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 기술자를 돕다가 멘탈(mental)을 경험하다.
최근에는 젊은 분들이 베트남에 취업을 위해 방문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베트남에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와 계셨다. 그중에 중년의 나이로 외국인 회사에 취업하다가 실직하고 귀국을 못 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었다. 또는 본국으로 돌아갔더라도 베트남을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사시는 분들도 계시다. 월남전에 참전한 유공자도 계신다. 그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염색공장 기술자와 얽힌 기이한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분은 그 당시 나이로 거의 환갑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나이 차이는 있어도 나와는 인근에 같이 살아서 이웃의 술친구로 지냈다. 거의 3년간을 내가 술을 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 친구로 보냈다. 베트남에 한국분들 만나기도 어렵고 말 친구 상대는 더욱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니 이 정도 나이 차이는 별 게 아니였다. 이분은 대구 출신으로 베트남 한국사찰의 같은 불교 신자라는 점에서 우선 친분이 돈독하였다. 특히 불교 지식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어서 “불교 총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궁금증을 물어볼 수 좋은 대화 상대자였다. 저녁에 만나 노상에서 맥주 한잔 하는 게 일상적인 낙이 되 버렸다. 그러나 그 생활도 수 년을 보내다 보니 그 사람의 살림이 형편이 아니다.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와 만나 술을 건네며 대화하는 제목은 거의 불교 지식이 많았다. 그는 자기 집에다가 제단을 모시고 독경을 치는데 천수경, 금강경이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어느 날 나는 그를 도와주고 싶다는 약한 마음이 다시 등장했다.
이것은 이전 글에서 논했듯이
“내 복을 남에게 건네주는 개운법”
이라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상대방은 흥하지만 내 길이 막힌다”
는 결점이 있다.
현재 대운이 좋아서 내 복이 왕성한 사람은 복을 쪼개도 티가 안난다.
그러나 복이 바닥을 치는 사람이 그 없는 복을 주게 되면 바로 코피 흘린다.
구속 결박을 당한다던지 억울한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요새는 복이 좀 강해서인가 좀 나눠 줘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해서 다시 약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느 날 어떻게 하면 도와 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얇은 꿈결에서
“좋은 술로 제사 지내도록 해라”
라는 이상한 말이 들렸다.
“이 말의 뜻이 뭘까?”
그 다음 날 카페에서 만난 그분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해 드렸다.
그는 반색하면서
“집에 제단을 모시고 있는데 바로 제사 드려보겠다”
말한다.
어제 그분이 이상한 꿈을 꾸었단다
어느 날 조상귀신들이 자기 집으로 들어와 제사 밥을 먹는 꿈이였다.
“동생네 가세요”
“거기가 풍족합니다”
“그곳은 밥이 맛이 없어 여기밥이 맛있네”
하더란다
그분의 내막을 듣고 보니까
그분은 장자인데 베트남에 들어오면서 동생에게 제사를 맡기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가 생각해보니까
내가 운수가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제사를 동생에게 넘겨준 시점과 부합한단다.
그러면서 집에 숨겨둔 양주가 있다고 한다.
그걸 꺼내서 제사 지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양주 있으면 가지고 와서 같이 먹어야죠.”
“혼자만 드세요”
나는 나무라듯 그에게 말했지만 좋은 술이란 그 숨겨둔 양주를 말하는 것 같았다.
하여튼 나는 반 농담으로 그에게 말했다.
“이것은 내 신명이 사장님을 특별히 도와주는 일이니까요”
“잘되면 반드시 회향하셔야 합니다”
“당연하지”
“카라오케 가시는 겁니다”
“콜!”
그리고 또 당부하였다
자기가 발복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가 발복한 이유는
내가 기도해줘서 그렇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도록 당부하였다
“나도 이제부터 광고 덕 좀 보고 법사로 좀 나갑시다.”
그렇게 하겠단다.
꽁짜로 기도 해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나에게도 나름 다 계산이 되어 있었다.
소문을 내주면 나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입에 침이 튀어나올 정도로 확신에 찬 답변을 그에게서 들으니 다소 안심이 되었다.
복을 받고도 회향을 안 하면 망가진다.
