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교장 선생님으로 계셨던 김천 성의여중을 다니면서도 굳건히 영세를 받지 않고 버티었던 나였는데 시어머님께는 어쩔 수가 없어서 어머님의 강권으로 영세를 받게 되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성당에 가지 않으려고 핑계를 대었지만 내 인생에 ‘신자가 되라.’ 는 뜻이 있었는지 영국에 잠시 체류할 때 성가대 지휘자를 하고 한국에 돌아 와서 남편의 고교동창 신부님인 홍신부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모임에 가서도 신부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그 모임은 참으로 좋았고 개개인의 성품도 훌륭하거니와 어떤 모임이 그렇게 순수하게 남을 배려할 수가 있을까?
나는 서서히 그 모임을 기다리게 되었다.
3년 전,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을 마치고 모든 분들의 의견 일치로
이 번에는 바오로 사도의 전도 지를 중심으로 순례를 한다고 했다.
나는 참으로 난감했다.
우선은 성경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영세자의 명단에 이름만 올렸을 뿐 믿음에 대한 마음 가짐도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던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들리고,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인데 부끄러울 뿐이다.
신부님의 명령으로 사도행전을 두 번 읽었으나 바쁘게 읽은 내용은 금방 잊어버린다. 할 수 없다. 여행을 다니면서 익혀야지
4월 24일 토요일
우리 일행 20명이 인천 공항에 모였다.
이제 떠나는 것이다.
중국 영공를 지나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20여분을 연착한 루프트한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환승을 위해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리니 수를 헤아릴 수가 없는 야전용 침대가 눈길을 끈다. 얼마 전 아이슬랜드 화산으로 발이 묶인 승객을 위해서 준비해 놓은 것이다. 어떻게 그 침대를 보관하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렇게 승객을 위해서 준비해 주는 공항 측 배려가 가상하다.
첫 날 우리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그 유명한 성 소피아 성당(박물관)을 방문했다. 터키의 98%이상이 이슬람 교도라고 하니 그 성당은 이슬람교회당으로 쓰기 위해 성당의 벽화에 덧칠을 했는데 부분부분 회 칠을 벗겨 내고 옛 모습의 성화인 모자이크를 보여준다. 벽은 대리석을 반으로 쪼개어 대칭을 이루는 무늬가 특이했고 특히 그 건물은 15층 건물에 해당되는 높이인데도 그것을 떠받히는 기둥이 없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지중해 앞에 화려하게 지어놓은 돌마바흐체 궁전, 유람선을 타고 본 보스포러스 해협의 공중에 걸쳐 놓은 다리는 동, 서양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연 분홍빛의 꽃과 연 초록색의 조화로운 봄 색깔에 취했다.
처음으로 산타마리아 드라페리스 프란치스코회에서 홍신부님의 집전으로 미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한국에서 파견한 젊은 신부님이 계셔서 반가웠다.
저녁은 한국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다.
한국에서 온 손님이 빈자리가 없이 찼는데 음식도 맛이 있었지만 주인을 비롯해서 종업원들까지 밝은 얼굴로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슨 일이나 성공을 하는 것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성의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26일, 작지만 역사가 깊은 카리에 성당은 성 외곽에 지어져서 성화가 비교적 많이 보존이 되었고 천정 벽화를 포함해서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가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톱카프 궁전은 17세기 천하의 강대한 힘을 과시하던 오스만 제국의 슐탄들이 세계 곳곳에서 거둬들인 보물과 기둥을 써서 화려한 궁전을 지었기에 나중에 그리스에 가서는 기둥이 많이 없어진 신전을 만나게 되었다. 역사의 흥망성쇠가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현재에도 이슬람 교회로 사용하는 블루모스크, 히포드롬 (옛날 마차경주 하던 곳)에서 한국에서 파는 것과 똑 같은 군밤을 사서 나누어 먹고 아이스크림 아저씨의 묘기에 넋을 빼앗겨 쫄깃한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값을 계산하는데 달러와 유로화와 리라와 원화의 계산이 잘 안되어 왁자하니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능력이 다르기에 사는 재미가 있다. 어느 한 사람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저 사람이 갖고 있기에 그 재주를 나누어서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자신이 잘 났다고 뽐낼 것도 없고 못났다고 주눅 들 일도 아니다.
그런 계산을 거뜬하게 해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좌중을 웃겨서 기분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도 있다.
