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 한 편, 노래 한 곡] 진각혜심의 선시 <봄날 산에서 노닐다(春日遊山)>, 소프라노 오신영의 노래 <나물 캐는 처녀>
봄날 산에서 노닐다(春日遊山)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
정말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날이라
산을 노니니 마음도 절로 여유롭네
양지바른 언덕에서 나물을 캐다가
응달진 계곡에서 샘물을 길었지
바위에 맺힌 물방울 서늘히 날리고
개울가 붉은 꽃은 냇물에 잠겼네
상쾌하여 소리 높여 노래 부르니
깊고 외진 곳 산보함이 즐겁구나
春日正暄妍 出遊心自適 陽崖採蕨薇 陰谷尋泉石
巖溜冷飛淸 溪花紅蘸碧 高吟快活歌 散步愛幽僻
[감상]
우리가 대범해질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모습 자체로 위대한 것인데, 늘 뭔가 다른 것을 꿈꿉니다. 현재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대범해질 수 없습니다. “있다 없다를 박차야만 진짜가 드러나”(有無坐斷露眞常)는 법인데, ‘있다’ ‘없다’에 집착할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 알지라도 이 가르침이 체화되지 않은 것이지요. 혜심스님은 “제아무리 잘 다듬고 치장해본들/ 천진스러운 본래 모습만 못하다”(東塗西抹任千般 爭似天眞本來樣)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시다시피 진각혜심스님은 수선사의 2대 교주로 대찰의 주지스님을 오래 지내신 분입니다. 큰 사찰의 주지스님이라면 시봉하는 이도 있고, 또 업무도 많아 한가롭게 지내기도 힘들고, 소박하게 살기도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혜심스님의 시를 읽으면 지극히 소박한 선승의 면모가 느껴집니다.
선승은 따뜻한 봄날 양지바른 언덕에서 나물을 캐고 있습니다. 참으로 소박한 모습입니다. 나물을 캐다가 샘물을 길었습니다. 개울가 붉은 꽃이 냇물에 비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흥에 겨워 소리 높여 노래를 부릅니다. 지극히 자유롭고도 단순한 선승의 삶입니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이런 단순한 삶을 위해 많은 이들이 출가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막상 출가하고 보면 속세 못지않게 번거로운 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승가도 사람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혜심스님은 깊고 외진 곳을 포행하는 것을 즐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시는 매우 많습니다. 바람 맑은 깊은 골짜기에서 마음대로 놀기도 하고(「냉취대(冷翠臺)」), 작은 못을 넉넉한 마음으로 조용히 바라보기도 하고(「작은 못(小池)」), 들을수록 새로운 꾀꼬리 소리에 취하기도 합니다(「저물녘 비 개자(晩晴)」).
이런 시들을 읽으며 저도 단순하고도 소박한, 그럼에도, 아니 그러기에 대범한 선승들의 삶을 배워볼까 합니다. 현실은 단순하게 살기에는 저에게 많은 일들을 시키고 있는 듯합니다. 그 일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또는 승가에서 저를 필요로 한다는 것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마음만은 한가해지려 노력합니다만, 마음은 몸이라는 놈에게 구속되기가 일쑤입니다. 그럼 몸이라는 놈은 자유롭습니까? 그놈도 마음이라는 놈에게 구속되기가 일쑤입니다. 어쩌면 깨달음은 지극히 단순해지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눈뜬 이란, 깨달은 이란, 도인(道人)이란 아무리 복잡한 일도 단순하게 만들 수 있는 이가 아닐는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늘 진각혜심스님의 단순 소박함을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정초기도 발원문]
오늘은 정초기도 회향일입니다. 절에 가지 못하시는 분은 온라인으로 기도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참여도 힘드신 분은 <정초기도 발원문>을 봉독하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o5X9lOa68nw
[노래 한 곡] 소프라노 오신영의 노래 <나물 캐는 처녀>
https://youtu.be/-EIe1eIU768
[동명스님의 현대시 감상] 3. 저녁 식탁에 오른 것들 - 이승하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862
[시가 말을 걸다] 정일근, <부석사 무량수>
http://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233
제40회 동명스님과 함께하는 불교성전 읽기
https://youtu.be/9VnsOecjd0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