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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31일 주일 메시지 (설교안)
시리즈 주제: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여섯 번째 설교
제목: 짐승의 나라와 성도의 나라
본문: 다니엘 7: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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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적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짐승으로 묘사된 나라들과 전쟁 중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물려받을 나라는 짐승의 나라가 아니라 성도의 나라다. 성경은 왜 세상 왕들을 짐승으로 묘사했는지,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투사를 극복하자는 디팩 쵸프라(Deepak Chopra)의 설명과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마음의 습관을 훈련하는 다섯 가지 영역에 대한 파커 파머(Parker J. Palmer)의 제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훈련하여 건강한 민주주의가 이 땅에서 꽃필 수 있게 하는 공동체로서 교회가 가진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설교 개요
1.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세워지는 나라다
2. 하나님 나라의 대적자들은 짐승들이다
3. 오늘날의 짐승들은 제국주의, 독재정권, 눈먼 자본주의다
4. 오늘의 민주주의는 치료가 필요하다
5. 민주시민에게 필요한 마음 훈련 다섯 가지
1.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세워지는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지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언자 미가는 그것이 세 가지라고 합니다(미가 6:8). 첫째는, 정직하고 진실한 삶입니다. 둘째는, 사랑과 친절입니다. 셋째는,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은 진실과 자비와 겸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의 삶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으로 다투는 나라가 아니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기쁨이라고 했습니다(롬 14:17).
어떤 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두 가지로 정리하여 예배와 선교라고 했습니다. 예배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선교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가장 큰 두 계명이기도 합니다(톰 라이트, 그리스도인의 미덕).
이처럼 사람이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할 때 그에게 오는 보상이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의 지혜자는 그 보상이 바로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했습니다(잠 22:4). 이 말은 신약성경의 표현법으로 말하면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요 5:24).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이미 하나님 나라가 와 있습니다.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세상을 여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을 물려받을 것입니다. 아니 이미 우리들은 새로운 피조물이며 새롭게 지으심을 받았습니다(고후 5:17, 엡 2:10). 그래서 우리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아니 이미 우리 안에서 하나님은 소원을 주시고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빌 2:13). 그리고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완전하게 하실 것입니다(빌 1:6).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정직과 자비와 겸손을 실천하는 곳은 어디나 천국이 확대됩니다. 그러나 거짓과 강압과 교만이 득세하는 곳은 어디나 지옥 같은 고통이 늘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시사철 사랑과 기쁨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탄의 나라에서는 탐심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시기와 독한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를 가리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성령의 생각은 사랑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롬 8:6).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세상이라고 계속해서 한결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천국도 지옥도 지금 여기에 있으며, 앞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세상임을 기억합시다.
2. 하나님 나라의 대적자들은 짐승들이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성령을 좇아 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제자들을 향하여 마음을 굳게 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라고 격려했습니다(행 14:22). 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까요?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과 자비와 겸손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대적자들을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장애물을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지 못하게 하는 그 세력은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경은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를 용이나 옛 뱀,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대적을 통치자와 권세자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그 특징을 포착하여 나타냈습니다(엡 6:12).
