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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장 이름으로 사는 자의 권세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21-23)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재차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아마 여러 번 들어서 다 아는 것인데 하시
겠습니다만, 그런데 안다고는 해도 사실은 자기 안에 오신 이름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
에 성영님이 가지고 오신 영혼에 맺은 이름으로서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들었기 때문에,
들어서 아는 정도를 가지고 안다고 말하는 모습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분명
히 존재이시고 절대적인 유일한 신이라는 하나님 자신을 사람에게 보이고 알려주시기를 원하셨습
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사람을 향하신 목적과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아시는 것과 같이 사람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서 성서의 말씀을 세상에 보내시고, 보내신 말씀의 시작 태초에 하나님이 천
지를 창조하시니라로 하나님이 창조주 신이시면서 이름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
지 알려주시고 그 이름에 대하여 인간이 관심을 기울여 알도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뜻을 알리시면서 또한,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이루어지게 하실 뜻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고, 마침내
그 모든 뜻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약의 믿음은 예수님
이 이루신 이름으로 주신 뜻이 자신 안에 가진 믿음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이 자기
에게서 나타나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입니
다.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모시고 이름으로 사는 즉, 이름으로 주신 뜻이 믿음이 되어서 능력으로
당당히 나타나야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대로 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성영님이 자기 안에 오셔서 계신 증거는 하나님의 이름이 와계신다는 것이요, 이름의 능력으로 세
워진 믿음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저는 우리 믿음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대로 계시된 지식을 따
라 믿는 것이 되어야 믿음에서 이탈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려왔습니다. 그 믿음은 받드시 이름을 알
고 만난 믿음이 돼야 하므로,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성경의 근거를 대주면서 입에다 아주
가져다 아주 넣어주듯이 하였고, 귀가 뻥 뚫리고 뚫릴 수 있을 정도로 말씀을 드려왔습니다. 그런
데도 사실은 여전히 자기 안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벽을 두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는
것입니다. 성영님이 그 안에 계시지 않음이 여실히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름으로 주신 분
명한 뜻이 자기 안에 능력이 돼 있지 못하니 하나님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헷갈리고, 그저 주여
주님 했다가 하나님 했다가 여호와 했다가 예수님 했다가 성영님이라고 했다가 정신없는 겁니다.
그 관계가 어떻게 되는 줄도 모르고 자기와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야 하고 맺어야 하는지 여전히 이
해 불가가 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막연하고 오리무중입니다. 귀담아듣지도 않고 흘려버리며 마이
동풍이 돼 있습니다. 안다고 해도 실제로 영으로 맺은 관계로 앎이 아니라 머리로 아는 것, 자기
머리가 가진 지식으로 안다고 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구분할 눈
이 되지 못하니 대체로 구약에 머물러 구약적인 믿음이 돼 있음을 제가 많이 접합니다. 구약 말씀
이 자기 삶에 자기양심에 자기 기분에 자기심사에 자기 형편 자기감정 등에 맞는 부분들이 많이 있
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눈을 열기보다는 그 같은 자기 뜻에다 맞는 말씀으로 주신 줄 알
고 구약을 친근히 여겨 마음과 눈을 거기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영의 믿음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육의 것들을 위한 말씀으로 삼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지적인 자기 머리를 만족시켜주는 말씀으로, 자기감정을 만족시켜주는 말씀으로 삼
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니까 시편이나 잠언이나 전도서 욥기 같은 말씀들을 문학서로 보는 것입니
다. 인간 애환을 시로 쓴 멋있는 시구로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라고 문학서라고 말합니다. 하
나님이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인간 영이 겪고 있는 고통과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가진
계시의 말씀을 지적으로 또는 감정으로 보면서 시라고 문학이라고 말하지만, 시처럼 기술되었긴 하
나 시가 아닙니다. 문학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그저 뛰어난 문학서고 높은 수준의 시가
들어있는 시의 책으로밖에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사단에게 끊임없는 죄의 참소를 받으며 엄청
난 핍박 속에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영과 혼과 육체로 당하는 그 환란의 고통에서 건져주시기를,
원수갚아 주시기를 원하는 영혼의 간절한 호소가 들어있습니다. 애통과 간구가 들어있습니다. 원수
에게서 건져주시기를 보수해주시기를 신원하여 주시기를 애통하여 간구하는 그 호소가 가득 들어있
는 것입니다. 또한, 창3:22에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하신 그 선악을 아신
인성이신 독생자가 이스라엘 신앙 속에 언약으로 와 계시면서 구하는 호소요, 죄인처럼 사람으로
오실 그 독생자 메시아의 계시가 가득 들어있는 것입니다.