나는 그것을 많이 봐와서 내심 찜찜했던 순간인데
본인의 확고부동한 결심을 보니까
“이번 만은 속는 셈치고 다시 믿어 볼께요.”
그 이후로 그 일은 잊고 지냈는데 갑자기 그를 만나기 어려워졌다.
어디가 아프신가?
그 당시에는 베트남에는 스마트 폰 보급이 많지 않았다. 카카오톡도 없던 시대이다.
핸드폰으로 전화 하는게 고작이다.
매일 연락 오던 그가 어느 날 연락을 안 한다.
걱정은 되었지만 나도 바빠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일요일에 한국사찰에 들렀다가
그가 베트남 국립염색공장장으로 취직이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가 취직이 된 시기가 내가 제사를 드려 보라고 권했던 시간대와 일치한다.
“제사 지내고 일주일 후에 발복한 것이다”.
사찰에는 그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다.
그중에는 나이가 비슷한 그 분의 친한 동료가 그 염색공장을 방문했다고 하면서
방문기를 소개했다.
베트남 국립공장은 국가가 만든 회사이다.
우리 나라 공기업도 마찬가지이지만
베트남 국립기업은 더했다. 소비하는 씀씀이가 대담하다.
일단 공장 부지가 엄청나다.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분이 방문했는데 회사 사무실과 입구 바닥이 전부 대리석으로 깔려 있었단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용과 호랑이가 주변을 장식했다.
“이건 뭐 말로만 듣던 극락세계가 따로없네”
자국민은 가난하게 살아도 국립기업은 예외이다. 초호화 생활이였다.
그가 근무하는 공장장실에 들어가 보았다고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와 내 사장실도 이렇게까지 크진 않아”
공장장실이 100평이 넘는데 전부 바닥이 대리석으로 장식이 되어 있단다.
그가 앉은 의자와 책상은 10명이 앉아 회의를 해도 남을 만한 큰 책상이였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그 좋은 소식들을 왜 남에게서 들어야 할까?
그걸 해준 사람이 난데 왜 나에게 연락하질 않는 것일까?
나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라고 스스로 나를 위로하였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드디어 배신감으로 욕이 나올 지경이다.
“결국 인간이라 배신의 덩어리구나”
“또 당했네.”
“그걸 알면서 도대체 왜 내가 기도해준 것이지.”
회의감이 엄습하였다.
나는 참다 못해 그에게 연락을 했고 어느 날 카페에서 그분을 만났다.
오래만의 재회였다.
나를 보는 눈치가 안절부절하였다.
자기도 미안하고 나도 무안하다.
그래서 막상 야단 칠려고 벼루었다가 좋은 덕담이나 하고자 결심했다
가신 곳이 좋은가 봅니다.
신수가 훤해 졌네요.
"아 뭐 별로야"
그러면서 밝히는 사연은 이랬다.
참 신기한 인연을 만났다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인데 원단공장을 한단다.
그가 주문한 원단 색감이 안 나오자 여러 방면의 전문가를 물색했지만
소득이 없었단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기를 알게 되었는데
화학 공식이 있단다.
종이에다가 화학 공식을 적어 이 기호대로 염색공장장에게 갔다 주고 해보라고 했단다.
결과는 대만족이란다
베트남 사장이 놀라서 그를 다시 만나
이력을 물어보니
경북대 나오고 염색기술자로 일하다 공장이 망한 뒤로
특별히 하는 것 없이 백수로 지낸다고 하니
그는 그의 동생을 소개해준다.
그의 동생이 바로 베트남 염색국립공장 공단 사장인 것이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지만 좋은 염색 기술자 구하기 어렵다
베트남 염색 국립공장 사장이 말했다.
“특히 한국기술자는 더욱 구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쉽게 연결이 되는구나”
누구는 번뜩한 공장이 있어도 기술자 만나기 어려운데
누구는 기술이 좋아도 좋은 공장 취업하기도 어려웠다.
이게 운명의 딜레마이다.
이 사슬을 풀고 연결해준 사람이 신명들이다.
이것은 귀인이라 말해도 된다.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면 귀인이지만 그 뒤에는 신명들이 도와준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 당시 환율로 계산하더라도 엄청난 급여를 받는다고 했다.
2004년도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급여가 6000달러를 받고 집 사택 제공, 차량 기사제공이였다.