그리스로 향했다.
그리스를 향해 가는 터키의 땅은 비옥하고 경사가 완만하여 버릴 땅이 없다. 밀 농사를 짓기에 알맞은 땅이라고 한다. 그래서 빵이 그렇게 맛있었나 보다. 중국음식 프랑스음식에 뒤이어 터키음식이 세계 3대 음식이라더니 야채를 썰어 소금에 약간 절여 소스와 함께 먹는 케밥은 조리도 간편하고 식후에 위에 부담도 없어서 좋았다.
터키와 그리스의 국경에서 약간의 실랑이를 겪었다.
팁과 경찰에게 줄 뇌물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관리를 만나서 기분이 나빴다. 국가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국경에서 그런 인상을 남긴다는 것은 국가의 수치이지만 그렇게 찬란한 역사물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면 용서가 되는 것일까? 그런 작은 일로 나라의 인상을 나쁘게 만드는 것이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스에 들어서니 새로운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몸매도 균형이 잡히고 키도 훤칠하니 크고 얼굴도 예쁜 그야말로 완벽한 아가씨인지 아주머니인지 구별이 안 되는 이다. (아주머니)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설명이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정이 되어 가고 흔들림이 없는 태도로 해박한 지식을 풀어 놓는다. 그것도 정성을 다하여 적재적소의 언어를 고급스럽게 구사하며…
사도 바오로가 꿈에 환상으로 보았다는 길을 따라 도착한 까발라의 니콜라스 성당에 도착했다. 사도 바오로는 천주교도를 박해 하는데 앞장 섰던 사람으로 나중에 천주교인이 되어 전도 하는 것으로 일생을 보낸 분이라 한다. 그 도중에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재판을 받기도 했다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중에 된 사람이 더 크게 되는 예를 보여주는 분이기도 하다.
그 분의 환상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천주교는 맨 처음 생겨난 그대로 동양의 종교가 되었을 텐데 그 분이 서양으로 향했기에 지금 천주교가 서양의 종교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우리는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이유로 성당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거리에 나섰다.
해변이라고 바다냄새도 없고 바닥까지 깨끗한 물이 우리 마음 속까지 정화 하는 듯 했다. 파스텔 톤으로 변해가는 하늘에 별이 한 두 개씩 나타나더니 14일 환한 달이 오래 된 성벽 위로 얼굴을 내민다. 청량한 하늘에 떠있는 달은 마치 발광체인양 빛을 내 뿜는다. 임자 없는 송아지 만한 개의 호위를 받으며 해변을 거닐었다. 이팔청춘 소녀인 양…
바오로가 처음으로 리디아라는 신자에게 세례를 준 곳에서 미사를 드렸다.
고호나 세잔느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아늑한 시골마을에 붉은 야생 양귀비 꽃이 지천인 곳을 지나서 이름 모를 새들이 합창을 하고 키 큰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며 시냇물 소리가 끊임없는, 여의도의 아주 작은 축소판처럼 생긴 곳에서 우리는 미사를 드렸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물소리에 잦아들며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서 들려 오는 말에 귀 기울이고 조용히 그렇게 미사를 드렸다.
아마도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싶어 모두가 숙연했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를 포옹하며 평화를 빌었다. 온갖 근심과 걱정거리가 많은 세상살이에서 모든 일을 주님의 뜻대로 따를 수만 있다면 마음에 평화를 누릴 수가 있을 텐데 자신의 뜻대로 해 보려고 애를 쓰며 사는 우리 모습이 안타깝다. 욕심 속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남을 미워하고 누구를 원망해도, 감사하고 순응하는 것과 결과는 큰 차이가 없음을 경험하는 가운데에서도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주변을 불편하게 만든다.
메테오라 호텔 뜰에서 미사를 드린 후 수도원으로 향했다.
그 옛날 바다에서 융기한 바위로 추정되는 바위 꼭대기에 수도원을 만들어 은둔생활을 하며 수도를 했다는 수도원이다. 24개의 수도원이 지금은 6개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성 스테파노 수녀원을 보았다.
사람의 힘이 얼마나 무궁한지 놀랍다.
매우 높은 벼랑의 바위 꼭대기에 어떻게 그렇게 집을 지을 수가 있었는지 경이롭다. 신부님께서 우리에게 ‘최후의 심판’ 성화를 사 주셨다.
