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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자비행과 서정적 사랑시학의 진실
--해성 시집 『하얀 고무신』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인생 열차’에서 조감하는 ‘존재’의 인식
현대시의 중심축은 어차피 ‘내 인생’의 행로에서 절실한 체험으로 각인되어 불망(不忘)의 관념으로 재생하는 이미지가 소재와 주제로 발현되는 것은 어쩌면 시 창작에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시법(詩法)으로 안착되고 있다.
이러한 시적 발상이나 동기는 그 시인이 체험한 인생 내면의 형상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생성한 이미지는 상황 설정이나 전개에서 명징(明澄)한 주제를 적시하게 된다. 이것이 현대시의 양상(樣相)이며 한 형태(形態)로서 시의 정신이나 위의(威儀)에 상당한 범주(範疇)의 의식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 해성 스님이 상재하는 시집 『하얀 고무신』을 일별하면서 거기에 잠재해 있는 그의 시적 발원이 그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서부터 시간성(현재, 과거, 미래까지)에서 동행해 왔거나 지향해야 할 정표(情表)가 ‘인생 열차’라는 정감이 포근하면서도 짙게 현현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우선 그는 ‘무엇을 / 어떻게 쓸까 // 푸른 산천 / 흐르는 강 / 모래알처럼 많은 시재(詩材) / 끝없이 사유하다 // 선택의 혼돈 / 끝없는 늪 속으로 함몰되며 / 흘리는 눈물 // 오늘도 / 활짝 필 시상은 / 안개 속 실빛 반짝임처럼 / 요원하다(「시 쓰기 」 전문)’는 시에 대한 완전한 이해보다는 앞으로 어떤 지향적인 인생관으로 시 창작에 임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앞서고 있다.
해성 스님은 이러한 난제(難題)를 작품 「시(詩)」 전문에서 ‘고독한 어둠 안고 / 노을 닮은 눈빛으로 / 가냘프게 흔들리는 들국화 // 허물어진 돌담 옆 / 거미줄에 부서지는 소리에 / 그림자 이슬로 사라지고 // 모양도 없는데 / 홀로 움직여 깊이 숨은 / 그대 // 그대를 품고자 / 방황하는 먼 그곳.’이라고 해법을 제시하여 시와 인생에 대한 상관성이 화해를 모색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누군가가 ‘인생이란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다. 이 두 가지를 지양하고 종합해 나가는 과정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생에 관한 진정한 의미가 작품에 투영될 때 우리는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 날개 기대어
흘러가는 구름에
세월 속 사연 싣고
공허한 마음자리
다독이며 달린다
창문 밖 비치는
희로애락의 풍경
꽃날개 흩날리며
쉼 없이
인생의 종점을 향한다
내릴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내 인생의 기차여행.
--「인생 열차 」 전문
해성 스님은 이처럼 ‘인생 열차’를 타고 운행을 시작했다. ‘바람 날개 기대어 / 흘러가는 구름에 / 세월 속 사연 싣고’ 이제는 ‘쉼 없이 / 인생의 종점을 향’하고 있다. 그의 ‘인생 열차’의 차창 밖에는 ‘공허한 마음’과 ‘희노애락의 풍경’이 펼쳐지는 인생 행로를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인생의 종점’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는 이제 ‘내릴 수도 / 멈출 수도 없는 / 내 인생의 기차여행.’은 바람과 구름과 세월의 교감으로 시적 상황을 설정하고 있어서 해성 스님의 사유에는 무한한 ‘공허’를 천착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시적 원류에는 ‘나’와 ‘삶’이라는 동류의 지향점을 읽을 수 있는데 대체로 ‘나(혹은 자아(自我))’ 또는 ‘내 인생(존재의 인식)’에 대한 고뇌와 갈등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그의 내면에 침잠(沈潛)해 있어서 사유의 깊이를 차분하게 탐구해야 할 것이다.