왜 우리의 대적이 통치자들이며 권세자들, 그리고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나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할까요? 그 세력들이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려는 우리의 길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힘을 가졌으되 그 힘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갑니다. 그처럼 힘과 권세를 가지고 다른 나라를 짓밟는 통치자들을 구약성경 다니엘서에서는 짐승들로 나타냈습니다.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다니엘 7:3~7상
다니엘이 환상 중에 본 그 네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고 천사가 풀어주었습니다(단 7:17). 환상 속에서 다니엘이 보니, 그 짐승들이 권세를 가지고 땅에 있는 성도들과 싸워 이겨 그들을 짓밟았습니다. 그런데 옛적부터 계신 이 곧 하나님이 오셔서 그 짐승들을 심판하시고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를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왜 이런 환상을 보여주셨을까요? 그것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할 때에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이기고 견디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시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보상하시고 원수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극심한 환난과 박해 가운데 있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대에는 이런 위로와 소망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거기에도 바다에서 일어나는 짐승과 땅에서 나오는 짐승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이 성도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죽입니다. 자기를 따르라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미혹합니다. 진리를 따르지 말고 거짓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말로 그려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짐승들을 잡아 불타는 못에 던져버리십니다.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짐승이 나오는 바다도 더 이상 없으며 하늘에 있던 새 예루살렘이 땅으로 내려와 온 세상이 성전이 되는 세상이 온다고 합니다. 성전을 잃고 지하에 숨어서 은밀히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이 말씀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3. 오늘날의 짐승들은 제국주의, 독재정권, 눈먼 자본주의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대적들을 짐승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무엇이 짐승입니까? 누가 진실과 자비와 겸손을 짓밟고 거짓과 강압과 교만의 옷을 입고 있습니까? 누가 약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빼앗고 가난한 사람들의 숨을 막아버립니까?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입니다. 자기 나라를 넘어 다른 나라들을 다스리고 자원을 빼앗고 짓밟는 행동을 결단하는 사람들입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힘이 생길 때 동아시아를 짓밟았습니다. 유럽 사람들도 힘이 생기자 더 약한 나라들에 가서 자기들의 말을 들으라고 위협하고 그 나라들의 좋은 물건이며 자원을 빼앗아 자기 나라를 살찌웠습니다. 그렇게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등 세계 여러 나라를 짓밟았습니다. 그 모습은 이미 성경에서 짐승들로 묘사된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제국주의 사상이야말로 하나님의 원수가 인류의 마음에 뿌린 독약입니다. 그 독약에 물든 나라들은 자기의 제국을 세우려고 했으며 그들의 총칼에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의 피가 온 땅을 적셨습니다. 대영제국, 대일본제국, 몽고제국 등의 이름으로 자기들의 과거를 추억하지만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지금도 힘을 가진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라고 스스로 계급장을 붙이고 약소국을 짓밟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과거의 추악한 행실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죄하기는커녕 다시 군국주의를 일으키려 책동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온 세상에 두루 다니며 삼킬 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원수를 힘 가진 자들이라고 했습니까? 즉,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세상의 주관자들이라고 했습니까? 힘과 권세는 그것을 가진 사람을 짐승처럼 야수처럼 바꾸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억압에서 벗어나 해방되었을 때 힘은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북한에는 소련군이, 남한에는 미군이 들어와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미군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이 우리나라의 주도권을 잡기보다는 전에 일제에 협력하던 이들이 다시 힘을 잡았습니다. 임시정부의 수장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김구 선생은 암살당하고 여운형 선생도 암살당했습니다. 일제가 가장 위험한 인물로 여기고 가장 많은 현상금을 걸어 잡고자 했던 김원봉 장군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제강점기 때 고등계형사로 일하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 고문했던 노덕술이라는 사람에게 붙들려 ‘빨갱이 두목’이라는 욕을 들으며 따귀를 맞았다고 합니다. 광복 후에 노덕술은 수도경찰청 간부로 재직했습니다. 어떻게 친일파 앞잡이가 그럴 수 있습니까? 그는 반민족행위자로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비호를 받아 풀려나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국회의원까지 했습니다. 일제에게 가장 큰 위협을 가한 독립운동의 선봉장들은 해방 후에 죽임을 당하거나 따귀를 맞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월북합니다. 그리고 민족의 반역자들은 출세를 합니다. 정의가 실종되고 거짓이 승리를 합니다. 이것이 통치자들과 권세자들로 표현된 하나님의 대적자들의 그림이요 모습입니다.
군인이 힘을 잡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들의 뜻에 맞지 않은 이들을 짓밟고 고문하고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정당한 민주화 요구를 하는 이들을 반란을 일으키는 폭도라고 규정합니다. 그 때 독재자들이 외치는 구호가 무엇입니까? 국가의 질서와 평안입니다. 사회를 정화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어 무고한 사람들을 죽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원수 짐승의 모습입니다.
