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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원문보기 글쓴이: 시원한 바람
더욱 풍성케 되는 비결 잠4:20-27, 요10:9-15
옛날에 대대로 자식이 귀한 집안에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을 어느 남자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금실 좋은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에게 있는 한 가지 문제는 결혼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기가 없었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토론을 한 끝에, 그 두 사람을 헤어지게 한 후 새로운 여자를 집안에 들이자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대신에 헤어지는 여자에게 무슨 소원이든지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두 사람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드디어 결정해야 할 날이 왔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식사가 베풀어졌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그 여자에게 소원 한 가지를 택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문중의 대표 되는 어른이 '무엇이든 말해라. 원하는 것을 주겠다. 약속한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여자에게 쏠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평생 살 수 있는 돈을 원할까? 아니면 농사지을 수 있는 충분한 땅을 원할까? 아니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큰 저택을 원할까?’ 과연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궁금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 시선 속에서 여자는 조용히 일어서서 자기 남편 쪽으로 가서 그의 팔짱을 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남자를 원합니다.” 갑자기 주위가 술렁거렸습니다. 집안의 어른들은 당황했지만, 소원을 들어준다고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약속대로 그 남자를 다시 그 여자에게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속한 집과 재산 전체가 모두 그녀의 것이 되었습니다.
가치관이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가치관,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게 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고 십자가의 주님만 전하기로 작정하고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해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만 바로 알고 믿어 세상 어떤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온갖 보화가 내 것이 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더욱 풍성케 되는 비결”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더욱 풍성케 되는 비결은
1.생명 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1)생명이 없는 풍성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 가운데 생명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세상 영광과 권세와 재물을 탐했던 대표적인 사람들이 사울, 아합, 여로보암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권세를 이용해 많은 은, 금, 패물과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많은 신앙의 의인을 죽이고, 백성들을 실족하게 하는 부끄러운 흔적을 남기고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망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헤롯왕이나 교권을 가지고 행사했던 종교 지도자들, 주님이 아무런 죄가 없으심을 알고도 총독의 자리를 잃을까봐 십자가 사형 언도를 내린 빌라도 등은 세상 권세로 풍성함을 누렸지만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영원한 후회만 남게 되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2)예수님은 참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보다 앞서 온 수 많은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준다며 별의 별 종교 의식과 철학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인본주의적 노력에서 생겨난 결과이지 결코 그들에게는 영적 생명이 없고, 따라서 그들은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결코 구원의 문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길을 가는 자들은 결국 멸망에 이를 뿐입니다. 오직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14:6)고 말할 수 있는 분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5:11-12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했습니다.