내 마음의 그림자는
어떤 모습일까
삶의 길목
어두운 그림자 서려
힘이 들어도
인생의 실타래
끝없이 이어져도
기도와 수행으로
일어서는 모습
마음을 다스리며
나아가는 자신
내 마음의 그림자
뒤돌아보며
포근한 미소
다정한 말을
건넨다
--「마음의 그림자」 전문
여기에서도 ‘내 마음의 그림자’라는 상황을 정점으로 해서 ‘어떤 모습일까’라는 의문으로 설정하여 ‘삶의 길목’에서 다양한 자신의 내면의 진실을 분사하고 있다. 그곳에는 ‘어두운 그림자’와 ‘인생의 실타래’ 등의 고뇌가 스며있으나 이를 ‘기도와 수행으로 / 일어서는 모습 / 마음을 다스리며 / 나아가는 자신’임을 당당하게 천명(闡明)하면서 나아가는 자신을 밝히고 있다.
해성 스님은 ‘하늘에서 내려준 /이 하얀 도화지에 /무슨 그림으로 / 내 인생을 그릴까(「흰눈」 중에서)’라거나 ‘바람에 / 얼굴을 비벼대는 / 수줍은 소녀 같은 / 청순함에 / 내 마음도 담아본다(「들꽃」 중에서)’ 그리고 ‘닫혔던 가슴 열리고 / 허공 향해 속삭인다 / 행복 / 내 안에 있다고(「청수사 약수터」 중에서)’는 등의 어조와 같이 해성 스님의 ‘인생 열차’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채색되고 있는 것이다.
2. ‘그리움의 심연’에서 탐색하는 영혼
해성 스님이 포괄하는 내적인 진실의 행로는 영원한 불망의 언어인 ‘그리움’이 상존(常存)하고 있음에서부터 탐색해야 한다. 그는 어떤 외연(外延)에서 발현된 체험적인 관념의 묵시(黙示)가 강렬한 이미지로 발산하여 시적인 진실로 형상화하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대체로 그는 보편적인 사물에서 ‘그리움’을 창출하고 있는데 작품 「하얀 낮달」에서 ‘인적 없는 산모퉁이 / 적막 흐르고 // 고독에 흔들거리는 갈대 / 홀로 쓰러진다 // 그리움 하나 / 시리게 젖어드는데 / 구름 사이 / 외롭게 밀려가는 // 하얀 낮달’이라거나 작품 「비의 가슴」에서 ‘비 그친 후 / 금빛 노을에 쓸려가는 / 그리움 하나’ 등등으로 그가 착목(着目)한 만유(萬有)의 자연사물에서 투영된 관념의 보루인 ‘그리움’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자락 바람소리
가지마다 맴도는데
가슴 적셔오는
그리움의 심연
삶의 뒤안길에서
아른거리는 추억
들여다보니
한없이 흔들리는
여린 마음 한 조각
한 폭의 그림 되어
허공에 걸린다
--「마음」 전문
우선 관념에서 생성하는 ‘그리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살펴보자. 해성 스님의 심연(深淵)에는 ‘삶의 뒤안길에서 / 아른거리는 추억’이 산재(散在)해 있다. 이것이 하나의 원류로 생성하여 이미지를 제공하고 이 이미지는 바로 그의 진실이 내재한 작품으로 승화(昇華)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바람소리가 가지마다 맴돌거나 가슴 적셔오면 ‘한 폭의 그림 되어 / 허공에 걸린다’는 여린 마음이 그리움으로 형상화하면서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다시
‘인적 없는 산모퉁이 / 적막 흐르고 // 고독에 흔들거리는 갈대 / 홀로 쓰러진다 // 그리움 하나 / 시리게 젖어드는데 // 구름 사이 / 외롭게 밀려가는 // 하얀 낮달(「하얀 낮달」 전문)’과 같이 관념에서 외적인 사물(‘하얀 낮달’)에서도 투영하고 있어서 관념과 사물(내적 혹은 외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혼용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그리움은 다음과 같이 대체로 사물이미지(특히 화훼류(花卉類))에서 다채롭게 추출하는 경향을 감지할 수 있다.
