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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드레 나루’
김 유 성
1부 엇갈린 인연
그가 지방공무원에 합격하자 작은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부여읍에서 대천으로 가는 산골에 위치한 30여 호 남짓한 작은 농촌 마을이라 주민 중에서 특별히 잘 풀린 사람이 많지 않았고, 겨우 한 두 명이 교사로 근무하거나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되거나 하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상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논산에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자퇴하고 말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닐 때는 우등생으로 남의 부러움을 한껏 받았으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에 있는 공장을 전전하면서 겨우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거쳐 졸업장을 받았다.
논농사가 주업이었던 집에서는 자식 뒷바라지 제대로 못했다는 자책감에 늘 미안해했는데, 특히 그의 홀어머니는 그것이 가슴에 늘 한이 되어 막둥이 아들이 잘 되기만을 날이면 날마다 정안수 떠놓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런 아들이었는데 그나마 지방공무원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고학해서 떡 합격하고 나니 입이 함박 만하게 벌어지고 신바람이 났다. 마을 주민들을 불러 모아 돼지고기 삶고 막걸리 한 상 가나하게 대접한 것이다.
그의 나이 스물넷이 되던 그 해 11월 읍사무소에 정식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이십여 리 되는 신작로 길을 자전거로 출퇴근 했으나, 야근도 있고 가끔 빗길이어서 출퇴근이 많이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노모와 협의하여 부여 읍내에 자그마한 자취방을 얻어 혼자 기거하게 되었다. 집에는 주말에 한번 씩 다녀오고 가끔 노모가 밑반찬을 해서 머리에 이고 버스를 타고 다녀가곤 했다. 성격이 원만한 그는 직장에서 적응이 빨랐고 상사들도 모두 그를 칭찬하게 되었다. 주말에 집에 가지 않는 날은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날도 있었다.
대전에 놀러가는 날이면 주로 초등하교나 중학교 동창 중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한 두 명은 군대를 다녀오느라 아직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주로 은행동에 있는 다방에서 만나 당구 한 게임 한 후 생맥주 집에서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며 놀다가 친구 자취방으로 몰려가, 늦게까지 소주 한 잔 더 하면서 노닥거리다 잠에 떨어지곤 했다. 다음 날 늦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 겸 대충 때우고는 다음 날 근무 때문에 버스를 타고 부여로 오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고 특별히 사귀는 아가씨도 없었으니 그의 성격이 활달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근무가 1년이 넘어서자 노모가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인자 니는 취직도 했으니께 슬슬 아가씨도 사궈봐야 하는거 아니여~어” 그가 잘라 말했다. “ 나는 아직 결혼 할 생각 없으니께 그런 말일랑 하지 마셔유” 노모가 멋쩍게 돌아서면서 입을 실쭉거렸다. 사실 그는 직장에 근무하면서도 한 가지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는 다짐이 있었다. 다하지 못한 향학열이 늘 가슴에 걸려서 어떻게든 야간대학이라도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노모는 참한 아가씨 만나 얼른 살림 차리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야간대학을 목표로 그가 계획을 세운 후 밤이면 대학입시 공부를 혼자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가끔 놀러가자고 했으나 가능하면 피하면서 직장생활과 공부에만 전념을 했다. 그리고 대전에 가는 날이면 ‘현숙’이를 찾아가곤 했다. 현숙이는 그가 서울에서 힘들게 생활하다가 대전으로 내려와서 신문 배달을 하면서 야간 검정고시 학원을 다닐 때 만난 여학생이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그녀 역시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밤에 학원에 다니는 처지라 동병상련이랄까 그런 감정이 들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돌봐주려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더구나 우연의 일치라고나 할까 그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중학교 동창인 ‘재결’이가 자취하고 있는 주인 집 딸이었던 것이다. 당시 재결이는 대전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혼자서 자취를 하기 때문에 그가 가끔 놀러가곤 했다. 일요일 쉬는 날 재결이 에게 놀러 가면 현숙이가 맛있는 점심을 차려주곤 했다. 현숙이 부모님은 가게를 운영하기 때문에 늘 집을 비우게 되고, 맛 딸인 현숙이가 거의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고, 그의 남동생은 중학교에 다니는데 그를 몹시 따랐다. 그가 힘든 신문배달 일을 하면서 야간 학원까지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와 그의 동생은 마치 한 가족처럼 따스하게 그를 대해 주었다.
