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락 시우 여러분 반갑습니다.
대전에서 풍류 가꾸고 있는 공윤환이라고 합니다.
거의 매일 여민락에 들어오면서도 인사한번 못 드렸었는데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지난 18~19일 양일간 진행된 경주에서의 모임에 참석하고 몇가지 느낀 바가 있어서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해서입니다.
처음 강가딘님께서 담소방에 모임을 공지하셨을 때에 개인 일정표 확인하고 바로 참석의사를 밝힐 수 있었던 것은 미리 참석하시기로 한 분들과의 만남에 대한 열망도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이런 모임을 개인적으로 기다려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나이는 그리 많지 않지만 어려서부터의 풍류인연으로 단소는 한 40년 벗 해왔고 대학때부터 경제시조와도 인연이 맺어졌고 석암제 시조와의 인연도 근 20년은 되었습니다.
그동안 반주자로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조계를 접하면서 시조계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바라보며 고민해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정리된 생각 하나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한 바른 생각을 갖은 실력 있는 시조인들이 다시 유유상종하는 일이 작금에 시조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저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 같아서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고 바로 참석의사를 밝힐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전 강습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대전에서 출발하니 경주에 도착이 4시30분. 모임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어서 <금장대>로 향했습니다.
<금장대>는 동국대학교 앞 형산강변에 최근에 복원되었다는 경주8경의 하나로 신라8괴 중 <금장낙안>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날이 추워서인지 그 넓은 주차공간에 달랑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고 좀 썰렁한 분위기로 기대수치가 낮아진 상태로 찬바람 맞으며 5분 걸어서 올라가니...
와우!! 왜 경주8경 중에 하나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경주에 가시면 동틀 무렵이나 해질녘에 꼭 한번 들리시길 강추합니다.
풍취 있는 곳에 갈때는 습관적으로 들고 가는 소금을 꺼내들고 한가락 불려는데 수변정자답게 바람이 어휴...ㅠ 악기 내리고 가만히 생각하니
조금전 올라오는 길에 <경주 석장동 암각화>라고 쓰여있던 곳이 바람이 조금 덜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돌아 내려가보니 예상했던 것처럼 암각화가 그려있는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아늑하기까지 했습니다.
석양이 물든 형산강변을 바라보며 소금으로 수제천 한가락 불어 보았습니다.
철새들 한무리가 황금빛 강물위로 내려앉는 모습보며 신라 8괴 중 하나인 <금장낙안>이란 말도 실감해 보았습니다.
수제천가락 연주하면서는 이곳에 벽화를 그려 넣었을 청동기시대의 한 주술사도 되어보았고 신라의 풍월주도 되어보았습니다.ㅎㅎ
신선놀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서둘러 모임장소인 황남동에 있는 역락재(亦樂齋)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남산달빛님이 운영하시는 서당 겸 한옥펜션으로 남산달빛님은 한학에도 조예가 깊으시고 시조공부도 열심히 하시는 아주 에너지가 충만하신 분이셨습니다.
한 7시쯤 숙소 근처에 있는 비빔밥집으로 이동해서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소화도 시킬 겸해서 한 20분정도 칼바람(올 들어 가장 추워졌다는 그날 밤!!!ㅋ) 맞으며 산책을 했습니다.
경주에서 야경으로 가장 아름답다는 동궁과 월지. 명불허전이라 ... 그 험한 날씨와 수많은 관광객들이 있는데도 악기 들고 오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
구경 온 사람들이 많아서 좀 정신없이 줄지어 한바퀴 도는 와중에도 산책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야경도 볼 수 있으면서 한적한 둔턱이 보여서 우리 일행은 그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건이 좀 심란해도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두고 우리 풍류인들이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올해 전국대회를 두루 석권하신 포항 명창 강가딘님께 우시조 <월정명> 한수 청해 들었습니다.
월지에서의 월정명이라... 더욱 신기하게도 노래가 시작되니 광풍도 잦아들고 주변 관광객들 말소리도 잦아들었다는... 만파식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ㅎ
명창은 명창이시더군요.
입술이 얼어서 말도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옷도 얇게 한복을 입으셔서 추위에 몸도 많이 떨릴텐데...
반주도 없이 어찌 시조를 그리 유장히도 하시는지. 월지의 야경을 보며 들은 강가딘님의 <월정명>. 오래오래 간직하겠습니다.
숙소로 다시 돌아와 늦게 합류하신 분들까지 한 15명정도 둘러앉아 한곡씩 윤창도 하고 감상평도 나누고 호흡법에 대한 연구발표며
우연하게 함께 하셨다는 백강 허화열 선생님의 영제시조에 대한 소개 등등 자연스럽게 시간은 새벽으로 향하고...
