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모임의 유익함
히브리서 10:24-25
상동(尙洞)교회
1931. 5. 17.
盖人以集團爲進步, 一人不能獨當者, 衆人爲之, 或成尨大之國, 或成富强之族, 或成有力之會社, 皆集團之所爲也. 或成巴拿馬運河, 或成秦阿房宮, 亦集團之所爲也. 故團體卽人類之進步也明矣. 不知此利則不能集團, 不能集團則個人雖或獨立, 團體或族屬之稱隨以破滅矣. 今日朝鮮人之最弱點, 卽不能集團是也. 吾朝鮮族之將來未知至如何狀勢也. 至於敎會則主信仰皆個人主義也. 安在其集團之必要也? 然不集會則亦不能進步故也. 初代敎會有四個規則, 恒受使徒之訓一也, 信者互相交接二也, 互相擘餠三也, 專務祈禱四也, 使徒二章四二節. 儒敎以獨善爲主, 而吾敎會則以兼善爲主也. 兼善必集團而後爲之也. 今集會特有二種事業, 一 相顧, 二 相勸也. ◇相顧者何也? 有淚同悲, 有喜同樂, 使之激發愛心, 鼓勵善行也. 某兄妹有善行, 非但其人之榮也, 全敎會共爲之榮耀. 平壤白善行氏寄附于光成又建公會堂, 平壤敎會共爲之受榮, 此白女史之行善, 敎友共爲之激發也. 非白氏之自發也, 某敎友不能行善, 又不能禮拜, 見某友之熱心禮拜, 同發熱心, 一炭發大衆炭不能不受火. 保羅曰熱心奉主 롬十二章十一節. 是也. 敎友獻時間捐補供事傳道, 某友雖不欲從事, 不可不被動, 彼戰陣之事, 雖不欲奮擊, 一聞鼓聲, 不能不振作向敵勇奮也. 曾聞玄揗氏語咸鏡某敎會敎友冷心不集, 敎堂塵坌坮落, 敎友皆飮酒狂妄, 幸幼年校生徒數名, 參復興會痛哭自服, 閉會後彼兒童集會于塵坌之堂而祈禱, 一日二日痛哭祈禱, 哭聲聞于隣舍, 前日冷心之敎友往觀之被慰, 更會祈禱興會云. 誠哉,彼兒童之激發也! 不會集不能激發也. 蓬生麻中不扶自直亦此理也, 主亦禮拜自己規例也. 況吾人不禮拜以信乎? ◇相勸者何也? 悔改及信仰皆在世之事也, 非死後之事也. 僉位不見紅袍之富者乎? 入陰府之後雖欲悔改不可得矣. 不可不相勸, 노아之一百二十歲近矣. 此時노아之勸人, 果何等盡切, 人若不豫備則恐懼之日至矣. 紅袍富者雖發悔改之言, 無可奈何, 余每過金宜植之藥房, 見姜生員勸之亦不聽, 姜生員年今八十何所望而不信也? 答曰尙遠矣. 實未知其年之不長也. 病者不欲飮藥, 醫勸之使飮, 人知禮拜持生多矣而實不知也. 於主日休業故人易放蕩而沈醉, 勸之使至敎堂, 人接主如枝接樹, 枝離樹則無津液而枯死, 欲得靈液者勸之使接主也. 人運動肉體從事事業可維持健康也, 故信者常常傳道于人, 說敎于人, 使靈魂活潑, 如風吹樹而後, 可征服異國, 不使異權更發矣. 人不讀聖經, 則靈饑以無能力, 不能祈禱, 不能禮拜, 不能行善, 如此則易爲死信, 故常常勸讀聖書, 使之廣識聖書, 如食滋養而滋長, 此集會之益也. 故敎友集會而後有進步. ◇ 或集會而不能如法, 則反有損害矣. 何者集會不可? 專主己見而俾生風波也. 相顧相勸卽其法也, 不欲相顧, 不欲相勸而主自己之意見, 壓倒衆論則集會反有損害也. 驕心或利己皆其害也. 集會時當思主之寶血, 容人之罪而爲信, 慰愛爲主, 如此則黨內和氣瀜瀜, 春風滿室矣. 今朝鮮之內敎人, 互相仇視, 互相爭訟, 物論紛紛, 此何故也? 不遵法而會故也. 常常虛己如主釘十架, 釘其血氣, 釘其情慾, 思他人反勝於己, 此主之心法也. 保羅曰工此心者, 勿以紛爭及虛榮而爲之也. 虛榮實信之敵也. 虛榮亡身亡家亡國矣. 又亡敎會也. 保羅欲得敎人而爲無律之人, 而得無律之人爲異邦之人, 而得異邦之人云. 宣敎師中有皮遵奇氏, 衣朝鮮之衣, 食朝鮮之食, 常保健康云, 此眞宣敎師也.