어제에 이어 아테네를 향해 6시간의 버스여행을 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비옥한 농토에 복숭아 나무며 올리브, 밀, 포도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저 멀리 삔도스 산맥이 아직도 겨울에 대한 미련으로 눈을 이고 병풍처럼 대지를 감싸고 있다.
일일 총무들이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발휘하며 수행을 해 내니 여행이 더욱 즐겁다.
드디어 아테네에 도착을 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아침에 호텔 지하 강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그렇게 고대했던 크루즈를 하러 갔다.
크루즈를 위한 배를 타기 위해서 입, 출국심사와 같은 과정을 거치고 각자의 방 배정이 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갑판에 모여 구명조끼 사용방법을 익히고 있는데 배는 출발하여 짙푸른 바다위로 파도를 가르고 있다.
많은 동료들이 난생 처음 하는 크루즈에 대단한 호기심을 보였다가 여객선과 별 다른 점이 없는데 실망을 했다. 타이타닉의 그런 호화로움을 기대했나 보다. 아무도 선상에서 입을 턱시도나 드레스를 준비해 온 사람은 없었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크고 작은 섬은 산재해 있는데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 선내에서의 볼거리를 구경하며 7시간을 항해했다.
미코노스 섬에 도착, 바람이 강하였지만, 하얀 집들 사이로 난 미로 같은 길을 따라 풍차가 있는 끝까지 가 보았다. 길 가에는 아기자기한 가게가 줄을 지어 있는데 들여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인데도 어찌나 정갈하게 진열해 놓았는지 푸른 바다에 취해 대단한 물건인 듯 유혹을 받는다.
저녁은 정식 코스요리를 먹었다. 두 가지 방식으로 식사를 할 수가 있는데 뷔페와 정식 코스요리이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 가만히 앉아서 먹고 싶어 코스요리로 선택했다.
배에서의 첫 밤을 맞았다.
조그마한 객실에는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작은 호텔 방이다.
자고 나니 크레타 섬에 와 있다. 크루즈는 잠을 자고 나면 목적지에 와 있는 것이 편리했다.
에페소에 왔다. 터키 국기가 휘날리는 것으로 보아 여기는 터키이다.
20만 명 이상이 살았다는 에페소는 규모가 컸다.
몇 일 전에 본 필립보와 마찬가지로 부서진 신전과 극장, 귀족들이 살던 마을과 천민들이 모여 살던 곳,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 목욕탕, 목욕탕에서 흘려 보내는 물을 이용한 화장실. 이 모든 것이 지금 사는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것들의 조상이라 하겠다.
에페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시에 이 곳에 잠시 머물렀고 3차 전도 여행시에도 많은 기적을 행하였으며 로마 옥중에서도 이곳에 편지를 보냈던 곳이다. 4세기경에는 이곳이 소 아시아에 있어서 그리스도 교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요한 성자가 예수님의 부탁으로 마리아를 모시고 은둔하며 노년을 보냈다는 성모 마리아의 집과 언덕 위에 있는 요한의 집도 보았다.
2일 아침 일찍 배 갑판에서 미사를 보았다.
아무도 없는 우리만의 시간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대로
될 것이다.
산토리니 도착
작은 배로 옮겨 타고 깎아지른 절벽 앞에 내려서 버스로 갈아타고 지그재그로 난 벼랑의 길을 타고 올라가 마을에 이르렀다.
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있다.
바닷물은 저 아래에서 짙푸른 색으로 출렁이고 태양의 빛은 눈 부시게 내리쬐는데 하얀색의 집은, 아랫집의 지붕을 윗집의 테라스로 쓰고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좁은 골목은 미로 같다. 우리는 정신 없이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 댔다.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음료수 한잔을 하고 걸어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달래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는 작은 배를 타고 다시 크루즈 배에 옮겨 탔다.
자정까지 짐을 방 밖에 내 놓으라고 한다. 이제 하선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코린토로 향했다.
