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치열한 세그먼트 중 하나인 준중형은 소형차와 중형차의 틈바구니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나라별로 부르는 이름도 달라 독일에서는 C세그먼트, 영국은 스몰 패밀리카, 미국은 콤팩트카로 통한다. 준중형차는 거의 모든 메이커에서 손을 대고 있을 만큼 꼭 필요한 존재로서 폭스바겐 골프, 토요타 코롤라, 포드 포커스, 혼다 시빅 등 역사가 오랜 차들은 소형차로 출발해 이제는 준중형차의 오랜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특히 유럽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국내에서는 1990년 초 현대 엘란트라가 등장하면서 준중형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 준중형차 시장은 엘란트라와 대우 에스페로, 기아 캐피탈/세피아 등과 함께 전성기를 누렸다. 이처럼 준중형차 시장이 국내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자 르노삼성은 2002년 닛산 블루버드 실피를 베이스로 한 SM3을 내놓았고, 준중형차 시장에서 ‘종합체감만족도 6년 연속 1위 (마케팅인사이트 자료 기준)’를 차지하는 인기를 등에 업고 이번에 다시 신형 SM3을 선보였다.
7년을 기다린 보람
신형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7년 만의 풀 모델 체인지다. 요즘은 모델 체인지 주기가 짧아져 4~6년 만에 바뀐다. 늦긴 했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신형 SM3은 이전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환골탈태. 구형 SM3가 일본에서 개발된 닛산 블루버드 실피를 베이스로 한 것과 달리 신형 SM3는 저 멀리 프랑스의 인기차 르노 메가느의 플랫폼을 베이스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구형은 일본차 색채가 짙었으나 신형은 유럽, 아니 프랑스차의 향취를 가득 머금고 있다.
신형 SM3은 한눈에 봐도 덩치가 크다. 구형보다 길이, 너비, 높이가 각각 110mm, 100mm, 30mm나 커졌다. 폭은 SM5(SM7)보다 오히려 23mm가 넓어 동급 최대이다. 게다가 혼다 시빅이나 푸조 308처럼 캡 포워드 디자인을 사용해 더 크게 보인다.
보닛 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헤드램프는 르노 메가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국내 정서를 생각했는지 메가느처럼 파격적이지 않다. 시트로앵, 푸조 등 프랑스차에서 볼 수 있는 헤드램프 디자인이다.
캡 포워드 디자인으로 보닛은 구형의 2/3 정도다. 그만큼 실내공간이 앞쪽으로 넓어졌다는 얘기. 커진 차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캡 포워드 디자인을 써 구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실내가 넓다. 예전 SM3의 오너들의 가장 큰 불만이 좁은 실내였으니, 신형 SM3을 개발하면서 당연히 실내 크기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법하다.
시승차는 스마트키가 있어 도어핸들을 잡으면 문이 열린다. 적외선 센서가 손의 움직임을 감지해 열리는 방식이다. 앞자리는 6방향 전동시트인데, 준중형급에서는 보기 힘든 옵션이다. 다만 시트 바닥의 앞뒤 높이가 따로 조절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나?
SM3의 실내는 간결하게 꾸몄다. 스티어링 휠의 로고, 계기판(메가느는 디지털)이 조금 다를 뿐 르노자동차 메가느와 똑같다. 현대 아반떼와 기아 포르테,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보다 분명 한 수 위다. 이들과 판매 시장이 다른 이유도 있지만, 모회사의 디자인 철학처럼 SM3의 실내는 ‘심플의 미학’으로 완성됐다.
실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센터페시아 위에 자리잡은 고정식 7인치 모니터로, 터치스크린과 리모컨으로 조작할 수 있다. 기본형은 7인치 모니터 대신 작은 액정이 달린다. 계기판도 시인성이 좋다. 속도계가 중앙에 큼직하게 자리잡고, 그 왼쪽에 타코미터, 오른쪽에는 차의 상태를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정보창 HMI(Human Machine Interface)가 있다. 이 역시 준중형차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보여준다. 운전자의 운전 습관을 돕는 순간연비, 평균연비, 연료소모량, 평균속도 등. SM3을 계기로 앞으로 국산 준중형급에 이런 기능들이 일반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국내 소비자들은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이 많았다.
오른쪽 스티어링 칼럼에 오디오 리모컨이 달려 있다. 메가느는 스티어링 휠 스포크에 몇 개의 버튼이 달려 있는데, 르노삼성은 아예 리모컨에 통합해 놓았다. 손으로 만지면 울퉁불퉁 꽤 많은 버튼이 있다. 이 리모컨은 스티어링 스포크에 가려 쉽게 볼 수 없지만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고 허리를 숙여 확인작업을 한다면 더욱 편리하게 다룰 수 있다.
