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조 밴드 ‘활’의 보컬리스트. 12년 전부터 보컬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가르친 제자가 1만2천 명에 이른다는 그는 현재‘보이스 아카데미 (www.kmkvoice.x-y.net)’를 운영하면서 여전히 밤을 새우며 음악 공부를 하고 있다.
“어떤 목소리가 좋은 목소리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때 나는 목소리를 아날로그 보이스와 디지털 보이스로 나눠 설명한다. 소리의 진동수가 기본음의 2배, 3배로 커지는 음을 배음(倍音)이라고 한다. 배음이 많이 실리는 목소리, 쉽게 말해서 진동수의 폭이 넓은 목소리가 아날로그 보이스다. 흔히 ‘살아있는 목소리’라고도 부르는데, 단점이라면 이펙터를 걸어도 잘 안 먹힌다는 거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수들이 아날로그 보이스를 냈다. 옛날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도 그 목소리 때문이다. 그러다 80년대 중반부터 가수들 목소리가 디지털 보이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디지털 보이스는 대부분 목소리가 예쁘고 배음이 적어서 이펙터가 잘 먹힌다. 그렇다고 ‘죽은 목소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직 활동하는 가수 중에 아날로그 보이스를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조용필이다. 보컬리스트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다.
사실 보컬 트레이너는 ‘가르치는’사람이 아니다. 기본 테크닉이야 당연히 가르치지만 그보다는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면서 좋은 소리를 내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보는 게 옳다. 가끔 테크닉만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그냥 돌려보낸다. 녹음이 몇 달밖에 남지 않아서 ‘과외’가 필요한 가수가 아니면 노래 부를 ‘자세’가 된 친구들만 받아서 ‘정규 교육’을 한다.
가장 아끼는 제자 한 명을 꼽으라면 역시 휘성이다. 우연히 새벽 2시에 휘성의 소속사 근처 편의점에서 처음 만났다. 꾸벅 인사를 하더니 이런 점들이 부족하다고 고민하길래 연습실로 가서 노래를 들어봤다. 부족하긴 했지만 테크닉은 괜찮았고, 아날로그 보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소리를 무리하게 내는 게 가장 문제였다. R&B나 소울을 하는 요즘 젊은 친구들은 흑인들의 우람한 소리를 좇다보니 자기 몸이 낼 수 있는 120%의 소리를 낸다. 그렇게 연습하면 배우는 점은 있겠지만 프로가 계속 무리하게 소리를 내다보면 노래 못한다고 찍힌다. 휘성 역시 고음에서 소리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고음에서 소리를 가볍게 내는 법, 소리 내는 위치를 바꾸는 법 같은 걸 가르쳤다. 호흡도 문제였다. 그는 선천적으로 기관지염과 비염을 앓기 때문에 노래하기에 힘든 몸을 가졌다. 호흡도 건강한 사람보다 짧아서, 호흡을 잘 이용해서 편안하게 노래하는 법과 무리 없이 도약 진행을 할 수 있는 법도 알려줘야 했다. 물론 저음에서 고음까지 똑같은 크기와 두께로 소리를 내는 법 같은 건 기본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휘성은 그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보통 사람들보다 두 배 정도 배우는 게 빠른 정도다. 재능 있는 사람들은 네 배 정도 빠르다. 휘성이 요즘 젊은 가수들 중에 가장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건 무지하게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음악을 끼고 사는데, 차 안에서도 소리 연습하느라고 입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지만 휘성을 가장 아끼는 제자로 꼽는 건 그런 성실함 때문이다. 노래는 진실하다. 노력하면 열정이 생긴다. 휘성은 그 정열과 열정이 목소리에 묻어 나온다. 그걸 ‘필’이라고 얘기하지만 듣는 사람은 휘성의 열정을 느끼는 것뿐이다.