출입구쪽을 제외하고는 중앙 대청공간을 중심으로 몇 개 침실이 ㄷ자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우리는 이러한 구조를 “지옥MT구조”라 부른다. 최후의 1인이 잠들때까지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함께 해야하는...ㅋㅋ)
때문에 동이 튼 후에야 겨우 잠이 들었답니다.
집을 보수 하실 때 황토를 많이 사용하셨다고 하시더니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났는데도 몸이 가볍다.
아침으로 정성이 담뿍 든 떡국을 한 그릇씩 하고 다시 열공모드로 전환... 윤창이 또 시작되었다. 대단한 열정들이다.
다들 나름 명창소리 듣는 분들인데 다른 분들에게 코멘트를 부탁하는 겸손함까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러 명창분들 소리가 환청으로 따라왔다는...ㅎㅎ
이상은 이번 경주모임에 대한 간단한 스케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한 3시간 운전하며 천근짜리 눈꺼풀과 싸우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는
여민락 내에서 진행되는 시조계 자정을 위한 노력들에 대한 생각입니다.
원래 대금산조공부하는 모임으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현재 하루 방문객이 천명이 넘을 정도로 온라인상에서 국악계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기까지 카페지기님을 비롯한 여러회원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더욱 설촌선생님께서 최근에 시조반주의 매력에 푹 빠지시어 순식간에 시조인들이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공간이 마련된 것은 시조계 전체의 큰 축복입니다.
지금 진행되는 시조계의 정화노력들이 여민락이라는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더 가속화 되고 있다는 사실은 시조인들 누구나 주지하는 사실이고요.
다만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작금의 시조계에 나타나는 문제들을 들추어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자칫 각지의 선배시조인들이 애써 가꿔온 시조계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겠다는
그로인해 또 다른 갈등이 유발되고 여민락이라는 축복받은 열린공간이 몇몇 회원들의 성토의 장으로만 기능하는...
그래서 시조계 전체를 아우르는 네트워크 역할을 하지 못하고
기존 시조계와는 동떨어진 닫힌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하는 그러한 염려...
그래서 여민락 시우여러분들께 하나 부탁말씀 드립니다.
시조계가 안고 있는 모순들을 들추어내는 작업은 정확한 근거와 품격이 있는 언어로 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여민락은 공적인 공간입니다.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모순들을 찾아내고 그러한 문제들이 함께 공유되어 많은 선후배시조인들 각각의 입장에서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지
지나치게 거친 언어와 몇몇 회원들의 한풀이식의 담론형성은 여민락을 또 다른 닫힌공간으로 만들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선 저부터도 처음 카페 가입했을 때는 가끔 인사말씀도 드렸었는데 분위기가 지나치게 과열되고 있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면서는
매일 카페에는 들어오면서도 인사말씀 한줄 못 적게 되더군요...ㅠㅠ
둘째로 드릴 말씀은
이번 경주모임처럼 실력과 열정으로 가득찬 시조인들이 다양한 형태로 유유상종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역적으로, 연령별로, 수준별로 등등...
기존의 거대 조직이 고착되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조직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분오열로 분열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현재 석암제 시조계가 이런저런 불미스러운 일들로 사분오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다만 걱정은 사분오열해서 그냥 고착되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분열했으면 다시 “헤쳐모여”하는 과정을 통해서 좀 더 새로운 버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창조요 진보 아니겠습니까?
분열해서 그냥 고착된다면 그건 그냥 죽음이죠...
저는 이번 경주모임을 통해서 어떤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전국의 역량 있는 여러 시우들의 적극적이고 다양한 활동들을 촉구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민락>이라는 네트워크는
우리 시조계의 창조적 진보를 위한 귀한 자산임에 분명합니다.
경제와 석암제, 대한과 연합회 등등 사분오열을 뛰어넘는 새로운 버전으로의 창조적 진보!!
생각만해도 가슴뛰는 일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하나 더 당부말씀 드리면
시절가조로서의 또한 시상본위로서의 시조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데 노력을 경주해 주십사하는 부탁입니다.
현 석암제 시조계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나치게 노래자랑 수준의 창본위로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창본위의 접근이 많은 시우들에게는 생활의 활력을 주는 훌륭한 방편이 된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지나치게 창본위가 치우치면서
시절의 변화와 상황에 맞게 시를 짓고 선택해서 읊조리던 시절가조 본연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고,
좋은 시를 감상하는 시상본위로서의 모습 또한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 석암제 시조판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 시조인들이 이러한 노력들을 기우릴 때
풍류로서의 시조, 풍류인으로서의 시조인의 위상이 재자리를 찾으리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장문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 멋지고 행복한 자리에서 여러 시우님들 자주 뵐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