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마음을 맡길 뻔한
2019. 10. 향기 이영란
바바바 Everybody Dance 춤을 춰봐 모든 걸 잊고
세상 속에 답답했던 일 벗어버려 소리 높여봐 고함을 질러버려
Everybody Dance 세상살이 걱정하지마 음악 속에 몸을 맡긴 채 Twist King 예
가슴이 답답하면 우리처럼 춤을 춰봐 신나게 추는거야
비벼대고 흔들어대고 마루바닥 비닐장판 운동화든 맨발이든 상관 말고 추는거야
리듬 속에 몸을 실어 시원하게 바람을 맞았다면 나와 함께 춤을 춰
되는 일이 없다고 투덜투덜 대지 말고 춤을 춰
매일 지친 하루의 두려움 나를 힘겹게 할 때면 사랑하는 연인들의 입맞춤보다 더 짜릿한 춤을 춰봐
세상이 이리저리 꼬였다고 열 받지마 사랑이 떠났다고 슬퍼하고 노여워마
나처럼 히프 허리 머리 모두 흔들어대고 다 같이 좌로 우로 리듬 속에 몸을 실어
길을 걷다 음악이 들려오면 무조건 춤을 춰 상관치마 난 이제 누가 뭐라 해도 춤을 출거야
매일 지친 하루의 두려움 나를 힘겹게 할 때면 사랑하는 연인들의 입맞춤보다 더 짜릿한 춤을 춰봐
지금은 음악이 너무 작은 것 같아 볼륨을 찢어지게 높여줘
더덕더덕 붙어있는 세상의 찌꺼기를 털어내고파 아름다운 세상 사랑하고 싶어
나처럼 손뼉치며 춤을 춰봐 또 다른 환상이 보여 가슴까지 시원한 춤추는 거야
춤추는 우린 모두 다 Twist King 예
by 트위스트 킹 <장미여관>
음역대를 여유롭게 소화하는 보컬, 푸근하고 사람 좋음을 나타내는 음색, 노란 양복을 입고 검정 양말에 하얀 백구두를 신고 땅바닥을 비벼가며 춤을 추며 놀 것 같은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나름 바빴던 한낮의 도로에서 제법 긴 신호를 받고 있을 때였다. 내 귀를 타고 흘러간 노래는 핏줄을 따라 꿀렁꿀렁거리며 뇌에 도달했고 분비된 엔돌핀의 영향으로 온 몸이 저절로 앞뒤좌우로 흔들렸다. 이 음악이라면 나도 몸빼 입고, 파마머리 가발을 쓰고 설운도의 <학창시절> 노래의 안무처럼 무릎을 올리고 흔들어가며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오! 신이시여! 이렇게 진심 즐거운, 영혼을 파고드는 노래를 부르는 이는 정녕 누구시란 말입니까?
터보 김종국의 음성이 기계음을 닮아 인스턴트 음식처럼 느껴져 좋아하지도, 신난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지만 내 젊은 날 어느 한 모퉁이에서 열심히 울려댄 노래임은 분명했다. 같은 노래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사에 나오는 트위스트 킹을 트위스트 김으로 잘못 알아듣고 검색창에 쳤더니 주름살 가득한 늙은 배우 아저씨만 나왔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한글만 따라가다보면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장미여관>이라는 걸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너 그러다 장가 못간다>, <봉숙이>, <나 같네>, <오빠들은 못 생겨서 싫어요>, <오래된 연인>, <운동하세>, <참을만큼 참았어>, <서울살이>, <청춘가>, <장가가고 싶은 남자, 시집가고 싶은 여자>, <내 스타일 아냐>, <이별의 변>, <마성의 치킨>, <옥탑방>, <퇴근하겠습니다>, <엄마 냄새>, <당신의 입장>, <사나이 댄스>, <오빠는 잘 있단다>
『빈방 없음(장기투숙 대환영)』, 『가족 같이 모시겠습니다』, 『흥』, 『노브레인』, 『장미여관 함안사랑 무료 콘서트』, 『부엉부엉 장미흥신소(시원하게 풀어드립니다)』
<>는 장미여관이 불렀던 노래였고, 『』표시는 콘서트 캐치였다. 변방과 비주류,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도시의 부적응자이지만 그래도 기죽고 싶지 않은 남자의 허풍이 남아있는 제목들이었는데 이것 또한 나 같고 내 스타일이었다. 흰색 두줄무늬가 있는 허름한 체육복을 입은 백수의 노래일 것 같기도 하고, 지독히도 풀리지 않는, 우울했던 지나간 내 청춘을 오버랩한 노래로도 보였다. 참을만큼 참았다고 이제는 좀 퇴근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내 심정을 담은 노래였기도 했다. 앨범커버 사진은 더 즐거웠다. 도무지 철들 생각이 없어보이는, 오로지 놀고 싶고 어떻게든 웃기고 튀고 싶은 남자들의 퍼포먼스였다.