힘은 권력만이 아닙니다. 재력도 힘입니다. 재력을 가진 이들이 약자들에게 가한 강압과 거짓, 그리고 갑질행위는 다니엘이 본 짐승의 모습 그것입니다. 돈을 준다는데 무엇을 못하느냐는 생각, 내가 너에게 돈을 주고 있으니 너는 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은 짐승의 생각이요 가장 전형적인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나도 부자가 되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자본과 재물을 어떻게 획득하고 분배하는 것이 좋은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미 가르쳐 주셨습니다. 각자에게 고르게 땅을 분배하고 불균형이 심화되면 50년에 한번씩 희년(禧年)을 정하고 다시 공평한 세상을 만들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 그것을 문자 그대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과 가르침이 무엇을 지향하며 어떤 세상을 꿈꾸라고 우리에게 말하는지 배우자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본주의는 결국 눈먼 자본주의가 될 것입니다. 그 결말은 수렁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짐승은 옛날에는 바벨론이나 페르시아, 헬라나 로마제국 같은 강대국이었습니다. 근세에는 제국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독재자들과 눈먼 자본주의에 물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이 바로 이것에 대항하는 것이며, 주님이 장차 심판하실 짐승이 바로 이런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서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4. 오늘의 민주주의는 치료가 필요하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족쇄를 끊고 해방을 얻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독재자들이 일어나 시민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언론을 통제하고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독재자들을 몰아내고 말 그대로 민주공화국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 속에서 경제와 정치의 발전을 이룬 모범적인 나라라고 합니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곧 천국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옥 같다고 스스로 우리나라를 ‘헬 조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제시대나 독재치하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제5공화국을 뒤로하고 지금 우리는 제6공화국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더 이상 독재자에게 또는 왕이나 몇몇의 사람들에게 주권이 있지 않으며 국민에게 주권 곧 권세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민주(民主, Democratic) 국가입니다. 그리고 그 주권, 곧 권세를 국민이 선출한 사람들에게 위임하여 나라를 운영하기에 공화국(共和國, Republic)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도 하고 권력을 위임 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정직하고 투명하게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할 것을 기대하며 정치제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상호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정치는 상대방을 이겨야 내가 산다는 끝없는 싸움판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습니까? 이런 갈등은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하버드대학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어떤 방을 만들고 거기에 버튼이 있는 책상을 두고 사람들에게 1번과 2번 중에 하나를 누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에 칸막이가 있는데 같은 장치가 반대쪽에도 있어서 그 사람도 버튼을 누를 수 있게 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이것은 눈치 게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규칙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2번을 누르고 상대방이 1번을 누르면 당신은 2달러를 받고 상대방은 아무 것도 받지 못합니다. 만약 당신이 1번을 누르고 상대방이 2번을 누르면 당신은 아무 것도 못 받고 상대방만 2달러를 받습니다. 당신과 상대방 모두 2번을 누르면 두 사람 다 아무 것도 못 받습니다. 그리고 둘 다 1번을 누르면 둘 다 1달러씩 받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돈 욕심에 계속 2번을 누르면 상대방도 화가 나서 2번을 누를 것입니다. 그러면 둘 다 아무 것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서로 무언의 동의를 하고 동시에 1번을 누르면 둘 다 계속 1달러의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실험을 해 보니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처음에 2번을 눌렀고 상대방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한번에 두 배를 벌기 위해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서로 협력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참가자들은 1번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실험이 끝나고 참가자들에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 하고 평가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들의 평가는 매우 혹독하고 나빴습니다. ‘저 자는 이기적이고 멍청이야! 같이 협력할 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야!’ 그 밖에도 완고하다느니 교활하다느니 속임수를 쓴다느니 배신자라느니 욕심쟁이라는 말도 쏟아졌습니다. 같이 1번을 누르면 돈을 계속 받을 수 있는데도 어떨 때는 2번을 누르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험자가 모르는 점이 있습니다. 칸막이 반대편에는 사람이 있지 않고 단지 기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기계가 무작위로 1번을 누르거나 2번을 누르게 장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 실험을 통해서 눈치게임이나 협력을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임의로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그에 따라서 상상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했던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상대방을 틀렸다고 규정해 놓고 무슨 말을 하든지 꼬투리를 잡고 비방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다른 사람을 그처럼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Deepak Chopra, Peace Is The Way, pp. 60~61).