대체로 사람은 집단을 만들어 진보를 합니다. 한 사람이 홀로 당할 수 없는 것을 여러 사람이 하게 되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방대한 나라를 만들 수도 있고, 부강한 겨레를 만들 수도 있으며, 유력한 회사도 만들게 되니 이게 다 집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들입니다.
파나마 운하를 만들고, 진시황의 아방궁을 만든 것도 역시 집단의 소위입니다. 그러므로 단체가 인류의 진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은 집단의 이익을 몰라서 집단을 이루지 못한다면, 개인이 비록 간혹 독립하는 일이 있어도 단체라든지 족속의 칭호는 파멸로 따라가게 됩니다.
오늘 날 조선 사람에게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집단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조선족의 장래는 어떠한 모습으로 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이르러서도 주님에 대한 신앙이 다 개인주의입니다.
집단의 필요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지만 집회를 하지 않으면 역시 진보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기의 교회에는 네 개의 규칙이 있었는데 항상 사도(使徒)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그 하나이고, 교우들이 서로 교제하는 것이 둘째이고, 서로 떡을 나누는 것이 셋째이며, 기도에 전혀 힘쓰는 것이 네 번째였습니다(사도행전 2:42).
유교는 혼자만 잘하려는 독선(獨善)을 위주로 하지만, 교회는 모두에게 잘하려고 하는 겸선(兼善)을 위주로 하여 반드시 집단을 이루어 일을 합니다. 집회에는 특별히 두 개의 사업이 있으니 첫째는 서로 돌보는 것이고, 둘째는 서로 권하는 것입니다.
서로 돌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물 흘릴 때는 같이 슬퍼해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즐거워해 주며, 사랑하는 마음은 격려하여 발전하게 하고, 선한 행동은 고무하여 장려하는 것입니다.
어느 남매가 선행을 하여 사람들의 영광일 뿐 아니라 온 교회가 영광스럽고 빛났습니다.
평양의 백선행(白善行)씨가 광성학교에 기부하고 또 공회당도 세우니 평양교회가 다 그 때문에 영광스러움을 받았습니다. 이 백여사(白女史)의 선행은 교우들이 함께 그를 위해 격려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어느 교우가 선한 일도 행하지 않고 또 예배도 못 하다가 다른 교우가 열심히 예배하는 것을 보고 함께 열심히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 개의 숯덩이에 불이 붙으면 여러 개의 숯덩이가 그 불을 받아 타게 됩니다. 바울이 이르기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로마서 12:11). 교우가 시간을 바치어 연보(捐補)도 하고 전도하는 일에 종사하게 되면 다른 교우가 비록 그 일을 따르지 않으려고 하나 불가불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전쟁하는 일을 볼 때 처음에는 비록 분발하여 공격하지 않으려고 하나 한번 공격하라는 북소리를 듣게 되면 정신을 진작시켜 앞으로 달려 나가며 용감하게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일찍이 현순(玄揗)씨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함경도의 어느 교회에 교우들의 마음이 식어 모이지 않게 되니 교회당에는 티끌만 쌓이고 강대(講坮)는 헐었을 뿐 아니라 교우들이 모두 술을 마시고 미친 것처럼 망령된 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어린 교생도(校生徒) 두어 명이 부흥회에 참가하여 통곡하며 자복하였고, 부흥회가 끝난 뒤에 그 아동들이 먼지 쌓인 교회당에 들어와 기도하였는데 하루 이틀 통곡하며 기도하니 그 통곡 소리가 이웃집까지 들렸답니다. 그리하여 지난 날 신앙심이 식었던 교우들이 와서 보고 위로를 받아 다시 모여 기도하게 됨으로써 교회가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진실하기도 하여라. 아동들이 교우들의 마음을 격려 발전시킨 것이여! 모여서 집회하지 않았다면 격려 발전시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쑥대가 삼밭에 나면 누가 곧게 붙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곧게 자라는 것이 역시 이러한 이치 때문입니다. 주님도 자기의 규례로써 예배를 하였는데, 하물며 우리 인생들이 예배를 하지 않고 신앙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서로 권장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회개하는 일이나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다 이 세상에 있을 때 일이고 죽은 뒤의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홍포를 입은 부자(富者)를 보지 않았습니까? 