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최 호 림
가끔 혼자서는 소리 내어 읽는다. 눈과 입이 어깨동무 하고 느릿느릿 걸으면서 멀리는 아니고 동네 한 바퀴 휘돌아 오듯 목소리를 가다듬고 도랑물이 흐르듯이
도서관에선 소리 내어 읽으면 안 된다. 누구나 숨소리도 죽이고 가속이 붙은 눈의 걸음나비가 빨라진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벌판을 지나 사막의 신기루를 찾아 가다가
더러 빛나는 문장을 만나면 보물을 캔 듯 반갑고 놀라 기억할 자리에 밑줄을 그어 표시를 한다.
휴식을 취하거나 볼일 보려고 쉼표를 찧고 그리고 다시 읽다가 오늘은 여기까지다 서표를 꽂거나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는다.
목마를 때 샘물을 마시듯
피노키오의 코
볼 때마다 길어진 코
나는 이웃을 내 몸 같이 아낍니다. 남의 그림자도 함부로 밟지 않고 누구나 말에 귀 기울이고 법과 원칙을 준수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낮은 자세로 털 난 양심만큼 정직하고 어린아이의 직언도 듣습니다. 참말 하기도 바쁜 세상 거짓말 한 적 전혀 없어 유일한 자랑으로 내 세워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것이 나의 당당함이 됩니다. 코가 길어진 만큼 손가락이 짧아졌으니 허물 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나의 반듯한 콧대를 시기하여 크게 잘못 읽는 줄 알고 웃어 넘기며 관대합니다.
어디서나 피노키오 긴 코가 너무 많습니다.
거울
나 이 세상에 왜 왔는가,
너를 만나려고
집이 무겁다
체한 듯 거북해 보인다. 방 세 개에 화장실 둘인 아파트 거실엔 소파와 문갑과 에어컨 안방엔 장롱과 침대와 옷걸이 방 하나엔 책들이 차지하고 옷들이 보따리가 되어 뒹군다 앞 베란다엔 가득 화분의 화초들 뒷 베란다엔 세탁기와 보일러와 생필품이 우산과 신발들로 디딜 틈 없는 신발장 손바닥만한 창고엔 잡동사니 주인을 잘못 만나 불평도 못하고 주는 대로 받아 먹다보니 목까지 차올라 숨쉬기도 힘든다. 버리는 것도 생활의 지혜라 해도 이것도 저것도 버리기는 아깝고 애꿎게 좁은 집 탓만 늘어놓으며 답이 없는 갈등이 계속 된 지 오래 가족의 화목을 위해 한 발 물러서 과식한 집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도 다이어트는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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