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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작가회의
 
 
 
카페 게시글
계간 제주작가 스크랩 미나리아재비와 봄호의 시
김창집 추천 0 조회 71 12.05.11 01: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주작가 봄호가 나온 지도 꽤 오랜 시일이 흘렀다.

봄 동산에 진즉부터 이 미나리아재비가 피었지만

애써 외면하다 별도봉에 피어있는 것들이 너무 고와

사진기를 들이대었으나 역시 찍기가 어렵다.

특히 접사렌즈로는 원근이 차이가 있는 것들의 초점을 다 맞출 수 없어 

더러는 정확하고 더러는 부옇게 되어버린다.

특히 반짝반짝 빛나는 꽃이라 더욱 그렇다.

저번에 올리다 남은 제주작가 2012년 봄호의 시를 모두 올려본다.

 

 

♧ 쓸쓸하다 - 김광렬

 

내가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한 것은 쓸쓸하지 않아

낮은 곳에 내린 것도 외롭지 않아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의 옳지 못한 일을

꺾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쓸쓸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되듯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데

힘으로 밀어붙이니 그게 오직 쓸쓸해

힘이 쓰일 곳에 쓰이지 않아 서러워

내가 높은 이마가 되지 못한 것은 쓸쓸하지 않고

낮은 발꿈치에 내린 것도 외롭지 않고

평화를 흔들고야 마는 세상이 참 쓸쓸하다  

 

 

♧ 양윤모를 구속하라 - 김경훈

 

그러면 당연히 단식을 다시 할 것이다

해군기지가 백지화되지 않는 한

지난 번 71일의 목숨 건 단식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번에는 살아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생사람 하나 죽이고

교도소에서 송장 하나 치우고 싶거든

의당 법의 원칙으로 더 이상 관용을 베풀지 말라

교도소를 응당 그의 무덤으로 하라

스스로를 던져 상식의 회복을 외치는

저 처연한 절규를 구속하라

몸 하나 과감히 버리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저 의로운 분노를 구속하라

온갖 불법과 탈법의 해군기지에 맞서는

저 살아있는 양심을 구속하라

그러면 수많은 그의 아바타들이

하늘나라 군대를 향해 쿠르트막토를 타고 돌진할 것이다

신념의 화신들이 구럼비 바위를 일으켜 세워

삼발이와 케이슨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결국 해군기지는 범섬 너머 물 건너 갈 것이다

그러니

그를 구속하라

속히 양윤모를 구속하라

저 몸빵 몸투쟁 저 예견된 죽음을 구속하라

저 몰입의 몰아, 저 이름조차 거두려는 몰명(沒名)을 구속하라  

 

 

♧ 우영팟 공양 - 김세홍

 

등 굽은 팔순 노파가 사는

키 낮은 스레이트 지붕아래

밤낮으로 파수를 보는

옥수수, 상추, 깻잎, 쪽파들이 섰는 우영팟

가끔, 앉은뱅이 양은 밥상위에 햇살 여믄

공양으로 열반하여

이슬 사리를 남기기도 하는

색바랜 빨랫줄 성긴 울타리를

문패로 대신 한 집  

 

 

♧ 공짜 - 진하

 

거 참 이상하다.

날마다 왜! 왜? 왜?

까닭을 알 수 없어 묻고 사는데

구름도 산도 말이 없다.

그냥 흘러가고 그냥 웃는다.

그렇게 계절이 바뀐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영문도 모른 채 던져진 내 삶이

그래도 내가 사는 만큼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공짜다.

골목길 술집에 기본안주처럼

저 시린 하늘 파란 나무

노란 꽃 다 그냥 공짜다.

밥값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데,

나머지 자연은 다 공짜,

아무리 억울하다고 우겨도

이 지독한 육신까지도

삶은 정말 공짜다.  

 

 

♧ 인생 - 김문택

 

인생!

그것 별것 아닙니다

같은 하늘아래서

같은 인생으로 살아가지만

어떤 이는 자동차 타고 다니고

어떤 이는 하얀 지팡이, 휠체어 타고 다니지만

 

인생

그것 별거 아닙니다

하루면 몇 번씩

손바닥 뒤집듯이 마음을 바꿔가며

진실한 속마음은 모르고

화려한 겉치장만 보고 사는

인생 치사한 것입니다

 

인생

그것 마음대로 안 됩니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라 주지 않는

인생!

그것 고달픈 것입니다

소다리를 뜯어 먹어도

얼굴 붉히며 사는 것보다

풀을 뜯어먹고 살아도

웃으며 사는 것이 참된 인새이라고

진리는 깨우치며 날마다 애를 쓰지만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

태풍처럼 불어 닥치는 시련 앞에서

별수 없이 굴복하고 말아야할

인생!

