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은 너무나도 유명한 괴수다. 그래서 수없이 리바이벌된 괴수 영화 중 하나다. 이번에 본 킹콩은 좀 독특하게 리바이벌한 킹콩이다. 일단 난 재미있게 영화를 봤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호쾌한 장면들도 많았다. 설정 역시 훌륭했다고 본다.
간혹 뜬금없는 장면들이 나오긴 했지만 뭐 그 정도는 이해할 만했다. 모든 장면이 다 의미 있는 영화는 명작 반열에 올랐겠지만 이 영화는 명작까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도 시간 때우기 용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광기에 빠진 두 사람이 영화를 이끌어 간다. 패커드 중령 역을 맡은 사무엘 잭슨과 랜다 박사 역의 존 굿맨이다. 이 둘은 영화의 시작과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이다.
일단 존 패커드 중령은 전쟁광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공중 강습 부대 부대장으로 전쟁을 수행 중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포기함으로써 그 역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입장이 된다. 그래서 그는 허탈하다. 그리고 무료하다. 텅 빈 사무실, 비 오는 날씨 그의 그런 심정을 잘 표현한다. 그런던 차에 임무가 떨어진다. 전투 임무는 아니지만 그래도 임무다.
무언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이에 그는 감사해 하며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
부대원들도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투 임무도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곧 임무에 커다란 장애물이 생긴다. 그리고 부대는 괴멸된다.
이 사태는 패커드 중령에게는 오히려 활력소가 된다. 그는 부하들의 복수를 다짐하며 섬에서 전쟁을 각오한다. 전후 맥락보다는 맹목적으로 복수의 대상을 찾아 제거하려 한다.
랜다 박사 역시 심한 편집광적인 증세를 가지고 있다.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그는 과대망상을 가지고 있다. 26년 전 그가 탔던 전함은 미지의 괴물의 공격을 받고 큰 피해를 입는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선원들은 죽었고 그만이 유일한 생존자다. 이후 그는 그 괴물을 찾아 복수하고자 한다. 그렇지 않은 그 괴물들이 전 인류 문명을 파괴하고 점령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26년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그는 여전히 그 생각을 했고 그 괴물을 확인하기 위해 스컬 아일랜드로 죽음의 관광을 온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이들이 주인공 같지만 주인공이 아니다. 심지어 이들은 좀 어처구니 없이 영화에서 사라진다. 내 기준에서는 말이다. 그렇다고 톰 히들스턴이 뭔가를 보여주냐? 그것도 아니다. 시크한 이 주인공은 로키였을 때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역할에 비해 잘 안 보인다. SAS 출신이라고 하던데 아마 그래서 영화 속에서도 잘 안 보이는 모양이다.
이 영화에는 미국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건 바로 총을 너무 남발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독일 점령지에서도 미군의 문제는 총을 너무 남발해서 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쏜다고 하지만 일단 쏘고 나서 적인지 아군인지를 확인하는 덕에 많은 민간인이 다쳤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분명 스컬 아일랜드로 무단 침입한 미군을 공격했다고 해서 이를 복수한다고 다짐하는 랜다 박사나. 섬에 오자마자 폭격을 해 놓고 킹콩의 반격을 했다고 이를 복수하겠다는 패커든 중령이나 기본적인 상식선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패커드 중령에게 킹콩이 섬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킹콩도 죽이고 거기서 나오는 괴물도 죽이겠다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미국이 절대 힘을 가진 존재로 패권에 도전하는 모든 것을 굴복시키겠다는 현재 미국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느낌이 있다. 물론 이 영화는 중국 자본이 투자된 영화라 그런 부분을 더 강조한 게 아닌가 싶긴 하다. 미국이 꼭 그런 패권주의로 세계를 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만 빼면 그래도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이고 멋진 전투신이 있는 작품이다. 아직 안 봤다면 한 번쯤 볼만한 영화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