어는 날은 재결, 현숙, 남동생과 함께 보문산 공원을 놀러가기도 했고, 충남대학교 켐퍼스에 놀러가서 기념사진도 찍으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대학에 꼭 진학하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가족처럼 지내오던 중 검정고시 시험을 보게 되었고, 그녀는 단번에 합격을 하고 그는 과목 과락에 걸려 합격하지 못했다. 그 해 겨울 현숙은 예비고사를 치르고 다음해 충남대학교 체육학과에 합격하게 되었고, 재결이는 서울에 있는 한양대학교 야간학부에 합격해서 서울로 떠났다. 함께 가족처럼 지내던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그 때부터 그와 현숙은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듬해 여름 그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으나 현숙은 엄연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고, 그는 어찌 보면 초라한 공무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대전에 올라가면 가끔 현숙에게 연락을 하곤 했지만 예전처럼 스스럼없는 사이가 아닌 다소 서먹서먹한 그런 사이가 되어있음을 그도 느끼곤 했다. 그동안 가족처럼 느끼던 따스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자신과 그녀의 처지를 비교해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갔다.
그가 부여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가던 겨울 예비고사를 치르기 위해 직장에 연차를 내고 대전으로 올라갔다. 그 날 현숙이가 따스한 점심을 준비해서 고사장으로 가지고 왔다. 반갑고 미안한 마음이 앞섰으나 힘을 내라는 그녀의 격려를 뒤로하고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직장 생활 하면서 치른 예비고사 성적이 좋게 나올 리가 없었다. 직장 선배들은 대견하다는 등 칭찬이 자자했으나 막상 자신 있게 원서를 넣을만한 대학이 없었다. 그래도 요행을 바라고 한남대학교에 원서를 넣었으나 역시 불합격이었다.
합격자 발표 날 대전에 왔던 그가 현숙을 만났다. 풀이 죽은 그를 현숙이 데리고 간 곳은 가끔 함께 들르던 생맥주 집이었다. 어깨가 축 처져있는 그를 현숙이 위로했다. “너무 기죽지 않았으면 해. 내년에 또 기회가 있지 않아? 그리고 대학이 인생의 전부 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힘 내.”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따라주는 생맥주를 안주 먹을 생각도 못하고 들이키고만 있었다.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도 모른 체 그가 탁자에 머리를 대고 엎어졌다.
그가 아픈 머리를 쥐어 안고 억지로 눈을 떴을 때 어느 낯선 방에 혼자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혼자 누워있는데 분명 누군가 함께 누웠던 흔적이 있고 온기가 느껴졌다. 몸을 뒤척이다 보니 그가 옷을 입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을 해보려했으나 도무지 필름이 끊겨 정리가 되지 않았다. 목이 심하게 타는 바람에 머리맡에 있는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한 잔 마시고 이불을 감싸고 앉아 주위를 살펴보니, 자그마한 상위에 쪽지 한 장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동안 보여준 친구와는 다른 면을 보게 되어 많이 혼란스러워. 언제나 당당하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너무 안따까워. 부디 예전의 모습을 찾아주기 바래. 나와의 인연은 여기서 정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부디 성공하기를 바랄게.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준 나의 선물을 부담 없이 받아주었으면 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현숙.” 텅 빈 방 안에서 그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여관 주인이 시끄럽다고 조용히 해 달라 부탁 할 때까지.
2부 황포돛배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갔다. 현숙 과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부여로 내려온 그는 심한 혼란과 우울감에 빠졌다. 근무만 열심히 할 뿐 말이 없어지고 고향집에도 거의 가지 않았다. 그런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노모는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도 말을 하지 않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묻고 싶었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음은 타 들어갔지만 어찌 할 방법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해가 조용히 넘어갔다.
