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詩》
예순다섯의 여린 감성의 소유자인 양미자(윤정희 분)는 중학생 외손자 종욱(이다윗 분)과 같이 살고 있다. 손자 입에 밥 들어갈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할 정도로 손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미자는 정부 보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고, 중풍 걸린 강 노인(김희라 분)의 수발을 들어주고 약간의 돈을 받는 것이 수입 전부였다. 어느 날 스스로 몸도 씻지 못하는 강 노인에게 목욕을 시켜주는데, 그가 성관계를 요구하자 화가 나서 일을 그만둔다.
그녀는 근처 문화센터에서 시 쓰기 강의를 듣는다. 강사 김용탁(시인 김용택이 직접 연기했다.)은 수강자들에게 마지막 수업에 시를 한 편씩 써오라고 한다. 미자는 시상을 얻기 위해 그동안 미처 자세히 바라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평상에 앉아 푸른 잎이 돋아난 나무를 유심히 쳐다보기도 하고 멍하니 앉아서 저녁놀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시상을 건져 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렇게 열심히 시상을 찾다 보면 어쩌면 아침이슬과 같이 맑은 시어들이 한 됫박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으리라.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인 《시》는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아 국내외에서 17개의 상을 받았으나 관객은 22만 명에 그쳤다. 그러나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한국 영화의 수준이 세계적 수준까지 올라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어느 날, 그 마을의 여중생 희진(세례명 아네스)이 강물에 몸을 던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네스가 남긴 일기장에는 지난 6개월 동안 여섯 명의 남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적혀 있었고 그중에 미자의 외손자도 끼어있었다.
다섯 명의 아버지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자신들과 선생 몇 명밖에 모르므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피해자의 홀어머니에게 돈을 주고 합의를 하자고 미자에게 제안한다. 3천만 원을 주면 이 사건을 묻어버릴 수 있다며 한 사람이 5백만 원씩 부담하자는 것이다.
미자는 죽은 아이 희진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종욱을 야단치려고 하지만 아이는 자기 잘못으로부터 도피하고 외할머니를 무시할 뿐이다. 그래서 죽은 아이의 사진을 식탁 위에 올려놓아 아이에게 속죄의 기회를 주고자 했지만 종욱은 이미 도덕적 감수성이 마비된 아이였다.
가해자의 아버지들이 5백만 원을 구해오라고 재촉한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비를 맞으며 강 노인을 찾아가서 몸을 주고 5백만 원을 받아온다. 그들에게 돈을 건네주며 묻는다.
“이제 완전히 끝난 건가요?”
“완전히 라고는 할 수 없지만, 거의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신고하지 않으면 가해 학생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시상을 찾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파랑새를 찾고자 긴 여행을 떠도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모습 같다.
그녀는 수개월 동안 집단성폭행을 저지른 학교의 과학실을 들여다보며 자살한 소녀의 고통에 괴로워한다. 다음날 학교 근처 성당에 들르니 공교롭게도 희진을 위한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린 소녀의 사진을 보며 그녀는 진심으로 아네스에게 속죄하고 싶었다.
미자는 삶의 변두리에서 시상을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자기 삶 속에서 어린 소녀의 죽음을 꿰뚫고 그 아픔을 예리하게 도려냈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한가요”로 시작하는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로.
시는 삶에 밀착하여 일상에서 만나고 부딪히고 사랑하는 가운데 생기는 리얼한 체험의 산물이어야 하리라. 시 강좌 마지막 시간에 미자는 꽃다발과 시 한 편을 남겨놓고 사라진다.
아네스의 죽음 앞에서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가해자였다. 죽음을 유발한 것은 자식들이었지만, 자식들의 죄를 은폐하려는 더 큰 죄를 지은 부모들도 모두가 가해자였다. 그래서 감독이 우리에게 속죄하자고 손을 내밀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감독은 이 영화에서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사는 우리 시대의 도덕 불감증에 대해 신랄하게 말하고 싶었으리라.
미자는 종욱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몸을 씻게 하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준다. 그날 밤 둘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데 경찰이 종욱을 데려간다. 그러자 시 공부를 같이 하는 형사가 와서 종욱이 대신 배드민턴을 쳐준다. 피해자 가족과 선생들까지 입을 다물기로 합의했는데 어떻게 형사가 찾아왔는지 영화에서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외손자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미자가 법을 통해서라도 그에게 속죄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리라.
감독은 죄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함께 속죄의 길에 나서자고, 도덕적 감수성을 다시 찾자고 재촉한다. 특히 이 시대의 부모들은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기본을 망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이 영화를 떠올리면 지금도 나지막한 전율이 오스스 줄을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