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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의 미녀>는 백시종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2019년 여름 완성한 전작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중국 신장성의 위구르족이 처한 현실이 우리의 일제강점기 시대와 매우 흡사하다고 느끼던 중 실크로드 탐사를 통해 만난 고대 누란왕국의 미라 ‘누란의 미녀’에서 모티브를 얻어 실제로 중국 내의 화약고로 알려진 신장성 위구르 민족의 가련하고 처절하고 엉성한 저항을 소설로 승화시켰다.
대기업 에벤에셀의 지원을 받아 신강성 선교사로 파견된 조진표가 그 주인공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 등 지극히 부정한 방법으로 재벌군에 올라선 에벤에셀과 노동자들의 투쟁,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불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속절없이 회생되는 위구르족의 저항이 이 소설의 주테마이다.
종교와 국경을 넘어서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인 양 신선한 감동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 소설의 무대인 실크로드의 광대함과 등장인물의 다양한 개성을 더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컬러삽화 12점을 책 속에 수록하기로 했다.
삽화는 대한민국 디자인전 산업부장관상 수상작가이며, 전 인하전문대 이준섭 교수가 맡아 주었다.
- 대한민국 디자인대전 초대디자이너, 산업자원부장관상 수상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동대학원 졸업
- 미국, 뉴욕아트스튜던트리그 인물화 수학
- 인하공업전문대학 교수
- 홍익대학교, 전남대학교 출강
- 개인전(2009, 환갤러리)
* 전화번호 : 010-2442-2391
김종회(문학평론가)
필자가 백시종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원 학생일 때였다. 통일부의 이산가족위원회에서 일하면서 그 기관지 편집을 위해 출판사에 갔다가, 당시 작가이면서 현대그룹 통합기획실에 근무하던 그를 보게 되었다. 마침 내 선배 한 분과 친구 하나가 그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첫 대면에서부터 그는 바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미상불 그렇게 촌음을 아껴 쓰지 않고 대기업 간부 직원이자 소설가라는 이중의 역할을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필자는 문학평론가가 아니었으니 명함을 내놓을 처지도 못 되었다. 그로부터 어언 30여 년,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쏘아 버린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 그는 고희를 몇 해 넘긴 원로 작가가 되고 필자는 이순을 몇 해 넘긴 평론가가 되었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 한 세대가 경과하는 세월을 보내면서, 필자는 내내 그와 그의 작품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살아온 인생의 범주가 넓고 활달한 만큼, 그의 작품 세계와 관심의 영역이 호활하고 소설적 서사의 전개 또한 역동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참으로 많은 작품을 썼고 참으로 많은 사회적 쟁점들을 소설의 문면으로 이끌었으며 여러 모양의 화제를 생산하기도 했다. ‘글은 곧 그 사람’이라는 수사修辭가 있거니와 이 소설가가 걸어온 삶의 행적이 소설이 되고 그 소설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면모가 약여했다. 다른 말로 치환하면 그는 강력한 사회의식을 가진 작가이며 동시에 시대와의 불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작가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전력했다는 뜻이다.
백시종 작가의 등단은 1966년 약관 22세의 나이에 아동문학으로 전남일보 신춘문예를 통해서였다. 뒤이어 같은 해 같은 신문의 지령 5천호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하면서 ‘될 성부른 나무’를 예고했다. 다음 해에는 동아일보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한꺼번에 단편소설 당선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해를 거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작품집을 상재한, ‘멈추지 않는 기관차’ 같은 창작 행보를 보였다. 문인으로서의 수상 실적도 놀랍다. 이제껏 모두 10개가 넘는 문학상을 받았고 문단 활동 또한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을 비롯, 가히 ‘마당발’의 어의語義가 무엇인가를 실증으로 보여 주는 형국이다. 그가 창간한 문예지와 문학상도 여럿이다.
