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의 첫 번째 문제점은 그것이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양태일 뿐이라는 데 있다. 한국 교회에서 우려하는 기복신앙의 양태는 결코 영적인 기복신앙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영적’이라는 말과 ‘기복신앙’이란 말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한발 양보해서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한국 교회의 기복신앙 실태는 결코 영적인 기복신앙이 아니다.
한국 교회의 기복신앙은 자신의 물질적, 육체적 복을 위해 비는 미성숙한, 더 심하게 말하면 천박한 신앙일 뿐이다. 여기서 미성숙한 신앙이란 자신의 건강, 재물, 출세 등을 위해 날마다 시간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을 말한다. 선을 행하고 악을 금하는 목적이 복을 얻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될 때, 그것은 바로 저차원적인 종교윤리가 된다. 기독교의 신앙은 결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저차원적인 윤리와 동일시될 수 없다.
한국 교회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기복신앙 설교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영적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기복신앙을 자제하고 좀 더 남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교회가 복 받으라고 외치고, 부자 되라고 축원한다. 심지어 복 받지 못하고 부자 되지 못하면 신앙이 없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심까지 받아야 할 지경이다. 심지어 돈을 많이 벌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추켜세우지만, 정작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는가에 대해서는 말하는 이가 별로 없다.
이런 교회의 기복신앙은 외적 성장주의로 빠르게 치닫는다. 이 교회의 외적 성장주의는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현상 가운데 하나다. 대부분 한국 교회들은 크고 안정적인 교회로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목회의 1순위는 ‘교회 키우기,’ ‘교인 늘리기’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대형교회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히 물질적인 풍요다. 이것은 교인수와 직결되는 문제다. 많은 교인들이 교회 안에 몰려들어야 교회는 재정적으로 자립하고 그 자립의 토대 위에 큰 교회당을 세울 수 있다.
한국 교회의 ‘교회건축 신드롬’은 교회 기복신앙의 결정체다. 이것은 교회당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현상일 수도 있다. 구약에서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았던 신앙이 오늘날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신앙의 모범인가? 구약의 성전은 신약의 교회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성전이라는 건축물에 갇힌 하나님은 이제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살아 계신다. 교회는 바로 신자 자신들이요, 신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어디나 신자들이 모여 예배하는 곳이면 교회당이요, 예배당인 것이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36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