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에 출발하는 양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호텔 앞에는 어제 미리 숙소에서 예약한 택시(택시 표시가 없어 영업용 택시인지 자가용 불법 영업 차량인지 알 수 없음)가 우리를 공항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낭쉐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헤호(Heho) 공항으로 낭쉐에서 북서쪽으로 약 32km 거리에 있어 택시로 약 1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공항에서 수속을 감안하면 늦어도 7시에는 낭쉐의 호텔을 출발해야 한다.
11월 중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낭쉐의 아침 공기는 우리가 느끼기엔 시원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추운지 겨울옷을 입고 있고 호수 근처라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속을 뚫고 낭쉐를 벗어나니 가로수가 심겨진 도로 양쪽에는 좁은 수로 사이로 논과 밭이 많이 보이고 대부분의 논과 밭에는 벼와 채소 등을 재배하고 있어 농토 활용이 적은 미얀마의 다른 곳에 비해 풍요로운 농촌 풍경을 보여 주고 있다. 도로변 작은 마을의 집에서는 수로에 나와 세수하는 아이들과 아침밥을 준비하려고 쌀과 채소를 씻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안개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인다.
▶ 물가에서 쌀과 채소를 씻는 아낙네
쉐낭(Shewnyaung)이란 조그만 도시를 지나 산길을 달리는데 1,000m가 넘는 고지대라 그런지 안개가 자욱한데다 구불구불한 고갯길로 매우 위험해 보인다. 그런데도 택시 기사는 늘 이 길을 다녀서 그런지 거침이 없다. 낭쉐에 올 때 지났던 깔로에 접어 들자 택시 기사가 차를 도로 한쪽에 세우고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낭쉐 시장에서 사 온 듯한 무언가를 들고 차에서 내린다. 조금 있자 기사의 아내로 보이는 아낙네가 아이를 안고 나와 그 물건을 반갑게 받아 들고 되돌아간다.
다시 출발한 택시는 헤호 공항 입구 주차장에 우릴 내려놓는데 주차장이라고 해야 논을 복토해 만든 비포장 주차장이라 주차장은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다. 배낭을 내려 길 건너 안개에 휩싸인 공항 청사로 간다. 단층 건물인 헤호 공항 청사는 보안 검색대만 없으면 우리 시골 역과 다름 없다. 청사 안에는 헤호 공항을 운행하는 항공사 부스가 마치 가판대처럼 마련되어 있는데 오지에다 육상교통이 불편해 이곳 공항을 이용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보딩 패스를 받고 배낭을 부치는데 짐표를 준다. 그러면서 이 짐표를 잘 보관하라고 한다. 그런데 안개에 휩싸여 이착륙이 불가능해 보여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 헤호 공항
▶ 헤호 공항 내부
이착륙을 알리는 전광판도 없고 안내방송 시설조차 없는 헤호 공항에서는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공항 청사를 빠져 나와 공항 주변 구경에 나선다. 공항 주변에도 주차장 한쪽에 간이음식점 몇 군데와 농가 두세 채 외엔 볼거리가 없어 언덕을 올라 농가로 가니 마침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떼를 쓰며 울고 있다. 여행 시 항상 가지고 다니는 풍선을 불어 주니 울던 아이가 금방 웃는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집에서 보고 있던 아이의 누나가 달려와 풍선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아이의 누나에게도 풍선을 불어 주니 아이 엄마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나무 기둥에 대나무를 엮어 만든 집안에서는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인데 내게 밥을 주며 먹으란다. 아침을 먹고 온 내가 사양하니 차를 내 온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무슨 차인지는 모르지만 꽤 고소하면서도 쌉쌀한 차를 맛있게 마시며 바디 랭귀지로 몇 마디 나누려했지만 웃기만 할 뿐 도통 대화가 안 된다. 그러나, 웃는 그들의 모습에서 순수함을 느끼며 농가를 나온다.