휘성과 박효신 중에 누가 노래를 더 잘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휘성이 더, 못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상황은 바뀔 것이다. 박효신은 어린 나이에 이미 자기 목소리를 결정했기 때문에 목소리가 항상 똑같다. 휘성은 아마 죽을 때까지 목소리가 미완성일 거다. 계속 무언가를 추구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늘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중은 그 미완성인 상태, 노력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하지만 휘성이나 나나 보컬리스트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아직 멀었다. 그는 아직 고음에 힘이 들어가서 불편한 소리를 낸다. 목에 힘을 빼고 편안히 부르게 하고 있는데, 계속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교정이 쉽지 않다. 힘들게 절규하듯 부르는 예전의 휘성 목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요즘엔 성의 없이 부르는 게 아니냐고 서운해할 수 있지만, 어차피 가수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다.
그보다 요즘 휘성을 보면 가끔 불안해진다. 뮤지션이냐, 엔터테이너냐 하는 갈림길에 서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가수가 ‘몸 만드는’거다. 가수는 근육을 만들면 안 된다. 소리 내는 쪽이 아니라 근육 쪽으로 힘이 빠지기 때문에 노래가 잘 안나온다. 운동을 해도 하체 위주로 해야 하는데, 휘성이 얼마전 3집을 내면서 상체 훈련까지 해버렸다. 그래서 “네가 노래할 놈이냐”고 크게 혼을 냈는데, 생각해보면 소속사의 뜻이라는 게 있으니 가수로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1, 2집이 뮤지션 느낌이 짙었다면 3집은 약간 엔터테이너 지향적인 면이 보인다. 여기서 발을 잘못 디디면 노래보다 다른 잡다한 생각이 많아지면서 노래 생명이 짧아진다.
휘성에 비하면 거미는 재능을 타고났다. 처음 만났을 때 1집을 낸 상태였는데, 노래는 너무 하고 싶은데 잘 되질 않아서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6개월 동안 딱 두 가지만 가르쳤다. 소리에서 낮은 배음을 없애고, 높은 배음을 편안하게 내게 해서 소리를 띄울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소리 위치를 바꾸지 못하길래 비성을 연습시켰다. 일단 소리가 코로 지나가야 두성도 나온다. 성악적인 발상으로는 소리를 한 위치에서 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톤이 지루해지기 때문에 대중음악을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그래서 후두를 분리해서 쓰면서 소리 위치를 바꿀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되면 듣는 사람도 지겹지 않고 목에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다. 거미가 앨범을 내는 바람에 두성까지는 못 가르쳤는데, 비성까지는 만족한다. 나는 제자한테 지시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데, 거미는 내 뜻을 굉장히 빨리 깨달았다. 2집도 기대 이상으로 소리가 잘 나왔다.
하지만 소리를 가볍게 내다보면 자칫 소리가 죽어버릴 수도 있다. 거미는 이제 파워풀한 소리도 편하게 내지만 오히려 ‘필’은 1집보다 못하다. 업그레이드된 소리에 맞춰 느낌도 살려야 하는데, 아쉽게도 아직 그 조화까지는 못 가르쳤다. 목소리를 가볍게 내면서 동시에 소리를 밀고 당길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은 노래가 쉽게 잘 나오니까 기쁘겠지만 이제 얼마후면 그런 문제로 고민할 것이다.
MC the Max의 이수는 앨범 내기 전부터 2집 때까지 2년 반 정도 가르쳤다. 거미처럼 재능도 뛰어나고, 노력도 많이 하는 친구다. 그런데 요즘은 커리어 덕분에 목소리가 부드러워져서 그렇지, 오히려 예전보다 노래가 못하다. 아직 그 나이에 내서는 안 되는, 열정 없이 흘리는 소리가 슬쩍 슬쩍 보여서 슬럼프에 빠진 게 아닌가 싶다.
어릴 땐 세계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가르치는 게 내 천직인가?’싶어졌다. 하지만 선생이라면서도 4, 5년 전까지는 휘성 같은 제자들을 보면 가끔 가슴이 찢어졌다. ‘잘 나가는’ 제자를 둔 ‘못 나가는’선생이라는 것도 아팠고, 내가 10년 동안 혼자 깨우친 걸 몇 달 만에 배우는 재능있는 놈들을 보면 부럽고, 얄미웠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소리를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충분히 보람을 느낀다. 과외 선생에 가까운 보컬 트레이너들에 비하면 나는 소리를 위주로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이라고 자부한다. 대학에서 강의 제의도 들어오지만 새내기들에게 무대 매너를 가르치는 지금의 풍토에서라면 하고 싶지 않다.
