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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망교회 2023년도 시리즈 설교>
- 설교일자: 2023년 3월 12일 주일
사순절에 생각하는 예수님의 고난
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설교 목적: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예수님은 왜 고난을 당하셨을까?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원인과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있다.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사셨기에 그런 비극적인 인생을 경험하신 걸까?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인생목표를 묵상하고 그 길을 따르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 설교를 통해서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더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묵상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설교 개요:
1. 비아 돌로로사, 고난의 길
2.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3. 우리가 기억하는 예수님의 모습
4. 예수님의 인생 목표
5.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가?
6.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7.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
8.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한 일
9.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서 떠난 사람들
10. 사순절에 생각하는 예수님의 고난
1. 비아 돌로로사, 고난의 길
오늘은 사순절을 16일 지나고 맞는 주일입니다. 앞으로 4주가 지나면 부활절입니다. 기독교회는 예수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절기를 제정하고 그 절기를 중심으로 일년을 헤아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구분하는 달력을 교회력이라고 부릅니다. 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는 성탄절과 부활절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활절을 앞두고 교회는 예수님에 대하여 가장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하여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제정했습니다. 우리는 주일에 주님을 기억하지만, 평일에도 예수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정된 것이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려고 교회는 전통적으로 기도와 금식, 그리고 선행을 실천해 왔습니다.
특별히 교회는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부르며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더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로마의 관원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후에 십자가를 지고 가신 그 길을 특별히 고난의 길이라고 합니다. 라틴어로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입니다. 성지 예루살렘을 찾는 순례객들은 이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슬픔에 잠기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순절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절기를 지키는 것을 못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절기 기간 동안에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 더 생각한다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상들이 정하여 전해준 전통에는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충분한 의미를 이해하고 나서 전통을 새롭게 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무조건 전통을 반대하는 것은 지혜가 없는 행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순절에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왜 고난을 당하셨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복음성가에 ‘왜 날 사랑하나?’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이 구주를 죽게 했네. 왜 날 사랑하나? 겸손히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 했나? 왜 날 사랑하나?’ 이 노랫말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죽으신 이유는 바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할 때 그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성경의 저자들도 그렇게 고백하며 또한 수많은 찬송가도 그렇게 노래합니다. 그 중에 몇 개를 예로 들자면,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날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내 죄 속해 주신 주께 힘과 정성 다하니’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따라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나를 위한 죽음이었음을 깨닫고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3. 우리가 기억하는 예수님의 모습
우리의 마음 속에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는 십자가의 사랑을 잘 간직한 채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신약성경의 예수님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그 공생애를 시작하시던 날부터 갈릴리와 유대 지방을 다니시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시고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에 구글포토에 10년 전의 사진이 문득 열립니다. 추억을 되새겨보라는 것이지요. 그 사진은 제가 돌아가신 저의 이모님과 마지막으로 찍은 것입니다. 환자복을 입고 함께 웃으면서 찍은 그 사진은 제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할 제 이모님의 모습입니다. 저는 저의 이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비록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모님이 저를 위해 헌신하신 시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년 동안 이모님의 집에서 함께 아들처럼 살았습니다. 그때 제 모든 것을 어머니처럼 돌보아 주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이모님의 모습은 물론 병상에서 고통을 겪으시던 모습도 있지만 함께 지낼 때 저에게 보여주신 헌신과 진실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기억할 때 우리는 죽음의 순간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저의 이모님이 병상에서 고통을 겪으신 까닭은 어쩌면 젊은 시절에 고생하며 헌신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예수님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에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수님의 삶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오신 삶의 방식과 자세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고 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유에 대하여 생각할 때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서 사셨는지, 또는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인생목표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인생목표
저는 지난 2020년 9월 20일에 예수님의 인생목표와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2년 반이 지난 지금 사순절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수님의 인생목표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의 인생목표가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죽음을 낳게 한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인생목표를 가지셨기에 그런 죽음을 당하셨을까요?
한 사람의 인생목표를 알아보려면 그가 한 말과 그가 한 일을 살펴보면 됩니다. 다행히 우리는 예수님의 언행을 기록한 사복음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 사람이 예수님에 대하여 각각 다른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조금 더 알아보려는 사람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본 예수님의 모습을 들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인생목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인생목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언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동네마다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신 그 소식은 사실 유대인들이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소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기다린 까닭은 그들이 읽고 배운 성경 이야기에 어떤 약속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말세에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모든 나라들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시고 자기 백성을 높이셔서 만국을 다스리게 하신다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약속이 기록된 성경구절은 다니엘서입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다니엘서 7:13~14, 22
유대인들은 다니엘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메시아라고도 하며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말은 하나님이 뽑아 보내실 일꾼인데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성도들의 원한을 풀어주시고 성도들이 나라를 얻게 하실 분입니다. 그 세상이 바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전하신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후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도 역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전하셨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 1:3
사도 바울도 가는 회당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했습니다(행 14:22, 19:8, 20:25, 28:23, 31 고린도전서 15:50).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인생목표와 사도들의 인생목표가 모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5.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가?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무엇이라고 설명하셨습니까?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면서 구약성경을 인용하셨습니다. 특히 이사야 61장을 인용하신 나사렛 회당의 설교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가 시작되었다는 선언으로 설명되었습니다(눅 4:18~21).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구약성경의 언어로는 희년(禧年, year of Jubilee)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모든 노예들이 풀려나며 빚은 청산되고 흩어졌던 가족은 다시 만나며 잃었던 땅을 다시 찾게 되는 해입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억눌린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희년이 되었다는 선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며 포로로 살면서 눌린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실 때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법이 통용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실현됩니다. 그러니 의롭고 정직한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나님 나라를 반기고 환영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 후에 즉시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행위설교였습니다. 예수님은 우선 병든 사람을 돌보시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눌린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들을 일으켜 세우실 때 사람들은 다시 회복되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돌보신다는 믿음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서로 돌보고 나누면서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삭개오 같은 사람들은 자기 재물을 공동체를 위하여 기증했습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를 격려하면서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이런 기쁜 날이 왔다고 소개하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사방에 점점 더 멀리 전파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가 시작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수년간 병으로 시달리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아 가족과 재회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은둔자처럼 사회와 담을 쌓고 지내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화되어 마을로 나가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새로운 세상이 왔다는 선언이었고, 하나님의 언약이 지금 여기서 성취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초막이든 궁궐이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아무리 교회라도 서로 다투면 그곳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먹을 것을 가지고 다투는 교회에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주님의 뜻을 따라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며 이웃과 즐겁고 화평하게 지낸다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6.