-추억에 취해 / 리움을 다독이는 / 갈대의 자장가 // 노을에 흔들린다(「갈대」 중에서)
-선방 문 두드리는 그 향기로 / 그리움 가득 / 도량에 떠도는 붉은 꽃(「매화」 중에서)
-가슴 속 그리움으로 / 지친 몸 감싸주는 / 너(「달맞이꽃」 중에서)
-임 향한 그리움 / 노랗게 갈무리하고 / 어느새 홀씨되어 / 허공을 날아간다(「민들레」 중에서)
-그리움 가득 추억을 담아주는 / 아름다운 들꽃 /야생화(「야생화」 중에서)
-한 자락 그리움 / 그대 그림자로 / 머물고 싶은 / 이 영원(「수선화」 중에서)
한편, 그리움의 저변(底邊)에는 심리적인 변전(變轉)으로 생성하는 ‘아쉬움’이 전제되거나 후속(後續)하는 그의 시법을 읽을 수 있는데 다음 작품에서 그 실체가 여실히 현현되고 있다.
어둠을 쏟아내는
세찬 빗소리
창문 두드리고
나뭇잎 흩날리는데
밤잠 설치는
아쉬운 이별
흐느끼는 들국화
보고픈 몸부림에
쓰러지는데
빗물로 토해내는
고달픈 영혼
지워지지 않는
인연의 슬픈 굴레
--「가을비」 전문
그렇다. 해성 스님의 심저에는 ‘밤잠 설치는 / 아쉬운 이별’과 ‘빗물로 토해내는 /
고달픈 영혼’이 그리움을 유발시키는 원천(源泉)이 되고 있다. 이러한 사연은 ‘가을비’의 ‘어둠을 쏟아내는 / 세찬 빗소리 / 창문 두드’릴 때 더욱 생생한 환영(幻影)으로 발현하는 특징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의 흔적’은 작품 「세월」에서도 ‘힘찬 날갯짓 / 젊음을 수놓고 / 활짝 열린 가슴으로 / 영원을 다짐하던 꿈 // 세월이란 이름에 / 흔적 없이 무너져 / 낙엽으로 흩날리는 / 인생의 발자국 // 창문 밖 / 일렁이는 바람소리 / 아쉬움의 흔적 달래며 /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라는 어조로 ‘세월’을 한탄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는 ‘잔잔한 파도소리 / 외로움 달래고(「수선화」 중에서)’라거나 ‘쉼 없이 / 솟구치는 외로움 / 모래섬 샇는다(「물결」 중에서)’, ‘산등성 조각달 / 마중 나와 달래주는 / 외로움(「능소화」 중에서)’ 그리고 ‘세월 속에 묻어버린 아픔을 (「나팔꽃」) 중에서’와 같은 어조로 외로움과 아픔 등이 그의 진한 그리움의 표상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3. 자비(慈悲)와 인본주의의 화해
해성 스님의 불심(佛心)은 남다르게 빛난다. 불교의 교직자로서의 신앙이 바로 시와 접맥하면서 발현하는 시정신은 자비의 불심이 용해되어 문학(특히 시)이 갈구하는 인본주의(humanism)와 동질의 근본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 시집의 표제시(表題詩)가 되는 작품 「하얀 고무신」은 해성 스님에게 내재된 덕목이나 염불 등 성직자로서의 수행이 바로 그 과정에서 동반하는 심경(心境)을 적나라하게 적시하면서 ‘달빛으로 꿰매어 / 댓돌 위에 놓’여 있는 ‘하얀 고무신’의 애환은 참으로 감명적(感銘的)이다.