그것 슬픈 것입니다

 

인생

알고 보면 모두가 꿈인 것을

물방울인 것을  

 

 

♧ 새벽에 고기국수를 만들어서 - 김영미

 

새벽1시, 독서실에서 돌아 온

아들의 허한 배를 달래기 위해 국수를 삶았다

고기국수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는 아이

아이는 국수를 내놓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고개를 숙인다, 말없이 먹먹하게 국수그릇 속으로

시험문제의 답처럼 빠져드는 눈물방울

기말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세상을 살아보니 이렇다하게 대답할 해답은 없었는데

차마 해답은 없고 해답을 만들어가는

요령만 있더라 말하지는 못하겠고

아이의 너울지는 어깨를 가만히 다독였다

 

돼지의 뼈와 살을 푹 삶고 삶아 고아낸

뽀얀 국수국물처럼

제 가슴 고아가며 사는 게

세상의 일이다. 라는 말을

목울대 뒤로 꾹 눌러 삼키곤

나오지도 않는 빈 가슴 내밀어

젖 물리듯이

아이 앞으로 국수그릇만 자꾸 밀어 넣었다

 

시험이 아니었다면 꿀맛 같았을 음식을

아이는 제 마음 보여주듯

젓가락으로 휘젓기만 하고 있다

뽀얀 국물 속에서 국숫발은 퉁퉁 불어가고

벙어리가 되어버린 입 대신

한숨을 꾹 눌러 삭힌 가슴이 말을 한다

어서 먹어봐, 이놈아.  

 

 

♧ 北濟州 - 현택훈

 

뭍으로 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고서

낡은 어선의 깃발이 되곤 했다

거욱대가 있던 자리에는 바람을 사고파는

풍력 발전기가 거대한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늙은 해녀 몇 불턱에 불을 피워놓고 앉아

추워서 더 쭈글쭈글한 몸을 녹이고 있다

할망 어멍 따라 해녀가 되어 한평생 물질을 하니

젖은 광목이 몸에 착 달라붙던 세월이 흘렀다

볼기가 태왁만큼 컸던 지난날은 바다에 수장되었나

망사리엔 전복이 홍글락홍글락했겠다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이 아파서 짐짓 고개를 돌린다

낚시꾼 몇 명 방파제 끝에 거북손처럼 돋아 있다

포구에는 녹슨 배 몇 척 귀 잘린 토끼처럼 우두망찰하다

썰물로 드러난 갯바위는 부희영해서

유랑 극단이 머물다 간 자리처럼 쓸쓸하다

神堂이 바다를 바라보며 숨죽이고 있다

그물접마다 그물막을 지었다

똥깅이처럼 바위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들이 있다

그물막 앞에 앉아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멀구슬나무 그림자

본향당 무너진 자리에 해국이 피었다진다

주름진 얼굴에 어깨가 찌그려진 마을길

양어장에선 물고기들이 불경스럽게 생산된다

그물이 바닷바람에 올망졸망 빛났던 날이 있었다

어촌계 건물 그늘에 앉아 읊조리는 내력이 있다

파도소리가 그물막 그늘까지 밀려와 모래둔덕을 이루었다

모살마냥 부스러지는 북제주 그 마른 풍장들  

 

 

♧ 詩 혹은 당신을 위한 小夜曲 - 양원홍

 

지난 밤. 당신의 방을 클릭했어요. 화면 가득 펼쳐진 산, 창밖으로 산길이 이

어지고, 달빛 이정표를 따라가 발을 멈추면 살구꽃, 할미꽃, 패랭이꽃… 엄니

와 살던 초가, 꽃이 진 그 돌담 곁에 눈이 내리고 얼굴 까만 아이들이 놀고 있어

요. 어두운 길, 눈을 감고 바람소리 따라가면 시냇물이 흐르고 허공의 오선지

에 새들의 발자국이 보여요. 갈대가 연주하는 시냇물, 피아노 첼로 소리… 바

람에 악보가 날아가고 길은 안개에 갇혔어요.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기가 날아

와요. 향기들도 같은 무게만큼 모아두면 짝 지을 수 있을까요? 물구나무선 나

무들, 산이 둥둥 떠다니는 이곳,

 

그래요, 낙타와 함께 떠납시다. 서로 허리를 안고 걸으면 사막도 넘을 수 있

어요. 우리는 오아시스를 찾아 떠나는 순례자들. 그러나 눈을 뜨면 신기루는

사라지고 꿈길에 홀로 서있어요

 

내 마음 한 가운데를 흐르는 詩, 나는 날마다 당신을 기록합니다. 문을 열면

보이는 당신, 그리고 오두막 한 채 … 늦은 밤 어둠을 끌어와 원고지에 펼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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