박선주 - 김범수, 솔 플라워
1989년 강변가요제에서 ‘귀로’로 수상하면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NYU에서 뮤직 퍼포먼스를 복수전공했고 일본 EYC에서 음악 연수를 받았다. 현재 명지대학 실용음악과에 출강하면서 재즈 보컬리스트로 활동중이다. 내년쯤 신보를 낼 예정이다.
나는 가수로 시작해서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해봤다. 지금은 보컬 트레이너, 혹은 보컬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건 내 음악 생활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얘기하는 것들이 어쩌면 방관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덕분에 오히려 이 시대 대중음악계 보컬의 문제점이 더 잘 보이기도 한다.
많은 가수나 가수 지망생들이 자기 목소리의 방향을 못 잡는다. 트레이너가 하는 일은 그런 사람들이 자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기 목소리를 찾게 해주는 것이다(그래서 보컬 트레이너보다 보컬 디렉터라는 용어가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뮤지션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다는 큰 방향을 가진 가수를 제대로 가르치는 편이다. 가끔 이런 저런 스타일로 만들어달라는 부탁도 받지만, 항상 내 방식대로 한다. 이 친구의 목소리로는 여기까지 가능하고, 이런 장점을 살리면 이런 색깔이 나온다는 걸 정확하게 얘기해주고 동의를 얻어야 일을 한다.
(김)범수와는 사연이 깊다. 96년에 내가 숭실대 사회교육원 실용음악과에서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만난 첫 제자이자, 가장 아끼는 제자다. 노래를 시켜보고 깜짝 놀랐다. 사람들은 잘 안 믿지만 정말 박자도, 음정도, 리듬도 없었다. 박치인 데다 소리만 버럭버럭 질렀지, 음정도 거의 안 맞았다. 그런데 너무 놀랍게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보기 드문, 오리지낼리티를 그대로 지닌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 남자 가수 지망생의 절반은 휘성을 흉내낸다. 20%는 박효신, 10%는 김범수다. 여자는 대부분 거미나 빅마마, 아니면 박정현이나 박화요비다. 그에 비해서 범수는 오리지낼리티가 그대로 살아있는 보컬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한국에서 절대 안 나오는 톤’이라고 얼마나 흥분했던지. 나는 이 좋은 악기를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결심했다. 6개월 동안 내 연습실에 데려다 놓고 ‘무식하게’ 시켰다. 미국에서 뮤직 퍼포먼스(티칭 프로그램이 있었다)를 복수전공하면서 배운 것들과 DJ DOC의 (김)창렬이를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들을 함께 가르쳤다.
다른 선생도 그럴테지만 나는 보컬을 다섯 가지로 나눠 가르친다. 리듬, 발성, 음정, 발음, 그리고 감정이다. 범수는 보컬 톤 빼고는 그 다섯 가지 중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집요하게 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이 친구를 독하다고 해야 할지,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시키면 시키는 대로 내가 보지 않아도 너무나 열심히 했다. 덕분에 6개월 후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변했다. 스캣 애드립 몇 마디를 해보라고 시켰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나았다. 범수는 일단 한국에서 나오기 힘든 골격을 가졌다. 키가 작기 때문에 소리의 공명이 짧고, 힘이 분산되고 모이는 속도가 빠르다. 순간적인 에너지를 얻기도 쉽다. 하악골과 광대뼈가 넓기 때문에 울림 자체가 다르다. 구강 구조 또한 노래를 하도록 타고났다. 소리를 표현하기에 정말 좋은 모양으로 생긴 악기인 셈이다.