근무 2년차가 되어 그는 읍사무소 지방세 담당 부서로 배치되었다. 처음에는 산업 담당 부서에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착실하고 꼼꼼하게 근무하는 그를 유심히 살펴본 부읍장이 비중이 조금 큰 부서로 발탁한 것이다. 지방세 부과 업무는 숫자를 다루는 부서이고 업무량이 대단히 많아 야근이 많은 부서였다. 거의 매일 9시 넘어 까지 야근하면서 사무실과 집만 왔다 갔다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생활이 계속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잡념이 들어 올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 해 가을이 되었다. 아들의 일상을 바라만보고 있던 노모가 어느 날 그를 찾아왔다. “ 먼 일 있는겨? 요새는 말도 없고 집에도 자주 안오고 왜 그런겨? 어디 아프기라도 한거여?” 그가 대꾸했다. “ 아녀유. 일이 하두 많으니께 다른데 신경 쓸 여유가 없네유, 걱정하지 마세유.” 무언가 있을 법도 한데 말을 돌리는 아들을 보면서 노모가 은근히 운을 띄웠다. “ 니도 인자 혼자서 자취 생활하기 힘들고 하니께 참한 새악시 있으면 살살 만나보면 워뗘? 니가 얼렁 좋은 사람 만나서 살림을 차리는 것을 내 눈으로 봐야 저 세상으로 편안히 갈 거 아녀?” 노모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알았시유. 살살 알아 볼 테니께 걱정하지 마세유. 아직 나이도 있는디 먼 걱정을 그리 한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노모의 나이가 팔순을 바라보고 있고 그동안 막내아들 잘 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살아 온 사실을 그도 알기에 그 말을 무시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직 직장 생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나름대로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그로서는 노모의 마음을 헤아려 아무 여자나 만나 얼른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편에서는 아직도 현숙에 대한 아련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런 그가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한 여자와 갑자기 결혼까지 가게 된 데는 우연 아닌 필연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공무원은 물론 유관 기관 임직원들이 총 동원되어 자연보호 켐페인을 벌이는데, 읍사무소는 담당 구역이 ‘구드레’ 나룻터 주변이었다. 백마강을 따라 유람선이 다니는데 출발지가 ‘구드레’ 나룻터고 종착지는 낙화암 선착장이다. 왕복 시간은 불과 30여 분 이지만 백마강을 따라 낙화암까지 갔다가 고란사를 거쳐 부소산 낙화암까지 올라가서 구경을 한 다음, 다시 내려와 돌아오는 유람선 코스는 워낙 인기가 좋아서 주말이면 찾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유람선 겉모양은 옛날 황포돛배처럼 치장을 했으나 노를 젓는 전통 방식이 아니고 모터를 이용하는 현대식 유람선이라 예전의 향수를 느끼러 오는 이들은 다소 실망하기도 하는데,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왕복하다 보면 다들 좋은 코스라고 얘기하곤 했다. 매년 개최하는 ‘백제 문화 축전’ 때에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 4~5 백m 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하는 부여의 관광 명소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낙 유명한 코스라서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엄청 나오는 장소이기도 했다. 읍사무소 전 직원이 나서서 쓰레기를 매주 토요일 수거하지만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10월 어느 토요일 자연보호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아 그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선착장 쪽으로 가보니 관광객 한 사람이 유람선에서 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 이었다. 발을 심하게 삐어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보니 20대 중반의 얌전하게 생긴 아가씨였다. 일행들도 모두 여자들이라 부축하기도 힘에 겨운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고, 안내 요원이 엠브런스를 불렀다고 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릴 참 이었다. 그 때 그가 앞으로 나섰다. 군에 있을 때 배운 구급요법을 생각하면서 그녀의 삐인 발목에 자신의 손수건으로 부목을
설치하고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니 너무 아픈 듯 다시 주저앉았다.
조금 난감했지만 일행들에게 붙들어달라고 해서 그녀를 들춰 업었다. 조금 망설이던 그녀가 체념 한 듯 그에게 몸을 의탁했고, 그녀를 등에 업고 100여 미터 떨어진 매표소 입구까지 가는데 등에서 땀이 베이기 시작했다. 매표소까지 가는 길은 다소 경사가 져 있었기 때문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천천히 그녀를 의자에 앉혀주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신 하는 그녀에게 아니라고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 이라고 미안해하지 말라 얘기했다. 사례를 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 그녀에게 혹시 부여에 오시면 읍사무소에 한번 놀러오라고 하면서 연락처를 주지는 않았다.