근년에 그가 발표한 장편소설 『오옴하르 음악회』와 『물 위의 나무』 등은 팍팍한 삶의 질곡 속에서 온전하고 조화로운 내일을 지향하는 문학적 특성을 잘 보여 준다. 그의 삶과 문학에 신뢰와 기대를 보내는 것은 이토록 길고 깊은 과정이 개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상재되는 장편 『누란의 미녀』를 읽으면서 필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작품 자체의 성숙과 완성도가 그간의 축적된 필력 위에 돌올하게 서 있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지만, 매년 한 권의 장편소설을 생산해 내는 작가로서의 저력과 치열한 창작정신에 가슴이 저려 왔던 것이다. 수량의 과다가 반드시 질적 수준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군계群鷄가 없이 일학一鶴이 있기 어려운 까닭에서였다.
이 소설의 배경이자 이야기의 무대인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는 중국령이다. 중국 북서쪽 중앙아시아에 위치하며, 현실적으로는 중국에 속해 있으나 위구르인들은 그 복속이 타민족에 의한 강압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신장은 ‘새로운 영토’라는 한자어이며, 위구르는 ‘단결과 연합’을 의미하는 터이니 서로의 시각이 매우 다른 편이다. 중국 정부의 탄압 때문에 위축되어 있으나 지속적으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누란樓蘭은 현재 자치구 내의 지역에 있던 고대의 작은 도시국가였다. 서역의 남도와 이어져 공작하 하류의 로프노르호의 서안에 있었으며 비단길 교역의 중요한 도시였다. 약 1,600년 전 누란국은 소실되었고 옛 성터의 유적만 남아 있다.
이 전설적인 땅에 전설의 형상으로 존재하는 ‘누란의 미녀’는 여성 미라의 이름이다. 1980년 자치구의 러우란 고성 북쪽 사막에서 위구르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팀에 의해 발견되었다. 전신 신체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이 미라는 기원전 1880년경에 생존했고 사망 당시 40대 초반으로 추정되며,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죽음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한때 고대 누란국의 주민으로 여겨졌으나 그보다 1,600년 이전에 살았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붉은 머리에 뚜렷한 이목구비 등은 발견 직후부터 화제가 되었다. 한국문학에서는 김춘수 시집 『비에 젖은 달』 중 「누란의 사랑」과 윤후명 소설 『돈황의 사랑』 등의 소재가 되었다.
이 주목할 만한 고대 여성은 지금 우루무치시 신장 위구르 자치주 박물관 2층 고시관에 보존되어 있다. 간혹 타클라마칸사막의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소하공주와 혼동되기도 하는데, 그 양자는 서로 다르다. 오랜 전설의 시간 속에 잠자던 이 여성이 우리 앞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불과 40년이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장대한 시간의 상거를 뛰어넘는, 역사와 현실의 거리와 그 의미를 문필로 복원하는 한 작가의 줄기찬 집념과 그 소출로서의 소설 작품이다. 이러한 소설적 형상력은 묻혀 있던 인류사의 원리를 밝히는 일이며 눈에 보이지 않던 인간사의 구체적 세부를 들추어 보이는 일이다.
곧 백시종의 『누란의 미녀』를 일컫는 말이다. 소설이 이와 같은 엄중한 주제를 이야기로 풀어서 보여주는 문학 장르이며, 그것을 우리의 삶이 바탕을 두고 있는 현실 가운데로 이끌어 오는 현장성을 갖는다. 그러할 때 그 전설적인 역사와 현실적 삶이 상호 연대하고 또 길항하며 맞서는 복합적인 관계야말로 좋은 소설의 재료가 될 만한 형국이다. 여기에 작가가 동원한 사태는 중국과 위구르족의 치열한 갈등, 중국 공안의 무자비한 폭력, 분리 독립을 향한 목숨을 건 투쟁, 그 가운데서 한 떨기 꽃처럼 피어나는 목격자로서의 한국인 의료선교사와 위구르 여인의 사랑 이야기다. 작가는 조진표와 쟈오서먼 두 사람의 사랑을 두고 그 배경에 ‘누란의 미녀’와 쟈오서먼의 의미를 동일시하는 상상력의 공간을 매설한다.