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계승되고 확장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 선포된 곳은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는 다른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시고 사람을 이 세상의 관리자와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말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과 번영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거짓과 위선으로 서로를 속이며, 착취하고 무시하고 차별하면서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죽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실 때 세상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모습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 실현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에는 인간과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간단하고 분명하게 정리한 성경구절은 미가 6장 8절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하나님의 뜻은 정의를 행하는 진실한 삶과, 인자를 사랑하는 따뜻하고 자비로운 삶,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신앙의 삶입니다. 진실하고 자비롭고 겸손하게 사는 사람은 반드시 이 세상의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진실보다 거짓이 더 큰 목소리를 내며, 자비보다 강압이 더 앞장을 서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자기 욕심이 이끄는 대로 굴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미움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18~19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세상이 왜 예수님을 미워하고 왜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미움을 받으시고 붙들려서 죽으셨습니까?
7.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
예수님이 붙들려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이유는 예수님을 미워하던 사람들이 그를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이유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그들이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싫어한 까닭은 그들이 세상 나라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저주받은 땅에서 거짓과 강압과 착취로 자신을 배불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진실과 자비와 겸손을 실천하려고 할 때 어찌 반대가 없고 어찌 박해가 없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땅에 펼치시다가 바로 그것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서기관과 레위인들이 위선적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을 몰아내고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뒤엎고 그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당시의 지도자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진실하고 자비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수님을 민중이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고 죽이기로 모의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가르치시고 그 정신을 이루시려고 행동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죽으신 까닭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왔다고 선언하시고 그 새로운 세상을 우리에게 물려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사셨고 바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자 경륜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는 말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8.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한 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공동체 가운데서 임하고 경험되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떻게 미움을 받으시고 죽으셨는지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제자들은 한 자리에 모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십일만에 성령이 그들 가운데 강림했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제자들은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하나님 앞으로 가셨구나!’ 이것은 다니엘서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에게 가서 모든 권세를 받으신다는 예언이 바로 그것입니다(단 7:23~14). 이제 남은 것은 성도들에게 그 나라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돌보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은혜의 해가 시작되었다고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를 통하여 세워진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것처럼, 교회가 지금은 박해를 받지만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 나라를 성도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것이 이 땅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계속 전하고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공동체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교회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경험하고 나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람들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다고 확신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성도들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
9.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서 떠난 사람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오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진짜 메시아라고 사람들을 미혹하면서 진짜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성경은 거짓 선지자나 적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교회 역사에서 매우 일찍부터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한일서 4:3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세계에서 이런 거짓 선지자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JMS라는 이름으로 정명석 씨가 많은 청춘들을 유린한 사건이 대중매체를 통하여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한편으로는 교회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으로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 아이의 시절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말에 속아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점차 성장하면서 옳고 그른 것을 배우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성숙한 어른이 됩니다. 그런데 인생과 세상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휘둘리게 되며 자기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농락당하게 됩니다.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단지 먹고 자고 옷을 입고 하는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신이 누구이며 이 세상은 어떤 곳이며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자기만의 확신을 찾아서 뜻있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바로 이 질문을 가지고 사람들을 호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지 못할 때 사람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서 인생을 허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 사이비 이단 집단에서 시간과 재물을 바치는 청춘들이 그렇게 많습니다.
10. 사순절에 생각하는 예수님의 고난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사순절(四旬節)은 문자 그대로 보면 40일 동안의 절기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렌트(Lent)라고 하는데 그 원래 의미는 '봄이 오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순절이 무슨 절기인지 그 이름만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절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고자 하며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또 하나의 절기가 생겨 성가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순절은 부활절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활은 죽음에서 일어난 것이 아닙니까!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예수님이 왜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셨는가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그것을 실천하시고 그것을 이루는 공동체를 세우려고 자신을 바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순절에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할 때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일을 찾고 기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그 일에 자신을 바치셨으니 우리들도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이 땅에 세워지고 펼쳐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남겨 주신 교회를 건강하고 바르게 세우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 정신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신은 진실과 자비, 그리고 겸손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우리가 얼마나 진실했는지 잊고 살았다면 이 기간 동안에 우리는 말과 행실에서 진실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업무와 책임에 대해서도 진실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사순절을 뜻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절기 동안에 자비를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난 달 우리는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를 돕기 위해서 모금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지방회 전체가 힘을 모아 15,346,000원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번 모금에 동참했는데 정말 뜻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사순절 기간 동안에 사랑을 실천할 기회를 찾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더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사순절은 겸손을 연습하는 절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겸손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질 때마다 오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고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순절 기간 동안에 기도와 금식을 실천했습니다. 절제를 연습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연습하는 것을 가리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라고 합니다(딤전 4:7~8). 이것은 예수님을 기리고 따르고자 하는 성도의 노력입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이 사순절에 예수님을 더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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