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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悲歌)」와 「내 사랑 망초여」
내가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을까. 내 나이가 공식적으로 노인(老人)이라고 말하는 65세가 되었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65세가 되었고, 이제 어디를 가든 어르신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도무지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거울을 보고 있으면 나는 분명 노인인 것이 맞다. 희끗희끗하다 못해 이제 회색으로 변해 버린 머리칼, 주름진 얼굴, 거칠고 메마른 손. 어디 외모뿐인가, 눈은 침침하고 무릎은 시큰거리고 걸음걸이는 위태롭고, 인지능력도 판단력도 사고능력도 떨어진지 오래이다.
이렇게 신체적으로는 분명히 늙은 것이 맞다. 그런데 왜 마음은 전혀 늙지않는 것일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마치 나는 소년인데 겉모습만 노인의 탈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마 이런 기분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들 한다. 마음은 늙지 않는데 몸만 늙는 것 같다고. 그런데 나는 그런 느낌이 유난히 강한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어려서부터 일기를 써왔고, 늘 지난날을 그리며 사는 버릇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특히 이번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내가 몇 달 전부터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고, 내가 적었던 일기와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다 보니 내가 마치 과거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한동안 그 시절 그대로의 마음으로 돌아가 살고 온 느낌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도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여도 나는 이미 늙은 것이 사실이고, 이렇게 내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가 마치 가을날 황금빛 낙엽을 떨구고 서 있는 한 그루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내를 따라 한강공원에 가보면 강변으로 넓은 잔디밭도 있고, 갈대숲, 장미꽃밭, 산책로, 운동기구 등도 잘 갖춰져 있고, 카페와 레스토랑도 있었다. 나는 이따금 한강변에 나가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늙으면 마음도 약해지고 눈물도 많아지고 공연히 감성적이 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물론 아픈 동생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강변에 홀로 앉아있으면 내가 살아온 날들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내가 많이 늙었다는 사실을 느끼는 날들이 많았다. 강변에는 꽃들이 피고, 강물이 흘러가고, 많은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서로 손을 잡고 거닐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때 더 외로웠다. 완전한 허무와 고독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상한 것은, 내가 아무리 집을 사고, 집을 짓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고, 아무리 재산을 많이 가져도 가슴 한 구석이 비어 있는 것 같은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마치 내가 가을날의 들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갈대가 서걱이는 빈 들판, 추수가 끝난 들에는 찬 서리가 내리고, 저녁 하늘은 멀어져 가고, 희미한 불빛들이 반짝이는 언덕너머로 새들이 날아가는 들녘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사실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났고, 아이들도 잘 자라서 사회인이 되어 제 몫을 다하고 있으며, 이제 시간적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렇게 갈수록 외롭게 느껴지는 것일까, 경제적 풍요나 아이들의 눈부신 성취로도, 레스토랑의 화려한 식탁에서의 만찬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고독이 있는 것 같았다 내 가슴에는.
내 가슴에는 1983년 4월 30일 저녁, 저 붉게 타는 노을 속으로 홀연히 떠나가신 어머니의 목숨이 찬 재가 되어 남아 있었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비행기를 타고 남프랑스의 성벽을 거닐고, 스위스의 기차를 타고 꽃밭을 다녀와도 나는 여전히 슬프고 외로웠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풍요가 왠지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나 혼자 누려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추운 겨울날 법원 구내식당에 가서 밥 한 그릇을 먹다가도 지난날 내 불쌍한 어머니의 남루한 모습과, 영등포 어느학원 급사시절의 그 시커멓고 파리한 소년이 생각나서 목이 메었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 혼자 무엇인가 따뜻한 것을 먹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 혼자서는 후줄근한 점퍼를 걸치고 내 집에 가서 쓰레기를 분리하다가 근처 식당으로 가서 아무것도 아닌 밥으로 한 끼를 먹어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와 불쌍한 어머니와 아픈 동생과 누나들, 아직도 힘들게 살고 있는 친구들을 생각할 때면, 그들에게만은 최고의 밥상 앞에 앉혀놓고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결코 사치스러운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나는 지금도 내 호주머니에 별로 돈을 넣고 다니지 않는다. 돈이 있어도 언제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 채 몇 개월이 지나도록 잊고 산다. 내가 돈을 쓰는 것을 몰라서도 아니고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쓰는 일 자체를 잊어버린 지 오래인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내가 먹고 입고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고 할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나고, 나는 마치 어머니께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내가 59세에 돌아가신 어머니보다 지금 더 오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어떤 때는 죄스럽기도 하였다. 그 분이 못 드신 음식을 내가 먹고, 그 분이 누리지 못한 삶을 내가 산다는 것마저도 늘 죄스러웠다. 우리 가정이 편안하고, 우리 가족이 행복할수록 나는 과거 속의 내가 생각나고, 어머니가 생각나고, 내 동생이 생각나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소년이 아니다. 당산동 로터리 공장의 기름소년도 아니고, 비오는 날 학원벽보를 붙이고 다니던 소년도 아니다. 이제는 머리카락이 갈대처럼 희끗희끗하고, 걸음걸이는 느리고, 무릎이 시린 노인(老人)이 되고 말았다. 내가 품어 안고 기르던 귀여운 딸들이 이제는 보호자가 되어 나를 보살피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아직 소년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아이들이 내게 부르는 ‘아빠’ 소리가 아직도 낯설다. 작은 아이의 휴대폰에 ‘아버지’라고 적어놓은 글자가 내 것 같지가 않다. 도대체 무슨 조화인가.