범수를 지금의 소속사에 소개시켜주고, 나중에 범수 앨범이 나온 걸 알았다. 앨범을 듣고 나서는 조금 우울해졌다. 내가 가르친 것에 비하면 너무 대중적인 음악이 나와서 범수의 능력을 다 보여주지 못한 거다. 지금은 컨셉트 같은 것들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자기를 다 드러내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조용필 이후 최고로 꼽히는 보컬이 되지 않을까 싶다. 휘성, 빅마마, 거미 모두 뛰어나지만 배음이나 음정, 전체적인 톤에서 범수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2년 전에 처음 솔 플라워를 만났을 때 그녀는 ‘노래 좀 하는’대학생일 뿐이었다. 음정 하나 괜찮은 정도. 그래서 한 달 동안 해보고 더 가르칠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하이는 이미 완성됐으니까 로나 미들 쪽을 도와주면 좋겠다 싶었다. 또 목소리가 심플하고 깔끔한 편이고, 네오 소울을 시도했기 때문에 메이시 그레이 같은 것들을 많이 들려줬다. 좀 놀래보라고 재즈 보컬리스트 게이코 리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이 친구는 성실함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르칠 가치가 있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친구다.
T(윤미래)를 내 제자라고는 말할 수 없다. 민금선 선생이 오래 가르쳤고, 나는 두 번째 앨범에서 마무리 리본만 맸을 뿐이다. T는 자기가 재능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노래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은 T가 아주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범수처럼 톤과 이모션을 타고났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놀라운 건 범수와 솔 플라워가 6개월 만에 내 말을 알아들었는데, 이 친구는 두세 번 만에 끝냈다는 사실이다. 본인도 재미있어했고, 나도 타고난 아이를 가르치는 즐거움을 알게 돼서 행복했다.
춤추면서 노래하는 엔터테이너 쪽 가수들은 위에서 얘기한 다섯 가지 중에서 발성, 호흡, 리듬을 중점적으로 연습시킨다. ‘필’ 보다는 테크닉에 신경을 많이 쓴다. 요즘 내가 가르친 엔터테이너 가수 중에는 유진의 호흡이나 발성이 부쩍 좋아졌다. 나한테 한 세 달 정도 배웠는데 프로페셔널답게 한 번도 약속 어긴 적 없고, 시간 늦은 적 없다. 그렇게 알차게 레슨받아간 친구는 처음이다. (김)창렬이나 SG 워너비의 채동하, 디바의 민경, 그리고 유미 같은 친구들도 엔터테이너 쪽 제자들 중에 높은 레벨에 속한다.
요즘 젊은 가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있다. 연습을 안하는 게 너무 티가 난다. 데뷔 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예외적으로 거미는 나름대로 변화하는 가수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보다 업 앤 다운도 상당히 좋아진 데다, 절제하거나 오버하는 기준점이 분명해졌다. 또 한 가지 바람은 대중을 위해서 노래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느끼고 여러가지를 시도해봤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게 반드시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시도가 보컬리스트에게 내려진 축복이자, 자기라는 악기를 가지고 노는 재미있는 놀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가장 불만스러운 건 프로라고 불리기에 부끄러운 실력을 가진 가수들이 아주 많다는 거다. 너무 자존심 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예전 같으면 방송이 펑크날 것 같아도 노래를 못할 것 같은 상황이면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는 생각들이 있었다. 술을 아무리 마셨어도 가수는 가수니까 노래는 부르겠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 거다. 옛날 스타일이 더 좋다는 게 아니라, 보컬리스트로 무대에 올라서 싸구려 미소나 몇 가지 행동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라이브에서 음이 가건 어쨌건, 비나 렉시 같은 친구들이 엔터테이너로서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보컬 트레이너나 보컬 디렉터 없이 녹음하는 가수들은 거의 없다. 슈퍼스타들도 쉴 때는 항상 트레이닝을 받는다. 투어 때도 보컬 트레이너, 심지어 어시스턴트 보컬 트레이너도 쫓아다닌다. 목 관리부터 시작해서, 거의 의사 수준이다. 한국은 시장이 작아서 그 정도까진 힘들겠지만, 가수들이 어느 정도 선에 오르면 자기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더 문제다.
노영주 -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성시경, 나윤권
그룹 ‘이프’와 ‘스네이지’의 멤버로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세계적인 보컬 트레이너인 세스 릭스에게서 배웠다. 현재 파워보컬 사운드(www.powervocal.com)를 운영하고 있다. 30대가 좋아할 수 있는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노래를 잘 가르치는 노하우가 뭔가요?”얼마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런 건 없는데요.” 그렇다. 노래를 가르치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다만, 바른 방법은 있다. 발성을 제대로 가르쳐서 편안하게 음을 낼 수 있게 하는 거다. 어떤 음이든지 마음대로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낮은 음역부터 높은 음역까지 고르게 낼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를 갖추지 않은 가수는 표현의 한계에 부딪힌다.
