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 김천두 서예 과천경마장 애마교(愛馬橋) 글씨01
소천 김천두
그는 유천재시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읽었으며 먹물을 한 대야 갈아 놓고 먹물이 다 떨어져 그칠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글씨를 썼으며, 용맹정진 하여 소천은 필묵을 보면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았다.
소천의 글씨는 단정하고 힘이 있으며 부드러운 가운데 필획이 자연스럽게 운영되고 있다.
소천은 현대 서예에서는 기초를 등한시하여 나타난 현상이 처음부터 너무 빨리 변화를 구하려고 했지만, 진정한 변화의 의미를 몰라서 매우 기괴하고 난해한 서체의 세계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소천은 예를 들어 말하기를, “시도 이백의 시를 보면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하며, 일반인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기만이 아는 매우 기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시는 시도 아니다. 시는 여러 사람이 공감 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한다”고 하였다.
소천은 시와 문장, 그리고 학문에도 깊어 입고창신한 조용한 사군자(士君子)적 고고한 정신으로 글씨를 썼다고 한다.
◇ 소천 김천두 한시, 서예에 대한 생각을 말하다
시를 지은 것 같더라.
원래 형태로 그리지 마라.
반드시 이 시가 정희 시인을 알지 못해
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지은 것 같다.
이 서화의 길이 옛 법에 있지 아니 하고
내손에도 있지 아니 한다.
옛 사람의 그림을 본받아서 그린 것이 아니요,
내손으로 그리는 것도 아니라 마음으로 그렸다.
또 옛 법이 나의 밖에 나오지 아니 한다.
나의 창의력으로 그린다.
- 2007. 김천두
나의 글씨는 왕의지, 황산곡, 안진경, 추사체, 서동파 글씨, 조지겸체를 지금도 쓰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여러 체로 썼다.
그림의 요령에는, 소동파 선생 가라사대, 왕마일(왕유)의 시 가운데는 그림이 있고, 마일의 그림을 보면 화중유시(畵中有詩)라 가라사대, 푸른 시냇물에 백석이 나와 있고 옥천(좋은 시내 이름)에는 붉은 잎이 드물더라(귀하다).
산길에 비가 없는 속절없이 (푸른 것 색이) 사람의 옷을 적시더라. 또 가라사대, 형사(形似)를 논할 것 같으면 이에 아이들과 더불어 아이들 하고 붓 끝에 금강(금강산) 오직 많이 연습해서 빼어나다. 붓 끝에서 좋은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 2007.소천 김천두
소천 김천두 화백은 현대 학교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호남의 석학 다초 위복량, 잠계 백형기 선생에게 사사(私事)하여 한시문(漢詩文)을 한 한학자(漢學者)로서, 그의 심원(沈遠)한 학식 위에 각고검연 화사(畵事)에 전념한지 삼십성상(三十星霜)에 이르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필치(筆致)는 청아(淸雅)할 뿐 아니라 시서화(詩書畵)가 완전겸비(完全兼備)되었다.
일찍이 소동파 선생(蘇東坡 先生) 말씀이 시중유화(詩中有畵)하고 화중유시(畵中有詩)라 하였거늘, 시(詩)를 모르는 자(者)가 어찌 능히 화(畵)를 하며, 화(畵)를 하는 자(者)가 시(詩)를 음미(吟味)못한다고 하면, 그는 한갓 소수선(小手先)의 소기(小技)에 불과할 것이요, 고상하고 심오(沈奧)한 격조있는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본다.
소천 화백의 작품을 일람(一覽)하건대 그의 필의(筆意)가 평담천진(平淡天眞)하여 기초한 재조작란(才操作亂)은 조금도 엿볼 수 없다 .이는 오직 그의 천성이 청담(淸澹)하여 무영욕적(無榮慾的) 인의지심(仁義之心)을 갖춘 인간이기에 가려(佳麗)한 호산(湖山)과 준수한 영봉을 천성과 학식으로 함영(涵泳)하여 노출시켰다.
현아국(現我國) 동양화계(東洋畵界)가 너무나도 기교(技巧)에만 치우쳐 날이 갈수록 고상한 문인적화(文人的畵)를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학(漢學)의 빈인(貧因)으로 인한 동양철학(東洋哲學)의 식양(識量)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원(元)의 사대가(四大家)와 명(明)의 심주 문징명, 동기창, 명말청초(明末淸初)의 팔대산인 석도, 더 내려가서 조지겸, 오창석 등은 다 만권서(萬卷書)를 독파한 학자적 작가였다.
소천화백은 수묵을 즐겨 써서 폭넓은 구도에 적묵용필(積墨用筆)로 평원(平遠)한 화면을 담백하게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서(書)와 더불어 단아한 기(氣)가 있어 문자 그대로 화서일치(畵書一致)의 경지를 보이고 있다.