그 후 다시 바쁜 일로 야근과 특근이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도움을 주었다고 어떤 뿌듯한 감정을 느낄만한 겨를도 없이 계속되는 일에 열중하고 있던 3주 후 금요일에 그를 찾는 전화가 사무실로 걸려왔다. 여직원들이 웃으면서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수화기를 건네받아 보니 지난번 골절상을 당했던 그녀였다. 지난번에는 경황이 없어서 목소리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데 차분하고 상냥하게 들려왔다. “ 여보세요? 지난번 다쳤을 때 도움 주셨던 분이시죠? 너무 감사해서 연락드렸어요.” 그가 머쓱해져서 대답을 망설이자 그녀가 재차 확인을 했다. “ 지난번 그 분이 맞으시나요?” 그가 마지못해 대꾸했다. “ 아. 네.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화를 주셨는지요?” 그가 점잖게 말했다.
“ 아 네. 맞으시군요. 너무 감사했는데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너무 죄송했어요. 그동안 치료받느라 정신이 없다가 이제야 조금 안정이 되어 전화 드렸어요.”
“아 네. 얼른 쾌차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조심하셔유. 그럼 바빠서 전화 이만 끊겠습니다. 안녕히 계셔유” 그녀가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만요. 제가 이번 토요일 부여에 다니러 갈 일이 있어요. 주사님을 잠간 뵐 수 있을까요?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면서 감사의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요.” 그가 망설였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제가 토요일 12까지 읍사무소 앞으로 갈게요. 그 때 꼭 뵈어요.” 그리고 전화는 끊겼다. 여직원들이 웃자 그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우연치 않는 일로 그의 인생은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다. 토요일 찾아 온 그녀를 만나 밥을 먹으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이 참 순수하고 성실한 삶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대전에 있는 가양동에 거주하고 있는 그와 동갑나기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한 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부모님 중 아버지는 몸이 약해서 몇 년 째 투병생활을 하고 있고, 어머니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녀와 남동생 둘을 돌보고 있는데, 여자 혼자 벌이로는 삼남매 가르치기가 너무 벅차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 날은 마침 토요일 야유회를 직장 동료들과 부여로 왔는데 발을 삔 사건이 어쩌면 우연이 아닌 거 같다며 웃었다. 부여에는 이모님이 살고 있어서 다니러 오면서 그를 보기 위해 일부러 왔다고 했다. 돈까스를 시켜 먹으면서 생맥주도 한 잔씩 나누었는데 작년 사건 이후 지금껏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답답하고 절망적이던 마음이 서서히 누그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 여자에게만은 그동안 살아 온 그의 인생살이를 조금 풀어놓아도 될 거 같은 마음이 생긴 건 우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으로 올라왔다. 둘은 그렇게 만났고 자주 연락하자는 말을 끝으로 첫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동변상련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시작한 둘의 인연은 날이 가면서 서서히 무르익어갔다. 그녀가 대부분 부여로 내려와 만나는 날이 많았지만, 그도 가끔 대전으로 올라가서 주로 으능정이 거리에서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1년이 되어 갈 무렵 그는 군청 전입시험에 합격했다. 군청 사회복지과로 발령이 나던 그 주말에 그녀가 찾아왔다. 축하 파티를 둘이서 12시 다 되어갈 시간까지 하다 보니 이모댁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며 그의 자취방으로 함께 왔다. 맥주를 어느 정도 마신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자다가 추워서 이불을 어떻게 함께 덮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침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한 이불속에 누워있었다.