죽어 음부에 들어간 후에 비록 회개하려고 하였으나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불가불 서로 권장하여야 합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데 일백 이십 년 가까이나 되었습니다. 이 때 노아가 사람들에게 권장한 말이 과연 얼마나 절실하였습니까? 사람들이 만일 미리 예비하지 않으면 두려운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색 옷을 입었던 부자가 아무리 회개하는 말을 하여도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늘 김의식(金宜植)의 약방에 들러 ‘강 생원(姜生員)을 보고 신앙을 권유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강 생원은 지금 나이 팔십 살이나 되었는데 무슨 소망이 있어 믿지 않느냐?’고 하면 답하기를 ‘아직 멀었다’고 합니다. 실로 그의 살날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모릅니다. 병든 자 약을 마시려고 하지 않으나 의원이 권하여 먹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배가 삶을 오래 유지해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데 실로 알지 못합니다. 주일은 휴업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방탕하여 술에 취하기 쉽습니다. 그들을 권유하여 교회에 오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주님을 접하게 됨은 마치 나무 가지가 나무에 이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진액이 없어 말라죽습니다. 영혼의 진액을 얻기 위하여서는 주님을 접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육체를 운동시켜 사업에 종사하게 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늘 다른 사람에게 전도를 하고, 설교를 하여 영혼을 활발하게 함으로써 마치 바람이 나무를 불어 흔든 뒤에 이국(異國)을 정복하게 되어, 이국의 권력이 다시는 발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성경>을 읽지 않으면 영혼이 굶주려서 능력이 없으므로 기도할 수 없으며, 예배할 수 없으며, 선한 일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된즉 죽은 신앙이 되기 쉽습니다. 늘 <성경>을 읽도록 권장하여 그로 하여금 <성경>을 널리 알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는 마치 자양분을 먹음으로써 자양분이 많아지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집회의 이익입니다. 교우들에게는 집회를 한 뒤에 진보가 있습니다.
간혹 집회를 하는데 법칙에 맞지 않으면 도리어 손해를 봅니다. 어떤 집회가 옳지 못합니까? 오로지 자기의 의견만 주장하여 풍파를 일으키는 집회입니다. 서로 돌보고 서로 권장하는 것이 바로 집회에 알맞은 법칙입니다. 서로 돌보지 않고 서로 권유하지 않으며 자기 의견만 주장하여, 여러 사람의 의논인 중론(衆論)을 압도하게 되면 그 집회는 도리어 손해가 됩니다. 교만한 마음이나 혹은 이기심은 다 해가 됩니다. 집회할 때는 마땅히 주님의 보혈을 생각하여 남의 죄를 용납해 줌으로써 믿게 되고, 위로와 사랑이 주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집회 장소에 화기가 넘쳐흘러서 봄바람 같은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조선의 교인들은 서로 원수처럼 바라보고, 서로 다투어 송사를 하여, 여론이 분분하고 있으니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법을 따르지 않고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늘 자기를 비우기를 마치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듯 해야 합니다. 곧 혈기를 못으로 박고 정욕을 못으로 박아서 타인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 쓰는 심법(心法)입니다.
바울이 이르기를 ‘마음을 공부하는 자는 분쟁이나 허영으로 하지말라’고 하였습니다. 허영은 실로 신앙의 적입니다. 허영은 몸을 망치고 집을 망치고, 나라를 망칩니다. 또한 교회를 망칩니다. 바울은 교인을 얻기 위하여 ‘율법 없는 자가 되어 율법 없는 자를얻었고, 이방인이 되어 이방인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선교사 중에 피터스[皮道秀] 목사님이 있는데 그는 조선의 옷을 입고 조선의 밥을 먹으며 늘 건강을 보전한다고 합니다. 이런 이가 진정한 선교사입니다.
* 백선행 [白善行, 1848 ~ 1933] : 여성 사회사업가로 16세에 남편과 사별한 후 평생 수절하며 근검절약으로 큰 재산을 모았다. 평양에 3층 공회당을 건립하고 평양 숭현학교(崇賢學校)에 2만 6000평의 토지를 기부하는 등 다양한 기부 활동을 했다. 당시 총독부에서 주는 표창은 거절하였다.
* 현순(玄楯, 1880년 2월 28일 ~ 1968년 7월 11일)은 감리교회의 목사이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한 독립운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