화법(畵法)은 황공망을 중심으로 한 호남남종문인화(湖南南宗文人畵)의 류(流)이나 소천화백 독자의 경지를 유감없이 표현하였다. 일산일수일화일목(一山一水一畵一木)에 이르기까지 농담묵색(濃淡墨色)의 묘(妙)와 공간의 미(美), 괴(怪)와 기(奇)가 없는 초속(超俗)한 작품세계는 능히 그의 심형(心形)과 완전일치(安全一致)된 바로써, 그의 일념불란(一念不亂)한 연구의 결과가 우리 화단에 길이 빛나기 바란다.
소천 김천두 작품
◇ 소천(小天) 김천두 선생 서예
水月松風雁影橫江(수월송풍안영횡강) 물에는 달이 비치고 소나무숲 위로는 바람이 스치고, 기러기 그림자는 강을 가로지르네.
남종문인화가 小天 김천두(1928~ 2017) 선생은 장흥군 관산읍 송촌리 평촌마을에서 출생했다. 전통적인 명문 광산김씨 양간공연의 후예로 본명은 김석중이다. 향리인 천관산 기슭 유천재(柳川齋) 서당에서 한서와 시·서·화(詩·書·畵)를 수업했으며, 한학의 대가인 관산읍 방촌리 태생 다초(茶樵) 위복량(1897~1979) 선생과 용산면 상금리 태생 잠계(潛溪) 백형기(1881~1948) 선생 문하에서 서예를 익혔다. 남화의 정상급 거목 남농(南農) 허건(1907~1987) 등에게 산수화의 기법을 배웠고, 월전(月田) 장우성(1912~2005)에게서 인물, 화조 등을 사사 받아 개성있는 자기정신세계 표현을 위한 회화세계를 추구해 왔다. 저서로는 <소천 한시집>, <詩·書·畵 삼절과 남종화 이론> 등이 있다.
■사진·글/김선일 한국화가
◆ 소천 김천두 ·1928년 전남 장흥 출생 ·한국화 개인전 28회 ·구주대학 문학부 철학전공 ·현대미술초대전 초대작가(국립현대미술관) ·아세아현대미술대전 초대출품(동경) ·한·일 및 한·중·미 문화교류전 다수출품 ·오원국제연맹전 출품 ·프랑스국제미술교류전 출품 ·동경국제미술협회전 출품 ·한중국제문화교류전 초대출품 ·중화민국건국기념 한·중 명가전 초대출품 ·뉴욕캠브리지 미술관 초대출품
|
남종문인화가 小天 김천두는…
1928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했다. 전통적인 명문 광산김씨 양간공연의 후예로 본명은 김석중이다. 향리인 천관산 기슭 유천재 서당에서 한서와 시·서·화를 수업했으며 한학의 대가인 다초 위복량 선생과 잠계 백형기 선생 문하에서 서예를 익혔다. 남화의 정상급 거목 남농 허건 등에게 산수화의 기법을 배웠고 월전 장우성에게서 인물, 화조 등을 사사 받아 개성있는 자기정신세계 표현을 위한 회화세계를 추구해 왔다. 저서로는 ‘소천 한 시집’ ‘시·서·화 삼절과 남종화 이론’ 등이 있다.
소천 김천두 가(家)는 3대가 화가의 맥을 잇고 있는 드문 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들 김선두가 중앙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김선일이 한국 산수화의 대표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또 김천두 옹의 손자인 김선두의 자 김중일(서울대 한국화과 대학원 졸업)도 동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화 수강생 모집
우리의 그림인 한국화의 묘사와 기초 과정을 실습과 동양화론을 지도 합니다.
기초부터 창작에 이르기까지.초급.중급.고급 과정으로 지도하며 한국화 작가 지망생.취미생반은 저녁 시간에 직장인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일반: 오전반 10시-1시 까지. 오후반 2시-5시
토요일 특별반: 오전반 10시-1시 까지. 오후반 2시-5시
평일 저녁반; 저녁 7시-9시 까지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 가장 세계적인 그림 입니다.
한번 배워 보세요 한국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 입니다.
지도 과목
산수화
사군자
채색화
석채화
수묵화
화조화
민화
문인화
한국화 외국인반
한국화 미대입시반
개인지도로 수업 합니다
수강 신청
서울 송파구 가락동 96-1 가락우성아파트 상가 3층
가락시장 전철역 3호선 3번 출구 가락우성아파트 상가 3층
02.406.6569. 010.7643.7355
김선일화실 http://cafe.naver.com/sunil7355
김선일화실 뉴아트샵 www.newartsh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