3)내 마음 중심의 자리를 주님께 드립시다. 주님을 영접하여 내 마음에 모신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도 마음 중심에 주님을 모시지 못하면 이기적인 자기중심 신앙이 되어 주님의 마음과는 거리가 먼 인색한 신앙인이 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예수가 전해지고 믿는 사람들이 생길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가 약하고 어려우니까 목회자들이 생활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목회자들이 교회서 나오는 성미로 연명을 했지만, 굶주리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목회를 해야 했습니다. 어느 시골교회를 목회하는 전도사님이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몇 끼니를 굶었습니다. 마침 건너 산 너머 마을에 몸이 아픈 교인이 있어서 심방을 가야 될 형편이 되었습니다. 성경책 가방을 들고 심방을 가는데 너무나 배가 고프고 힘이 없어서 더 걸어 갈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그 교회 집사님의 밭을 지나가는데 집사님이 무를 뽑고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상당히 큰 농사를 지으면서도 워낙 인색한 사람이라 교회 헌금하는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일에도 인색해서 그 동네에서 ‘노랭이’ 라고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이 그 노랭이 집사님의 무 밭 두령에 심방 가다가 기운이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지 생전처음으로 지금 밭에서 뽑은 무 한 개를 잡수시라고 주었습니다. 몇 끼니를 굶은 전도사님이 그 노랭이 집사님이 준 무 한 개를 맛있게 잡수시고는 기운을 차려 심방을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집사님이 밤에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죽어 천국에 가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한 천사가 그 집사님을 안내하여 천국창고를 보여 주었습니다. 다른 교인들은 창고에 보화들이 가득한데 자기에게는 창고에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안내하는 천사에게 더 자세하게 찾아보라고 부탁을 했더니만, 천사가 한참 동안 창고를 다 뒤지다가 무 한 개를 들고 나오면서 이것이 당신이 오늘 당신교회 전도사님 심방 길에 대접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천국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 전부입니다. 그 집사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일어나 큰 소리로 엉엉 울었는데 그 울음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까 꿈이었습니다. 크게 깨달은 노랭이 집사님은 그 다음날부터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주의 종인 전도사님도 잘 대접하고, 동네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구제도 많이 하는 좋은 집사님이 되었고 그 때부터 그 시골 교회도 크게 부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주님을 마음 구석에 계시게 하고 내가 필요한 때만 주님을 찾고 인색하게 신앙생활 했다면 꿈에라도 은혜 받고 주님을 마음 한 가운데 모시어 주님을 나의 주인이요 왕으로 모시고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우리의 선한 목자 이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1)도적들이 와서 내 안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으려 합니다. 요10:10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했습니다. 절도와 강도는 담을 넘어 몰래 들어와 소중한 것들을 훔쳐 갑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그런 일을 했습니다. 에덴에 슬그머니 들어와 하와를 미혹하고 아담의 믿음을 무너뜨려 인류를 타락케 했습니다. 그는 두 가지 거짓 복음을 들고와 미혹했습니다. 하나는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거짓 생사관이요, 다른 하나는 오히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아는 존재가 된다는 거짓 신관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도적질해 갔습니다. 도적과 강도를 만나 물질을 빼앗기는 것은 별거 아니지만 내 안에 간직한 소중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사명을 이루고자 하는 충성된 마음” 등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2)선한 목자는 우리를 알고 도우십니다. 이스라엘에는 유목민이 많습니다. 당시 양을 치는 목자들은 생명을 걸고서 자신의 재산인 가축들을 지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습니다. 본문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압니다. 이름뿐 아니라 특성을 알고, 부족함과 연약함도 아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세상의 불의의 압력과 죄악의 유혹과 생활의 문제 때문에 흔들리고 넘어졌을 때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잡아 일으키시고 위로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양으로 비유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방어 능력이 약합니다. 연약하여 범 죄 하기 쉽습니다. 때로 목자의 음성이 싫어 목자 곁을 떠나 방황하다 기진하여 길에서 쓰러지기도 합니다. 양은 목자가 없이는 혼자서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슬기로운 양은 항상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의 인도를 따르므로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3)선한 목자는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님을 보내 주셨고, 주님은 우리의 죄 사함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주님을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생명 주신 주님을 자랑하고 증거 해야 마땅합니다.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던 한 어머니가 어느 날 밖에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났습니다.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집안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망설임도 없이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두 아들을 이불에 싸서 나왔습니다. 이불에 싸인 아이들은 무사했지만 어머니는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다리를 다쳐 절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면서 두 아들을 키웠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희생 덕분에 큰아들은 동경대학에, 작은 아들은 와세다 대학에 각각 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식 날, 졸업하는 아들이 보고 싶은 어머니는 먼저 큰아들이 있는 동경대학을 찾아갔습니다.