처음처럼 하얀 마음 찾아서
머나 먼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땀과 눈물로 찌든 때
마음으로 씻어내며
끝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
혼자 가는 외로움
빗물에 스며드는 험난한 길
달빛으로 꿰매어
댓돌 위에 놓으니
바람에 낙엽 한 잎 들어앉는다
깊은 밤 지새우며
가슴속을 떠나지 못하는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하얀 고무신」 전문
이 작품의 전개는 먼저 ‘처음처럼 하얀 마음 찾아서 / 머나 먼 길을 걷고 또 걷는다’는 도입부분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그가 수행길을 떠나는 ‘하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머나 먼 길’은 계속해서 ‘땀과 눈물로 찌든 때 / 마음으로 씻어내며 / 끝없는 길을 걷고 또 걷’게 되는데 이 길은 ‘빗물에 스며드는 험난한 길’이며 외롭게 혼자 가는 고행(苦行)이다.
해성 스님은 결론으로 제시하는 ‘깊은 밤 지새우며 / 가슴속을 떠나지 못하는 /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을 / 살포시 내려놓는다’는 안도의 심경으로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탐진치 삼독심’의 번뇌를 내려놓는다는 형상은 우리 인간들과의 해악(害惡)으로 상관하여 이를 화해하는 시적 진실과 동일한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불심은 세속의 인연들과 초월하지만 대중들을 선(善)으로 교화하는 기능도 모든 불교경전에서 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실생활(real life)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세계와 불가분(不可分)의 상관성을 갖는 것이 불도(佛道)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애로운 그 미소
관세음보살
천개의 눈으로 모든 중생 살피고
일천 개의 손으로 괴로움을 건지시는
자비하신 관세음 관세음보살
중생들 고통소리 자비로써 감싸고
지혜의 빛으로 무명 중생 밝혀주는
구고구난 관세음 관세음보살
우리 모두 두 손 모아 지심귀의 하옵니다
--「관세음보살」 전문
해성 스님은 수행중에서도 자비에 대한 관념을 집중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관세음보살님이다. 관세음보살(avalokitesvara)은 대자대비(大慈大悲)를 근본 서원(誓願)으로 하는 보살님으로 가장 숭배를 받는다. 대비의 마음이 많아서 세상 사람이 그의 이름을 부르면 음성을 관(觀)하여 모두 해탈을 얻게 된다고 한다.
그는 천개의 눈과 일천 개의 손으로 ‘중생들 고통소리 자비로써 감싸고 / 지혜의 빛으로 무명 중생 밝혀주는 / 구고구난 관세음 관세음보살’을 오늘도 부르면서 ‘우리 모두 두 손 모아 지심귀의 하옵니다’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자대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님을 향한 그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어서 우리의 공감을 흡인하고 있다.