말씀 방향이 옆으로 갔습니다만, 답답한 마음이 있어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봐야 하는 가를 좀 알았
으면 해서 말씀드린 것이니 이해가 안 되면 못 들은 것으로 하십시오. 이것은 영적인 이야기이기 때
문에 말씀에 관심 없는 이들이야 뭐 불편한 이야기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러니 성경 보는 눈이 그같
이 자기의 사정과 형편에 맞춘 것이면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 없으면 망한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
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니까 하나님이 누구시냐 할 때 '아 하나님은 영이시고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시고(창21:33) 어디나 계시는 무소부재이시고(시139:7-10) 능치 못 할 일이
없는 분이고 전지하시고(마24:36) 전능하신 분이고(창17:1) 변역치 않는 분이고(말3:6) 그래서 영
원불변하신 분이고 공의로운 분이고, 사랑이시고(요4:8,9) 거룩하신 분이라고(사5:16) 그 하나님은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시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할 때 하나님을 이름으로 알지 아니하고 이
같은 하나님만 아는 것이면 하나님은 너무 엄청난 분,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어서
하나님 하면 왠지 자기와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지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은 높은 자리 높은 곳에
계신 분으로만 올려놓고 스스로 하나님과 막연한 관계를 만들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
리가 이름으로 하나님을 알도록 이름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셨고 그 이름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함께
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와계셔야 하는 것, 함께
계셔야 하는 것 바로 이름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름을 히브리어로 쉠(Shem)이라고 합니다(대하2:1) 명예도 똑같이 쉠이라고 했습니다(사55:13).
또 명성도 똑같이 쉠이라고 했어요. 바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이요 하나님의 명예입니다.
사람은 자기 이름대로 살지 못합니다. 이름의 뜻이 아무리 좋아도 그 뜻대로 살 수도 없고 희망이
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불행을 안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인간의 이름 정
도로만 생각한다면 죽었다 살아난다 해도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명예요, 하나님의 존재요,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권위요, 권세요, 능력입
니다. 이름으로 구원과 생명 얻는 능력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 바로 이름
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 이름으로 알려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알면 하나님
을 아는 것이요, 이름으로 사람 안에 오실 수 있는 것이요, 이름이 오시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
다. 이름이 오시면 삼위 하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 무
소부재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너무나 엄청난 분, 도무지 사람이 하나님을 알 길이 없
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이 누구이신가? 어떤 분이신가를 알리실 때에 그같이 하나님의 이름
을 하나하나 알려주시면서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하나
님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으로 주시는 복을 알고 받아들였을 때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스스로가 얼마나 귀히 여기시고 얼마나 존중히 여기시고, 자
신의 이름을 스스로 위하시고 스스로 높이신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고 또한 사42:8에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
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이
름이 여호와이신데 사단에게 하나님 영광 즉, 여호와의 이름을 주지 아니하신다. 여호와의 이름의
영광을 주지 아니하신다. 여호와의 이름이 받을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신다고 하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문론이지만,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그에게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
면 다 사단에게 있는 것이니, 그런 자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된 그 모든 복
은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주시는 그 영광된 복으로 만나시
고 찬송 받으시겠다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으로 대대로 기억해야 하는 하나님의 칭호라고(출3:15)하셨
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너희가 영영히 기억해야 되는 너희 자손 대대로 섬기고 사랑하고 기념해
야 되는 이름이라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는다 하면서 참으로 어리석으리만큼 하
나님의 이름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 속에 이름이 없어요. 하나님은 이름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이름으로 만나주시고 이름으로 영광된 복을 주시고, 그 이름을 하나님이 스스
로 귀중히 여기시며 보호하시는 이름이라는 것을, 이름으로 믿는 자 안에 오시기를 얼마나 원하시
는지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여 주님을 이름인 것처럼 부르면서 주여 주님만
찾고, 여러분 주여 주님으로는 우리 안에 오실 수 없어요. 분명히 알고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부르는 것으로도 오실 수 없습니다. 주여 주님 하는 것으로 귀신이 떤다고 했습니까? 떨일