사도 바오로가 2차 전도 여행 때 필립보, 데살로니카, 페레아 다음으로 세운 교회가 있는 곳이다. 에페소에서 보낸 편지는 지금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석상들의 몸통과 머리가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보며 종교의 힘은 건설과 파괴에도 함께 큰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슴이 먹먹했다. (기독교가 전파된 후에 석상들이 우상숭배라 하여 머리와 몸을 분리하였다고 함)
AD 671 년 네로황제가 계획하여 19세기에 완공된 코린토 운하는 단단한 암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이로 인해 지중해의 뱃길을 줄일 수가 있었다. 코린토 운하-길이 6km 넓이 23m 깊이 90m
아테네로 왔다. 우리 여행의 백미이다. 헤로데스 아티쿠스라는 부호가 기증을 했다는 음악당은 음향이 좋아 세계의 유명 음악인이 연주를 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조수미와 정명훈이 이곳에 섰단다. 그런데 그 옛날 사람들이 만든 극장이 마이크도 없이 그렇게 넓은 극장 안에 미세한 소리까지 전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신전을 보기 위해서는 신화를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 내재된 사랑과 질투, 금기된 욕망, 그에 따른 시련과 아픔을 신에 빗대어 만들어 낸 신화, 그것을 알아야 건축과 조각, 회화와 부조를 이해하게 된다.
아크로폴리스 안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세계문화 유산 1호라고 한다. 모든 유물은 제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신전의 많은 부분이 대영 박물관에 있단다. 현대인들도 놀랄만한 기술로 기둥들이 피라미드의 꼭지점을 향하여 기둥을 세운 것이나 느끼지 못할 만큼 완만한 곡선으로 밑바닥 가운데를 볼록하게 함으로 사람들의 착시현상과 무게 중심을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신전이야말로 다른 건물과 달리 어느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신을 위한 것이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곳을 화약고로 쓴 적이 있어 붕괴하였다니 슬픈 일이다.
그 외에도 헤파이스토스 신전, 아테나니케 신전, 에렉티온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우리들의 합창)을 보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중에 버스가 고장이 났다. 배가 고픈 중이라 불평이 나올 만도 한데 신부님의 선창으로 화기애애해 지니 아무도 불평하는 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고치는 것을 기다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훌륭한 모습이었던지 가이드는 두고두고 고마워 했다. 어려운 일을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인가.
오후에는 먼 빛으로 아폴로 신전과 근대 올림픽이 처음으로 열렸다는 경기장을 보고 데모대원들을 피해 우회하여 국회의사당, 광장을 돌아 크루즈 떠나기 전에 묵었던 호텔로 돌아 왔다.
이튿날 아침 미사는 그리스에 거주하는 신자 네 분이 참석하여 분위기가 더욱 풍성했다. 한국 신부님을 모시고 미사를 드릴 수 있어 행복해 하는 그 분들을 보니 조국을 떠나서 살아야 하는 이들의 향수가 짐작이 간다.
그 날은 미사 중에 하신 신부님 말씀이 유난히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장 하느님 적인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이것이 곧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인 것이다.’
믿음이나 하느님이 아주 먼 곳에 계셔서 나로써는 마음에 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내게 가장 쉽게 이해시켜 주신 말씀이다.
드디어 아테네 공항으로 향했다.
항상 먼 곳에서만 뵙다가 버스를 타는 동안 가장 가까이서 동행했던 신부님과 헤어질 시간이다. 나에게는 큰 영광이었으며 또한 큰 배려에 감사를 드릴 뿐이다.
잊고 있었던 가족과 많은 일들이 궁금해 진다.
환승을 하기 위해 공항의 허브라고 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에 오니 여전히 야전침대는 널려있고 T.V에서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 그 T.V는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 제품이다. 크루즈를 할 때 옆에 있던 크루즈용 배가 우리나라 회사제품이라고 해서 기뻤는데 이 곳에도 당당하게 우리나라 제품이 걸려있다. 우리나라의 위상을 이렇게 높여준 분들이 감사하다.
한국에 오니 그 다음 날 아이슬란드 섬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재를 내뿜고 있어서 유럽 행 비행기의 이, 착륙이 어렵다고 뉴스에서 전한다.
하루도 궂은 날이 없이, 20명이나 되는 일행에게 아무 탈없이, 화산 폭발까지도 우리를 비켜 가고, 진실한 가이드를 만나 알찬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가호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어설픈 신자는 감히 말해도 될듯하다.
www.acegolf.com 칼럼 김영희의 아름다운 황혼 중에서
첫댓글 좋은 여행을 했구나. 사진이 곁드렸으면 더 좋았으련만....
'김영희의 아름다운 황혼 중에서 '라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댓글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