-중생의 목마름 / 자비로 채워주니 / 그윽한 자태 / 관세음의 미소로다(「연꽃」 중에서)
-아름다운 행복의 문을 / 끝없이 열어주는 / 우리들의 사랑의 손길 / 자비의 메아리여 (「우리는 모두 하나」 중에서)
-영원한 자유 열리고 / 행복이 다가오는 소리 / 너와 내가 하나 되는 세상의 주인 / 사 랑하는 마음으로 / 자비의 꽃 피우리(「부처님 오신 날」 중에서)
-어둠이 있는 곳에 밝은 빛이 되고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고 / 사랑과 자비로움 함께 나누는 / 희망과 행복의 노래 마음껏 불러 봐요 (「날마다 좋은 날」 중에서)
-자비의 발길 내딛는 / 그 마음 자애롭게 / 그 향기 포근하게(「꽃 전시회」 중에서)
-바람결에 실려 오는 / 산사의 목탁소리 / 세상사 모든 시름 / 구름다리 건너가 / 자비로 운 님의 미소 / 행복의 등불이다 (「목탁소리」 중에서)
-향기 가득한 / 당신의 자비로움 / 어느 마음속에 / 품을 수 있을까(「나한의 미소」 중에 서)
-지난날의 아픈 기억들은 / 모두 바람에 날려 보내고 / 님의 손길 그리면서 / 자비로운 마음의 꽃 / 아름답게 피우겠어요 (「님의 손길」 중에서)
이 밖에도 ‘님과 함께 피어나니 / 사랑이 열리는 / 정토 세상 // 찬란한 빛 / 성불의 꽃이여(「우담바라」 중에서)’, ‘고달픈 중생 마음 / 어루만져 주시는 / 부처님의 고운미소 // 번뇌 망상 / 구름 타고 날아가고(「산사」 중에서)’, ‘바람으로 흐르는 / 노스님의 은은한 염불소리 / 빈 가슴 채워주는 / 거룩하신 님의 손길(「석굴암 가는 길」 중에서)’ 그리고 ‘산속 / 고요한 산사 // 서원의 밧줄 부여잡고 / 무릎 꿇은 애절함에 // 또드락 똑 똑 똑 / 터질 듯한 가슴 / 홀연히 비워낸다‘(「목탁」 중에서)’ 등의 어조와 같이 해성 스님의 불심과 시심이 융합하는 시법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4. 서정적 자아와 사랑시학의 원류
해성 시님에게서 불성(佛性)과 맥(脈)을 함께 하는 시적발상을 자연 서정에서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만유의 화훼류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데 이 사물들은 계절적인 시간성과도 동행하면서 잔잔한 서정적인 시법으로 형상화하는 특성이 있다.
특히 작품 「봄이 오는 소리」 전문에서 ‘한줌의 햇살 / 얼었던 / 땅과 눈을 녹이니 / 잠자던 여린 새싹 / 따사로운 빛 / 기지개로 눈 맞춘다 // 민등산 아지랑이 / 아른아른 피어오르고 // 새들도 지저귀며 / 친구 찾아 날아오니 // 꽃향기 안고 / 그대 가슴속에 / 포근히 안긴다’는 봄의 정경에서 전개하는 시적상황이나 이미지는 새봄의 활기찬 정감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봄의 정황(situation)은 작품 「봄바람」 「아지랭이」 「진달래」 「한줌 햇살」등에서 감응할 수 있으며 가을 소묘는 「단풍」 「가을」 「코스모스」 「은행잎」 「열매」 「낙엽」 「뭉게구름」 등에서 감응할 수 있고 겨울은 「밤새 눈 내리고」 전문에서는 ‘깊은 밤 산사 / 숨죽인 듯 고요하다 // 옷 벗어버린 나무들 / 하얀 옷 선물하는 / 산과 들 // 아픔도 시련도 / 흑백으로 물들었다 //순백의 솔바람 타고 와 / 가슴을 적셔주는 / 당신의 향기 / 그윽한데’라는 동절(冬節)의 깊은 밤의 적막에서 ‘당신의 향기’를 절감하는 시법은 참으로 안온하다.
