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호 심정문학 원고 등제- 여국동
시-3편
1. 자연과 함께한 시간
2. 구름 바다
3. 농부의 마음으로
수필 – 1편
4. 마카오에서 배운 공존
1.
자연과 함께한 시간
원계 여국동
자연이 모든 것 벗어두고 만나자 하네
대지와 초록이 어우러진 이 순간
새들도 함께 놀자 노래하네!
꽃은 아름다움으로 피어나고
바람은 향기로 땀방울을 식히며
햇볕은 눈부신 빛으로 사랑을 전하네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
온전히 행복을 느끼던 그때!
마음의 짐 모두 벗어놓고
자연을 닮은 삶을 살고 싶네
2026.5.18
2.
구름 바다
원계 여국동
숲속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푸른 바다 위로 소나무와 떡갈나무,
흰 구름 두둥실 떠가는 한 폭의 그림
찌르레기 지저귐은 잔잔한 배경음악
벌과 나비도 은빛 물결을 헤엄치니
나 또한 그 바다에 두 발을 담근 기분이다.
바다 위 나무들은 다이빙을 하고
나는 작은 조각배에 몸을 실은 채
하늘 바다를 유영하는 조용한 항해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구나!
2026.7.30.
3.
농부의 마음으로
원계 여국동
폭우가 쏟아져
까치산 맨발 등산로는
어느새 거센 물길이 되었다.
맨발로 흙을 헤치며
막힌 물길을 돌리고
고인 물을 흘려보냈다.
폭우 속에서도 논을 살피며
물길을 돌려 벼를 지키는 농부처럼
나 또한 등산로를 보듬었다.
누군가 편히 걸을 길을 위해
흙을 만지고 물길을 열었지만
가장 먼저 기쁨을 얻은 이는 나였다.
남을 위한 작은 손길이
결국 나를 위한 길이 되고,
배려는 가장 큰 행복임을 깨달았다.
2026.07.07.
4.
마카오에서 배운 공존
원계 여국동
연말의 공기는 늘 한 해의 무게를 품고 있다. 바람은 찬데 마음은 분주하다. 산악회장이 마카오 이야기를 꺼냈다. “아직 그곳을 밟아보지 못했네.” 그 한마디는 우리를 바다 건너 먼 곳으로 향하기에 충분했다.
한 해의 끝자락, 가장 깊은 밤에 우리는 남쪽 땅으로 향했다. 밤 9시 55분, 김해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어둠을 가르며 남쪽으로 날아갔다. 창밖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보이지 않는 바다 아래에는 수많은 역사와 인간의 욕망이 켜켜이 흐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녘, 우리가 도착한 곳은 중국의 특별행정구 마카오였다. 1999년 포르투갈이 중국에 반환하기 전까지 유럽 국가가 유지한 아시아의 마지막 식민지로 알려진 이곳은 면적도 작고 인구도 많지 않았다. 수백 년 전 포르투갈인들이 세운 건물들에서는 남유럽의 정취가 묻어났다. 동양의 땅 위에 서양의 시간이 겹겹이 내려앉은 것 아닌가 싶었다. 이 작은 도시에 세계의 한 시간이 압축되어 있는 듯했다.
포르투갈의 종소리와 중국의 향불 냄새가 한 골목 안에서 만나는 곳에 이르렀다. 사라진 제국의 그림자와 거대한 자본의 빛이 같은 하늘 아래 나란히 서 있었다. 네온사인 찬란한 밤길을 걸었다.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라는 이름답게 이곳의 밤은 자본의 욕망으로 더욱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튿날, 우리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강주아오 대교 위에 섰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다리는 마치 인간이 바다 위에 써 내려간 한 편의 문장 같았다. 길이 어느 순간 물속으로 잠겼다가 다시 수면 위로 이어졌다. 다리와 터널, 빛과 어둠이 교차했다. 마카오와 홍콩을 잇는 구간에서 문득 ‘경계’라는 말을 떠올려 보았다. 이 다리는 단순히 두 도시를 잇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체제와 역사를 잇는 통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끝닿은 곳은 홍콩이었다. 빽빽한 고층 빌딩 사이로 습기가 어린 공기가 흘렀고, 간판들은 밤에도 잠들지 않고 있었다. 할리우드 로드의 오래된 벽돌과 골동품 상점들. 이 도시가 지나온 과거의 시간을 무언으로 증언해 주는 듯했다.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천천히 위로 올랐다. 홍콩 도시의 숨결이 느껴졌다. 아래에서는 시장 사람들의 말소리가, 위에서는 카페 안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스쳐 가는 사람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오르내리는 발길들. 어디든 도시란 수많은 개인의 서사가 얽혀지는 거대한 공간임을 실감했다.
타이쿤에 이르렀다. 옛 경찰서와 교도소를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조한 건물이라는데 홍콩의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이었다. 역사는 늘 사라지지 않고 먼 얼굴로 우리 앞에 다가서는 모양이었다.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감시와 통제가 머물던 자리에 지금 음악과 전시가 흐르고 있는 셈이었다.
오후, 빗속을 헤치며 우리는 빅토리아 피크에 올랐다. 안개가 도시를 감싸 안아 야경은 흐릿하지만 오히려 이 흐릿함이 더 그윽한 멋과 여운을 줬다.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닐 테다. 서로서로 우산을 나누어 쓰니 도시의 불빛보다 사람의 온기가 더 또렷이 전해졌다.
홍콩 야경의 명소라는 피크 트램에 올랐다. 피크 트램이 가파른 경사를 오르자 창밖의 빌딩들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듯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열차가 제 궤도를 따라 오를수록 도시도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갔다.
밤바다를 건너는 스타페리 호 위에 올랐다. 바라보니 홍콩 항구의 불빛은 물결에 부서지며 반짝였다. 별이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 위에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아는 듯했다.
다시 마카오로 돌아왔다. 마주한 성 바울 성당 유적은 벽 한 면만으로도 아주 웅장했다. 불에 타 사라진 본채 대신, 남겨진 성당 건물의 정면이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모든 것이 완전해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닌가 보다. 때로는 부족과 상실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깊은 울림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마카오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세나도 광장의 물결무늬 바닥을 걸으면서 오래전에 수없이 오고 갔을 항해자들의 발길을 상상해 보았다. 몬테 요새에 올라 내려다본 도시는 낮고 조용했다. 그 아래, 베네시안 마카오와 윈 팰리스의 화려한 불빛은 또 다른 시대의 얼굴처럼 번쩍였다. 과거와 현재, 절제와 과잉이 마카오란 이 한 도시 안에서 어깨를 맞대고 있는 듯했다.
마카오와 홍콩은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체제’ 위에 서 있는 도시인 것 같았다. 국경이 아닌데도 여권을 내밀어야 하는 여행길. 자본주의의 번영과 사회주의의 틀이 교차하는 고장이라 할까. 한때는 세계 금융의 중심이었던 홍콩, 무역항과 카지노산업으로 성장한 항구도시 마카오. 그 빛나는 영광 뒤에 따라왔을 역사적 선택과 타협을 상상해 보며 여행 마지막 날의 밤을 보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일행은 우산을 나누어 쓰며 서로의 이름을 더 또렷이 부르게 되었다. 여행은 시간과 돈과 풍경을 소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인간관계를 새롭게 빚는 일이라는 소중한 사실도 배웠다.
나흘 동안 마카오와 홍콩을 둘러본 짧은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의 어둠을 내려보았다. 보이지 않는 역사와 체제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깊은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카오에서 나는 공존이란 서로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일임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