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초 사흗날 천사께서 고판례를 맞아 결혼하실 새 수부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만나려고 십오년 동안 정력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 대업을 네게 맡기리라" 하시고 인하여 수부를 옆에 끼시고 붉은 책과 누른 책 각 한권씩을 앞으로부터 번갈아 깔며 그 책을 밟으며 방에서 마당에 까지 나가사 남쪽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네 번 절하라 하시고 다시 그 책을 번갈아 깔며 밟아서 방으로 들어 오시니라.
인하여 수부에게 모든 일을 가르치시며 문명을 쓰실 때에도 반드시 수부의 손에 붓을 쥐게 하시고 천사께서 등 뒤에 겹쳐 앉으사 수부의 손목을 붙들어 쓰이시니라.
또 경석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접주가 되라. 나는 접사가 되리라. 이 뒤로는 출입을 폐하고 집을 지키라 이것은 자옥도수(自獄度數)니라 하시니라.
이달에 구릿골에 이르사 공사를 보시고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머리를 깎으리니 너도 또한 머리를 깎으라. 형렬이 마음으로는 싫어하나 억지로 대답하였더니 또 갑칠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머리를 깎으리니 내일 대원사에 가서 금곡 주지를 불러 오라 하시거늘 형렬이 근심하였더니 그 뒤에 다시 말씀치 아니하시니라.
공우가 처음으로 천사를 뫼시고 구릿골로 올 때 한 대장이 갑주를 갖추고 칼을 집고 제비산 중턱에 서 있는 것이 보이더라. 이날 밤에 김준상의 집에 머무를 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헌병이 당신을 잡으려고 이 밤에 구릿골로 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아뢰니 천사 들으시고 태연히 계시다가 저녁에 형렬의 집으로 가시니라. 공우와 여러 종도들이 준상의 집에서 잘새 다른 사람들은 깊이 잠들었으나 공우는 헌병이 올까 두려워서 뒷산에 올라 망을 보고 있더니 야반에 원평쪽으로부터 등촉 가진 사람 오륙인이 구릿골로 향하고 오다가 정문에 이르러 불이 꺼지므로 크게 두려워하여 준상의 방에 들어와 여러 종도들을 깨워서 같이 도피하려 하였으나 깊이 든 잠이 쉽게 깨어지지 않으므로 시간은 한식경이나 지났으되 아무 기척이 없거늘 이에 안심하고 잤더니 익일에 천사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 대장은 도적을 잘 지켜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박공우가 비밀히 일진회 사무소에 들어갔더니 천사께서 문득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는 자는 그 몸이 찢어지고 한 어깨에 두 짐을 지면 더수기가 찢어지나니 주의하라 하시거늘 공우가 놀라서 다시는 비밀한 일을 하지 못하고 일진회 관계도 아주 끊으니라.
공우 천사를 따른 뒤로 여러 제자들이 모두 보발하였으므로 삭발한 자신이 한물에 싸이지 못함을 불안하게 생각하여 머리를 길러 수삭후에 솔잎 상투에 갓 망건을 쓰고 다니더니 하루는 금구를 지나다가 전일 일진회 동지 십여인을 만남에 일진회원들이 공우의 장발하였음을 조소하며 붙들고 늑삭(勒削)하여 버린지라. 공우 집에 돌아와서 두어달 동안 출입을 폐하고 다시 머리를 기르더니 뜻밖에 천사께서 이르사 공우에게 수삭동안 나오지 아니한 이유를 물으시거늘 공우 황공하여 일진회원들에게 늑삭 당한 경과를 아뢰고 다시 삭발한 모습으로 선생을 뵈옵기가 황송하므로 집에 있으면서 머리를 다시 길러 관건을 차린 뒤에 선생께 뵈이려 한다는 뜻을 아뢰니 천사 가라사대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니 머리에 무슨 관계가 있으리요 하시고 공우를 데리고 구릿골로 오시니라.
하루는 형렬에게 옛글을 외워주시며 잘 지키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부용병지요 재숭례이중록 예숭즉의사지 녹중즉지사경사 고녹현불애재 상공불유시 즉사졸병 적국삭
(夫用兵之要 在崇禮而重祿 禮崇卽義士至 祿重卽志士經死 故綠賢不愛財 賞功不谕時 卽士卒竝敵國削)
또 형렬에게 옛글을 외워 주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처세유위귀 강강시화기 발언상욕눌 임사당여치 급지상사완 안시불망위 일생종차계 진개호남아
處世柔爲貴 剛强是禍基 發言常欲訥 臨事當如癡 急地常思緩 安時不忘危 一生從此計 眞個好男兒
또 형렬에게 옛글을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명월천강심공조 장풍팔우기동구 ( 明月千江心共照 長風八隅氣同驅
또 가라사대 너는 좌불이 되어 처소를 잘 지키라 나는 유불이 되리라 하시니라.
자료출처 : 대순전경 제삼장 문도의 추종과 훈회 3:31~ 3:40
첫댓글 마음만 본다는 증상상제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