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1347~1392)
도은 이숭인(李崇仁) 선생은 성주이씨 중시조인 *이장경(李長庚)*의 16세 손으로 성주이씨 종친의 대표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도은 선생은 고려 말의 대표적 문신이자 학자, 시인이며,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자는 자안(子安), 본관은 성주로, 경상도 성산부 용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 아래 경전과 문장을 익혔다. 14세에 국자감시에 합격하고, 16세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최연소 과거 합격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공민왕 시절 성균관 교관으로 임명되어 성리학을 보급하는 데 힘썼고, 정몽주, 문익점 등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며 많은 제자를 길렀다. 이후 숙옹부승, 장흥고사 겸 진덕박사, 예문응교, 문하사인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문신으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명나라에 보낼 문사로 수석에 뽑혔으나 나이가 어려 파견되지 못했고, 이후 명나라 사신으로 여러 차례 외교 임무를 수행하며 명 태조에게 문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친명파로 분류되며, 정도전과 함께 원나라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청하다가 유배되었고, 이후에도 권신 이인임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유배와 감금을 겪었다. 공양왕 시절에는 정몽주의 당으로 몰려 다시 유배되었고, 조선이 건국되자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황거정에게 장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문학적으로는 시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문장은 이색과 권근 등 동시대 인물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저서로는 《도
은집(陶隱集)》이 있으며, 이는 그의 시문과 사상을 집대성한 문집으로 평가받는다. 도은 이숭인은 고려 말의 혼란 속에서도 학문과 문장, 정치와 외교에 걸쳐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로, 그의 생애는 고려 지식인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한 흔적을 보여준다.
다음은《도은집 》에 실린 도은의 시 중 하나로, 유배 중의 심경을 담은 작품이다
山中無曉日 산속엔 새벽 햇살도 들지 않고
江上有愁煙 강가엔 근심 어린 안개만 자욱하네
獨坐寒林裏 차가운 숲속에 나 혼자 앉아있으니
空聽暮鴉喧 저녁 까마귀 울음소리만 덧없이 들려온다.
이 시는 도은이 유배 중 느낀 고독과 비애를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자연의 정취 속에 인간의 감정을 녹여낸 그의 시적 역량을 잘 보여준다.
도은 이숭인은 고려 말의 격동기 속에서 학문, 정치, 문학을 아우르며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생애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한 지식인의 모습이며, 《도은집》은 그 정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도은 이숭인의 행적
여주 신륵사는 1383년, 고려의 제32대 국왕 우왕(재위 1374~1388)이 건립하였으며, 이에 비각의 현판 대장각기비각을 썼으며 비문은 이숭인이 짓고 권주가 해서체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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