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스님
주요활동
혜초의 행적은 크게 인도 구법행과 중국 귀환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혜초가 인도로 구법(求法) 여행을 떠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723년경으로 추정한다. 인도 여행을 해로로 갔는지 육로로 갔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는 만 4년 동안 인도를 여행하였고, 카슈미르(Kashmir) · 아프가니스탄 · 중앙아시아 일대까지 답사하였다. 인도 구법 여행을 하게 된 동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8대 탑으로 상징되는 인도의 불적지를 순례하는 것이 혜초의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밀교의 승려 금강지(金剛智)가 당시 장안(長安) · 낙양(洛陽) 등지에서 밀교를 가르쳤는데, 이때 혜초가 그의 문하에 들어갔기 때문에 혜초가 스승의 권유로 인도 구법을 결심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혜초가 다시 장안으로 돌아온 때는 727년(개원 15)경으로, 『왕오천축국전』에 따르면 혜초가 그해 11월에는 당시 안서도호부 소재지인 쿠차[龜茲]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중국으로 귀환한 이후 혜초는 금강지와 불공(不空)에게 밀교를 전수받았다. 혜초는 장안과 중국 오대산(五臺山)을 중심으로 밀교를 연구하였고, 경전을 한역(漢譯)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혜초는 이후 일본 진언종(眞言宗)의 계보에도 수록되었다.
혜초는 733년(개원 21)에 장안 천복사(薦福寺)에서 금강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현종(玄宗)의 칙명으로 740년에 금강지가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敎王經)』을 번역할 때 혜초는 필수(筆受)의 임무를 담당했다. 혜초는 금강지가 입적한 후에는 불공의 문하에 있으면서 774년(대력 9)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유가심지비밀법문(瑜伽心地秘密法門)을 배웠다.
이러한 내용은 혜초가 작성한 「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741년에 금강지가 입적했는데 혜초의「서문」에는 742년에도 금강지가 생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774년 6월에 불공이 입적했는데 그해 10월에 혜초가 불공으로부터 법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혜초가 작성한 연대에는 다소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공은 입적하면서 밀교를 널리 펼칠 6명의 제자를 꼽았는데, 여기에 혜초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불공은 21인의 밀교 고승들에게 흥선사(興善寺) 관정도량(灌頂道場)과 대성문수각(大聖文殊閣)에서 나라를 위한 염송(念誦)과 독경을 요청하였는데, 이 21인에도 혜초가 포함되었다. 혜초에 관해서는 ‘신라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중국 밀교의 법맥이 금강지-불공-혜초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774년 2월 혜초는 내도량(內道場)의 사문으로 활동하면서 성지인 옥녀담(玉女潭)에서 기우제를 주관하고 「하옥녀담기우표(賀玉女潭祇雨表)」를 지었다. 그 뒤 혜초는 수년 동안 장안에 머물다가 780년(건중 1) 오대산으로 옮겨갔다. 오대산은 불공이 오래 머무르던 곳이며 불공의 제자인 함광(含光)도 여기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오대산의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지내면서 이전에 필수를 맡았던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을 필사하고 이 경을 번역한 유래와 비밀스러운 뜻[秘義]를 간략히 서술한 「서문」을 지었다.
혜초는 살아 있는 동안 신라로 귀국한 흔적이 없다. 다만 그에 관한 기록이나 저술에서 ‘신라인’임이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어떠한 형태로든지 신라와 관련을 맺었으리라 추론해 볼 수 있다
혜초스님 도보 여행
혜초스님은 경주 금성을 출발하여 중국의 평주와 광주를 거쳐 베트남 → 싱가포르 → 인도네시아 자바섬(불서국) → 말레이시아 → 미얀마 → 방글라데시의 앞바다를 경유하여 동천축으로 진입하였다. 이어 그는 인도의 불교 성지인 왕사성 → 구시나가라 → 바라나시 → 마하보디 → 바라나시에 들른 뒤, 다시 카냐쿱자-나시크를 거쳐 알로르(아프가니스탄) → 잘란다라 → 탁샤르 → 신드구르자라 → 탁샤르 → 잘란다라 → 카슈미르(파키스탄) → 간다라 → 우디아나 → 치트랄 → 우디아나 → 간다라 → 람파카 → 카피시 → 자불리스탄 → 바미얀(아프가니스탄) → 토카리스탄 → 파사(이란) → 니샤푸르 → 토카리스탄 → 와칸 → 파미르 → 카슈카르 → 쿠차 → 언기 → 돈황 → 난주 → 장안에 이르렀던 것이다.
평택호 관광단지 내 혜초 비
왕오천축국전 [往五天竺國傳]
[책명] 통일 신라 시대, 727(성덕왕 26)년에 혜초(慧超)가 쓴 여행기. 고대 인도의 다섯 나라와 인근의 여러 나라를 순례하고 당나라에 돌아와서 그 행적을 적은 글이다. 1908년 프랑스의 학자 펠리오(Pelliot, P.)가 간쑤 성(甘肅省) 둔황(敦煌)에서 발견하였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권 1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