여당은 소득주도성장이 부의 재분배를 통하여 저소득층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야당은 소득주도성장은 우리 경제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폐기를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여당은 북한과의 대화를 인내심을 가지고 하되 금강산 관광이나 경제 협력 등을 먼저 추진하자고 합니다. 야당은 그렇게 해서는 한미공조에 균열이 생기고 결국 국가안보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5. 민주시민에게 필요한 마음 훈련 다섯 가지
우리의 민주주의는 미국에서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병들어서 치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들여온 민주주의는 한국에서도 역시 치료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든 민주주의의 마음을 치료하려고 파머라는 사상가가 글을 썼습니다. 그 책의 제일 앞 부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정치란 자비와 정의라는 실로 촘촘하게 그물을 짜서 모든 사람을 보듬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 때 가장 먼저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있는 가장 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이들, 노인들, 정신질환자들, 그리고 빈곤층과 집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고통을 겪으면, 우리의 민주주의도 금이 가고 깨질 것이다.
When we forget that politics is about weaving a fabric of compassion and justice on which everyone can depend, the first to suffer are the most vulnerable among us – our children, the elderly, the mentally ill, the poor, and the homeless. As they suffer, so does the integrity of our democracy.
Parker J. Palmer,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
하나님의 나라가 천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이며, 그것이 진실과 자비와 겸손이 실천되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떤 나라를 건설하고 어떤 미래를 꿈꾸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한반도에 임하는 것은 이 땅이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서로를 위하는 상생과 공영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먼저 치유되어 이 땅의 민주주의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정착하고 꽃피게 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함께 잘 사는 사회와 나라를 위해서 서로를 향한 편견을 거두고 건강한 자유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마음에 좋은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시민으로 우리 마음에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습관을 파머 박사는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첫째,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의식을 훈련합시다. [연대의식]
둘째,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우리와 ‘다른 점’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아보는 훈련을 합시다. [다양성 존중]
셋째, 우리는 서로의 갈등을 생산적으로 관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게 합시다. [자아 성장]
넷째, 우리는 소신 있는 의견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주인의식을 기릅시다. [주인의식]
다섯째, 우리는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우리의 힘을 결집하는 훈련을 합시다. [총화단결]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서로 모여 진리를 배우고 마음을 훈련하여 새로운 습관을 기르는 공동체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이런 마음 갱신 훈련을 하고 선한 뜻을 가지고 공동체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자라나게 할 요람이 될 수도 있고, 정치인들 가운데 있는 질병을 치유할 하나님의 처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대리인이며 세상의 빛이자 소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죽어서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우리가 정치든 경제든 상관하지 말고 오로지 우리의 영혼의 건강을 잘 가꾸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는 나라요, 이 땅에서 진실과 자비와 겸손이 실현되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마음을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힘을 가진 자들이 더 겸손하게 섬기고, 더 많이 가진 이들이 더 나누고 베푸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며, 예언자들의 예언이 성취되는 세상입니다. 그 나라는 짐승의 나라가 아니요 성도들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이곳에 부르셨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 가운데서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노예들을 불러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500년이 지나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그것은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사막이 꽃동산이 되며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이 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삶으로 그것을 이루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약속을 믿고 용감하게 일어선다면 짐승의 나라는 멸망 받으며 성도들이 물려받는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이 왕십리에서 시작되기를 간절히 고대합니다. 그리고 서울이 그렇게 되고 마침내 땅끝까지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날을 사모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정의와 자비와 겸손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고 그런 나라를 세우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묘한 지혜로 아름다운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다스리라고 위임하셨으나, 지금껏 세상을 짐승들이 다스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짓밟고 있나이다. 하나님은 짐승들을 심판하시고 나라들을 성도들이 다스리게 하시려고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저희는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저희도 진실과 자비와 겸손을 실천하겠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시고, 만민이 그 복스러운 세상에서 함께 번영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06 - 짐승의 나라와 성도의 나라(설교안) (1).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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