없어요. 자기도 사람들에겐 주님인데, 자기도 사람들의 하나님인데, 사단이 지금 하나님처럼 속여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데, 주여 주님, 하나님 한다고 귀신들이 대답하고 나오는 것이지 그것으로
떨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해도 오실 수 없습
니다. 이름을 알고 이름을 영접하는 자 안에 이름으로 오시겠다고 하셨어요. 오늘날 지도자들이 하
나님도 이름이라고 말하고 있고 심지어 아버지도 이름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이름이라고 했습니까? 아버지가 이름입니까? 하나님 하는 것은 천지와 만물
을 창조하신 유일한 신이라는 것 창조주라는 것을 말하는 뜻에서 부르는 부름이에요. '아버지'하
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났기 때문에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로서 부르는 호칭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이름이라고 아버지를 이름이라고 말함으
로써 사람들의 믿음이 혼돈을 겪도록 방해자의 역할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관계에
대해서 혼동하지 않는 것이 자기의 믿음을 바르게 가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면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이 무엇이라 알려주셨습니까? 여러분이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가르쳐주신 것을 여러 곳에서 만났을 것입니다. 출3장에 하나님께서 이
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모세를 불러 "그 백성에게로 가라 이르실 때에, 백성
이 묻거든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그리고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다"라고 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라 하셨습
니까? 출6:2-7까지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여호와라 하신 것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시다 하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여호와라 하셨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하셨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신데 구원하시겠다는 뜻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하시는 하나님
을 거역하는 자는, 듣지 않는 자는 심판하신다는 뜻도 가졌습니다. 우리 출6:2-8까지 말씀을 보겠
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나는 여호와로라 라고 이름을 계속 강조하셨습니다. 또
한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고 백성들에게도 반포하라고 계속 이르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로라 즉 아
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로 언약한 대로 그 자손을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
서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구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들여 그 땅을 그들의 기
업으로 삼게 함으로써 바로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백성으로
알게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는 했지만(창12:8 창28:12), 전능의
하나님 즉 창조주 하나님 엘로힘으로만 나타났고 여호와 이름의 뜻은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6에서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 나는 여호와라 나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이
스라엘의 하나님이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단의 속박에서(애굽은 세상, 사단을 의미)
구원하시겠다고 언약하신 이름이구나 하는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서는 창세기 2장에서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알리셨습니다. 그러면 이때는 사람이 선악과 먹는 죄를
짓기 전에 말씀입니까? 먹는 죄를 짓고 난 후의 말씀입니까?
이 질문은 창세기 말씀에서 수 번 했습니다. 창세기 말씀뿐 아니라 다른 말씀에서도 여러 번 질문
했습니다. 너무 중요하여서 반복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하는 이런 것만 알
려고 하지 말고 이름을 알라는 말입니다. 이름을! 이름을 알아야 성영님이 이름으로 오셔서 자기
안에 계시고 그 이름으로 사는 능력이 됩니다. 전능하신 것 아무리 알아도,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
님! 해도 그것 가지고는 자기 안에 오시는 것 아닙니다. 그러니까 선악과 먹는 죄를 짓기 전에 이
미 하나님께서 여호와로 등장하셨습니다. 왜냐? 지음을 받은 사람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다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상관없이 구
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일까요?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이름입니다. 출3:15에.....이는 나의 영원한 이
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했습니다. 시135:13에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기념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했습니다. 호12:5에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
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했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언제나 영원히 기억할 이름이라는 말입니
다. 사람(죄인)을 구속하시겠다는 약속의 이름이므로 그 이름을 영원히 대대로 기억해야 한다는 말
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여호와의 이름에 대해 분명히 아셨습니까? 그러면 이스라엘이 대대로
기억하여 기념할 이 이름을 오늘날 우리가 영접해 들이면 우리 안에 오시는 이름일까요? 아닙니다.
여호와는 구약시대 자기 백성에게 언약하신 이름입니다. 이것이 구분돼야 합니다. 만일에 오늘날
'여호와여'하면 그 사람은 어디 사람입니까? 구약 사람일 수도 없으면서 구약 사람에 있겠다고 하
는 무지입니다.