그러나 해성 스님의 서정적 자아는 사랑의 범주(範疇)에서 탐색해야 한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삶이나 수행의 원류에는 이 사랑학이 잠재되어 있어서 그가 실현하려는 최선의 지향점은 인간의 번뇌와 고통을 탈피하는 불성으로 화해하는 시적 진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빛노을 내려앉은 산자락
나부끼던 수풀 가쁜 숨을 삼키고
뭉게구름 쉬어가는 고요한 산사
땡그렁 땡 땡그렁 땡
처마 밑 물고기 바람에 기대어
눈물소리로 나를 부른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배라며 잔잔한 미소로
어루만져 주시던
어루만져 주시던 어머니 어머니
잡은 손 뿌리치고 돌아선
이 자식 그리워 가슴 조이며
황혼 빛 그늘에서
옥 같은 모습 사라진 어머니
긴 세월 불효함에
가슴 깊이 묻어둔 눈물 감추며
풍경소리에 어머니의 사랑 담아
바람에 실려 보낸다
--「어머니의 풍경소리」 전문
보라. 해성 스님의 서정은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정의(情誼)를 흔드는 인간애에 그 기저를 설정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모정(母情)에 대한 심연에서 불망의 언어로 동화(同化)하고 있어서 공감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모정에 대한 이미지를 서정적으로 투사(投射)하거나 동화하는 시법들은 그가 착목한 자연 사물에서도 상호 연관을 갖게 하는 그의 관조(觀照)나 사유의 폭이 그만큼 광활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군고구마’나 ‘바위’, ‘호박’, ‘절구’ 등등 일상적인 사물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유추하는 특성이 정적(靜的)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뭉게구름 쉬어가는 고요한 산사’에서도 ‘잡은 손 뿌리치고 돌아선 / 이 자식 그리워 가슴 조이며 / 황혼 빛 그늘에서 / 옥 같은 모습 사라진 어머니’의 이미지를 재생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적 자아의 정립이 더욱 명징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학은 ‘어머니의 사랑 / 밤새 눈꽃으로 피었네(「군고구마」 중에서)’, ‘어머니의 기도처럼 / 굳은 의지 흔들림 없고(「바위」 중에서)’ ‘(어머니 마음 / 사랑의 손길「절구」 중에서)’‘모두를 품는 / 어머니의 가슴 / 모정의 비는 없을까(「비」 중에서)’ 그리고 ‘어머니 품속처럼 / 잘 익은 가을이다(「호박」 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다양하게 충만(充滿)되고 있다.
달 밝은 밤
눈빛 정원 눈부신데
정갈한 머릿결
숨죽인 손길과 춤춘다
쓰러질 듯
앞만 보고 걸어온
핏빛 발자취
희로애락으로 담으니
백발 선연한 세월도
텅 빈 가슴 속
잔잔한 메아리로 머문다
--「붓」 전문
다시 해성 스님의 서정적 자아의 진성(眞性)은 자연 정경에서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달 밝은 밤 / 눈빛 정원 눈부신데 / 정갈한 머릿결 / 숨죽인 손길과 춤춘다’는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 풍광에서 감응하는 서정은 바로 그가 추구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쓰러질 듯 / 앞만 보고 걸어온 / 핏빛 발자취 / 희로애락’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시법은 그가 재창조하려는 새로운 정신세계로 진행하는 대로(大路)에서 성찰과 기원이 포괄하는 사유의 근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백발 선연한 세월도 / 텅 빈 가슴 속 / 잔잔한 메아리로 머문다’는 결론적인 어조에서 적시하는 ‘백발’과 ‘세월’ 그리고 ‘텅 빈 가슴 속’의 세 박자의 음률이 바로 해성 스님 시학(poetics)의 합일(合一)이라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해성 스님은 이 시집 『하얀 고무신』을 통해서 그동안의 신행(信行)에서 획득한 인생관이 바로 존재와 자아를 인식하는 일에서부터 영혼을 탐구하는 그리움의 진원지를 모색하고 존재의 형태나 지향해야 할 지표가 바로 자비행(慈悲行)임을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들과 화해시키는 그의 가치관을 명민(明敏)하게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서정성 투영으로 자연과 인간의 화합을 위해서 사랑이라는 명제(命題)를 발현하는데 거기에서 ‘어머니’를 매개로 하여 사랑시학을 설정하고 있어서 그의 시혼(詩魂)은 결론적으로 ‘몸과 마음 여유로워 지니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네(「해우소」 중에서)’ 그리고 ‘바람 안은 노을 / 하루의 삶을 / 포근히 안아준다(「이삭」 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그의 정서와 사유에는 안정된 향방의 심성이 충만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그러나 항상 전하는 말이지만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가 그의 「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고 했다. 사람의 심중(心中)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청자(聽者)의 영혼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시심과 불심이 융합하는 좋은 시를 많이 창작하기를 기원하면서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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