그가 노모에게 그녀의 존재를 알린 것은 만난 지 1년이 되어가던 날 그러니까 군청 전입 축하 파티를 한 후 며칠 지난 주말이었다. 노모는 뛸 듯이 기뻐했고, 얼른 식을 올리자고 성화를 댔다. 그녀와 상의 한 후 대전에 있는 그녀의 집에 먼저 인사를 가게 되었고, 그녀의 부모님들은 흔쾌히 승낙을 했으며, 그녀의 두 남동생도 그를 반겼다. 그 해를 넘긴 2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고 부여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그녀는 직장을 정리하고 부여에서 부업을 찾아 일을 시작하고, 그는 다른 생각 없이 근무에만 열중하고, 알 콩 달 콩 신접살림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
속 깊은 그녀는 빠듯한 공무원 월급으로 살림살이 하느라 부업까지 하면서도 그의 못 다한 공부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고 용기를 돋아주었다. 1983년 그는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매년 여름 방학 중이면 충남대학교에서 개최되는 수업에 하계휴가를 내어 참여하면서 방송으로 수업을 들었다. 그러나 근무하면서 학점을 이수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졸업하기 까지 만 8년이 걸렸다. 서울 산업대학교에서 개최된 졸업식장에 그녀와 함께 참여했고, 그 자리에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친구 ‘재결’이가 찾아와 축하해주었다. 학사모를 그녀에게 씌워주면서 고생했다고 하자 그녀가 활짝 웃으며 축하한다고 꼭 안아주었다.
‘재결’이와 단 둘이 이야기 할 기회가 왔을 때 ‘재결이가 슬쩍 말했다. “인자 너도 원 풀었구나 잉. 대전에서 어렵게 야간 학원에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런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현숙이가 이 모습을 보면 참 좋아 할 건데. 쯧 쯧.” 그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현숙의 이름을 듣자 깜짝 놀랐다. “야. 너 현숙이 소식 듣고있냐? 난
완전히 잊고 산지가 언제인지도 모르든디.“ 재결이 말했다. ”그러게. 서로 맺지 못 할 운명인 것은 확실한데 두 사람 다 잘 되었으니 좋은 거 이니여? 현숙이는 체육학과 나오고, 대학원까지 마친 다음 자그마한 대학에서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고 하더라. 나도 다른 사람 통해서 들었고.“ 그가 나지막이 외쳤다. ” 아! 그렇구나. 참 잘 되었구만.“
학사모를 쓰고 나서 그는 더욱 일에 자신감이 생겼고,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아 여러 부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가정적으로도 안정되어 갔으며 아들과 딸 한 명 씩의 자녀를 두게 되었다. 장가가서 안정된 아들 모습 보기를 그렇게 소원했던 노모는, 아들 딸 낳고 안정된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손주들 재롱을 한참동안 받다가 83세를 일기로 하늘로 가셨다. 노모를 보내드린 후 그는 한참동안 멍한 시간이 계속되었고, 그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구드레’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낙화암까지 다녀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멍한 마음으로 잿빛 백마강을 바라보면서 유람선 한 쪽에 앉아있는데 낯선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언뜻 보니 2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데 그가 20대 때 그의 마누라를 만났던 그 시절의 모습을 보는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곱상하게 그와 비슷한 스타일인데 키는 상당히 크고, 체격이 좋은 것이 그와는 상반되는 거 같았다. “아. 선생님. 백마강에 처음 다니러왔는데 경치가 너무 좋습니다, 역사가 흐르는 강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 싶은데 수고 좀 해주시겠습니까?” 너무 정중하고 예의바른 청이었다. “아. 네. 여기에 처음 오셨군요. 한영 합니다. 저는 부여 군청에 근무하는 직원입니다. 제가 사진을 멋지게 찍어드릴게요.” 그가 카메라를 건네받아 보니 작품 사진을 찍는 수동 카메라인데 상당히 기종이 고급스럽게 보였다.