1983년 봄에서 끝나버린 나의 인생. 눈은 침침하고, 언제나 젖어 있고, 가슴은 휭하니 빈 것 같고, 이제는 톡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처럼 눈물샘은 가득 고였다.
나는 그동안 집을 사서 수리하고 신축하고, 이를 관리하면서 또 세월이 흘렀다. 나는 마치 부동산에 걸신들린 사람처럼 집을 사는데 열중하였다. 왜 그랬을까. 평생 어떠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속이 허전하고 허망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부동산에 몰두했다. 어떻게든 집을 사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고향을 떠난 후로 내 집을 갖는 것이 너무나도 간절한 소원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또한 어머니를 참혹하게 잃은 이후 나는 그 분을 떠나보낸 텅 빈 가슴을 집으로 채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집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가난에서 벗어나 풍족하게 살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끝도 없이 집 욕심을 부린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아무리 집 욕심을 부려도 내 가슴 속은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내 가슴 속에는 집으로는 채울 수 없는 어떤 커다란 공간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무엇으로 채울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잃어버린 고향, 이제는 내 가슴속에서조차 재가 되고만 어머니의 슬픈 목숨, 지나간 소년시절의 꿈과 사랑, 망각 속에 묻혀버린 흘러간 세월,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이제 나도 늙었다. 저녁 해는 어느새 기울고, 붉게 물든 하늘은 작별의 손을 흔드는 것 같다. 늙는다는 것,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인생의 가을이 왔으니 이제 떠날 채비를 하라는 것은 아닐까, 저녁놀이 붉게 타오르고 있으니 이제 곧 어둠이 내릴 것이라는 슬픈 신호인가.
내가 좋아하는 가곡 비가(悲歌)의 선율이 흐른다. 테너 엄정행이 부르는 저 노래는 늙어버린 나의 인생을 공감해주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아, 찬란한 저 태양이 숨져버려 어두운 뒤에
불타는 황금빛 노을 멀리 사라진 뒤에
내 젊은 내 노래는 찾을 길 없는데
들에는 슬피 우는 벌레 소리뿐이어라.
별같이 빛나던 소망 아침이슬 되었도다.
(신동춘시 김연준곡-비가)
우리가 늙는다는 것은, 찬란한 태양도 숨져버리고 불타는 황금빛 노을마저 사라진다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내 젊은 시절에 부르던 내 노래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나의 인생은 1983년 봄에 끝나 버렸다. 그 후의 삶은 무엇이었던가. 그 이후의 내 인생은 내가 아니었다. 허깨비를 뒤집어쓰고 산 껍질뿐인 인생이었다. 나는 그 시절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날 이후 내게 있어 산다는 것은 탈바가지를 쓰고 한바탕 노는 마당놀이처럼 서툰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약한 자신을 감추고 가장 강한 자처럼 연극을 하고, 위선의 탈을 쓴 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허망한 비틀거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날마다 한 발자국씩 당신께서는 내게서 멀어져 갔고, 나는 그 발꿈치를 쓸어안으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나뒹굴고 그러다가 코가 깨지곤 했다(1983.12.31.).
그렇게 허깨비의 탈을 쓰고 비틀거리며 살아온 인생의 끝에서 나는 내 노래를 찾을 수 없었고, 들에는 슬피 우는 벌레 소리뿐이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리하여 별같이 빛나던 나의 소망도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남은 것은 저 회색빛 갈대뿐이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저 갈대는 내 머리칼처럼 가을빛으로 물든 채 조그만 바람결에도 흔들리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늙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운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갈대)
문득 내가 즐겨 쓰는 말이 생각난다. “부둥켜안다” 라는 말이다. 누구든 부둥켜안고 싶다. 슬플 때나 추울 때나 외로울 때나. 그냥 안는 게 아니다. 꼭 부둥켜안아야 한다. 오, 나는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순간마다 그 말이 떠올랐던가.
보고 싶은 이 마음
소리 없는 통곡이여
널 안고 싶은 죄
난 어찌하라고
난 어찌하라고
(이정님시 김성희곡-내 사랑 망초여)
어머니, 부둥켜안고 싶어요. 나를 안아주세요. 아내여, 얘들아 아이들아, 내 가엾은 동생아, 친구들아, 우리 한번 안아보자. 부둥켜 안아보자.
아, 나는 이 춥고 외로운 날에 혼자이고 싶지 않다. 갈대가 울고 있는 이 바람 부는 숲가에서 누구든 나를 안아다오. 저 길가에 핀 꽃 망초처럼 나도 누군가를 부둥켜안고 싶다. 그것도 죄가 되는 것일까.
(2021년 가을에)
첫댓글
그러니요
이렇게 자신의 인생 역사를 그려 내신다는 것에
오늘은 성공이란 인새의 한 페이지지요
이젠 그 세월이 그렇게 빨리 갑니다
진정 사랑하는 가족이 가족들을 그리신
특히 나이를 먹으니 엄마생각도 간절함이 동병상련입니다
작가님
인생성공의 오늘에 축하를 드립니다
작가님
65세 아직 청춘이십니다
양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