중국 당국의 감시와 탄압은 집요하고 파괴적이다. 이 땅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통치자 중국은 위구르인에게 아무런 동정이나 자비를 보여 주지 않는다. 이미 이곳의 성지와도 같았던 로프노르호수는 중국군의 핵실험으로 인하여 수원이 말라 버렸다. 여기에 한국에서 기독교 신앙과 불온한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훈련된 조진표라는 인물이 선교사로 나가 있다. 그는 이를테면 신앙적 양심과 의사로서의 사명감, 보편적 인류애를 함께 가진 인물이다. 당연히 위구르족의 저항을 측면에서 지원하고, 때로는 그로 인해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진입하기도 한다. 그가 그 숱한 우여곡절의 한복판에서 만난 여인이 쟈오서먼이다. 위구르의 투쟁에 헌신한 그녀는 그 가열한 신념과 수발한 미모로 인하여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조진표와 그녀의 만남은 가히 운명적이다. 기실 이 소설의 모든 줄거리는 이 두 사람의 웅숭깊은 관계, 곧 대사회적 저항으로 인한 갈등과 운명적 사랑의 실현이라는 귀결점을 향해 작동하고 있다. 에벤에셀그룹 서근석 회장의 비정규직 해고와 관련된 기업윤리 문제, 존경받는 목회자인 소금교회 오한수 목사와 관련된 신앙의 진실성 문제, 강직한 저항주의자 강성국, 그리고 미국에서 조진표를 후원하는 김성필 등의 작중인물이 모두 그렇다. 이 사건 또는 인물들은 조진표의 종교적 사역, 위구르 독립운동 지원, 장막 뒤의 신비한 사랑 등을 소설 공간 속에서 부양하는 구성요소에 해당한다. 조진표를 매개로 하여 한국에서의 이 환경적 요인들이 자연스럽게 위구르의 현실과 연계된다.
한국에서의 상황과 그것을 소설적 담화로 축조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면, 위구르에 그것을 잇대어 정초하고 확장하는 일은 더욱 만만치 않다. 조진표와 쟈오서먼의 사랑에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장비종과 투타스의 사랑, 쟈오서먼의 동생 하타르구와 남편 바숍 칸 교수, 조진표를 돕는 중국 관리 왕초우 국장과 그 어머니 웨이홍 여사, 더 나아가 미국에 있는 ‘위구르의 어머니’ 라비예 카디르 여사 등이 이 소설의 중심 줄기를 교직하는 데 씨줄과 날줄로 작용한다. 이 여러 부류의 지지와 후원에 힘입어, 쟈오서먼의 마약퇴치 사업은 그 표면적 명목을 넘어 분리독립운동의 투쟁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는다.
위구르가 중국의 철혈 통치 아래 숨죽이고 있는 현실은, 위구르 분리독립 투쟁주의자들에게 희망 없는 땅에서 희망을 찾는 일이다. 그 강고하고 완악한 차폐를 넘어갈 길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암담한 풍경은 우리에게 너무도 낯익은 것이다. 일제감정기의 엄혹한 시기를 지나오는 동안 늘 겪어야 하고 당해야 했던 민족 수난의 모습이기에 그렇다. 쟈오서먼이나 그 남편 바숍 교수, 그리고 생명의 희생조차 운명으로 수용하는 위구르인들은 이 척박한 불모의 땅에서 새 희망을 발양하려는 사람들이다. 일제강점기에 소수의 우리 저항시인들이 조국 광복의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신명을 바쳐 민족혼을 노래하던 시대적 상황과 꼭 닮아 있다.
그 병탄의 질곡을 헤치고 사업가로 성공한 이가 앞서 언급한, 위구르인의 어머니로 불리는 라비예 카디르 여사(1947- )다. 그녀는 위구르족 출신의 중국인 여성사업가로 중국의 극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사업에 성공하고 그 부유富裕를 미국으로 이끌고 갔다. 작가는 이와 같은 실존 인물을 소설 한복판으로 유도함으로써 이 분리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제기하고 동시에 그것의 가능성을 강화하는 효력을 얻는다. 그런가 하면 조진표의 할아버지가 독립투사였고 외할아버지가 일제에 의해 희생된 전사前史를 병치함으로써 이 소설이 역사와 현실, 한국과 위구르에 걸쳐 사실적 설득력을 담보할 수 있도록 면밀한 서사적 장치를 마련한다.