사진을 여로 포즈로 찍어 준 다음 그에게 카메라를 건네면서 물었다. “아. 작품 사진 찍으시는 작가이신 모양이네요?” 젊은 청년이 말했다. “아, 네. 아직 작가는 아니고요.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사진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청년이 곱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시군요. 부여에 오시면 언제든 저에게 연락주세요. 도움이 필요할 때 제가 성심껏 도와드릴게요.” 그러면서 명함 한 장을 그 청녀에게 건네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의 집은 원래 대전인데요. 지금은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집에 자주 내려오니까 부여에 올 기회가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하는 그 청년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 청년의 이름은 ‘연홍’이고 성은 ‘강’이였다. 방학이 되면 부여에 한두 번 다녀갔는데 그에게 꼭 연락을 했다. 어느 여름 방학 때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부소산에 올라 구경도 하고, 야외 돗자리를 펴놓고 삼겹살 구이를 해 먹기도 했는데 아이들도 그를 잘 따랐고, 그의 마누라도 연홍을 참 좋게 보는 거 같았다. 그와 만나고 난 그 날 밤 그의 마누라가 그에게 말했다. “연홍이가 당신을 참 많이 닮은 거 같아요. 성격도 당신과 비슷하고, 스타일도 비슷하고, 혹시 숨겨놓은 아들이라도 있는겨? 훗 훗 훗” 그도 호탕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유. 워쩐지 내 아들 같은 생각이 든다니까. 허 허 허”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해서 학업에 열중하고, 집안 살림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갈 무렵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그의 마누라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점점 구토가 심해지고 밥을 먹기가 힘들어지고 나서야 대전에 있는 종합병원에 정밀 검사를 갔다. 위에 염증이 있다는 소견을 받고 약을 처방해왔는데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보자고 여러 차례 얘기 해 봤는데 한사코 가지 않는다고 우겼다. 2년여 동안 약을 처방해 먹다가 다시 대전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니 위암 3기가 지나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다.
암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을 때 ‘연홍’이 가끔 문병을 왔다.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대전 테크노벨리에 있는 외국계 회사에 취업이 되어 대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했다. 올 적마다 환자에게 좋다는 부드러운 음식을 꼭 시켜왔고, 정신적인 안정에 필요하다고 시집이나 소설책을 사다주곤 했다. 그의 마누라도 연홍이 문병 올 적마다 그를 기다리는 거 같았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가 직장 생활 때문에 계속 있을 수 없어 간병인을 썼는데 간병인들이 24시간 간병하다보니 짜증을 낼 때도 있고, 가끔 외출 할 때도 있어서 환자들이 기피하는 간병인들도 있었다.
그러면 가끔 연홍이 찾아와서 위로를 해주고, 휠체어에 태워 바람도 쒜 주곤 하면서 아들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두 번째 암 수술을 하고 입원 해 있을 때 그가 정년을 맞이했다. 35년 정들었던 군청을 그만두고 나올 때 눈물이 났으나, 병원에 누워있는 마누라가 걱정이 앞섰다. 무사히 정년퇴직을 한 남편에게 마누라가 다정히 말했다. “여보. 그동안 고생 많았어유.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이제 당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보세유.” 그가 눈물을 글썽이며 마누라를 안았다. “고마워유. 당신이 아니었다면 어찌 무사히 정년까지 마칠 수 있었을까 생각하오. 이제 빨리 나아서 우리 경치 좋은 곳으로 구경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닙시다. 사랑해”
서로를 다독이며 힘을 불어 넣었으나 그가 정년한 지 6개월이 되던 그해 겨울 그의 손을 꼭 잡은 체 그녀는 하늘로 올라갔다. 다행인 것은 그의 마누라가 처음 수술하고 입원하던 그 때부터 병원 원목실 목사님이 매일 문병을 오면서 믿음을 전파해서 세례도 받고 눈을 감을 당시 예배 중에 찬송가를 들으면서 운명했다는 것이다. 마누라를 통해 그도 그 때부터 믿음을 받아들였고 주일이면 교회에 출석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연홍이도 대학 시절부터 교회 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있는 처지라 운명하던 날 임종 예배에 참석했다.
정림동 화장장을 거쳐 대전 추모 공원에 안치하던 날 연홍이 함께 발인을 지켰다.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치고 처갓집 식구들과 친척들이 돌아가고 아들과 딸은 피곤하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연홍과 단 둘이 마주하고 맥주 한 잔 씩 마시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홍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오늘 고생 너무 많으셨어요. 허전하시죠?” 그가 대답했다. “그동안 많은 날 아팠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마음의 준비는 늘 해 왔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그저 멍하니 아무 생각이 안나구만. 오늘 함께 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그가 연홍의 손을 꼭 잡았다.
