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투유유(85·여) 중의학연구원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말라리아 특효약 아르테미시닌을 이렇게 표현했다. 6일 노벨위원회에 보낸 수상 소감에서다. 그는 또 “이번 수상은 내 개인의 영예일 뿐 아니라 중국 과학계, 나아가 중국 전체의 영예”라고 말했다.
투의 수상에 13억 중국인이 환호하고 있다. 국경절(건국기념일) 연휴 중이던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급히 축전을 보냈고 류옌둥(劉延東)부총리는 고위관리를 투의 자택으로 보내 기쁨을 함께 나눴다. 대륙 전체가 '중국의 굴기를 상징하는 경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투 교수의 수상이 중국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건 크게 두가지 의미에서다. 첫째는 중국에서 나고 자란 투 교수가 중국인에게 배우고 중국 땅에서 연구한 끝에 이뤄낸 성과란 점이다. 투 교수는 스스로 "나는 일개 보통학자일 뿐"이라고 밝혔듯 해외 유학 경력도 박사학위도 없는 ‘순수 토종’ 연구자다. 여태까지 해외 거주 화교나 서방 국가로 귀화한 중국계 과학자들이 물리·화학상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이는 서양인 교수에게 배웠거나 서구의 대학·연구소에서 이룬 업적의 결과물이었다. 중국인들은 100% 중국의 힘으로만 일궈낸 투 교수의 노벨상을 더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또 한가지 의미는 투교수의 업적이 중국 전통의약이란 데 있다. 그가 말라리아 특효약을 개발해 낸 원천은 4세기 동진(東晉)때의 의학서 『주후비급방』과 중국 대륙에 지천으로 널린 야생쑥이었다. 중국 고유의 것에 대한 자부심이 유독 강한 중국인들은 지금도 중의학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따라서 투 교수의 수상은 근대 이후 서양 문명의 확장에 한 때 고초를 겪었던 중국인의 자부심을 묘하게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분위기는 중국의 굴기와도 맞물려 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이후 서구의 제도ㆍ시스템이 우월하지 않다고 부쩍 강조하는 정치적 기류와도 무관치않다. “나라마다 역사적 과정과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 사람은 다름아닌 시 주석이었다. 지난달 25일 미ㆍ중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인권 문제와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반론이었다. 중국에는 중국 고유의 길이 있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는 이런 내용의 사설이나 칼럼이 실리는 빈도가 늘었다.
투 교수의 수상은 중국과 노벨위원회의 불편했던 관계를 푸는 계기로도 작용할 전망이다. 2000년 중국계 프랑스 국적의 반체제 작가 가오싱젠(高行健)에 대한 노벨 문학상 수여는 중국과 노벨 위원회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악화되는 계기가 됐다. 2010년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인 류샤오보(劉曉波)에게 노벨 평화상이 수여되자 중국은 ‘적대행위’로 규정했고 노르웨이 정부에 대해서는 연어수입 제한 등 무역 보복을 가하기도 했다.
한편 투 교수의 수상으로 국내 한의학계도 고무된 분위기다. 대한한의사협회는 6일 성명서에서 “이번 중국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업적은 말라리아 치료에 중의학을 이용한 것이며 이는 헌법에서 중의학을 육성·발전시키라는 조항이 있을 정도로 중의학에 애정을 쏟은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협회는 이어 “중의사들이 엑스레이·초음파 등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통합적인 의학 발전에 앞장선 게 이번 수상으로 나타난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세계 의학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한의학 과학화에 혁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