부산사투리로 된 <봉숙아> 가사를 보자. 봉숙아, 말라고 집에 드갈라고? 집에 안간다고 데낄라 시키돌라케서 시키났드만 집에 드간단말이고? 못드간다 이 술 우짜고 집에 들어간단말이고? 묵고 가든지 니가 내고 가든지 좀만 더 있다가라 ...... 사랑을 찾아서 사람을 찾아서 오늘도 헤매고 있잖아
인순이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밤이면 밤마다>를 부를 땐, 외로운 밤, 우울한 토요일밤을 견딜 수 없어 온 몸의 애간장이 다 녹아버릴 지경이었다. 희미한 전등불 밑의 초라한 내모습을 확인하기 싫어서, 내 외로움을 저 새에게 들킬까봐... 너와 나 신나는 토요일밤을 보내고 싶은 5명의 남자들의 절규 앞에 관객들은 모두 실신직전이었다. 리드보컬 육중완의 탁월한 존재감과 대놓고 촌스러운 댄스가 압권이었지만 쿵착착착 아귀가 딱딱 맞아드는 드럼의 리듬과 일렉기타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무대였다.
극단적으로 원색이거나 커다란 꽃무늬 의상, 가슴팍에 달아놓은 대형 꽃코사쥬, 변방이지만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선명한 자존심까지 꺾지 않겠다는 의지, 너무 작거나 너무 덩치가 큰데다가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으로 제도권 안에 들어간 적이라고는 없는 그 자유자재의 남자들에게 반하고 말았다.(반했다는 표현이 늦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2018년 11월을 끝으로 장미여관의 콘서트 소식은 보이지 않았고, 관련 검색어로 장미여관 해체, 육중완 밴드, 영화 장미여관 같은 것들이 함께 올라와 있었다. 그랬다. 장미여관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인기절정을 누렸고 또 해체된 밴드였다.
