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글쓰기 >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2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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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차 상 희
둘째 아이가 돌 무렵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 아이가 어느새 열세 살로 성장하는 십년이 넘는 세월을 이 집에서 보내면서 그 세월만큼 크고 작은 일들이 우리 가족들의 역사로 집 안 구석구석 고스란히 남겨져있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를 오기 전에 집을 어떻게 꾸미고 가구를 배치할 것인지 궁리를 했었다. 그 당시에는 거실을 서재로 꾸며서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책과 접하게 하는 게 유행처럼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많이들 그렇게 했다. 그래서 나도 솔깃하여 거실에서 TV를 없애고 그 자리에 책장을 배치하고 책을 놓았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 TV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작은 방에 고이 모셔 두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에 빠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심심하니까 또는 책을 몇 권 읽어야 뭘 해주겠다고 당근을 주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책을 읽고는 했다. 그러던 것이 아이들이 자라고 아이들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당연시되는 시기가 왔고 우리 아이도 스마트폰 세상에 더 빠지게 되었다. 이제는 책을 억지로라도 읽게 하는 것에 한계가 오고 말았고, 우리 집 거실 책장을 차지하고 있던 많은 책들. 특히나 아는 지인에게 전집으로 산책들은 주인의 손길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거실은 우리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데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가장 적게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작은 방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컴퓨터와 TV 그리고 6인용 테이블까지 있어서 우리 가족은 그 작은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특히나 무더웠던 작년 여름에는 그 작은 방에 설치되어있는 벽걸이 에어컨으로 인해서 우리 집에서 가장 시원한 공간으로 주말저녁 배달음식도 거기서 먹고 심지어 두 아이들은 자기 방을 두고 그 방에서 잠을 자기까지 했다.
나는 때때로 그리고 점점 자주. 이건 집을 너무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그런데도 나는 거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읽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거실에 책장을 빼고 TV를 놓자고 자주 이야기했고 나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며칠 전. 운동이라고는 할 마음이 없던 첫째 아이가 몇 년간 묵혀두었던 닌텐도 위라는 스포츠게임 기기를 꺼내서 조작이 되는지 해보더니 된다고 그걸로 이제부터 운동을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무슨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뭐라도 몸을 움직여서 땀을 흘리겠다는 아이가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TV와 연결해서 화면을 보면서 동작을 따라해야 하는데 작은 방의 공간은 꽉 차서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렇게 뜻밖의 계기로 인해서 미루고 미뤄오던 거실의 책장을 정리하고 TV를 거실로 옮기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마음이 움직이니 몸을 움직여 그 일들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책장에 있는 책들을 먼저 정리해보기로 했다. 우선 아이들이 전혀 볼 것 같지 않은 책들은 박스에 담아서 조카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 책 중에서도 그리스 신화나 명작동화, 고전 동화, 미술과 음악에 관련된 책들은 내가 읽어보고 싶어서 쟁여 두었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 한 편에 꽂혀져있던 아이들의 어릴 적 일기장, 편지, 사진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과거로의 여행을 잠시 떠나기도 했다. 지금은 훌쩍 자라서 자기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아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그때의 우리 아이는 자기감정을 알아달라고 많이도 자주 표현을 했던 증거품들이 있었다. 엄마인 나는 그걸 너무 몰라주었던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집을 정리하면서 물건들을 정리한다는 개념을 넘어서 그 물건들에 묵혀두었던 감정들까지도 정리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의 공간들을 가족들이 원하는 위주가 아니라 엄마인 내가 하고 싶은 위주로 채워온 것 같아서 반성이 되기도 했다.
지난 십년의 세월동안 묵혀두었던 것들을 정리하고 거실과 방의 배치를 바꾸면서 그동안 숨 막히며 살아왔던 공간들이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남편과 두 아이들도 느끼겠지만 특히나 나는 채움에 숨 막혔던 것이 비움으로 인해서 한결 가벼워지고 마음은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평수를 늘려서 이사를 가는 것보다 지금 있는 집안의 공간들을 정리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평수를 늘이는 효과가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우리 집의 거실이 이제는 우리 가족 모두가 나름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