나는 보컬 트레이너지만 ‘노래를 가르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건 어떻게 하면 자신의 감정을 좀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이다. 테크닉은 수단일 뿐, 가장 중요한 건 진솔한 자기 감정이다. 마찬가지로 진솔한 보컬이 가장 좋은 보컬이라고 생각한다. 소리도 그렇고, 노래할 때 감정도 그렇고.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은 평소 목소리와 노래할 때 목소리가 같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만큼 솔직하게 소리를 낸다는 건데, 그렇게 정말 자기 목소리로 솔직하게 노래하려면 훈련이 돼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가수에 따라서 트레이닝 방법도 달라지지 않느냐고 묻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누가 오든, 기본부터 한다. 다만 R&B 하는 친구들은 애드립과 블루스 스케일을 따로 연습시킨다. 데뷔하기 전부터 지난 앨범까지 트레이닝한 플라이 투 더 스카이도 그랬다. 환희와 브라이언, 둘 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다. 지난번에 환희에게 한 얘기가 있다. 발성이 좋아지고, 소리 내는 게 편해지면 자신이 생겨서 ‘오버하게’ 되는데, 너도 조금만 더 자제하면서 노래하면 훨씬 좋아질 거라고 그랬다. 톤도 좋고, 장점이 많은 친구인데 요즘에 목소리가 조금 상하지 않았나 싶다. 브라이언은 환희와 정반대다. 오히려 가진 걸 다 펼치지 못해서 문제다. 빤히 쳐다보는 방청객과 눈이 마주치면 움츠러드는 자신이 너무 싫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다행히 이제 많이 ‘두꺼워졌다’.
성시경은 데뷔하기 전에 소속사 대표와 함께 처음 만났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대표가 “많이 부족하니 잘 부탁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니까 대뜸 “실장님이 자꾸 그러시니까 제가 더 주눅이 들지 않느냐”고 말하는 게 아닌가. 다른 신인들에 비해서 당돌했지만, 오히려 보기 좋았다. 레슨할 때도 사리판단이 정확하게 배우는 게 빨랐다. 요즘 시경이 노래를 들어보면 소리가 울리는 위치가 똑같아서 단조롭게 들린다. 예전에 두성과 흉성으로 곡을 표현하는 수업을 못한 게 아쉽다.
얼마전에 데뷔 앨범 <중독>을 내고 ‘황태자의 첫사랑’ 타이틀곡을 부른 신인 나윤권도 데뷔하기 전에 만났다. 어느날 (김)형석이 형한테 연락이 왔다. 신인 가수가 하나 있는데 자꾸 톤이 바뀌고, 목이 아프다는 거다. 직접 윤권이를 보니, 원인은 하나였다. 성대 접지도가 나빴다. 성대가 진동하는 순간에 제대로 붙질 않아서 공기가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마른 상태에서 계속 살이 부벼지니 성대가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달 정도 매일 연습하면서 성대 접지도가 좋아지자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굉장히 흐뭇했다.
사실 (이)수영이는 97년도쯤에 한 달밖에 가르치지 않았다. 여자 가수 중에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면서 열심히 하는 가수는 수영이 이후로 없었다. 또, 너무 착했다. 레슨 마지막 날, 그렇게 집중력이 좋은 애가 이상하게 평소 같지 않았다. 무슨 일 있냐고 그랬더니 “선생님, 이거…” 하면서 선물로 핸드폰 줄을 내밀었다. 그날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 때문에 울컥해서 집중을 못했던 거다. 보컬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렇게 착하고 성실한 애가 잘 돼야지, 싶었다.