그다음 창22:14에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다 아는 일이니
더 설명하지 않고 생략하겠습니다. 이레는 무엇을 의미한다고요? 준비하시는 하나님, 구원을 언약
하신 하나님이 죽음에 처한 백성을 죽음에서 구하시려고 제물로 드릴 양을 친히 준비한다는 뜻입니
다. 친히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속사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시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아! 구원을 위해서 제물을 친히 준비
하시는 하나님이시구나"하고 알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다음 출17:15에 하나님을 '여호와 닛시'라
고 불렀습니다. 닛시는 우리말로 승리라는 말입니다. 모세가 아말렉과 싸워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런데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계속 손을 들고 있었더니 이스라엘이 깨끗이 이겼습니다. 모세가 그곳에서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구원을 언약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단과 대대로 싸우실 것
인데, 그 싸움은 누구의 승리로 끝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
들이 이 사건을 보고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래서 승리하게 하셨다. 손을 든 것은 기도했다는 것이고 손을 내린 것은 기도를 멈췄다
는 것인데 기도를 그치면 이스라엘이 지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우리가 승리하려면 쉬지말고 부르
짖어 기도해야 된다'라고 거짓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
는 거잖아요? 그것도 산 아래서 하면 안 들릴까 봐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
마나 무지한 일입니까? 그런데 모세가 기도하러 올라간 것이 아니에요. 기도한 것이 아니고 손을
올린 것입니다. 손을 올려서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다는 승리의 표시를 나타냈습니다. 손을 높이
들어 올려서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것을 표시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단과 싸움에서 누가 깨
끗이 승리하셨습니까? 하나님(예수님) 그래서 '아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다음엔 렘23:6에서 '여호와 찌드케누'라고 해서 바로 여호와 하나님은 의가 되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어요. 우리 인간은 의가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들어가는 의가 없습니다. 죄지었기 때문에
의가 없다고요? 처음 지음을 받은 때부터 하늘 가는 의가 없습니다. 하늘에 들어갈 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의가 없는 사람 즉, 자기의 백성의 의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하늘에 들어갈 의가 없는 백
성의 의가 되신다는 것을 언약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다음 출15:26에서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라고 하셨습니다. 라파는 우리말로 무엇입니까? 치료하시는 하나님, 치료를 약속하신 하나님,
고치시겠다고 언약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영을 고치시고 혼을 고치시고 육체의 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다음 삿6:24에 '여호와 샬롬'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평
강이다. 평안 주시는 하나님이다. 하늘의 안식이 없는, 평안이 없는 자기 백성에게 안식 즉, 평안
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다음 겔48:35에 '여호와 삼마'라고 했습니다. 삼마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 즉 우리
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 내 삶에 함께 계시겠다고 언약하
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함께하는 것은 옆에 와계신 것을 말합니까? 아니요, 성전 삼고
우리 안에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시편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해서 목자는 '여호와
라하' 바로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자기의 백성을 어떻게 돌보시는가를 잘 표현해주고 있지 않습니
까?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복입니다. 이 복이 따르는 것이라면 도대체 염려가 웬 말이겠
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창49:24에 보면 야곱이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 그리
스도의 나실 것의 예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하신 모든 복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온전히 이루셨다는 말입니다. 제가 여호와 하나님을 말할 때마다 왜 언약하셨다고 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구약은 이루신다는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하신 모든 복이
바로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름 예수님 이름으로 오시더니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뜻이 그 이름에 다 들어왔습
니다. 우리를 죄에서 사단에게서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제
물이 되어 주신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양입니다. 제물입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
가 되어 영원한 아버지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날마나 우리에게 말씀의 꼴로 먹이시고 생명의 충
만을 얻게 하시는 목자입니다. 바로 우리의 예수님이 사단의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죽음에서 살
아나 깨끗히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골2:15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했습니다. 의가 없는 우리에게 의가 없
어서 하늘에 들어갈 수 없는 우리에게 의가 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
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의로 얼마든지
의롭게 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예수님이 우리의 영을 고치시고 혼을 고치시고 육체의 질
병을 치료하여 나음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더욱 고침을 받으면서 나아가고 있
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의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안을 끼쳐주셨음을 모르는 이가 있습니까? 예수님
은 우리의 안식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평안입니다. 샬롬! 한다고 해서, 평안하라고 한다고 해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 안에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 친히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또한 우리를 위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
비하러 가노니"하시더니 우리의 마지막 가야 할 처소를 예비해주셨지 않습니까?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언약하신 여호와 삼마로 오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부활