백수에서 일약 스타가 된 것이다.
누구나 부러워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주변 사람들에게는 일체 내 이야기를 안 했다.
자기가 금강경 2만독 하니까 부처님이 내려 주신 복을 받았다고
스스로 떠들며 자랑하고 다녔다.
내가 말했듯이
“이런 복은 자기 복이 아니라 남의 복이다”
그러므로 그 복을 준 신명에게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회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향은 고사하고 자기 자랑만 하고 다니는데 그 복이 오래 지속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이상하게도
몇 달 다니지도 않았는데
야반 도주를 하고 만다.
나중에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왜 야반도주하셨소?”
“그렇게 좋다면서요?”
글쎄 염색공장 사장이 나에게 무리한 기대를 하고 있어 부담이 되더란다.
당연히 베트남 염색공장 사장은
높은 급여를 주고 한국인을 고용한 것이다.
그 급여기록은 베트남 정부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고 그러니
이 비싼 고용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베트남 사장은 그를 이용해 염색기술을 베트남으로 빼돌리려 계획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실상 알고 보니까 그는 기술력이 과대 평가가 된 것이다.
뭐 베트남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 다 부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도 실력자라고 평가한 것이 큰 실수였다.
실력이 그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사장의 기대감에 은근히 큰 부담을 느낀 것이다.
대충하는 원단 염색은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겠지만
베트남 사장이 요구한 기술력은 갖추질 못했다.
베트남 사장은 그를 고용해서
동남아 염색의 신흥국가로 발돋움할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마침 한국에서 들어온 신흥 방직공장에서 염색 기술자를 구하던 중이였다.
그분은 그 방직 공장 사장을 만나 스카웃이 되었다.
그 방직공장 한국 사장은
베트남 국립염색공장에 다닐 정도이니 그 실력은 이미 입증이 된 것이다.
실력 테스트도 하지 않고 일단 고용부터 했다.
거기에 맞춰
그는 야반 도주를 결행한 것이다.
서로 속고 속았다.
그가 재주가 비상한 것인지 사장들이 미련한 것인지
겉 인물만 보고 그를 쉽게 평가한 것이다.
하여튼 그가 옮긴 방직공장에 초대 받아 나도 그 공장을 다녀왔다.
나는 회사 차량이 있어서 멀지만 한 번 다녀왔다.
나도 원단 관련 쪽이라 염색공장은 많이 알아 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방직공장에서 짤렸다는 소문을 들었다.
위로해줄 겸 다시 만나 술 한 잔 하면서 그 당시 사건을 듣게 되었다.
자기가 염색한 원단이 클레임 걸렸단다
큰 손해가 나서 회사가 비상사태이다.
그런데 클레임을 건 회사사장이 오히려 공장장을 위로할려고 그 공장장에게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 실수도 하는 법이다. ”
이렇게 위로를 드렷는데
이 사람이 미안한 척하면서 고개를 떨구고 죄송하다고 말했다면
이 번 사건은 그럭저럭무마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그게 안 된다.
방자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아 사장님 너무 괴로워 마세요.”
“다음 번에는 잘해 드릴께요”
하면서 오히려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지켜보던 방직공장 사장은 두껑이 열렸다.
"다음 기회가 언제 또 와"
"자네 해고야!"
그 길로 호치민으로 돌아 왔단다.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절로 쓴 웃음이 나온다.
얼마 전에는 기숙사에 화재가 나서 소방차가 출동했단다.
소방대원들이 화재의 원인을 찾았단다.
화재 발생의 원인은 이 한국인이 머무는 기숙사에서 발원하였단다.
그러니까 기도하려고 올린 향불에 불길이 점화가 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는 벌금을 물었다
그런데 더 기이한 사건이 있다.
화재가 나서 큰 손실은 일어난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 주변에 놓인 금강경 책만 홀랑 당 전소가 되었다고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면 웃었다
그러게 금강경 공덕이라고 거짓말하지 말라니까?
신명이 그 책임을 물어 금강경 책만 불에 태워 버린 것이다.
그런데에도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래 나만 아는 것으로 하자."
하여튼 그 결과 그는 여전히 백수로 되돌아 왔다.
이제는 술 한잔 안 사준단다.
이런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무슨 술 공덕을 베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