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두 남매 구원의 길 조선일보 1954.7.24
이미 보도된 서울 남산동 박유신(朴有信)씨의 딸 형제의 일이다. 직업도 없고 5명의 식구가 먹고 살 도리가 없어 자기와 자기 딸 삼형제의 생명을 스스로 끊어 버림으로서 고달픈 생의 종막을 고하려던 서울 중구 남산동 3가 18번지 고 박유신씨의 가족 다행히도 장녀 11세 정자(貞子)양과 2녀 8세 민자(敏子)양이 살아나기는 하였으나 워낙이 자살을 합주(合周)하게 된 어려운 살림에 박씨의 후처인 송복진(宋福晉, 21세)씨는 둘이나 되는 어린 것을 데리고 장차 어떻게 살아갈까 한다. 요즘과 같이 가혹한 생존경쟁 전선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다만 만연(漫然)히 눈물만 흘리고 있던 중 뜻하지 않은 구원의 길이 열리었다.
네 식구의 자살을 기도한지 만 60시간인 7월 22일 아침에 본보를 보고 식구가 없어 걱정하던 안동(安洞) 107에 사는 노기용(盧基用, 48세)여사는 그 따님 최용정(崔用貞, 27세)씨 단 두 식구의 모녀가 살고 있었다. 전화로 본사에 통지가 왔다. 자기가 그 불쌍한 아이를 기르겠다는 것이다. 정자(貞子)양의 외삼촌 되는 김영택(金榮澤)씨와 그리고 그의 서모(庶母) 송복진씨 네 분이 서로 상의하고 동 22일 하오 1시경 정자(貞子) 두 형제는 새로운 어머니 노여사(盧女史)를 따라 자동차를 타고 안국동(安國洞)으로 왔다.
남산동 집을 나서는 정자 형제는 그의 이모들의 눈물이 글썽글썽하는 것을 보며 자동차를 탔다. 슬픔과 기쁨이 섞인 그 장면에도 어린이들의 얼굴은 명랑하였다. 그러나 세 살이 위인 정자(貞子)는 언니하고 부르는 동생 민자(敏子)의 책가방을 들고 동생의 손을 잡고 운다. 정자의 책가방 민자의 책가방을 들고 차 안에 들여 놓는 계모(季母) 송복진 씨도 운다. 이 장면은 일반이 눈물이 아니고는 볼 수 없다. 박유신 씨의 유해는 시청에서 매장하였고 그 부인 송복진 씨는 어떤 모양으로 살 것인가 하고 모두 깊이 슬퍼한다.
우리나라에 이런 변사(辯死)가 비록 박유신씨 뿐 아니라 생활난으로 쪼들려 죽은 사람이 동 신문지상에 흔히 보도가 된다. 이것은 일조일석에 고칠 수 없는 일이지만 당국자는 이것을 즉각 급과(扱過) 할 수 없는 일이다.
청년들이 나아가야 일할 곳이 없고 들어가야 때의 식사가 없으며 당상(堂上)에 늙은 부모님이 계시니 무엇으로 봉양하며 아이들은 밥을 달라 우니 창자가 끊어질 지경이다. 할 수 없이 죽음의 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