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거든
크리스티나 로제티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마셔요.
머리맡에 장미 심어 꽃 피우지 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러스도* 심지 말아요.
비를 맞고 이슬에 담뿍 젖어서
다만 푸른 풀만이 자라게 하셔요.
그리고 그대가 원한다면 나를 생각해줘요.
아니, 잊으시려면 잊어주셔요.
나는 나무 그늘을 보지 않겠고
비 내리는 것도 느끼지 않겠어요.
나이팅게일 새의 구슬픈 울음 소리도
나는 듣지 않으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또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 누워 있어 꿈을 꾸면서
나는 그대를 생각하고 있으렵니다.
아니, 어쩌면 잊을지도 모릅니다.
*사이프러스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로서 그 나무가지는 비탄과 상장(喪章) 그리고
죽음을 상징한다.
―김희보 편저『世界의 名詩』(종로서적, 1987)
-------------------------------
이 시의 번역본은 <김희보 편저 세계의 명시>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기표 문학인 시는 기의 문학인 소설과 달리 미세한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언젠가 티브에서 보았더니 독일로 이민을 가 25년을 살면서 경제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향수만은 어쩔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향수 중에 하나가 속을 까집어놓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 하나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때문이냐고 했더니 그건 '말'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은 다 배워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지만 대화중에 나타나는 미묘의 얼굴의 표정이나 미세한 감정의 차이를 교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상거래나 일상의 대화와는 다른 정서적 차이가 다르기 때문에 민족정서에서 오는 미세한 감성의 언어는 다 표현할 수도 없고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진정한 속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김희보 편저 세계의 명시>에 나오는 세계 각국의 시를 보면서 번역되어 있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의 "보내 드리오리다,"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를 번역해 놓았을 때 우리민족 고유의 이별과 정서의 한을 그들이 얼마나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뼈 속까지 한국사람이 아니면 그 시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없을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영시나 외국시 역시 번역을 아무리 잘 해 놓아도 그들이 아는 감정과 우리가 받아들이는 감정의 차이가 있지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책의 뒤쪽 원시에 대한 해설 편에 보면은 이 시의 제목이 노래(song)로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내용이 같아 거의 비슷하지만 번역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니 위의 거와 비교를 해보시고 미세한 기표의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시를 보는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송 - 크리스티나 로제티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사람이여
날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
내 머리맡에 장미화도 심지 마시고
그늘진 삼나무도 심지 마세요
내 위에 푸른 잔디 퍼지게 하여
비와 이슬을 맞고 젖게 해 주세요
그리고 마음 내키심 따라
기억해 주셔도 좋고, 잊으셔도 좋습니다
나는 사물의 그늘도 보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겠지요
슬픔에 잠긴 듯 계속해서 울고 있는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겠지요
날이 새거나 날이 저무는 일 없는
희미한 어둠 속에서 꿈꾸며
아마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할 거예요
아니, 어쩌면 당신을 잊을지도 모릅니다
song / Christ G, Rosstti
When I am dean, my dearest,
Sing no sad songs for me;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
Be the green grass above me
Witm showers and dewdrops wet;
And if thou wilt, forgrt.
I shall not see the shadows,
I shall not feel the tain;
I shall not hear the nightingale
Sing on as if in pain;
A nd dreaming through the twilight
T hat doth not rise nor set,
Haply I may remember,
And haply may forget
로제티는 런던에서 병약한 몸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약혼을 두 번 했으나 종교적인 차이로 결혼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어머니를 돌보면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앵글로 가톨릭의 열렬한 신도로서 평생을 종교적 경건과 헌신 속에 살았으며 깊은 감정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여 부라우닝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여류시인으로 꼽히고 있다고 합니다.
이 시는 이미 무덤 속에 들어갔다고 가정한 화자가 세상에 남겨진 연인에게 부르는 노래로 그대가 원한다면 생각해주고 잊고 싶으면 잊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그대를 생각하지만 어쩌면 잊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사랑에 대한 신뢰가 없고 믿음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다른 세상에서 아무리 그리워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일까요. 어쩌면 현실적인 사랑을 하자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희미한 어둠 속에서 꿈꾸며 아마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할 거예요' 하는 것을 보면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도 말고 잊지도 말고 오직 자기만 사랑해달라는 말로도 들립니다. 미덥지 못한 사랑노래입니다. -감상 정호순
영국의 여류시인.
오빠 가브리엘 로제티도 유명한 시인이었다.
따뜻한 감정과 자기 억제적인 사랑의 정신을 언어로 표현한 훌륭한 애정시를 썼다.
일생을 어머니와 함께 독신녀로 보냈으며,
<내가 죽거든>, <기억해주요>, <행자의 행차> 등의 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