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정리:2001.11.24-25
11.24(토):구형왕릉 비박
11.25(일):07:00기상-08:50출발-09:20임도숲길-10:10-능선3거리-10:20무명봉-11:00왕산-11:20무명봉-12:00필봉산-13:05무명봉-13:10능선3거리-13:40중식-14:05너덜지대-14:20유의태 약수터-14:25구형왕릉-덕양전
지리산국립공원의 산불 경방 기간이 이미 시작된 터라 지리산행이 어려워졌다. 지리산의 품 안이 그리워 아쉽기도 하지만 이런 기회를 이용해, 지리산 자락인 왕산과 구형왕릉을 다녀오기로 한다. 구형왕릉부터 왕산과 필봉산의 등로 상태는 얼마전 다녀온 필O님에게 물어보니 4시간 정도의 산행이면 된다고 들었다.
남원 산O에게 며칠 전 통화를 했더니 무조건 O.K. 구형왕릉에서 토요일 1박을 한 후, 다음 날 여유가 있게 왕산 산행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오후 2시에 남원에 도착하여 남원 산O과 함께 먹거리를 챙기러, 이마트에 들러 찌게 재료와 비상식, 그리고 간단히 술안주를 준비하였다. 구형왕릉을 가려면 함양읍을 거쳐서 가거나, 지리산 들머리인 인월에서 또는 칠선골 입구인 의탄을 지나서 금서면 화계리에 이르면 된다.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인월에서 금서면을 지나 덕양전이 있는 옆 언덕 길로 오르니 이내 곧 구형왕릉이다.
구형왕릉. 한국의 피라미드라 칭하는 구형왕릉. 금관가야의 마지막 양왕(讓王)의 무덤이라 전한다. 그래서 전(傳) 구형왕릉이다. 백제와 신라의 강력한 힘에 밀려 구형왕이 신라의 법흥왕에게 항복하였다고 하며. 구형왕은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흙 속에 묻히지 않고, 돌로 덮어 달라고 유언하여 군사들이 잡석을 포개어 얹어 만들었다고 전한다. 참고로 말하면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바로 이 구형왕의 손자라 하는데 이 또한 역사의 절묘한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적과 구형왕릉을 산책하면서 들러 보기로 한다. 주차장에서 구형왕릉까지는 불과 5분 거리도 채 안 되는데 마을 사람들의 산책 코스로도 매우 괜찮다는 인상을 주었다. 처음 본 구형왕릉은 나의 예상을 깨고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 왕산(王山)의 북쪽 기슭의 응달진 곳에 있는 구형왕릉은 가을이 깊어가는 늦은 오후의 날씨 탓인지 음산하였으며, 지난날의 가야국의 비극을 전하는 듯 더없는 쓸쓸함을 더해 주었다.
새로 만든 주차장 앞에서 골짜기로 가는 임도가 있는데, 조금 들어가 으슥하고 은폐가 잘된 곳에 애마 지프를 주차하고 길가에 텐트를 친다. 밤에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기는 했지만 여차하면 차 속으로 기어들어 갈 생각을 하니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날이 어둡기 전에 부지런히 텐트를 치고, 찌개를 끓이고 밥을 해놓고. 한숨을 돌리며 술안주를 만든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한 바퀴 돌리고, 양념 장어를 구워 친우 남원 산O과 술 한 잔을 들이키니 얼큰하다. 과거 지리산에서 무수히 야영하던 시절이 생각나, 젊고 푸르르며 씩씩하며 아름다웠던 추억에 사로 잠긴다. 젊은 날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슬프거나 불행하지 않고 무조건 아름다운 것이다. 남원 산O과 인생을 이야기하며 술을 연거푸 들이킨다. 뱃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목젖으로 역류를 한다.
바람이 스산하다. 콜맨 휘발유 랜턴의 강한 불빛과 구형왕릉 위의 남쪽 하늘엔 둥근 달이 차올라 어둠을 충분히 밝힌다. 결국은 세상 사는 것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술자리는 이어진다. 싸늘한 밤공기가 차갑지마는 텐트에 들어서기가 싫다. 그냥 이대로가 좋다. 차라리 이대로 돌이 되어 바위로 변했으면 좋겠다. 구형왕릉 골짜기에서 흐르는 가는 물줄기만 은은한 음악이 되어 우리에게 들릴 뿐, 온 세상이 교교한 달빛을 받으며 몽환적인 고요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밤이 깊지는 않았지만, 랜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잠을 자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침낭 속에서 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지만, 불편한지 얕은 잠결 속에 몇 편 꿈을 그린다. 몇 시나 되었을까. 아직도 칠흑 같은 밤이라 생각되었는데, 이른 새벽 시간이었나보다. 마을 사람 누군가가 산책을 나왔는지 몇십 분 동안이나 우리의 존재를 알 수 없었던지 목청을 돋워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랫소리에 눈이 부스스 떠졌으나 그 후 깊은 잠에 다시 빠진다. 다시 아침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운동 겸 산책을 나온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 소리를 들으며 산속에서 하루를 맞는다.
7시가 넘어서야 눈을 뜨고 산행 준비를 한다. 해장국을 만들어 끓여서 아침을 먹고 점심 준비만 간단히 챙긴 채, 나머지 짐은 85L 배낭에 적당히 구겨 넣어 애마에 싣고, 가벼운 행장으로 구형왕릉 앞으로 오른다.