하여 승천하시면서 성영님을 보내시고 우리 안에 오셔서 함께 먹고 자고 일어나는 연합한 삶으로,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고 하신 이 함께하신 분이 바로 우리의 예수님이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23에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뭐라고요? 임마누엘, 너희에게 와서 함께 있겠
다고 하신 그 약속대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오늘 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
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 그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구
원하시는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고 만나신다고
성전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실 성영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예수 그 이름을 가지
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영을 받으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창조주의 이름입니다. 사단의 권세를 깨트리신 승리의 이름입니다. 우리 영과 혼
과 육체가 고침을 받고 치료되는 이름입니다. 죄인인 내가 용서받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으로 생명
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이름이요, 용서의 이름입니다.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이름이요, 우리에게 평강 주시는 이름이요, 우리에게 의가 되는 이름이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이름이요 나를 영원토록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보증하시는 이름이요 귀신이 쫓겨나는 이름이요 이같
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약하셨던 그 모든 영광의 복이 예수님 이 이름에 다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이 귀한 이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기업으로 받게 하여 이 이름의 엄청난
뜻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 자신을 동등
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권위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는 조금
도 차이가 없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가질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권위를 갖
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 그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는데 그 이름의 권세
가 어느 만큼이냐? 빌2:9-11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
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
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같이 예수
님 이름 앞에 천사도 사람도 악한 영도 모든 피조물이 모든 무릎을 꿇게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1:17-23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저도 물론 여러분이 이 예수님 이름 알
기를 참으로 원하는 겁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
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이름의 권세가 바로 하나님의 큰 능력임
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
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해서 세상 임금인 사
단을 정복하신 이름이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 앞으로 있을 그 세상까지도, 천년 시대 그 세
상까지도 이 이름이 뛰어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골2:9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했습니다. 저는 과거에 이 말씀에 크게 충
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이름이 이렇게나 큰 것이구나! 이렇게 어마어마하구나! 그래서 저는 이
이름 알기로만 작정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에 큰 복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지신 그 신성이 육체로 거하시고,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것이 예수님께 충만하다는 것입니
다. 예수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이름이신데, 구원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신성
의 충만한 것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이름이고 닛시의 이름이고 이레의 이름이고 라파의 이
름이고 샬롬의 이름이고 이 하나님의 충만한 것이 다 있다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골2:10에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했습니다.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충만
이 충만하여졌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에게까지 충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의 이름에 있는 이 복이 우리에게 충만하여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엄청난 복을 우리가 상속받았
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믿음이 돼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여러분이 참으로 믿습
니까? 정말 믿어요? 예수님의 이름의 신성의 충만한 것이 여러분의 것이 되어서 그 능력으로 살자
는 말입니다. 앉은뱅이가 그 이름으로 일어났어요! 장님이 그 이름으로 눈을 떴습니다. 귀먹은 자
가 그 이름으로 듣게 되었어요. 물론 영적 눈먼 것, 영적 귀먹은 것 등을 의미하지마는 육체의 눈
먼 것, 육체의 귀먹은 것도 다 그 이름으로 성하게 되었습니다. 천사들도 인간들도 마귀 귀신들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이 무릎을 꿇는 이름입니다. 구원과 영생
과 생명과 능력과 부유의 복이 예수 그 이름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
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하는 그 하나님을 안다고, 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기 전에
먼저 진짜 무엇이 믿음인지를 좀 알고 믿으라는 얘기입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이 이름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에 대한 믿음만 확실하다면 누구든지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이름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에요. 마술 부리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능력이에요. 능력! 영생케 하는 능력입니다. 승리케 하는 능력입니다. 치료하는
능력이에요. 부유케 하는 능력이에요. 기쁨의 능력입니다. 평화의 능력이에요. 예수님의 능력의 크
기는 예수님의 가치의 크기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있으면 각설이 타령하는 사람들
처럼 사는 것이 아니에요. 이 이름의 권세를 안 바울은 고전2:2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어요. 저도 물론
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저도 물론이에요.
