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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의 가치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IT 업계가 인정하고 있다. 가트너에서는 10대 전략 기술로 3D프린터를 2년 연속 선정한 바 있으며, 미항공우주국(NASA)은 3D프린터로 음식을 출력하는 연구까지 진행하고 있다. 올해 초 3D프린터로 전자의수를 만들어 화제가 된 이상호 만드로 대표는 국내에서 3D 프린팅 전도사를 자처한 인물이다.
“다들 컵을 출력한 다음 뭘 해야 할지 몰라요. 그게 국내 3D프린터 생태계의 현실입니다. 그 이상의 콘텐츠가 없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상호 만드로 대표에게 자비를 털어 3D프린터로 전자의수를 만드는 까닭을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그는 3D프린터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지속 가능한 3D프린팅 콘텐츠가 필요하며, 그 콘텐츠로 가장 적합한 것이 ‘의지보조기’ 분야라고 설명했다.
전자의수 재능기부로 만들다
이상호 대표가 전자의수를 만들기 시작한 건 사고로 양 손목을 읽은 한 30대 남성이 3D프린터 커뮤니티에 올린 사연을 본 이후부터다. 그 남성은 “전자의수 한 쪽 가격이 4000만 원이라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포기가 안 된다”며 3D프린터 전문가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해당 글을 접한 이상호 대표는 사연이 딱하기도 하고 3D프린터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도전장을 내민다. 3D프린터로 손가락 관절을 모두 출력한 다음 아두이노와 각종 센서를 연결해 전자의수를 완성했다. 어깨 근육을 움직여 특정 패턴을 입력하면 손가락이 접히는 식으로 초기 버전을 완성했다. 현재 첫 번째 버전을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달한 상태이며, 개선된 버전을 계속 개발 중이다.
“그 분에게 전달한 첫 번째 버전은 제가 원하는 수준의 30%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아직 개선해야 할 것 투성이죠. 3D프린터의 장점은 하루에도 몇 번씩 목업을 출력해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시행착오를 격고 완성품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 얘기죠.”
값비싼 전자의수를 3D프린터와 아두이노로 저렴하게 만든다는 소식이 각종 뉴스를 통해 알려지면서 전자의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문의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의수 제작에 관해 묻는 문자메시지와 전화가 이상호 대표의 휴대전화를 가만 두지 않았다. 그 때마다 이상호 대표는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문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데, 사실 조금 난감하긴 합니다. 일단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 게 대부분이죠. 전자의수를 판매하려면 의사 소견도 필요하고 허가도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일단 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능기부 형태로 무료 제작을 하는 것인데, 그래도 최소한의 제작비는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상호 대표가 다음 뉴스 펀딩을 시작한 것도 이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2015년 4월 현재 뉴스 펀딩으로 약 1000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목표액인 500만 원을 훌쩍 뛰어 넘은 금액이다. 후원자들에게는 감사의 의미로 3D프린터로 출력한 명함케이스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요즘은 의수 제작보다 이 명함케이스를 출력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3D프린터, 아직 갈 길 멀어
이처럼 3D프린터의 잠재력은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만났을 때 더욱 커진다. 프로토타입을 3D프린터로 제작하고, 그걸 소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올려 투자자나 후원자를 모집해 대량 생산까지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는 제조업에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상호 대표는 이런 일이 국내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전자의수 뉴스 펀딩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연스럽게 의지보조기 업계로 스며든다면 좋겠지만, 아날로그 방식의 의지보조기를 주로 생산해 온 국내 업체들에게 아두이노와 3D프린터 등의 디지털 기술은 아직 어색한 모양이다. 이상호 대표는 “3D프린터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IT 업계에만 머물러 있는 거죠. 또 기존 의지보조기 업체들은 시장을 빼앗긴다는 인식도 있는 것 같고요. 오히려 이런 업체들이 3D프린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죠”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상호 대표는 한국에서 3D프린터가 대중화되지 않은 것이 이런 오해를 만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3D프린터와 함께하는 메이커 포럼’을 주관하기도 하고, 3D프린터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번개 모임을 수시로 여는 등 3D프린터를 대중에게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또 일반인들이 3D프린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직접 교육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한다. 3D프린터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CAD 프로그램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오차 범위를 최적하는 등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 많은데, 이런 정보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만드로( mand.ro) 사이트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그는 “3D프린터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메이커들을 위한 공간과 3D프린터 교육 프로그램, 서로 네트워킹할 수 있는 행사, 자신이 만든 작품이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발표의 장 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시설이나 행사, 교육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3D프린터용 콘텐츠 발굴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겠죠”라며 콘텐츠 발굴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전자의수를 만들게 된 것도 역시 콘텐츠 개발을 위해서였다. 앞으로 전자의수를 모듈화해 키트(Kit) 형태로 표준화하는 게 그의 최종 목표다. 노하우를 모두 공개해 누구나 전자의수를 3D프린터로 출력해 만들 수 있도록 하고, 또 필요에 따라 사용자들이 일부를 수정해 자신에게 필요한 전자의수를 직접 제작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상호 대표에게 3D프린터가 대중화됐을 때 어떤 모습을 상상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우체국이나 카페, PC방에서 3D프린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겠죠. 아마 3년 후쯤에는 동네마다 3D프린터 샵 같은게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탁기, 냉장고 등의 백색가전처럼 어느 가정에서나 3D프린터를 보유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며 3D프린터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