발인 후 한 달이 멍하니 지나갔다. 마누라의 남은 흔적을 정리하고 지우면서 울기도 하고 헛웃음을 지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 달이 되어가던 주말 연홍이 찾아왔다. 어떤 협의도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둘이 구드레 선착장으로 가서 황포 돗 배에 올라탔다. 잿빛 하늘과 흐린 물빛이 그의 마음을 대변 해 주는 듯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낙화암 선착장에서 내리지 않고 되돌아오는 배에 그대로 앉아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연홍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선생님께 꼭 드려야 할 말이 있습니다.” 그가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이야기인데 이렇게 정색을 하는겨?”
연홍이 잿빛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사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제가 마지막으로 찾아 갔을 때 저에게 물었어요. 저의 부보님에 대한 내용을요.” 그가 몸을 곧추세우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모님께서는 저와 선생님에 대한 관계에 어떤 의문을 갖고 계신 거 같았어요.” 그가 소리쳤다. “아니 그러면 자네가 숨겨놓은 내 아들이라도 된다는 착각을 했던 거여?” 같은 배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냐는 등 일제히 몸을 돌렸다. 그가 일어나서 아무 일도 아니라고 정중히 사과를 하자 다들 몸을 원위치로 했다.
“아마도 그런 의심을 하신 거 같아요. 제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고 성격이나 하는 행동들이 선생님을 많이 닮아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지요. 저도 이해는 합니다.” 그가 물었다. “그럼 자네는 뭐라고 말씀드렸나?” 연홍이 한참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 사실 저의 가정에 대해 선생님께도 전혀 말씀 드리지
못했지 않습니까? 구태여 자세히 말씀 드릴 이유도 딱히 없었구요.“ 그가 말했다. ”그렇지. 구태여 자네의 가정사까지 우리가 일일이 알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맞아. 그런데 집사람한테는 이야기를 한 건가 ?“ ”네. 사모님에게는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렸어요.“
그가 물었다. “그 얘기를 듣고 집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 연홍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가 피어졌다. “내가 죽더라도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셨어요. 사실 저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도 모르거든요. 그래서 사모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심했어요. 그래도 되죠? 선생님.” 그의 얼굴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고마워. 나와 예전처럼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다니 나도 참 좋아. 그런데 어떻게 된 사연이기에 아버님에 대해 모른다는 건가? 혹시 입양 한 건가?” 연홍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말했다. “ 선생님께서 예전처럼 좋은 관계로 지내시자고 하시니 저는 너무 좋습니다. 마음속의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을게요. 사실은 저희 어머니는 결혼을 하지 않으셨어요. 유복자인 저 하나만 바라보고 사신 분이시거든요.”
그가 낮은 신음을 토해냈다. “유복자라니? 결혼을 약속했는데 아버님이 돌아 가셨는가?” 연홍이 말했다. “평소 어머니는 저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알지 못합니다. 단지 돌아가셨지 않을까 짐직 만 할 뿐입니다. 단지 어머니의 오래된 일기장을 어렸을 때 본적이 있는데 아버지 되시는 분에 대한 언급이 잠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가는데 연홍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
“어머니는 가난한 집 맏딸로 태어나 가정 일을 도맡아 하시느라,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시고 야간 학원을 다니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셨나 봅니다. 그리고 돈을 벌면서 어렵게 대학을 마치시고, 대학원까지 마치신 후 사립대학 체육학과 강의를 맡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여기가지 듣고 있던 그가 소리쳤다. “그만. 그만 하게나” 연홍이 놀라 물었다. “ 선생님. 왜 그러신지요? 어디 불편하신 대라도 있는지요?” 그가 손을 저었다. “아니. 아무렇지 않아. 계속해보게. 그럼 어머니는 평생 혼자 사셨단 말인가?” 연홍이 말을 이었다. “네. 어머니의 일기장 내용으로 짐작컨대 저의 아버지의 행복을 위해 혼자가 되신 거 같아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연홍을 와락 끌어안고 등을 토탁 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자네 어머니에게 잘 하시게나. 참 훌륭한 어머니 인거 같네. 앞으로도 우리 잘 지내
보세나.“ 그와 연홍의 몸에서 서서히 열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 연홍이 무어라고 다음 말을 한 것 같은데 그의 귀에서는 유람선 기계소리와 초저녁을 알리는 눅눅한 바람소리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 때 잿빛 하늘이 서서히 열리면서 백마강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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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천 시인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