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섬
최 재학
읽어버린 섬은 태안반도 몽산포 해수욕장 약 10km 앞에 떠 있는 무인도인 거아도 居兒島를 말한다.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데도 지도에도, 공부空簿에도, 물론 지적도 없는 섬이다. 하지만 분명 사람이 거주하는 이상한 무인도(?)이다.
그 섬은 내가 고향을 사랑하게 하는 원동력이고 문학의 원천이었다. 70년대 초중반에 부부 교사로 근무하던 낙도이며 따라서 첫 번째 장편 소설집 『잃어버린 섬』의 배경이 된 섬이다.
가끔 그 섬이 그리우면 섬에는 갈 수 없으니 섬이 바라보이는 몽산포 해수욕장을 찾는다. 며칠 전 그 해수욕장을 거닐다가 문득 거아도가 스마트 폰에서는 어떻게 표시 되었는가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태안군에서는 안면도를 제외하고 가장 큰 섬인데 스마트폰에서 사라진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그러나 사실이었다.
거아도는 역사서에도 곳곳에 기록된 섬이다, 고려 중기(1123년)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알자軋子섬으로, 조선 인조시 승정원일기에는 거아도居兒島로, 대동여지도에는 경鏡도로 기록되었으며 특히 260년 전 여지도서에서는 면내에서 가장 큰 마을로 70여 세대에 300여 주민이 살았었다.
그 거아도가 려말선초 왜구의 등쌀에 폐촌이 되었었는데 1987년 또다시 미사일의 등장으로 발사 실험을 하면서 두 차례 폐촌의 아픔을 당한 한으로 뭉쳐진 섬이다. 나 역시 70년대 낙도 부부교사로 5년여를 근무하면서 두 아이를 낳아 어린 시절을 보내게 했으니 철저한 섬놈이 되었으며 때문에 숱한 애환이 쌓였던 섬이다.
그러나 자주국방을 외치던 3공화국에서 안흥에 한국식 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하고 거아도를 비롯한 인근 도서를 폐촌 시켰다. 이 때문에 수백 년대를 이어 고기잡이로 살아가던 낙도민들은 억지 실향민이 되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뿔뿔이 흩어져 살아갈 터전을 찾아 살아가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 했다. 분교장 역시 폐교되어 아이들도 낯선 곳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섬
섬을 잃은 사람들은
오늘도 됫병 소주를 퍼마신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보다 더 오래
외롭게 길들여진
섬 이야기를 잊으려
그 섬을 바라보며
외로움 씹듯
꽃게 발 안주를 씹는다
생명선이던 깨진 조각배
손 마디마디 갉아 먹던 낚싯줄 한 타래
끝내 버리지 못한 채
쫓겨나온 그 섬이 그리워
세평장벌¹ 모래밭에 한숨을 묻는다
지금쯤
빈 분교장分敎場*의 플라타너스가 포성에 놀라
외로운 일을 마구 떨겠지
너도 이전
홀로서기에 익숙해야 하련만
세월이 더할수록
연민이 깊어가는 그리움의 존재
생명보다 진한 사랑이었구나!!
쉰 목소리로
뒤늦게 울부짖어도
메아리조차 들어 줄 이 없이 흩어져버렸고
그래도 남은 인연 있어.
끈적한 마파람은
여름이 다 가도록 불어대고
때까치 한 마리가
남봉산을 맴돌고 있다지
눈부시게
초롱한 별들이
해변에 낮게 뜨는 늦가을 초저녁이면
그 섬을 또 보며
어쩌지 못하는 운명을 술잔에 담아 마시지!
- 최재학, 「잃어버린 섬」 전문
내 것도 내 것도 없이 한집처럼 살아가던 순박한 사람이 섬사람이었다. 식량은 물론 심지어 성냥도 석유 기름도 함께 떨어지던 철저한 생활공동체였다. 경사는 내일 네 일이 없이 함께 즐겼으며 아기가 아파도 주민 모두 밤잠을 설쳤다.
논농사가 없어 소규모 어업과 밭농사뿐으로 겨울에서 봄까지는 고구마가 반 식량이었다. 포구 가는 집집마다 고구마를 삶아 숭늉과 같이 마루에 놓아두면 주인이 없어도 이집 저집 다니면서 한 뿌리씩 먹고 물을 마셨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이어도로 알고 불만도 불평도 없이 모두 한 집으로 살았다.
그러나 우직하고 순박하던 그들에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국가가 위로는 고사하고 아무런 변명도 없이 쥐꼬리 보상으로 쫓아낸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국가가 있어야 가정도 있다면서 고향도 일가친척도 버리고 거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배우며 숱한 시형착오를 거쳤다.
이제 고향 방문은 고사하고 지도에서조차 찾을 길이 없다. 국제시대가 되었다면서 북한만 빼고는 지구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이 세상에서 아주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섬 안에는 일주도로가 있고 현대식 건물도 있다. 아마도 연구원들과 경비원들이 거주하는 것 같은데 주민등록은 고사하고 지도에서조차 사라진 것이다.
있어도 없는 섬, 사람이 거주하는 무인도(?), 살아가기 바쁜 실향민에게는 그리움뿐이지만 그래도 지도와 스마트 폰에서조차 사라진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허탈할 것인가?
애절한 사연뿐인 서해 낙도! 이제는 잃어버린 섬이 되어 기억에서조차 가물거리는 있어도 없는, 정말 이상한 섬이 되었다.
¹세평장벌世評長 : 몽산포구 모랫벌
*분교장 : 서해 낙도인 남면초등학교 기아도 분교장으로 1987년 폐교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