현실적 감각과 도덕적 자기정체성을 가진 조진표가 ‘누란의 미녀’에 매혹되는 것은 현실 속에서 그 신비한 전설을 실상으로 만나는, 곧 쟈오서먼의 사랑을 만나는 전조前兆를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들의 사랑이 실현되고 합일을 이루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 지불되어야 했다. 쟈오서먼의 생각과 행적이 점진적으로 밝혀지는 것도 이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사랑의 의미를 장중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가는 이야기의 점층적이고 순차적 형성이라는 소설 문법에 매우 능숙한 기량을 가졌다. 다른 모든 사건들이 소설 속에서 충돌하고 있다 할지라도 누란의 미녀와 쟈오서먼의 내포적 소통과 동일시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 소설의 서사적 위력이 증폭될 수 없다.
그런데 조진표와 쟈오서먼의 사랑이 사랑 자체의 결실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조진표가 위구르 분리독립의 투쟁사상에 동조자로 자기정립을 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그에 못지않게 주요한 하나의 변곡점이 있다. 기독교 선교사인 조진표가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결심하는 대목이다. 종교적 함의에 있어서 이 개종은 실로 간략하지 않은 의미망을 포괄한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모두 교리에 있어 ‘절대타당성’을 지향하는, 타협이 불가능한 성향을 지녔다. 불교가 그 ‘보편타당성’의 교리로 토착신앙이나 다른 종교적 사상과 큰 마찰이나 충돌 없이 연대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그렇게 보면 소설 말미에 등장하여 마무리 수순에 복무하는 이 개종의 사태는 보다 주밀周密한 고찰을 요하게 된다.
만약 두 종교의 교리가 전면에서 대립하면 이야기의 진척이 불가능하다. 조진표는 한층 대국적인 차원에서 나중의 ‘반드시 또 다른 개종’을 위해 기도하면서 쟈오서먼의 소망에 부응하기로 한다. 이는 어쩌면 교리의 속박을 넘어서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교리 위반과 어떻게 상충하게 되는지는 그야말로 또 다른 관찰을 예고한다. 동시에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전설의 담론을 끌어안은 채 너무도 절박하며 나아가 그다음 삶의 행보를 추동하는 저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 사랑은 마지막 장면, 유령도시 빠추허에서 낙타를 타고 사막의 모래바람 속으로 피신하는 이들의 소망을 암묵적으로 허용한다. 그렇게 참담한 사막 땅에서 새 희망의 잠재와 운명적인 사랑의 존재를 함께 발굴한 역작이 바로 이 소설이다.
내가 고대 누란樓蘭 왕국이 위치했던 신장지역을 여행했던 것은 지난해 6월이다. 중국의 23개 성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신장에는 세계에서 험악하기로 첫 번째인 타클라마칸사막이 펼쳐져 있고, 그 사막 동남쪽에 위치한 바다 같은 호수 로프노르가 존재했으며, 누란은 바로 호수 주변의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활기차게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한데도 누란 왕국은 흔히 전설이나 동화 속에 존재했던 가상의 나라로 간주하기 십상이다. 연대기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는 뭔가 애매하기도 하고, 실크로드 역사 기술의 칼자루를 쥔 중국 당국이 의도적으로 왜곡을 밥 먹듯 하다 보니 여러모로 제대로 평가될 리가 없다.
그 무렵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한족이라고 한사코 우겼고, 그래야 신장성 일대가 중국 고유의 영토가 되는 셈인데, 웬걸 누란 왕국이 번영하던 BC1800년쯤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발견되는 바람에 중국의 입장이 머쓱해지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
그 어떤 것보다 보존이 잘된, 얼핏 금방이라도 부스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것 같은 누란 왕국 시대 여인 미라는 모직물로 된 빨간색 숄에 감싸여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다. 동양인과 거리가 먼 뚜렷한 이목구비와 붉은 머리, 그리고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은 40대 여인으로서의 농염함이 장마철의 강물처럼 넘실거린다. 하지만 그녀의 키는 그리 크지 않다. 고작 160센티나 될까. 양피로 된 옷과 가죽신발을 신었으며, 머리를 감싼 스카프형 가죽에는 해오라기 깃털이 꽂혀 있다. 멋을 잔뜩 부린 모습이다.