▶ 헤호공항 주차장 함쪽에 마련된 간이 음식점
▶ 헤호공항 인근 농가
다시 공항으로 와 시골 역 대합실 만한 작은 대합실로 가니 앉을 자리가 없다. 사람들이 활주로 쪽으로 난 문으로 나가기에 따라 가니 항공사별로 탁송화물을 실은 짐수레들이 보이고 그 주변에는 화물을 운반하는 인부들이 모여 있는데 승객들도 공항 안 계류장 근처까지 나가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계류장 옆 수레에 실린 탁송화물
공항에 도착한지 두 시간 반이 지난 10시가 좀 넘자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11시에 드디어 처음으로 헤호 공항에 쌍발 프로펠러 항공기가 착륙을 한다. 항공기가 계류장에 들어서자 탁송화물을 인부들이 끌고 항공기로 향하고 탑승객들이 내려 공항 활주로를 걸어 나오자 이어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이 항공기를 향해 걸어가는데 안내방송이 없어 다른 항공기 승객들도 항공기를 탑승하러 갔다가 되돌아오는 등 혼란스럽다. 항공기에서 탁송화물을 내리는 것도 싣는 것도 장비하나 없이 사람 손으로 싣고 내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항공기가 계속해서 착륙하자 탁송화물을 운반하는 인부들은 더욱 바빠지고 안내방송이 없어 수백 명이나 되는 승객들은 더욱 우왕좌왕한다. 또한 항공기가 엔진을 끄지 않고 공회전하고 있어 그 열기와 소음이 그대로 공항을 뒤덮고 있다. 21세기를 살면서 마치 100년 전 공항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 정도 승객이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공항에 시설 투자를 했어야 했는데 제 주머니 채우기에 바쁜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내 몰라라 한 것 같다.
▶ 계류장에서 탁송화물을 항공기에 싣는 인부
공항에 도착한지 네 시간 반을 기다린 12시 30분 드디어 우리가 타고 갈 양곤행 쌍발 프로펠러 항공기에 탑승한다. 항공기 좌석이 따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선착순으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된다. 오후 1시에 헤호 공항을 이륙한다. 항공기가 안정 고도에 다다르자 국내선임에도 승무원들이 차와 빵과 과일이 든 간단한 간식 박스를 제공한다. 헤호에서 양곤까지 한 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국내선에선 볼 수 없는 간식박스가 반갑기도 하지만 낯설다. 국력에 비해 많은 항공사들이 난립하는(?) 미얀마에서 항공사 간 경쟁 때문일까? 아니면 지연 출발에 대한 승객들의 불만 억제 차원인가? 점심때가 되면 항상 제공되는 것인가? 궁금하지만 그래도 요기가 되니 맛있게 먹는다.
오후 두시 반경 양곤 국내선 공항에 도착한다. 항공기에서 트랩을 내려와 버스를 타고 탁송화물을 찾는 곳으로 와 기다린다. 그런데 미얀마에서 가장 큰 공항인데도 역시나 장비 하나없이 인부들이 손수레로 항공기에서 탁송화물을 내리고 하나하나 탁송화물 창구로 밀어 넣는다. 자기 물건을 찾아 창구를 나올 때는 헤호공항에서 탁송시킬 때 받은 짐표를 공항 관계자가 확인한다.