수석졸업을 하게 된 아들은 졸업과 동시에 큰 회사에 들어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의 눈에 수위실에서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수많은 귀빈들이 오는 자리에 거지 어머니가 오는 것이 부끄러웠던 아들은 수위실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라”고 전했고 어머니는 슬픈 얼굴로 돌아섰습니다. 아들에게 버림받은 서러움에 자살을 결심한 어머니는 죽기 전에 둘째 아들을 보고 싶어 둘째 아들이 졸업하는 와세다 대학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교문 밖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때 마침 이러한 모습을 발견한 둘째 아들이 절뚝거리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 나와 업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사람을 잘못 보았소.”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졸업식장의 귀빈석 한 가운데에 앉혔습니다. 값비싼 액세서리로 몸을 치장한 귀부인들이 수군거리자 초라한 어머니는 몸 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수석으로 졸업하는 아들이 답사를 하면서 귀빈석에 초라한 몰골로 앉아 있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자신을 불 속에서 구해 내고 구걸을 해서 공부를 시킨 어머니의 희생을 설명했고 그제야 혐오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 소식은 곧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게 되어 둘째아들은 큰 회사 오너의 사위가 되었으나 어머니를 부끄러워한 큰 아들은 입사가 최소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나도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너를 부인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 주신 주님을 생명 바쳐 사랑하는 성도,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심령에 말씀을 채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1)주님은 말씀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 사단은 40일 동안 금식으로 주리신 주님에게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을 했을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4:4) 하시며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요,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삽니다. 목자가 양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꼴을 배불리 먹고 쉬게 하는 것처럼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를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갖게 하시고, 믿음이 자라게 하시며, 우리 영혼이 살게 하시고, 속사람이 강건하게 하시고, 하늘의 소망이 넘치도록 인도하십니다.
2)말씀이 내 마음을 지킵니다. 본문 잠4:4에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했습니다. 잠4:20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했습니다. 이어서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아프라카에 있는 콩고에 선교사로 갔다가 간암에 걸려서 사형 선고를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중 기적을 체험한 어느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이렇게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내를 시켜 침대를 양지쪽으로 옮겨놓도록 하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성경은 일생을 통하여 수십 번 읽었습니다. 그런데 아픈 모습으로 마침 목사님이 읽은 말씀이 베드로전서 2장 24절이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 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목사님이 여기까지 읽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셨다는 말씀이 너무나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다음 성경구절에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 : 24하반절)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성령의 음성이 목사님의 마음속에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인간의 질병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그 무서운 형벌을 대신 감당하기 위해 빌라도의 뜰에서 무자비한 로마의 군인들에게 등허리가 갈기갈기 찢어지도록 채찍을 맞았다. 그리고 찢어진 내 등허리에서 선지피를 흘렸다. 질병은 복이 아니라 형벌이다. 내가 너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려고 채찍을 맞았는데 왜 네가 또다시 형벌을 받으려고 하느냐? 이제 너는 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내 안에서 네 형벌이 청산되었으니 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는 이 말씀을 믿느냐?” 성령의 이 음성을 듣자마자 목사님의 영혼 깊은 곳에 믿음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선교사 목사님은 말씀에 집중적으로 귀를 기울인 결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이제 병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즉시 목사님은 사모를 불렀습니다. “여보, 내 옷을 가져다주시오” 갑자기 돌변한 목사님의 태도에 사모는 의아스런 눈빛을 하며 물었습니다. “아니, 왜 그래요?” 그러자 목사님은 활기를 띤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 성경말씀을 보시오.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물론 나는 이 말씀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말씀에 전심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소.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았소. 나는 이제 믿을 수 있소. 나는 간암 환자가 아니오, 나는 정상인이요. 정상인이 왜 드러누워 있어야 하겠소? 그러니 나는 일어나 활동해야겠소.” 그리고 목사님은 사모가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일어나 활동하기 시작했고, 곧 간암에서 고침 받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말씀이 내게 살아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게 믿어집니다. 믿을 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고 말씀의 능력으로 하나님 말씀임을 증거 하게 하십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체험 하고, 증거 하는 자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3)말씀이 나의 언행을 지킵니다. 본문 잠4:24-27에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채우면 구부러진 말, 비뚤어진 말을 하는 대신 바르고 선한 말을 하게 합니다. 악한 것을 보지 못하게 막아줍니다. 대신 마음눈이 열려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보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악한 길로 가는 것을 막아 주고, 선한 길로 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알게 합니다. 시편 기자는 시119:105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과 생활이 변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 합니다.
더욱 풍성케 되는 비결은 ◐.생명 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고 주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알고 도우시며, 생명까지 주신 선한 목자 이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심령에 말씀을 채우고 그 말씀이 인도하는대로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 안에서 생명을 얻고 더 풍성케 되는 은총을 받기를소망합니다. <2012. 1. 15. 성산 교회, 땅끝 사랑 선교회/ 다움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