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비(腹非)-②태종 이방원, 민무구 민무질에게 죄를 씌워 귀양보내 죽이다. 최근 절찬리에 방영되는 드라마 [이방원]에서 실권을 완전히 장악한 태종은 왕권에 걸림돌을 하나둘씩 제거해 나가기 시작한다. 특히 자기가 겼었던 골육상쟁의 치열한 삶을 아들에게는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권력을 안전히 장악하자 강력한 왕권 강화에 나섰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권력을 잡는데 모든 수고를 바쳤던 원경왕후 중전 민씨까지 신하로 만들어버린다. 태종 이방원이 그렇게 한 이유는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한 철저한 계산에 의한 사전 포석이었다. 고려가 부패한 것도, 고려의 정치가 흔들린 것도, 역사 속에서 그가 배운 것도 외척이 발호하면 왕권은 흔들리고 냉철함을 잃어버린다는 나름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방원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부인 원경에 대한 관계 재정립이었다. 태종 이방원은 부부관계도 군신 관계로 재정립해 나갔다. 초기에는 원경왕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대치했으나 태종 이방원이 원경왕후를 멀리하면서 매일 밤 후궁을 들이고 나아가 새로 중전을 맞이하겠다는 선포까지 하였다. 원경왕후는 온갖 위기에서 외로운 투쟁을 하다가 친정 아버지와 동생들이 처할 위기를 감지하면서 태종 이방원에게 무릎을 꿇고 부부관계를 넘어 군신 관계라는 새로운 관계로 정립된다. 중전 민씨와의 관계 재정립에 성공한 태종 이방원이 생각하기에 문제는 외척인 민씨 세력이었다. 태종 이방원의 세 아들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며 외삼촌들과 관계가 돈독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민무구와 민무질 두 외삼촌은 세자가 왕위에 오르기를 학수고대하면서 숨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에 매우 민감한 태종 이방원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경왕후 민씨 역시 숨죽이며 친정 식구들을 단속해 왔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은 양위파동을 일으켜 민무구와 민무질의 죄를 엮는다. 태종 이방원은 갑자기 어린 세자(뒷날 양녕대군)에게 양위를 선언하고 옥쇄를 세자에게 전한다. 신하들은 어전 앞에 무릎을 꿇고 양위를 철회하라는 상소를 올리지만, 태종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옥쇄를 받고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매던 세자는 어머니 민씨로부터 ‘옥쇄를 직접 돌려드려야 외삼촌들을 구할 수 있다’는 간곡한 조언을 듣고 직접 돌려드림으로 양위의 사건은 일단락되지만, 그 ‘양위를 철회하라’는 신하들의 상소에 참여했던 민무구와 민무질의 태도를 문제 삼아 즉시 그들을 옥에 가두고 제주도로 귀양 보낸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세자는 점점 장성해 가고 태종은 나이가 들면서 지쳐갔다. 신하들이 생각하기에 태종이 세자에게 양위를 일찍 하리라고 예견했는지 모른다.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민무구와 민무질은 다시 조정으로 불러들일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신하들은 어전회의에서 줄곧 제주도에 귀양 가 있는 세자의 외삼촌인 민무구와 민무질을 사형할 것을 주청한다. 태종은 골머리가 아픈데 ‘외삼촌을 살리라’는 원경왕후의 부탁을 받은 세자는 스스로 어전에 나아가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의 부탁을 저버리고 외삼촌의 처형을 주청한다. 의아했던 태종은 세자에게 거듭 본심이냐고 확인하지만, 세자는 그렇다고 답한다. 세자의 이러한 행위에는 강한 아버지 태종에게 잘 보이기 위함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태종은 민무구와 민무질의 자결을 명한다. 자기 사후에 외삼촌들이 득세할 것을 미리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왕권의 독립적인 권한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처남인 민무구와 민무질의 죄는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민무구와 민무질은 역모죄를 짓지 않았다. 다만 태종의 양위 철회를 의아해하면서 은근히 양위를 바라는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은 죄였다. 태종의 위와 같은 여러 사건에서 우린 몇 가지를 엿볼 수 있다. 첫째 죄는 만들면 만들어진다. 그것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죄로 만들어진 죄인 복비(腹非)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죄를 엮으려면 엮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간혹 뇌물 수수에 걸려드는 사람이 있다. 뇌물을 전달하는 사람이 친근하게 접근하여 돈다발을 전달하면서 몰래 사진을 찍어 고발하는 경우이다. 그것은 권력 관계에서만 아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배우자의 불륜을 의도적으로 엮어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둘째, 강력한 권력을 원하는 통치자일수록, 권력과 물욕(物慾)에 빠진 사람일수록 그 권력과 물욕 충족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지나친 권력욕과 지나친 물욕을 가진 사람의 이면에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세상 살면서 경계할 대상이다. 권력과 물욕, 성욕 등 모든 욕망은 소유욕에 해당하며 그것이 강한 사람은 결코 타인과 나누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살아가면서 강력한 권력욕과 물욕 등을 가진 사람에게는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그들은 현재는 친구이지만 언젠가는 나의 적이 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정치인들의 세계에서 그런 경우는 수없이 목격한다. 박범계와 윤석열의 관계에서도 그런 면을 엿볼 수 있다. 둘의 관계는 과거에는 형 아우의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이 서로 대치되자 공격을 가하고 방어하는 적대관계가 되었다. 문재인과 윤석열의 관계에서도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때에는 “우리 검찰총장”이었지만 나중에는 적대관계가 되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동지에서 적으로 변한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일지라도 동업은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동업의 결말은 대부분 배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역시 친구에게 배신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권력과 물욕의 내면에는 인간성보다는 지배욕과 소유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터무니없이 친절한 사람도 경계하여야 한다. ‘모든 사기꾼은 친절하다’는 말처럼 과잉 친절에도 항상 이해관계와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태종 이방원이 초기 조선의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흘린 수많은 피와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 나간 것이 역사 속에서 한편으로는 나라의 기강과 기틀을 세우는 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무수히 많음을 헤아려 본다. 현대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가 꽃피고 있는 사회이다. 합법적인 권력 외에는 그 어떤 권력도 인정되지 않으면 또한 인정되지 말아야 한다. 영화 [재심]에서 나오는 것처럼 선량한 사람에게 죄를 씌우는 일도 없어야 한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을 보면서 권력과 물욕의 속성과 복비(腹非)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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