내 계획은 오늘 예정시간에 양곤에 도착하면 버스를 타고 미얀마 한따와디 왕국의 수도였던 바고(Bago)를 다녀 올 예정이었지만 양곤 공항에서 배낭을 찾아 청사 밖으로 나오니 벌써 오후 3시인데 바고까지는 버스로 왕복 네 시간 이상 걸리고 택시로 바고 유적지를 둘러보는데도 세 시간은 소요된다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데 오늘 밤 인천행 비행기를 타려면 바고를 다녀오는 것은 무리라 생각되어 포기한다. 대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깐도지 호수로 가 까라웨익 팰리스(Karaweik Palace)에서 저녁을 먹으며 미얀마 민속공연을 보기로 한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깐도지 호수에는 휴일을 즐기러 나온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데 이 호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정문에서 입장료를 내라고 한다. 까라웨익 팰리스 예약한 사람이라고 하니 이름을 묻고 그냥 들여보내 준다. 깐도지 호수는 30만 평이 넘는 거대한 인공호수로 쉐다곤 파야를 세울 때 이곳의 흙을 파 언덕을 높였는데, 그 흙을 파낸 곳이 지금의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18시에 공연이 시작되는데 40분 일찍 도착해 울창한 나무와 목조 다리를 따라 걷는 호숫가에는 데이트하는 젊은 연인들과 어린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이고 언덕 쪽으로는 커피숍과 꽤 분위기 있어 보이는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다. 석양이 물든 호수 넘어 쉐다곤 파야가 야간 조명을 밝히고 있고 호수에는 먹이활동을 마친 새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우측에는 황금빛 가루다 모양을 한 까라웨익 팰리스가 석양의 빛을 받아 더욱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어 가히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석양이 내려 앉은 깐도지 호수
▶ 호수에서 본 까라웨익 팰리스
▶ 깐도지 호수
공연시간이 다되어 까라웨익 팰리스로 향한다. 입구를 지키는 옛 미얀마 병사로 분장한 두 명의 병사와 사진을 찍고 공연장으로 들어간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면 미얀마 왕족 분장을 한 젊은 남녀가 공손히 인사를 한다. 공연장은 전면에 무대가 있고 우측에 뷔페식사가 준비되어 있어 식사를 하면서 공연을 보는 구조인데 외관에 비해 웅장하지는 않지만 나름 럭셔리하다. 손님들은 서양인 단체 관광객들이나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대부분으로 한국인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뒤쪽에 마련된 뷔페식사를 하다 보면 공연을 시작하는데 미얀마의 시대별 민속춤 공연을 보여준다. 입구에서 대기할 때 민속 공연에 대한 팸플릿을 보면 10세기 이전시대에서 19세기까지 시대별로 다양한 춤이 공연된다고 한다.
▶ 까라웨익 팰리스 전경
▶ 까라웨익 정문을 지키는 병사와 한 컷
▶ 공연장
▶ 미얀마 전통 춤
공연이 시작된 후 늦게 도착한 유커(旅客)라 불리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도착했는데 들어올 때부터 시끄럽더니 테이블에서도 뷔페 음식을 가지러 수시로 왔다갔다 해 공연관람을 방해하고 있다. 게다가 음식을 먹으면서도 제 집인 양 큰 소리로 떠들어 도저히 공연에 집중을 할 수 없다. 주위 관객들의 눈총이 따가운지 가이드가 가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라고 주의를 주는 것 같은데도 막무가내다. 90년대 초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었을 때 해외에서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화장실에 들렀다 잠시 입구로 나와 미얀마 왕족으로 분장한 여인과 기념사진을 찍고 왕자처럼 분장한 남자에게 가 기념사진을 찍는데 이 남자 내 생일을 묻더니 미얀마 이름을 지어 금빛 종이에 적어 주며 이름의 뜻을 설명한다. 그가 지어준 내 미얀마 이름은‘Thu Ya Maung’으로 용감하고 성공적인 사람이란 뜻이란다. 감사의 뜻을 표하고 다시 공연장으로 들어간다.
▶ 공주로 분장한 안내 아가씨
▶ 왕자로 분장한 안내원(미얀마 이름을 지어줌)
다들 비슷비슷한 공연인데 도중 코끼리가 객석에서 나와 무대에서 한 판 춤을 추고 객석으로 다시 내려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와 사진기를 들이댄다. 객석으로 내려 온 코끼리는 우리나라 북청 사자놀이처럼 코끼리 탈 안에 있는 두 사람이 코끼리 춤을 추는 것인데 객석을 돌며 사진촬영에 응하고 팁을 받는다. 두 시간이 넘는 공연을 보았는데도 미얀마 춤에 조예가 없어서 그런가? 그 춤이 이 춤이고 저 춤이 그 춤 같다. 무대 옆에 전광판이라도 설치해 공연내용을 간단하게라도 소개하면 관객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이어지는 미얀마 전통 춤
좀 지루해질 무렵 공연은 끝나고 택시를 타고 양곤 공항으로 향한다. 야듀! 미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