여러 기사를 종합해 보건대 밴드의 작사, 작곡을 주로 맡았고, 각종 예능방송을 누비며 활약했던 육중완과 강준우의 비중이 다른 3명의 멤버에 비해 현저하게 높았다. 무명시절에 가까운 초기에는 수입을 1/N로 나누었으나 나중에는 개인적인 활동량에 따라 자기 수입만큼 가져간 모양이었다. 밴드 외 활동을 하지 않은 세 명은 팀의 인기가 높았고 음악활동이 좋아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속사로부터 일방적인 해체통보를 받았고, 그 뒤로 팀은 분해되었다. 그들은 충격과 놀라움으로 자신들의 심경을 페이스북으로 전하면서도 말을 아꼈지만, 밴드 해체에 대한 이유는 후에 육중완 밴드로 이름을 바꾼 2명에게서 비롯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3명에게 1억원(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한 명당 1억원이 아니란다)을 주면서 해체에 대한 위로(?), 미안함을 표했다고 한다. 활동에 대한 개인차와 그에 따른 수입의 불균형은 해체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는데 아무리 기사를 뒤져봐도 잘나갔던 둘을 변호할만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기획사에서 철저히 만들어 낸 아이돌댄스그룹은 인위적인 냄새가 강하고 화장을 짙게 한 듯해서 마음이 가지 않는다. 세대차이에서 비롯한 호불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는 젊은 뮤지션 중에서도 자신의 이야기와 개성있는 음색을 지닌 담은 악동뮤지션이나 볼빨간 사춘기,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잔나비와 같은 친구들은 매력적이다. 그에 더하여 대놓고 양아치(아! 이것이 좀더 순화된 표현)처럼 보이는 싸이의 뻔뻔스런 댄스와 그가 던지는 진지하면서도 노골적인 표현도 좋아한다. 아주. 연말공연은 자정 쯤에 시작해서 올나잇스탠드로 진행한다는 그의 콘서트에도 진심 가고싶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각기 개성이 넘쳤던 퀸의 멤버들이 생각났다.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 무대에서 뛰어난 가창력과 개성으로 돋보이는 사람은 프레디였지만 다른 3명이 없는 프레디는 존재할 수 없었다. 서로 음악적으로 힘을 보태고 의지하며 지낸 공동체였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근사한 음식 뒤에 든 수고와 노동을 함께 읽어낸다. 콘서트를 보면 보컬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무게로 들어오게 된다. 아~ 나는 장미여관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사랑받는 밴드이자 우리의 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때로는 어긋나기도 했지만 하나의 음악이라는 대의를 위해 서로 뜻을 모았을 장미여관을 좋아했지, 사람을 숨넘어가게 할 정도로 춤을 잘 춘다고 해서, 작사와 작곡을 잘한다고 해서 육중완과 강준우 만을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살펴보는 장미여관의 현란한 공연에서 나는 다른 세 명에게 자꾸만 눈이 갔다. 기타와 드럼을 잘 치는 것 외에는 눈에 띄는 매력이 읽히지는 않았지만, 그 평범함에 오히려 더 눈이 머물렀다. 우리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2명보다는 배상재, 윤장현, 임경섭의 평범함에 포함된 사람이 훨씬 많다. 해체 후 그들은 어느 쪽도 행복해 보이지 않아보인다. 그들은 예능이 아닌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마음은 비슷하여서 육중완과 강준우를 볼 때마다 팀원들과 부당한 방법으로 헤어졌다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여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나는 음악을 듣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다.
물론 각자 다른 개성을 지닌 팀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헤어짐에 있어서 예의를 갖추는 일은 그것과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밴드 뿐만 아니라 한때 사랑했던 남녀가 헤어지거나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갈라 설 때도 마찬가지다.
시아버님이 허리수술을 하셔서 병원에 가기 위해 마트에서 사과, 귤, 포도, 키위를 사 와서 씻고 포장했다. 그 때까지 나는 열심히 동영상을 감상하며 장미여관에 대한 애정을 불태웠다. 택시를 타고 가 마산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남부터미널에서 내려 창원까지 1시간이 넘도록 좌석버스를 타고가며 장미여관 해체에 대한 면모를 파악하게 되면서 또 그렇게 급격히 식어갔다.
병문안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통영으로 내려오면서 장미여관에 대한 그러그러한 이야기를 하는데 (낮에 동영상 하나를 카톡으로 보내었었다), 이 분(!)이 하는 말
“거 이상하더만. 시시껄렁한 것들이 저그 좋다고 흔들어 대고. 나는 그런 거 싫어. 나는 알 리가 좋아. 노래 잘하는 여자가수. 그 이상한 것들 이야기는 하지마!”
‘이봐욧! 내가 하려는 말이 그게 아닌데, 제대로 듣지도 않고 내 말을 자르다니?’
사실 나는 이 말을 뱉지는 않았다. 열이 받아서! 내 진의를 제대로 들어 보려는 성의가 없는 사람에게 화가 났지만 다툼으로 확장하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묵언의 형벌을 가하면서 통영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왔다.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를 읽으면서.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이야기는 다음 주에 할 예정이다. 남녀 팀을 유지하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