세상은 다 배설물과 같더란 말이에요. 정말 세상에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어요. 세상 것
은 아주 무식하기로 작정했어요. 그러니까 지금 배웠다고 머리가지고 나온 사람들 보면 정말 한심해
서 말이지, 아니, 예수님 아는 데에 온 초점을 둬야지 머리로 나와서 성경 지식 쌓는 학문 하고 있
습니다. 학문처럼 연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많이 배운 것이 자랑이 아니에요. 제가 보니 그렇단
말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머리로 성경을 대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의도와 빗나간 것들로 풀어서 자
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일을 하더란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성경은 글 읽을 줄만 알아도 성영님
이 계시면 성영님으로 성경의 뜻을 아는 거예요. 성영님께서 알게 하시면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
영님 의지하면서 내가 좀 못 배웠다 할지라도 탄식할 것도 없고 내가 좀 못 가졌다 해도 탄식할 것
없습니다. 왜냐? 누구에게나 문을 열어놓고 네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 이름을 알고 예수님을 영접
하면 내가 들어가서 너와 더불어 먹고 마시고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셨습니까?
너무 이 이름의 권세가 크니까, 너무 이 이름의 복이 크니까 세상 것 몰라도 좋더란 말입니다. 세
상 것 문 닫아버리니 예수님만 알고 보게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만 알게 되니 예수님 안에 있는
하늘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걱정, 염려, 두려움 없어요. 오늘날 세상 바깥에 얼마나 흉
흉한 소식들이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까? 그들 속에 예수님의 이름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
줄 아세요? 그들 속에 주님이 있습니다. 자기 주님! 그래서 그런 것 가지고 사람들 미혹하고 하나
님 말씀인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처럼 속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모실 수 있는 것
바로 이름입니다. 정말 세상 것 아무것도 몰라도 좋은 거예요.
그래서 빌3:7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했습
니다. 왜냐?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저도 고상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 우리 영혼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
한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늘 배고프고 목마르고 갈증만 납니다. 나를 향하게 하려고 애써야
하고 조금만 소홀하면 불만하고 얼마나 갈증 나는 것이냐고요, "내가 너를 위해서 피 흘렸다. 너를
영생하게 하려고 몸 찢었다"하신 예수님을 내가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내가 행복한 것입니다. 내
가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위해서, 아니 나
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겨 잃어버려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일찍이 이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것이 저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이 말씀이 여러분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
속하신 모든 것, 구약의 이름으로 언약하신 그 뜻을, 창조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이름을 나타내
자신을 알리신 그 모든 이름의 뜻을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름에 다 있습
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름을 사용함으로 매일매일
평안을 경험하고 치료를 경험하고 승리를 경험하므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
는 자를 왜 성도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이 와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은 거듭
난 자 안에 오시기 때문에 성도라고 하는 거예요. 불신자라고 하는 것은 세상 것, 세상 문화에 속
한 것을 갖기 원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형상 같은 것들, 환상 같
은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형상 같은 것, 환상 같은 것이 아니에요.
어떤 이상한 신비적인 것들이 아니에요. 바로 하나님의 명예가 걸린 그 하나님의 이름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믿는 자, 하나님의 명예이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주셔서 구원과 부유와 권
세와 능력이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너무 무한하고 커서 막연할 수밖에 없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던 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인간에게
이름으로 주시더니 그 이름을 바로 예수라는 이름에 모두 넣어서 아들을 보내시고 그 아들 예수님
은 또 그 이름을 가지고 성영님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아주 넣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믿
는 자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셨으니 이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천국 죽어봐야 가는 것입니까? 지금 내가 천국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이신데 천
국이신 예수님이 내 안에 있으면 내가 이미 천국인데, 사람들이 뭘 꼭 죽어봐야 안대, 죽어봐야!
천국인지 아닌지 죽어봐야 아는 것은 그때도 천국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천국이 없으니 죽어
서도 천국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살아서 모르면 죽어서도 모르는 것이요 지금 천국 없으면 죽
어서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어야 천국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서 천국을 가져야 하는 거예
요. 가져야 천국이지 갖지 못하면 어떻게 천국입니까? 자기 것이 아닌데...., 그러니까 이것을 여
러분이 분명히 아시고 예수님의 그 이름을 모르면 더욱더 깊이 아는 이름으로 자기 안에 오신 이름
이 되고 '내가 이 이름을 사랑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
로 승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하고 이름을 사랑하시고 이름 때문에 사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 천국의 이름 엄청난 그 예수님의 이름을 주시고 그 이름으로 사는 하늘의 복 주신
아버지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한 감사드립니다. 아멘!!
제 15 장 이름으로 사는 자의 권세.p281-p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