아침의 구형왕릉 주변은 고요하다. 구형왕릉 좌측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니 초입에 비표가 있다. 그 길을 따라 오르다 계곡에서 수통과 점심 식사를 위하여 코끼리 물통에 물을 가득 받는다. 오름길 곳곳에는 바람에 쓰러지고 기계톱에 잘려져 죽은 소나무의 모습들이 가득해, 그 모습이 삭막하다. 지리산 자락이면서 왕릉이 있는 이곳 신령스러운 왕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은 사라진다. 주변을 살펴도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대략 동물적인 감각으로 산기슭을 향해 치고 오른다. 쓰러진 소나무와 잡목 그리고 험난한 너덜을 만나 땀을 흘리고 유의태 약수터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난다. 다시 임도 길을 버리고 좌측의 오솔길을 따라 등로를 걷는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 길은 낯설지 않다. 아마 토지면에서 왕시루봉의 오름 길이 이러했을 것이다. 동네 앞산을 걷는 듯한 친근함.
잠시 후 이 능선 너머에는 어떤 모습으로 지리산이 나를 반길까 호기심에 마음이 설렌다. 유난히도 소나무가 많은 등로를 지나 능선에 올랐다. 능선에 올라서서 필봉을 바라본다. 필봉은 말 그대로 붓끝같이 뾰족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좌측과 우측에는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가 있어 어느 봉우리가 왕산(王山)인지 헷갈린다. 직감적으로 오른쪽의 봉우리를 왕산으로 알고 갔으나 그 봉우리는 왕산과 필봉산을 잇는 중간의 봉우리였다. 이곳에 올라서니 주위의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듯했으나 이상하게도 왕산의 주봉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 요건을 지니고 있었다. 남쪽을 바라보니 중봉과 천왕봉을 중심으로 밤머리재와 웅석봉, 둔철산과 황매산이, 도토리 봉과 하봉 능선 그리고 지리산 문정댐 예정지가 보인다. 바로 앞에는 붓끝같이 뾰족한 봉우리 즉 필봉이 하늘을 찌를 듯 송곳처럼 날카롭게 치솟아 있다.
한참을 넋이 빠져 조망에 열중하다가 필봉산을 향하여 내리막 길을 걷는다. 밤머리재와 웅석봉에서 바라보면 채석으로 인하여 볼품이 없는 필봉이건만 이곳에서는 멋진 모습으로 험준한 봉우리로 우리를 맞이한다. 특히 필봉은 보기와는 달리 거대한 암벽 군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마지막에는 땀을 제법 흘리며 바위를 올라 차야 정상에 설 수 있었다. 필봉에 오르니 산청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필봉에서도 한참 동안 남원 산O과 조망의 즐거움을 누리다가, 왔던 길로 회귀하여 왕산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금서면 방향으로 하산을 하려고도 생각을 했었지만, 차량 회수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산정에는 강한 바람이 불어 한기를 느낀다. 아까 올랐던 삼거리를 지나 왕산에게 올랐다. 정상에는 새로 만든 듯한 표지석이 있다. 왕산(王山). 왕(구형왕)이 묻힌 산이라 왕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헬기장에는 부산에서 안내 산행을 온 단체 산객들 수십 명이 자리를 잡고 시끌벅적 점심을 먹고 있어, 혼잡한 그곳을 피해 펑퍼짐한 곳에 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여유가 있어서 쉬엄쉬엄 유람 산행을 했는데도 지금의 시각이 고작 1시가 갓 넘었다. 내림 길은 유의태 약수터 방향이다. 능선 삼거리에서 조금 내려서자 이내 북쪽 사면의 길은 상당히 가팔라진다.
험난한 두 군데의 너덜지대를 지나고 도착한 곳이 허준의 스승으로 유명한 유의태 샘터. 유의태 샘터는 너덜 아래에 자리 잡은 약수터로서 암반에서 생성되는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라고 한다. 위장병과 피부병 등 불치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전하는데, 그곳에서 물을 받던 주민들에게 말을 물으니 원래는 비교적 많은 수량을 자랑하는 샘터였는데, 최근 비가 오지 않고 가물어, 수량은 그다지 풍부하지 않다고 한다. 물을 청해 한 대접 비우니 몸과 마음이 시원하다.
그곳에서 머무르다가 내려선 곳에는 수정궁 터. 가락국 마지막 왕 양왕이 나라를 신라에 빼앗기고 이곳 왕산에 수정궁을 짓고 칩거하다가 생을 마감한 곳이다. 수정처럼 화려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과거의 왕이 살았던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초석과 잡초 그리고 그 흔적만 쓸쓸히 남아 있어, 역사의 패배자로 기억된 양왕이 서럽고,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곧바로 임도를 만난다. 임도 길을 따라 걷다가 왼쪽의 샛길로 접어드니 이내 구형왕릉. 주차장에는 휴일 가족 단위로 나온 산님들의 차량이 붐비고 있었다.
가락국 마지막 왕인 양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덕양전을 들러 보았다. 덕양전에서 바라보니 구형왕릉의 왕산이 더없이 쓸쓸해 보이는 것은 햇살이 눈에 띄게 약해진 초겨울의 오후여서만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첫댓글 내가 가지 못한 길이지만 산길을 걷다보면 그길이 그길 같고 똑같은 산길은 아니지만 명상의 순간을 즐기는순간, 이미 행복한그대여!~
그대는 멋진 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