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당시 중화민국 총통 장개석은 "조선을 되찾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미소(美蘇)가 한반도를 분할할 때도 중국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6.25가 발발하자 가장 먼저 3개 사단 파병을 제안했지만, 미국이 거절했다고 한다. 거절 이유는 알려진 게 없지만, 장개석의 속셈을 미국이 간파한 게 아니었나 개인적으로 추측한다.
1392년 조선조 창건부터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까지 503년 동안 조선조는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 오늘날로 치면 신강위구르나 티베트 정도의 특별 자치주에 가까웠을 것. 중국 정부의 고위 관리나 민간인이 "얼마 전까지 한국은 중국 땅"이란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을 기사를 통해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고, 위에서 언급한 장개석도 그런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러한 중국인들의 공통 인식은 "국공불문(國共不問)"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차이나타운이 중국 턱 밑에 있는 한국에 없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 후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생겼지만, 다른 나라 차이나타운과 달리 현지 지방자치단체가 화교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세계 유일의 "관제 차이나타운"이란 말도 있다. 500년 동안 한반도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중국의 파워를, 정치적 이유로 일제시대 일본이 강제적으로 무력화했고, 6.25 때의 중공군에 대한 적개심과 그 후 박정희 시대의 노골적인 차별과 탄압에 견디지 못한 잔존 화교들이 한국을 떠났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소공동 북창동 일대에 "진짜 중국집"들이 많았다. 외국의 차이나타운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규모였지만 그런대로 띄엄띄엄 화교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교묘한 차별에 견디지 못하고 외국으로 떠났다. 미국 LA에 가면 소공동 북창동 일대에서 "중국집" 운영했던 화교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1983년 중국 여객기가 춘천에 불시착했을 때, 인민복에 모택동모를 일률적으로 걸친 '중공 사람'들의 모습을 처음 접한 한국 사람들은 외계인으로 비칠 정도로 생소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 후,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인민복과 모택동모를 쓰지 않은, 우리와 구분이 안 되는 모습의 "중국인"들이 소리 없이 우리 사회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중국 국적 조선족을 포함해서 100만 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고, 대림동 구로동 일대는 간자체로 쓴 간판이 한글 간판을 압도하고 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
이번 계엄 사태 이전까지 "재한 중국인"이 꽤 많다는 점과 이들은 오로지 돈벌이에만 전념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부정선거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고, 여야 막론하고 정치판에 중국세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고, 시위 현장에 중국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심지어 중국인이 연단에 올라 당당하게 중국인임을 밝히고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불법적인 정치 행위"를 감행(?)했다. 나라 밖에서 "한국은 얼마 전까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인들에게 상호주의를 외면한 채 투표권을 부여하고, 간첩질을 해도 잡아넣을 수 있는 법을 고의로 만들지 않는, 모화(慕華)로 추정되는 세력이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다.
조선조 500년 동안 중국은 조선의 상국(上國) 이었다. 국명을 중국(명)의 결재를 받아 "조선(朝鮮)"으로 정했고 왕이 바뀌면 "보고"해야 했다. 황제란 말을 쓸 수 없어 왕(王)으로 해야 했고, 중국을 대국(大國)으로, 조선은 소국으로 "알아서 기었다". 독립국이 아니기 때문에 연호(年號)도 중국 것을 사용해야 했고, 외국과 외교관계를 개설할 때도 모든 과정을 중국에 보고하고 지침을 받았다.
1895년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하자, "독립"을 선언한 조선이 처음으로 황제 칭호와 독자적인 연호(光武)를 갖게 된다. 얼마 지탱하지 못하고 일본에 먹혀 아예 주권을 빼앗기고 만다. 1945년 당시 중국(국민당)이 "자신들이 지배하던 조선을 일본에 빼앗겼지만, 50년 후 일본이 자신들에게 항복(1945년) 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조선의 소유권이 복원되었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장개석이 미국과 소련에 눌려 조선을 되찾지 못했지만, 장개석을 대신한 "중공"이 이제 우리가 그것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실지회복"에 나선 것 같다.
국내 정치판에 "모화파(慕華派)"가 여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서식(棲息)" 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눈치챘다".
이성계가 조선 창건 당시 기득세력이던 친몽파 제거에 명나라 힘을 빌려 성공했고, 명청 교대기에는 청나라에 붙어 득세하고, 조선 말기에는 일본에 붙어 득세하고, 해방 후엔 미국에 붙어 득세하고... 이젠 중국에 붙는다(?)
센 놈에게 붙어 득세하려는 DNA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전혀 없다고 볼 순 없다. 요는 중국이 미국을 이길만큼 힘이 세냐 하는 것. 더 센 놈에게 붙어 독자적인 힘을 더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아직 중국은 아닌 것 같다. 중국이 미국을 압도할 힘을 갖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
註> 모화(慕華) : 조선 시대 중국(명, 청)에 대한 사대주의에서 파생된, 중국의 문물을 맹신적으로 흠모하던 풍조
국공불문(國共不問) : 중국 국민당이나 공산당 모두 '조선'에 대한 역사적 인식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