중형차만 한 2,700mm에 이르는 휠베이스의 도움으로 뒷자리공간은 여유롭다. 게다가 뒤 시트 등받이 각도가 27°로 설계돼 안락하고 편안하다. 6:4 분할이 가능하고 SUV처럼 더블 폴딩 기능까지 더해져 공간 활용성이 높다. 그러나 가운데 자리 헤드레스트가 없다는 게 거슬린다.
찰떡궁합의 최신예 엔진과 무단변속기
파워트레인이 싹 바뀌었다. 신형 SM3에 얹히는 직렬 4기통 1.6L 엔진(H4M)은 르노-닛산의 최신품이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1,598cc 엔진은 가변 흡기밸브와 전자제어 드로틀 시스템의 도움을 받고, 사일런트 타이밍 체인을 달아 내구성을 높였다. 최고출력은 112마력으로 현대 아반떼(121마력),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114마력)보다 낮지만 토크는 15.9kg·m로 아반떼(15.6kg·m), 라세티 프리미어(15.5kg·m)보다 높다. 출력은 경쟁차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토크가 높아 실영역에서 달리는 데 무리가 없다.
신형 SM3은 무단변속기(CVT)가 물린다. 닛산이 자랑하는 엑스트로닉(Xtronic)이다. 1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닛산의 무단변속기는 이미 알티마, 로그, 무라노 등에서 검증받았다. 엑스트로닉은 주행 상황에 따라 폭 넓게 기어비를 최적으로 맞춘다. 지프 컴패스와 닷지 캘리버에서 쓰는 무단변속기보다 동력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달한다. 변속 충격도 거의 느낄 수 없고 6단 수동 기능까지 있어 가감속이 수월하다. 다만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높은 엔진 브레이크를 걸 수 없는 단점이 있지만 엔진의 힘을 부드럽게 전달한다.
연비도 좋아졌다. 구형은 L당 12.6km였는데 신형 엔진은 출력이 높으면서도 1L로 평균 15km를 달릴 수 있다. 5단 수동변속기를 선택하면 L당 16.3km로 높아진다.
서스펜션은 앞 맥퍼슨 스트럿, 뒤는 멀티링크에서 토션 빔으로 바뀌었다. 토션빔은 멀티링크보다 구조가 간단해 무게를 줄일 수 있어 주로 소형차에 많이 쓰이는 방식이다. 승차감은 태생이 유럽인지라 단단한 느낌이 들고 둔덕을 만나면 세련되게 넘는다. 너무 단단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르지도 않아 국내 도로 실정에 잘 맞는다.
전자식 스티어링은 인위적이고 단절감이 느껴진다. 전자식 스티어링 휠을 잡을 때마다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듯 어색하다. 유압식 스티어링 휠의 느낌에 익숙해져 있는 탓일 게다. 그러나 정확하게 반응하고 피드백이 좋다. 구형도 핸들링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앞으로 SM3의 핸들링은 꾸준히 칭찬을 받을 것 같다.
7년 만에 우리 앞에 당당히 나타난 SM3. 신형은 르노와 닛산의 도움을 골고루 받아 안팎이 모두 새롭게 변했다. 특히 신형 SM3은 준중형이라는 체급을 뛰어넘는 크기와 중형차 부럽지 않은 편의장비를 가득 채워 SM4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제 르노삼성은 타사의 준중형차가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차의 가치를 합당하게 평가받기를 원하고 있다.
SM3의 국내 라이벌
현대 아반떼
국내 준중형차의 표준. 모델이 바뀔 때마다 언제나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장점 베스트셀러의 노하우가 가득 담겨있다. 많이 팔린 차라 유지·관리도 쉽다.
단점 개성을 살리기 힘들다. 어딜 가나 아반떼 천지.
기아 포르테
현대 아반떼와 형제로 진일보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장점 시선을 끄는 신선한 디자인과 아반떼를 능가하는 편의장비가 매력.
단점 아반떼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때로는 아반떼의 염가판으로 오해받는다.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
신형 SM3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덩치 큰 준중형차 자리를 지켰다.
장점 경쟁차보다 좋은 조건에 살 수 있고 토크발이 끝내주는 2.0L 디젤 엔진을 선택할 수 있다.
단점 브랜드 파워가 약해 도로에 다니는 많은 차들이 GM대우 로고를 떼버리고 시보레 로고를 달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