그래서 붙여진 고고학적 이름이 ‘누란의 미녀’다. 내가 그녀를 찾아갔을 때가 오전 11시쯤이었는데, 특수조명도 조명이지만 창문에 비낀 햇빛 탓인지 보일 듯 말 듯 그녀는 슬그머니 미소 짓는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아니, 미소 지었다기보다 살포시 머금었다고 해야 옳았다.
그녀가 ‘죽음의 모나리자’ ‘잠자는 미녀’ 같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터다. 흔히 미라와 함께 발견되는 농기구가 없었던 걸로 보아 농사꾼이 아닌 목축업이나 장사꾼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누란 왕국의 귀족 부인이거나 한 탓이리라.
갑자기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전설 같은 누란 왕국의 후예들이 위구르라는 증거나 자료는 충분치 않다. 더구나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조사한 ‘누란의 미녀’는 고대 유럽 백인 인종으로 밝혀졌는데,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켈트족과 같은 계열에 가깝다는 것이다.
‘누란의 미녀’가 위구르족과 관련이 있건 없건, 유라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타림분지와 타클라마칸사막, 그리고 톈산산맥과 중가리아에 걸쳐 광범위하게 흩어져 살았던 대표 인종은 위구르임이 확실하다.
그것이 중국인들의 역사서인 『사기』에서도 카자흐족과 키르기스족, 더 많은 위구르족이 투르크어를 사용하며 1천5백 년 동안 신장지역을 영토로 삼고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대부분이 중국 지배 안에 들어갔지만, 9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5백 년 동안 위구르 카칸 왕국이 번영을 이뤘고, 그들의 수도 오르두발리크와 같은 거대한 도시의 흔적을 발굴한 서방 고고학자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도시 설계나 건축기술뿐 아니라 문화예술 면에서도 투루판 베제클리크 고분 벽화에 남긴 왕공들의 모습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매우 독창적인 그들만의 원숙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중국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때도 있었다. 18세기 초반 위구르 사람 야쿱 벡이 청나라 주둔군을 몰아내고 세운 아미르국이 그것이다.
성도 카슈가르를 제국의 수도로 삼아 이슬람을 더 많이 전파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실크로드로 불리는 장엄한 지역의 본류가 위구르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장을 기술할 때, 단일한 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상호 작용하는 많은 민족들의 문화와 그리고 정치 체제를 이루는 결합의 역사라고 규정하기 일쑤다.
왜 그럴까. 왜 있는 그대로 신장의 주인이 위구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중국 때문이다. 다른 민족이 뿌리내리고 사는 신장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무력으로 접수한 중국이 참으로 많고 다양한 계책을 쓴 것이 사실이다. 회유를 앞세운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타협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국가폭력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의 잔인무도한 탄압 일색의 폭거는 어느 역사 기록에서도 찾기 어려운 반인륜적인 케이스들이다. 2019년 오사카 G20정상회의를 보도하는 기사를 보면, 중국 당국이 위구르 독립을 위해 활동한 혐의로 잡아들인 위구르족 숫자만 1백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그 백만 명 모두가 강제수용소에 구금되었는데 아오지수용소처럼 잔혹한 시설도 있어서 벌써 절반은 희생되었을 거라는 소문도 자자하다.
기왕 오사카 G20정상회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세계적인 부호이며 위구르의 어머니로 알려진 라비예 카디르 여사를 비롯, 위구르족 독립운동가인 돌쿤이 미국 의회가 주관하는 민주주의상을 수상한 기념으로 오사카를 찾아 세계인이 주목하는 회의장 앞에서 반인륜적인 탄압을 일삼는 중국을 고발하고 왜 위구르가 독립해야 하는가를 호소하기도 했다.
라비예 카디르 여사는 이번 작품 『누란의 미녀』에서도 다뤄진 인물이다. 20대 후반 농부의 아낙으로 옷 수선이며 세탁소며 간이음식점을 운영하다가 위구르인은 허가 내지 않는 사업을 할 수 없다는 불평등 법규에 걸려 교도소 생활까지 경험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혼신을 다해 중국어도 배우고 무역도 하며, 결국 중국 대륙을 통틀어 5위에 랭크되는 부자의 자리에 앉았던 개천 출신의 여걸이다.