수영이를 가르치던 때가 내가 막 보컬 트레이너를 시작하던 무렵이다. 용돈 벌려고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 그때는 내가 가르치는 게 맞는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마이클 잭슨도 가르친 세계적인 보컬 트레이너인 세스 릭스의 책을 접하게 됐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반가웠다. 그를 만나러 무작정 미국에 갔다. 우선 세스 릭스의 제자인 조디 셀러에게 레슨받다가 어렵게 세스 릭스를 만났다. 궁금했던 점들을 물었고, 여러가지를 배웠다. 그후로 그에게 배운 것들과 원래 내가 가르치던 방식을 결합해서 가르치고 있다. 내가 다른 보컬 트레이너와 다른 게 있다면 기초를 중시하고, 기초를 바르게 잡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거다. 기초가 탄탄하면 나이가 들수록 노래가 깊어진다. 기초가 나빠서 소리를 잘못 내면 자기가 낼 수 있는 음역대가 점점 줄어든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그건 소리를 잘못 내서 악기가 상한 거다.
노력이라는 부분에서, 가수들에게 할 말이 많다. 어느날 TV에서 성악가 신영옥 씨가 보컬 레슨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아나운서가 의아하다는 듯이 레슨도 받느냐고 물어봤더니 신영옥 씨가 “소리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우리 가수들이 저걸 봐야 하는데, 싶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수들이 레슨 받는 걸 창피해했다. 야구선수들이 야구 연습하는 것처럼 가수가 목소리 연습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재미있는 건 가르친 제자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남들처럼 편하게 TV 가요 프로그램을 보지 못한다는 거다. 행여 실수라도 할까봐 손에 땀이 고인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라도 가르치고 싶은 가수들도 있다. 조금만 더 하면 진짜 잘할 것 같은 친구들이 그런데, 요즘 비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감각이 있어서, 기본적인 것만 조금 잡아주면 정말 많이 늘 수 있는 가수다.
휴 제대로 다 읽으니 정말 주옥같은 글이군요. 특히 휘성님에 대해 써있는 부분은 정말 중요한 부분인거 같습니다... 역시 트레이너는 괜히 트레이너가 아닌듯....
문뜩 떠오른건데요 이런 보컬트레이너들이 나얼에 대해 평하는게 듣고싶네요 ㅎ 팬으로써 진짜보컬들에게는 나얼씨가 어떤 인식인지 알고싶어요 ㅋ 좋은소리만 듣고자하는게 아니고여 ㅋ뭐 쓴소리도 들고 해야 진정 팬이 아니겠습니까? ㅎㅎ
지나가는 얘기지만 제가 다니던 학원선생님이나 원장님께선 나얼씨를 기교만 잘하는 가수라고 생각하더군요 (솔직히 제 생각에는 어이가 없었음) 대신 휘성이나 김범수를 굉장히 높히 평가하더군요.
저희 선생님은, 휘성을 좀 낮게 평가하시고, 김범수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셨다는, 나얼은 뭔가 아쉽다고 말하시더군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노래는 정말 주관적으로 평가하죠... 정말 탑클래스급 트레이너가 아닌이상....그만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지식의 차이가...
흐 .. 역시 알아주는 가수들은 노력없이 저자리에 설수없었던 분들이내요 ㅠ_ㅠ 존경스럽습니다 .
역시 열정과 노력없이는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나 봅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세스릭스...저도한권샀었는데ㅋ 요즘도 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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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휘성 부분 진짜 제대로네여;; 미완성이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발전해나가는 모습.. 그게 바로 휘성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인듯.. 솔직히 휘성도 살짝 부정적 인식으로만 봤는데... 참 이 글 보니 새삼 달라지네여;;
나얼은없나,,
이 글 3,4년전쯤에 잡지에서 봤는데...
저도 이런 선생님들한테 배우고 싶네요.... 정말 열심히 노력할텐데.....
저랑 같은 생각을 하시는군요 ㅠㅠ
좋은게시물이네요 한번쯤생각해볼필요가있는것같음
아.,,,,,,,나같은 사람도 보컬트레이닝을 받아줄까 ㅠ 이런생각... 꼭 보컬트레이닝이 필요한가...이런생각..에휴..
최고~~^^* 감사합니다^^*
진짜 멋지네요!! 노력!!
미완성이지만 미완성으로만 끝날수있다는걸 모르시나.. 역발상하는척하지만 웃기네요 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