
'노아의 방주'같은 천재지변이
한반도에서도 있었다는 말이다.
배바위는 보통 기도 바위로 알려져 있다.
주암산 산 아래에 기도원이 있다.
이곳은 기도원 수련생들의 실습장으로 쓰인다.
이 사람들 말로는 하늘 가까이서 기도하면
기도발이 더 먹힌다고 한다.
주일 제외하고는 기도하는 소리로 많이 시끄럽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숙식을 해결하는 곳.
여기 주암산 정상부터
최정산 헬기장까지 2km 구간은 고산 평원지대다.
펀펀한 길이 연속된다.
큰 굴곡 없이 편한 길이다.
최정산 하이라이트 청산벌보다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청산벌 통점령 쉼터에서 정북방향 최정산을 바라본 모습.
왼쪽에서 오른쪽 끝까지 주능선 길이가 3km다.
가운데 kt 통신탑이 보인다.))
팥배나무.
열매는 팥을, 꽃은 배꽃을 닮았다고 붙인 이름이다.
봄의 끝 무렵인 5~6월, 배꽃처럼 하얀 꽃이 핀다.
배꽃을 닮은 새하얀 꽃이 필 때도 좋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을 빨간 열매가 달린
가을철이 더 매력적이다.
팥배나무 열매처럼 붉고 작은 열매는
겨울에 새들의 양식 역할을 한다.
한 시인은 팥배나무 열매가
새들을 위해 ‘나무가 마련한 도시락’이라고 했다.
팥배나무 붉은 열매가 땅바닥에 전부 떨어져 있다.
더 일찍 왔더라면 나무에 달린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팥배나무 꽃과 열매 자료사진
kt 중계소
헬기장 나가는 길.
여기서부터 포장길이다.
최정산 헬기장(870). 이곳이 최정산 정상 역할을 한다.
최고점은 900m. 공군부대 안쪽이라서 출입이 안 된다.
초심님이 직접 채취한 송이버섯.
점심 반찬으로 배부르게 먹었다.
공군부대 입구. 헬기장 바로 옆이다.
대새목장까지 차도 2km.
목장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지금은 카페로 이용한다.
리뉴얼공사로 문을 닫았다.
청산벌 입구. 목장용지 빼고 대략 10만 평 정도로 추산.
청산벌에는 고산습지가 발달하여 예전에는 고랭지 목축이 이루어졌다.
통점령(通店領)은 가창면 주리와 청도 각북면 지슬리 통점마을을
잇는 고개로서 청산재로 부르기도 한다.
현재는 억새가 많이 자라는 억새군락지 명소다.
고산분지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청산, 우미산, 삼성산, 팔조령으로 가는 길이다.
목장에서 청산(800)까지 2㎞ 남짓한 구간은 걷기 편한 길이다.
억새꽃
억새 군락지 시작점.
고위평탄면에 관한 진화론적 지형 모델로는
고위평탄면 형성 과정의 설명이 어렵다.
지리학자들에겐 연구실 내에서의 외국 문헌 연구보다
실제 현장조사가 더 필요하다.
이제는 외국 이론 단순 수입상 수준에서 탈피할 때가 되었다.
산악자전거 통로로 잘못 들어가 잠시 알바.
용담
여기가 청산벌 억새군락지.
규모는 영남 알프스 간월재나 재약산 사자평에 견줄 바 못되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은 이곳이 더 낫다.
벨벳같이 부드러운 초지.
22년 1월 대구둘레길 때 여기서 점심 먹었다.
이런 개활지는 심신이 차분해지고
힐링이 저절로 시작된다.
억새 생육 상태가 좋아 어른 키를 훌쩍 넘었다.
모든 방향으로 탁 트여, 사방으로 조망이 가능한 곳에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
최정산(900)과 청산(800)을 잇는 고개 통점령(780)
통점령 쉼터
서쪽으로 비슬산 조화봉 월광봉 천왕봉이 보인다.
벌써 오후 5시다.
가을은 해가 짧다.
해가 지면 곧 어둑해진다.
마음이 급해서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다.
남지장사는 지장보살을 모시는 신라시대 절이다.
팔공산에는 북지장사가 있다.
미래 이상향을 주관하는 미륵불이
이 세상에 나타날 때까지 현세에서
중생을 계도하는 보살이 지장보살이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병 훈련장으로 이용하였다.
승병과 의병이 함께 훈련하였는데, 모두 3,000명이었다고 한다.
((남지장사 사진))
부속 암자로 남지장사 좌우에 청련암. 백련암이 있다.
녹동서원은 김충선을 배향하는 곳이다.
녹동서원 뒤에 김충선의 묘가 있다.
남지장사 청련암으로 내려가는 길.
청련암에서 마을 입구로 가야 하는데
도보행복님과 하숙생님에게 좌틀하라는 말을 남기고
은풀잎님 자신은 직진하여 남지장사로 갔다.
결국 길을 잃고 어스럼에 혼자 헤매었다.
먼저 우록리에 도착한 초심님이
은풀잎님 구하러 갔다.
우록리 내려가는 길.
우록리 빈집.
우록리는 우미산(730) 삼성산(660) 청산(800)
대바우봉(600) 삼정산(720)으로 빙 둘러싸여 있다.
물이 빠지는 동쪽을 제외하고 600m 안 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대구와 청도의 경계인 팔조령이 바로 옆이다.
특히 삼성산, 우미산, 봉화산, 대바우봉, 청산, 팔조령, 통점령은
대구 9산 환종주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대구 시내를 관통하는 신천의 발원지가 바로 이곳이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되었으나
조선의 문물과 도덕에 감화하여
조선에 투항한 왜군 장수로 본명은 '사야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우고
은퇴하여 이곳 우록리에 정착하였다.
김충선이 우록리를 자신의 터전으로 선택한 이유는
이곳이 동쪽 출구 한 방향을 제외한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수비하기에 좋은
천혜의 요새였기 때문이라 한다.
우록리는 김충선이 조선에서 재혼하여
낳은 자손들이 모여사는 김해김씨 집성촌이다.
430여 년이 흐른 지금 17대손
7000여 명의 후손으로 번창했다고 한다.
김충선은 우록리가 둥근 형태의 소굴레를 닮아서
우(소)륵(굴레) 마을이라 이름 지었다.
가야금을 만든 고령 대가야의 우륵(于勒)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다.
하숙생님이 우륵마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다.
시간이 촉박하여 설명을 못 드렸다.
6번이 소굴레다. 5번은 멍에.
1번은 길마. 7번은 부리망. 4번은 북두끈.
일제 강점기에 우륵에서 '우'자를 따오고,
이웃하는 흰 사슴(백록) 마을에서 '록' 자를 따와
우록리(소와 사슴 마을)로 개명하였다.
이 동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도 이설이 많다.
어느 마을이나 마찬가지다.
보통 서너 개씩 된다.
산에서 내려가는 순서로 보면
대곡산 ~ 북지장사 ~ 백록마을 ~ 우륵마을 순이다.
가창2번 버스 종점은 우륵마을에 있다.
대곡산에서 버스종점까지 4km 거리다.
((백록마을))
((우륵마을))
오후 6시에 우록리 마을회관 도착했다.
5분 후에 가창 2번 버스 출발했다.
마을 입구에 김충선을 배향하는 녹동서원이 있다.
일본은 최근까지 사야가(김충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고,
더 나아가 김충선이 조선에 투항한 후
전란에서 세운 공적 기록에 대해
우리가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과거 역사를 날조, 창작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