터키를 비롯한 주변 이슬람국은 말할 것도 없고 런던, 암스테르담, 동경, 뉴욕 등 자유진영에서까지 큰손 투자가로 그 명성을 떨친 라비예 카디르 여사를 중국 당국이 방관할 리 만무하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같은 감투를 미끼로 온갖 달콤한 회유를 다 해 보지만, 끝내 위구르 민족혼을 꿋꿋이 지켜 가며 결국 미국으로 망명한 세계적인 기업가다.
이 책의 「작가의 말」을 쓰던 2019년 6월 29일 아침, 나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위구르 출신 명사들이 위구르 독립을 외치는 시위 광경을 우리 티브이 화면으로 직접 시청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화면을 가득 채운 홍콩 시위대들의 파워나 열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위구르족의 상징인 청색 국기를 흔들며 오사카 G20정상회의에 참석한 중국 지도자를 향해 큰 소리로 항변하는 그들의 열띤 함성은 우렁찼고, 준엄했고, 절실했으며, 애절했다.
솔직히 지난 일 년간 나는 위구르 속에 흠뻑 빠져 살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꼬박 굶주린 늑대처럼 혼자 코를 벌름거리며 그 황량한 산하를 누비고 다녔다.
몸은 한반도 수도권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했지만, 내 영혼은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타클라마칸사막을 헤맸고, 눈 덮인 톈산산맥을 오르내렸으며, ‘언제 시들지 모르는 하얀 양파꽃 같은 나라’ 누란 왕국의 흔적을 좇았고, 3천8백 년 동안 모래 속에 누워 나를 기다려 준 ‘누란의 미녀’와의 만남을 경험했고…….
그러나 무엇보다 흡사 상처처럼 나를 휘어잡는 것이 있었다. 바로 대대로 신장을 지키고 사는 위구르 사람들의 애절하고 캄캄한 삶이었다. 분명 제 나라 말이 있고 문자가 있어도 중국어를 배우지 않으면 먹고살기조차 힘들다. 아니, 설사 중국어를 터득한다 해도 고작 주어진 업무가 제도적으로 제 민족을 고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단공무원 직종이 고작이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으니 미래도 없다. 오로지 ‘하나의 중국’을 위해 멸종되거나 제 나라 언어와 문자를 깡그리 없애고, 민족의식도 없애고, 문화도 없애고, 입을 열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전통적인 노래도 없애고 그냥 아무 생각 없는 로봇처럼 보통 중국인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1백 년 전으로 거슬러 내려간다. 1919년 6월이다. 1919년은 우리에게 3・1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기념비적인 해고, 소수민족 소수국가의 권리도 인정하자는 세계평화회의가 베르사유에서 개최되었던 해다.
우리도 가만있지 않았다. 상해 임시정부가 움직였고, 몽양 여운형이 추천한 대한민국 대표도 천신만고 끝에 베르사유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전문의사 자격증을 획득한 김규식 박사가 그 장본인이다. 우리처럼 국권을 빼앗긴 피식민국 대표들은 김규식뿐 아니다. 베트남도 있었고, 인도도 있었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아프리카 약소국도 있었다.
김규식이 젊은 베트남 독립운동가 호치민을 만난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불란서에 항거하여 베트남 민족대표로 참석한 호치민 역시 김규식처럼 회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발언권도 얻을 수 없었다.
세계평화회의 개최국이며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 일원인 불란서나 일본이 버티고 있는 한 그들을 일국의 대표로 간주해 줄 턱이 없었다. 대표는커녕 귀찮은 파리 떼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았으므로, 출입구에 온종일 완장을 차고 1인시위 아니면 긴급 인쇄한 호소문을 각국 대표의 손에 직접 쥐여 주는 방법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백 년 전 1919년 6월의 베르사유나 2019년 6월의 오사카가 뭐가 다른 점이 있는가.
이 소설의 주인공 조진표의 할아버지 조봉삼 씨가 살아냈던 1919년 무렵을 새삼 조명하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본의 만행에 항거, 나약하게 독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총을 들고 폭탄을 던지며 무력으로 독립의 당위성을 포효하던 독립운동가의 자랑스러운 투쟁사.
조국을 위해 청춘과 인생을 바쳤음에도 보상은커녕 엉뚱하게 친일파에게 쫓겨 남아 있던 후손들마저 풍비박산케 했던 이 나라의 비겁한 역사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은 민족의 반역자고 민족의 배신자들이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침략자 일본의 앞잡이가 될 수 있으며, 자기 동족을 고발할 수 있으며, 더구나 몹쓸 고문까지 손수 자행할 수 있는가.
누구는 차디찬 감옥에서 나라 잃은 억울함을 한탄하고 있을 때, 누구는 호의호식하며 재산까지 풍덩풍덩 늘리고 있을 수 있는가. 더구나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도 억울한 마당에 어떻게 하루아침에 독립군 잡은 민주경찰로 둔갑할 수 있는가.
그렇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겪었던 슬픔과 좌절과 고뇌와 회한이 이 나라 역사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되며, 더구나 왜곡되어서 안 된다는 절실함에 몸을 떨었던 사실도 2019년 위구르 사람들의 슬픈 현실을 보며 터득한 처절한 반성이라고 해야 옳다.
끝으로 미국의 유명 역사학자인 제임스 A 밀워드가 밝히고 있는 자신의 저서 『신장의 역사』 서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작가의 말을 마친다.
신장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 중국 정부의 감시는 비한족 학자들조차 공개적인 상황에서 자신들이 쓰고 말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토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 이 지역이 고대부터 ‘중국’이었는지, 또는 ‘위구르’였는지, 그도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었는지 혼돈케 하는 대목이다.
2019년 6월 30일
작가가 <누란의 미녀> 집필을 결심하게 된 것은 중국 신장성의 소수민족 ‘위구르 사람’들 모두가 가슴에 담고 있는 나라 잃은 설움을 어떻게 하면 공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의 고통을 십분 이해하고 작게나마 위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이 위구르 민족이 처한 극단적인 현실과 그 슬픈 진상을 알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어둠의 공포와 절망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이 궁리 저 궁리로 한동안 잠을 설쳤기 때문이다.약 1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위구르 사람들은 옛날 일제강점기의 우리처럼 누구나 누려야 할 인류 보편적 자유와 인권을 유린당한 채 압제 일색의 힘겹고 막막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오늘의 홍콩처럼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든든한 우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사면이 막힌 지옥 같은 섬에 갇혀 아무도 편들어 주지 않는 참으로 절박하고 대책 없는 신세로 전락해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정이 넘쳐 남의 불행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우리 혈관 속에 맥박 치고 있는 진실을 사랑하는 마음, 정의를 귀히 여기는 마음, 양심의 명령에 순종할 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우리의 주체성을 확고하게 지켜 온 것이다.
위구르족의 비극을 고발한 <누란의 미녀>는 가능한 한 많이 읽혀야 하고, 이 책을 통해 위구르 사람들이 처한 아픔을 함께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크라우드펀딩에 프로젝트로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다.
출판 제작비는 원래 450만원 정도 들지만, 목표액이 크면 펀딩을 성공시키지 못할까 저어하여 350으로 낮춰 잡았다. 9월 10일부터 30일간 독자들의 후원을 받을 계획이며, 펀딩에 성공하면 원색삽화를 곁들여 도서로 출판할 예정이다. 후원해 주신 분들께는 자그마한 선물을 마련하였다.
도서값을 15,000원으로 책정하였으므로 다음과 같은 선물을 마련하였습니다.
15,000원 후원자께는 <누란의 미녀> 1권
30,000원 후원자께는 <누란의 미녀> 1권과 본문삽화엽서 6종 1세트
50,000원 후원자께는 <누란의 미녀> 1권과 본문삽화엽서 6종 1세트와 머그컵 1개
70,000원 후원자께는 <누란의 미녀> 1권과 본문삽화엽서 12종 1세트와 머그컵 1개
100,000원 후원자께는 <누란의 미녀> 1권과 본문삽화엽서 12종 1세트와 머그컵 2개
200,000원 후원자께는 <누란의 미녀> 1권과 머그컵 2개, <문예바다> 5년 정기구독권
목표액이 달성되는 대로 바로 제작에 들어가 10월 25일까지는 출판할 것이며, 후원해 주신 분들께는 출판도서와 함께 선물을 댁으로 발송해 드릴 것입니다. 독자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문의는 '창작자에게 문의하기'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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